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식 성경연구 제25과 영혼이란 무엇인가?
교사 (오말씀): 은혜님,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 대구 날씨가 선선하니 참 좋습니다. 오시는 길에 보니까 다들 옷차림도 가볍고 표정들이 밝으시더라고요.
새신자 (이은혜): 네, 선생님! 날씨가 좋아서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왔어요. 일주일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교사 (오말씀): 정말 그래요. 은혜님, 오늘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가벼운 퀴즈 같은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혹시 예전에 유행했던 영화 중에서 주인공이 죽은 후에 유령이 되어서 사랑하는 연인 곁을 맴돌며 보호해 주는 로맨스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면 평소에 "와, 그 사람 영혼이 참 맑다"라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같은 말을 자주 쓰기도 하잖아요. 은혜님은 평소에 '영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새신자 (이은혜): 음... 아무래도 몸에서 빠져나가는 투명한 기체 같은 형태가 먼저 떠올라요.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남고 영혼만 쏙 빠져나가서 하늘나라로 가거나 구천을 떠돈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교사 (오말씀): 아주 솔직한 답변 감사합니다. 세상의 많은 영화나 문학, 그리고 심지어 다른 교회에서도 그렇게 많이 가르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난주에 우리가 '죽음은 잠과 같다'는 것을 배운 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영혼의 본질은 세상의 생각과 완전히 다르답니다. 오늘 제25과 <영혼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세 가지 중점사항인 성경에 나타난 속성, 성경에 사용된 '영혼'의 의미, 그리고 영혼 불멸설의 모순을 성경 구절 그대로 확실하게 짚어볼게요. 준비되셨나요?
새신자 (이은혜): 네, 선생님! 오늘 주제도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잘 배워보겠습니다.
1. 성경에 나타난 속성
① 몸, 영, 혼(영혼)
교사 (오말씀): 먼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인간의 구성 요소를 언급한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교사 (오말씀): 바울은 여기서 '평강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어요. 예수님은 죄로 인해 깨어졌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십자가의 피로 화평하게 만들어 주신 분이에요. 골로새서 1장 20절 말씀처럼 말이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교사 (오말씀): 그리고 이어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축복하는데, 이것을 '성화'라고 불러요. 성화는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역사의 결과이자,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칭의) 사람이 하늘을 향해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자라남의 성장 과정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자라날 수 없기 때문에, 성화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의 단계예요.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새신자 (이은혜): 아, 성화는 구원받은 자가 성령님 안에서 매일 자라가는 과정이군요! 그런데 23절 본문에 보면 인간을 '영과 혼과 몸'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요. 이건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교사 (오말씀): 그렇게 오해하기 쉽지만,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해요. 당시 교회 신자들은 헬라(그리스) 철학의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어서, 인간을 이분론(몸과 영혼)이나 삼분론(영, 혼, 몸)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단어를 사용하되, 인간의 '전인격(전체)'이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깨끗하게 보존되기를 바란다는 강력한 소망을 피력한 것이지, 몸을 떠난 어떤 독자적인 유령 상태를 인정해 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단어들을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영 (프뉴마, pneuma): 바람, 호흡, 생명, 영, 성령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인 통로를 말합니다.
혼 (프쉬케, psuche-): 영혼, 목숨, 생명을 뜻해요. 성경 여러 곳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의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히브리어 13장 17절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베드로전서 2장 11절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 베드로전서 2장 25절과 야고보서 1장 21절의 "영혼의 감독되신", 야고보서 5장 20절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베드로전서 1장 9절, 1장 22절, 4장 19절의 "영혼의 구원" 등이 모두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과 정신, 인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몸 (소마, so-ma): 우리의 눈에 보이는 신체, 인체, 형태를 뜻합니다.
② 흙 + 호흡 = 도모 & ③ 흙 + 생기 = 생령
교사 (오말씀):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작동하는지는 시편 146편 4절과 창세기 2장 7절의 창조 공식을 보면 가장 명확해집니다.
(시 146: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교사 (오말씀): 지난주에 배운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호흡이 끊어지고 원래 재료였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인간이 죽으면 육체를 영구히 보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흙으로 정직하게 분해되도록 매장하는 것이 냄새도 없고 가장 청결하고 깨끗한 방법이죠. 창세기 3장 19절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신 말씀 그대로 [흙 + 생기 = 생령]이었던 공식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생기)이 거두어지면 남는 것은 흙뿐입니다.
