대화식 성경연구 제24과 사람의 본질과 죽음의 상태
교사 (오말씀): 은혜님,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 오시는 길에 보니까 나뭇잎들이 아주 푸르고 싱그럽더라고요. 이렇게 살아있는 자연을 보면 참 마음이 활기차 지는 것 같아요.
새신자 (이은혜):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도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공원이 파릇파릇한 걸 보고 '아, 생명이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교사 (오말씀): 맞아요. 생명은 정말 신비롭죠. 그런데 은혜님, 혹시 얼마 전에 뉴스를 장식했던 아주 슬픈 사고나, 혹은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이라는 장벽을 마주할 때마다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사람은 죽으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영혼이라는 게 따로 있어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바로 가는 걸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잖아요.
새신자 (이은혜): 안 그래도 제 친구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할머니상을 당했거든요. 친구가 "할머니가 지금 하늘나라에서 좋은 곳 가셔서 날 내려다보고 계실 거야"라고 말하는데, 위로는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짜 사람이 죽자마자 영혼이 떠나서 하늘로 가는지 궁금했어요. 전설의 고향 같은 데 보면 귀신 이야기도 나오고요.
교사 (오말씀): 아주 솔직하고 중요한 의문이에요.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이야기들이 죽음 이후의 상태를 제각각 설명하지만,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설명서인 '성경'은 인간의 본질을 아주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답니다. 오늘 제24과 <사람의 본질과 죽음의 상태를 통해서, 사람의 구성요소, 죽음의 원인과 상태, 그리고 불멸의 조건과 시기라는 세 가지 중점사항을 성경 구절을 통해 하나씩 확실하게 알아볼게요!
1. 사람의 구성요소
① 흙 + 생기 = 생령(산 사람)
교사 (오말씀): 먼저,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창세기 2장 7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교사 (오말씀): 이 짧은 구절 안에 인간의 놀라운 비밀이 들어있어요. 하나님은 먼저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과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실제로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땅의 흙(원소)과 거의 똑같다고 해요. 우리 몸의 구성을 보면 산소(65%), 탄소(18%), 수소(10%), 질소(3%), 칼슘(2%), 카리(0.35%), 염분(0.3%), 유황(0.25%), 인(1%), 철(0.04%), 마그네슘(0.01%), 기타(0.05%)로 되어 있는데, 주된 요소들이 산소, 탄소, 수소, 질소입니다. 결국 성경의 말씀대로 사람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전도서 12장 7절의 말씀처럼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새신자 (이은혜): 정말 신기하네요. 우리 몸이 진짜 흙의 성분과 같다니 과학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흙으로 빚은 몸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지칭하는데, 이 생기는 무엇인가요?
교사 (오말씀): '생기'는 히브리어로 '니쉐마트 하임(נִשְׁמַת חַיִּים)'이라고 하는데, 성경 문맥에 따라 '영혼', '호흡', '기운' 등으로 번역됩니다. 즉, 흙이라는 생명 없는 육체에 생명이 전가되도록 하나님께서 직접 불어넣어 주신 '생명의 불꽃' 혹은 '호흡'을 뜻해요. 그래서 나중에 사람이 죽을 때는 이 숨, 즉 '네샤마(נְשָׁמָה)'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죠(왕상 17:17).
기억할 핵심 공식은 [흙 + 생기 = 생령]이라는 점이에요. 흙으로 만든 육체에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호흡)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생령'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נֶפֶשׁ חַיָּה)'인데, 네페쉬는 호흡과 생명을, 하야는 생존과 존재를 뜻해요. 즉, 영어 성경(NASB)의 표현처럼 단지 '살아있는 존재(living being)', 즉 하나의 산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에게 육체와 분리된 독자적인 영혼이 따로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육체와 호흡이 결합하여 '은혜'라는 하나의 살아있는 인격체가 되었다는 뜻이죠.
우리가 믿는 신앙의 기본 교리 제7과 <인간의 본질은 이 부분을 아주 웅장하고 아름답게 설명해 줍니다. 그대로 인용해 드릴 테니 잘 들어보세요.
“남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개성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부여받았다. 비록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각 사람은 육체, 정신, 혼의 불가분적인 통일체로서 생명과 호흡,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우리의 시조가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그들은 그분께 대한 자신의 의존성을 부인했으며, 하나님 아래에 있는 그들의 고귀한 지위에서 타락했다. 그들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은 훼손되었고 그들은 사망에 예속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이런 타락한 본성과 그 결과를 물려받았다. 그들은 연약성과 악에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통회할 때 그들 안에 조물주의 형상을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로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간에 사랑하며 자신의 환경을 돌보도록 소명되었다.” (기본 교리, 7)
교사 (오말씀): 이 말씀처럼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육체와 정신과 혼의 통일체이며, 매 순간 하나님께 의존해서만 살 수 있는 존재랍니다.
2. 죽음의 원인과 상태
② 죄 때문에 인간이 죽게 됨
새신자 (이은혜): 그렇다면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는 인간이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나요? 원래부터 죽도록 창조된 건가요?