그리고 시편 146편 4절에 아주 중요한 단어가 나와요. 호흡이 끊어지면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하죠? 여기서 '생각'이 한자어로 '도모'입니다. 인간이 죽는 순간 어떤 계획이나 목적을 이루는 모든 이성적인 정신 활동(도모)이 완전히 끊어집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는 그 어떤 교감이나 상호작용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슬픈 이별이자 관계의 단절인 것이죠. 만약 죽자마자 영혼이 천국에 가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죽음이 그렇게까지 슬픈 단절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도모가 소멸하기 때문에 장례식장은 이별의 고통으로 가득 차며, 그렇기에 우리에겐 재림 때 있을 부활의 소망이 유일한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의 공식을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는데 인간의 몸은 흙처럼 산소, 탄소, 수소, 질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죽으면 전도서 12장 7절 말씀처럼 흙은 땅으로, 영(생기)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교사 (오말씀): 흙으로 된 육체에 코를 통해 불어넣으신 '생기'는 히브리어로 '니쉐마트 하임'이며 잠언 20장 27절, 이사야 2장 22절, 욥기 33장 4절 등에서 영혼, 호흡, 기운으로 번역되는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입니다. 죽을 때는 이 숨(네샤마)이 끊어지는 것이죠. 그렇게 생기가 결합하여 탄생한 '생령'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라고 하는데, 욥기 41장 21절이나 왕상 17장 21절 등에서 숨, 호흡, 생명을 뜻하는 '네페쉬'와 생존, 존재를 뜻하는 '하야'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영혼이란 육체와 분리된 어떤 유령 같은 유기체가 아니라, 생각하고 계획하고 활동하는 살아있는 인격체(living being)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 성경에 사용된 “영혼”의 의미
④ 영혼(생명=히,네페쉬)을 지으신 여호와: 목숨이라는 뜻
새신자 (이은혜): 아!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은 독립된 유령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인격체', 즉 '목숨' 자체를 의미하는 거였군요.
교사 (오말씀): 맞습니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절이 예레미야 38장 16절에 아주 생생하게 나와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렘 38:16) 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으며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하는지라
교사 (오말씀): 시드기야 왕이 맹세하면서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라고 하죠? 이 부분을 영어 성경(NIV)으로 보면 "has given us breath", 즉 "우리에게 호흡을 주신 여호와"라고 명확히 번역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영혼을 뜻하는 '네페쉬(nephesh)'는 '생명, 숨쉬다'라는 동작에서 유래한 단어이고, 헬라어 문맥에서도 '프쉬케(psuche)'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개체'를 뜻합니다. 즉, 왕의 고백은 "우리에게 목숨과 호흡을 주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지, 영혼이라는 유령을 만들어 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⑤ 같은 말(네페쉬) 복수형이 “사람들”로 번역됨
새신자 (이은혜): 단어의 원뜻을 들으니 오해가 확 풀리네요. 그럼 민수기 19장 18절은 어떤가요?
(민 19: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교사 (오말씀): 이 구절도 아주 재밌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라고 되어 있죠? 놀랍게도 여기서 '사람들'로 번역된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가 바로 '영혼'을 뜻하는 '네페쉬(nephesh)'의 복수형입니다. 성경 기자들은 영혼이라는 단어를 쓸 때 유령을 생각한 게 아니라, 그냥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들, 생명체들'을 생각하고 쓴 거예요.
구약 성경 전체에서 이 '네페쉬'라는 단어가 약 750회나 나오는데, 모두 생명이 있어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이나 짐승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창세기 9장 4절, 레위기 17장 11절, 14절, 신명기 12장 23절 등을 보면 생명의 통로가 되는 '피(Blood)' 자체를 '네페쉬'나 '프쉬케'로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살아있는 상태가 곧 영혼인 것이죠. 신약 성경에서도 이 단어들은 몸(소마)이나 생명(프쉬케)으로 번역되어 동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체를 뜻합니다.
⑥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 ⑦ 영혼이 떠나니라: 숨이 끊어지다.
교사 (오말씀): 신약성경 누가복음 1.장 46절에 마리아가 고백한 아름다운 찬양도 같은 뜻이에요.
(눅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교사 (오말씀): 여기서 마리아가 말한 '내 영혼(프쉬케)'도 몸 밖으로 유령이 나와서 찬양한다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자신의 온 인격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찬양한다는 고백이에요. 성경에서 이 '프쉬케'는 계시록 8장 7절, 누가복음 12장 20절, 사도행전 2장 20절 말씀처럼 지상의 외적이고 육체적인 '생명'을 가리키기도 하고, 마태복음 26장 38절, 요한복음 12장 27절처럼 인간의 깊은 감정과 정서를 뜻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마태복음 10장 28절이나 계시록 6장 9절처럼 육체와 구별되는 인간의 내면적이고 깊은 영적인 영역, 즉 '성령 충만함으로 주어지는 고차원적인 영성'을 뜻할 때도 있지만, 이 역시 살아있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영혼을 뜻하는 것이지 죽어서 둥둥 떠다니는 귀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기록된 마태복음 27장 50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교사 (오말씀): 이 구절 때문에 "거 봐라,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떠나지 않았느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쓰인 '영혼'의 헬라어 원어는 '프뉴마(pneuma)'입니다. 영어 성경(NASB)을 보면 "he gave up his spirit", 즉 "그의 영(호흡/정신)을 거두셨다, 내어주셨다"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이 프뉴마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크게 몇 가지 공통 의미를 가집니다.
(a) 바람: 첫째로 움직이는 공기인 바람을 뜻합니다.
(b) 호흡: 숨을 쉬는 호흡 자체를 의미합니다.
(c) 생명: 호흡은 곧 살아있다는 생명의 표시입니다.
(d) 영혼: 생명이라는 뜻에서 '프쉬케'와 혼용됩니다.
(e) 영: 사람과 사람, 혹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관계에서 오가는 정신과 영을 뜻합니다.
(f) 영: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성령)을 뜻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셨다는 표현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어 생명의 호흡이 멈추었다는 뜻이지, 육체와 분리된 유령이 천당이나 지옥으로 날아갔다는 뜻이 정연히 아닙니다.
3. 영혼 불멸설의 모순
⑧ 야곱이 스올(음부)에서 내려갔다면 구원받지 못할 것임 & ⑨ 선한 사람 욥도 음부/스올로 내려갔음
새신자 (이은혜): 성경의 용어들을 원어로 풀어서 들으니 정말 명쾌하네요! 그럼 만약 세상의 주장처럼 영혼이 죽지 않고 바로 천국이나 지옥(음부)으로 간다면 성경 기사들 중에 어떤 모순이 생기나요?
교사 (오말씀): 아주 결정적인 모순들이 생겨요. 만약 죽자마자 영혼이 지옥(음부)이나 천국으로 갈라진다면, 구약의 가장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인 야곱이나 욥이 죽어서 지옥에 갔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창세기 42장 38절에서 야곱이 한 말을 읽어볼게요.
(창 42: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교사 (오말씀): 야곱은 자기가 죽으면 어디로 내려간다고 하나요? '스올'로 내려간다고 하죠. 이 '스올(sheol)'은 헬라어로 '하데스'라고 하는데, 본래 의미는 단순히 '죽은 자의 거처, 무덤, 구덩이'를 뜻합니다. 그런데 권위 있는 <킹제임스 성경(KJV)> 조차도 이 단어를 문맥에 따라 "무덤"(31회), "지옥"(31회), "구덩이"(3회)로 상당히 모호하고 일관성 없게 번역해 버리는 바람에 큰 오해가 생겼어요. 하지만 원어의 뜻은 전부 '무덤'이 맞습니다. 만약 스올이 진짜 악인들이 고통받는 불타는 지옥이라면,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던 야곱이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모순이 발생하잖아요?
구약 성경에서 묘사하는 이 '스올(무덤)'의 용례들을 보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a) 욥기 10장 21~22절이나 시편 143편 3절 말씀처럼 돌아오지 못할 어둡고 암울한 암흑의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b) 시편 94편 17절, 115편 17절처럼 고요하고 적막한 곳입니다.
(c) 욥기 14장 21절, 전도서 9장 5절, 10절 말씀처럼 스올(무덤)에 있는 자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d) 시편 6편 5절, 이사야 38장 18절 말씀처럼 죽은 자들은 그 어떤 종교 의식도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도 없습니다.
당대 최고의 의인이었던 욥 역시 고통 속에서 욥기 17장 13절과 16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 17:13,16)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교사 (오말씀): 의인 욥이 소망하며 내려가겠다고 한 그 '스올의 문'과 '흑암의 침상'은 결코 고통스러운 지옥이 아니라, 죄악 세상의 고통을 멈추고 흙 속에서 편안히 잠들어 쉬는 '무덤'의 심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영혼불멸설의 관점으로 보면 의인들이 다 지옥에 갔다는 엄청난 모순에 부딪히게 되죠.
⑩ 다윗도 하늘에 가지 못했음
새신자 (이은혜): 정말 그러네요! 영혼이 바로 천국에 간다면 의인들이 스올(무덤)로 내려갔다는 성경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하네요.