교사 (오말씀): 아닙니다. 인간은 본래 영생하도록 창조되었지만, '죄'가 들어오면서 죽음이 찾아왔어요. 로마서 5장 12절을 읽어볼게요.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교사 (오말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이 세상에 죄가 시작되었고, 그 죄의 결과로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명시된 것처럼 "죄의 삯은 사망"인 것이죠. 죄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인데, 하나님과 떨어진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망의 그늘 아래 놓이게 됩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즉시 죽지 않고 삶이 연장될 수 있었던 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예수 그리스도)을 통한 십자가 구속의 경륜 덕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어요. 우리는 아담이 지은 도덕적인 죄책(원죄)을 그대로 물려받아 정죄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에 아들이 대신 감옥에 가지 않는 것처럼 연좌제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죄 자체가 아니라, 아담이 타락한 이후 성향이 변해버린 '죄의 영향과 죄에 이끌리는 타락한 본성'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세력에 스스로 저항할 수 없어 죄를 짓게 되고, 그 결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에 대해 재림교회의 명확한 가르침과 엘렌 화잇의 글을 인용해 드릴게요.
“재림교인들은 아담의 죄 때문에 인격적 및 개인적인 도덕적 죄책이 그의 후손들에게 전가된다는 의미의 원죄 개념을 강조하지 않는다.” (Review and Herald, 2000, 265).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가 모든 사람의 경험 가운데 나타난다. 악으로 기우는 성향 곧 인간이 다른 도움 없이 혼자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사람의 본성 속에 내재한다” (교육, 29).
교사 (오말씀): 결국 원죄란 '죄에 이끌리는 물려받은 성향'일 뿐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이 타락한 본성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③ 죽음은 흙과 생기가 분리되는 것임 & ④ 죽을 때 사람을 떠나는 것은 생명의 기운이다.
새신자 (이은혜): 그렇군요. 그럼 실제로 사람이 죽을 때 우리 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교사 (오말씀): 창조의 역순이 일어납니다. 창세기 3장 19절을 읽어볼게요.
(창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교사 (오말씀): 타락 이후 인간은 생계를 위해 이마에 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노동의 과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힘든 일이지만, 자아 방종을 막고 순결함을 북돋우며 인류를 타락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자 방벽이 되기도 하죠.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절에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교육 책의 귀한 문장도 들어보세요.
“창세 때에는 노동이 축복으로 주어졌다. 그것은 진보와 능력과 행복을 의미하였다. 죄에 대한 저주로 지상의 상태가 변화되면서, 노동의 조건에도 변화가 생겼다. 오늘날, 노동에는 염려와 피로와 고통이 따르지만, 오히려 그것은 행복과 발전의 원천이 되며, 유혹에 대한 방벽이 되는 것이다. 이 노동의 단련은 자아 방종을 막고, 근면과 순결과 굳은 마음을 북돋운다. 그리하여, 노동은 인류를 타락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교육, 214)”
교사 (오말씀): 그리고 인간의 수명이 다해 필경 흙으로 돌아갈 때가 오면, 결합해 있던 요소가 분리됩니다. 즉, [생령 생기 = 흙]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기운(호흡)이 거두어지면 인체는 원래 재료였던 흙의 원소로 깨끗하게 분해됩니다. 욥기 27장 3절을 보면 죽음을 앞둔 상태를 이렇게 표현해요.
(욥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교사 (오말씀): 여기서 '숨결'이나 '생기'를 뜻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인데, 이는 '움직이는 공기, 호흡, 바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처럼 흙으로 완벽한 인체 기관(심장, 폐, 뇌 등)을 만드신 후 불어넣으셨던 그 생명의 호흡이 코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이 생기는 원래 하나님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성경은 죽을 때 "영(생기)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것이지, 의식을 가진 어떤 유령이 날아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랍니다.
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 ⑥ 죽음은 잠자는 것과 같음
새신자 (이은혜): 아! 흙과 호흡이 결합했다가 분리되는 거군요. 그럼 숨이 끊어진 죽은 사람의 의식 상태는 지금 어떤가요?
교사 (오말씀): 성경은 아주 단호하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선언합니다. 전도서 9장 5절을 같이 읽어봐요.
(전 9: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교사 (오말씀): 죽은 사람은 완전히 무의식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죽자마자 곧바로 의식을 가지고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게 아니에요. 전도서 9장 4절에 보면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고 했습니다. 살아있을 때만이 구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죠. 죽고 나면 모든 기회는 끝이 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성경 기자들은 이 죽음의 무의식 상태를 뭐라고 불렀을까요? 바로 '잠'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가복음 8장 52절을 읽어볼게요.