교사 (오말씀): 맞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 34절에도 사도 베드로가 유대인들 앞에서 설교하며 엄청난 선언을 합니다.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교사 (오말씀): 다윗 왕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 불렸던 선한 왕이잖아요? 만약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분리되어 곧바로 천국에 가는 게 사실이라면, 베드로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에 다윗은 당연히 하늘 천국에 올라가 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라고 아주 명백하게 못을 박고 있어요. 왜냐하면 몸을 떠나 독자적으로 돌아다니는 사후 영혼이라는 개념은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무덤은 당시 예루살렘 지경에 그대로 있었고, 그의 육체는 무덤에서 흙으로 성실히 돌아갔으며 아직 승천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하늘에 올라가는 시기는 오직 하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부활의 아침에 온전한 몸으로 신령하게 변화되어 승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52절의 말씀처럼 말이죠.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⑪ 부활한 후에 노래함
교사 (오말씀): 이 위대한 부활과 승천의 날을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 26장 19절에 미리 바라보며 기쁘게 예언했습니다.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교사 (오말씀):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의 환상이나 호세아 6장 2절 말씀처럼, 이 구절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장면을 설명하는 말씀이에요. 시편 115편 17절의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하신 말씀과 이사야 38장 18절의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하신 말씀처럼, 무덤 속에 누워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 재림하시는 날,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고 티끌에 누운 자들이 깨어 부활할 때에야 비로소 영광의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주의 이슬'은 죽은 자들을 다시 창조하시고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생명의 능력을 상징해요. 비가 내리지 않던 홍수 이전 지구 환경에서는 이슬이 온 지면의 생명들을 키우는 젖줄 역할을 했고, 지금도 밤새 내리는 이슬은 가뭄기(건기)에 식물들에게 유용한 수분을 공급하는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창 27:28, 삼하 1:21, 왕상 17:1, 슥 8:12)입니다. 이 메마른 땅을 적시는 이슬처럼, 주님의 생명의 능력이 무덤 속에 잠든 성도들을 순식간에 홀연히 깨우실 것입니다.
⑫ 모든 사람에게 사망은 원수임
새신자 (이은혜): 부활의 아침에 깨어나 노래한다는 말씀이 정말 감동적이에요. 그럼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5장 26절을 읽어볼까요?
(고전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교사 (오말씀): 성경은 죽음(사망)을 우리의 영원한 '원수'라고 불러요. 죽음은 이 땅에서 인간이 겪는 모든 관계의 마지막이며 끝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말씀처럼 사망은 죄의 대가이자 형벌이기 때문에, 죄인도 일단 죽고 나면 그 존재 자체가 소멸하므로 더 이상 죄를 지을 수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됩니다.
한번 죽는 것은 타락한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우리는 이 원수 같은 죽음을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방법을 선물 받았습니다. 바로 로마서 6장 3~5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통해 나의 옛 자아가 완전히 장사 지내 진 바 되고, 주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교사 (오말씀): 우주에서 디모데전서 6장 16절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본질적인 '죽지 아니함(불멸성)'이 존재합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교사 (오말씀):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은,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영혼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가 공급되어야만 살 수 있는 '조건적 영생 구조'를 가진 피조물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바로 이 원수 같은 사망을 완전히 멸하시고 폐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과 요한계시록 20장 14절의 말씀처럼 말이죠.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교사 (오말씀): 예수님은 히브리어 2장 14절 말씀처럼 우리와 똑같은 혈과 육을 지니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죽음을 겪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로마서 8장 3절, 갈라디아서 3장 13~14절 말씀처럼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나무에 달려 율법의 저주와 죽음의 값을 대신 치러주신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본인에게 돌리시고, 자신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셨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죽음을 대속하신 우리 예수님은, 장차 은혜님을 부활과 영생의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그 위대한 재창조 사역을 지금도 쉬지 않고 계속하고 계신답니다.
새신자 (이은혜): 선생님, 오늘 공부를 통해 영혼에 대한 세상의 잘못된 미신이나 오해들이 성경 말씀으로 완전히 정돈되었어요. 내가 원래부터 불멸의 영혼을 가진 게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붙들 때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배우니 주님의 은혜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요. 원수 같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이 제 구주이신 게 참 든든합니다.
교사 (오말씀): 은혜님이 진리를 올바르게 경청하고 깨달으시니 제 마음도 너무나 기쁩니다. 우리가 가진 이 부활의 소망을 마음에 꼭 품고 한 주간도 승리하시길 바래요. 그럼 마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마치는 기도
교사 (오말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소중한 이은혜님과 함께 성경이 말하는 영혼의 참된 의미를 공부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수많은 철학과 미신이 영혼불멸을 말하며 사람들을 혼란케 할 때, 우리는 오직 스스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매 순간 하나님의 생기와 호흡 없이는 살 수 없는 피조물임을 겸손히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던 사망의 원수를 십자가로 완전히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우리에게 썩지 아니할 영생의 소망을 드러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님의 온 영과 혼과 몸이 날마다 성령님의 역사로 거룩하게 자라나는 성화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장차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 친히 강림하시는 그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에 흠 없고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한 주간의 삶도 부활과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