(눅 8: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교사 (오말씀):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잔다'고 하셨고, 요한복음 11장 11절에서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하셨어요. 구약 성경에서도 다윗이나 솔로몬, 여러 왕의 죽음을 '조상들과 함께 자니라'고 표현했고, 욥이나 예레미야, 다니엘 선지자도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의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60)고 했고, 사도 바울과 베드로 역시 죽음을 잠으로 묘사했죠.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상태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무의식 상태: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전 9:5)
의식적 사고 중단: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
일상 활동 중단: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음"(전 9:10)
산 자와의 분리: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전 9:6)
정서적 활동 중단: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지 오래니"(전 9:6)
하나님 찬양 못함: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니"(시 115:17)
다시 깨어남: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요 5:28, 29)
교사 (오말씀): 은혜님, 잠을 깊이 자고 나면 8시간이 지났어도 마치 1초 만에 눈을 뜬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죽음도 이와 같아요. 눈을 감는 순간 모든 의식이 정지되었다가, 눈을 뜨면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부활의 아침이 되는 것입니다.
⑦ 당일에 그 생각과 계획이 소멸됨 & ⑧ 주께 감사치 못함 & ⑨ 그러므로 죽으면 하나님을 찬양 못함
새신자 (이은혜): 죽음이 잠과 같다는 표현이 무섭지 않고 오히려 참 평안하게 느껴지네요.
교사 (오말씀): 맞아요. 시편 146편 4절 말씀도 같은 사실을 증명합니다.
(시 146: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교사 (오말씀):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 모든 도모(생각과 계획)가 멈춥니다. 그래서 죽음은 살아있는 가족들과의 가슴 아픈 이별이고 관계의 단절이기 때문에 슬픈 것이지요. 만약 죽자마자 영혼이 천국에 간다면 슬퍼할 이유가 없겠지만, 성경은 죽음을 단절로 보기 때문에 슬퍼하되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또한 죽음의 상태에서는 시편 6편 5절과 시편 115편 1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과의 소통도 잠시 정지됩니다.
(시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시 115:17)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교사 (오말씀): 무덤(스올, 적막한 데)에 내려간 자들은 하나님을 기억할 수도, 찬양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은 개인의 은혜의 시기가 끝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살아있을 때' 회개하고, 살았을 때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비록 죽음의 상태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을지라도, 고린도후서 1장 9절과 4장 14절의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를 기억하시고 다시 살리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후 1:9)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고후 4:14)
교사 (오말씀): 영원한 생명과 죽음은 오직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의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교회증언의 한 구절을 읽어드릴게요.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미구에 오실 것이고 각 사람의 상황이 영원한 생명이나 죽음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그들은 현존하는 유행과 일치되는 의복에 시간과 돈을 바칠 수 없었을 것이다.”(교회증언 4권, 641)
3. 불멸의 조건과 시기
⑩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약속됨
새신자 (이은혜): 그럼 인간은 원래부터 죽지 않는 존재(불멸)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건가요?
교사 (오말씀): 정확하게 깨달으셨어요! 그것을 '조건적 불멸'이라고 불러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볼까요?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교사 (오말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이유는, 요한일서 4장 8~9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본질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이며,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즉, 인간에게 원래 영혼불멸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선물로 '영생과 불멸'이 약속되는 것입니다.
⑪ 죽었던 의인들이 살아남 & ⑫ 마지막 나팔 때 썩지 않은 몸으로 변화
새신자 (이은혜): 그렇다면 그 영생의 몸, 즉 썩지 않는 불멸의 몸을 받게 되는 '시기'는 정확히 언제인가요? 사람이 죽는 순간인가요?
교사 (오말씀): 많은 교회가 사람이 죽을 때 바로 영생의 몸을 얻는다고 잘못 가르치지만, 성경은 명백하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부활의 아침'에 불멸성이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을 읽어볼게요.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교사 (오말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온 우주가 들을 수 있는 호령과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눈에 보이게 강림하십니다. 그때 요한복음 5장 25절의 말씀처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깨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는' 위대한 부활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죠. 고린도전서 15장 51절부터 53절까지 이 신비로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고전 15:5153)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교사 (오말씀): 사도 바울은 이것을 '비밀'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죽음의 잠에 머물러 있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순식간에 홀연히" 영화로운 영생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썩을 수밖에 없던 육체가 하나님의 재창조 능력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죽을 수밖에 없던 인생이 비로소 '죽지 아니함(불멸성)'을 선물로 받게 되는 시기는 바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새신자 (이은혜): 오늘 말씀을 들으니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의 아침이 너무나 기다려져요.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상태를 바르게 아는 게 참 중요하네요.
교사 (오말씀): 참 다행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 안에서 매일 감사의 삶을 사시길 바래요. 그럼 오늘 공부를 마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치는 기도
교사 (오말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은혜님과 함께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본질과 죽음의 상태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단지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셔서 살아있는 고귀한 존재로 삼아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죄로 인해 우리에게 찾아온 죽음이라는 슬픔과 이별의 장벽 앞에서도, 주님께서 이를 '잠'이라 불러주시고 부활의 약속을 주셨사오니 은혜님의 마음에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두려움이 다 사라지게 고정시켜 주옵소서. 살아있는 동안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개인의 구주로 온전히 영접하여 주님이 약속하신 조건적 불멸의 축복을 소유하게 하시고,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 재림하시는 그 영광의 아침에 완전히 변화되어 썩지 않을 영생의 몸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은혜님과 제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