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식 성경연구 제31과 율법과 복음(믿음과 행함)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7|조회수40 목록 댓글 0

대화식 성경연구 제31과 율법과 복음(믿음과 행함)

 

교사 (오말씀): 은혜님,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늘 이렇게 다시 마주 앉으니 참 좋습니다. 혹시 오시면서 길가에 서 있는 예쁜 가로수들 보셨나요?

 

새신자 (이은혜): 네, 선생님! 오늘따라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나무들이 아주 초록초록하고 건강해 보이더라고요.

 

교사 (오말씀): 맞아요, 식물들이 참 파릇파릇하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은혜님께 그 나무와 관련된 가벼운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만약 은혜님이 마당에 아주 탐스러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으셨다고 상상해 보세요. 은혜님은 그 나무가 '사과나무'라는 것을 언제, 무엇을 보고 확신하실 수 있을까요?

 

새신자 (이은혜): 음… 당연히 시간이 지나서 나무가지에 빨갛고 맛있는 사과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걸 볼 때 확실하게 알 수 있겠죠?

 

교사 (오말씀): 맞습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의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죠. 그런데 사과나무가 사과 열매를 맺기 위해서 '나는 사과나무가 되어야 해!' 하고 억지로 노력해서 열매를 맺는 걸까요, 아니면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열매가 열리는 걸까요?

 

새신자 (이은혜): 아, 당연히 사과나무의 생명을 본래 가지고 있으니까 가을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과가 열리는 거겠죠?

 

교사 (오말씀): 정확해요! 바로 그 원리가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율법과 복음', 그리고 '믿음과 행함'의 관계랍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가, 행함으로 구원받는가?" 혹은 "이제 복음의 시대이니 구약의 율법은 다 없어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깊은 혼란을 겪곤 해요. 오늘 말씀을 통해, 사과나무의 생명(믿음)과 그에 따른 아름다운 열매(행함)가 어떻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지 성경을 통해 확실하게 정리해 봐요.

 

 

 

1. 믿음 구원의 조건

 

① 예수를 믿는 자에게 약속된 구원

 

교사 (오말씀): 먼저 기독교 복음의 정수라고 불리는 가장 유명한 성경절이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은혜님이 정성스럽게 읽어주시겠어요?

 

새신자 (이은혜): 네, 정말 자주 들었던 말씀이네요. 읽어보겠습니다.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교사 (오말씀): 아멘! 이 구절은 흔히 '작은 복음서' 또는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이라고 불릴 만큼 성경 전체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어요. 구약 성경 전체에 예언되었던 메시야 언약이,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으로 성취되는 복음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이 구절에 담긴 단어들을 제가 하나씩 풀어서 명쾌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첫째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할 때 이 '세상'은 그리스어로 '코스모스'라고 하는데, 특정 민족이나 유대인들만이 아닌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나뿐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유일한 동기는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4장 8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기록할 때 사용한 이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전혀 구하지 않고 아낌없이 전부를 내어주는 신성하고 무아적인 사랑인 '아가페'입니다.

 

둘째로, "독생자를 주셨으니"에서 독생자(only begotten Son)는 헬라어 원어로 '모노게네스'라고 합니다. 이는 '홀로, 혼자서'라는 뜻의 '모노스'와 '자식, 자손'이라는 뜻의 '게노스'가 합쳐진 단어인데, 구체적인 의미를 살려 정확히 번역하면 '유일한 아들(only Son)'이 맞습니다. 이 단어는 구약 히브리어로 '야히드'와 대응되는데, 어떤 대상을 육체적으로 "낳았다"는 생물학적 의미가 아니라,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서 "유일하고 고귀하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셋째로,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라는 말씀은, 주님이 선물로 주시는 구원의 문이 특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음을 뜻합니다. 조건 없이 누구나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죠.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진 그분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내 친아버지라 부르며 신뢰하면 됩니다.

 

넷째로, 주님은 우리 눈앞에 "멸망과 영생"을 극명하게 대비하여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는 곧 생명과 죽음, 삶과 파멸의 길 중에서 우리가 어느 길을 갈 것인지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축복된 선택으로 늘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내 힘으로만 버티며 사는 삶은 결국 영적인 외로움과 절망, 불행과 고통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님이 그 절망의 멸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도 하나님의 본심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② 은혜와 믿음으로 얻는 구원

 

새신자 (이은혜): 우리의 행위나 자격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의 선물을 받는다는 게 정말 다행이고 감사해요.

 

교사 (오말씀): 맞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구원의 원리를 아주 명확하게 못 박아 두었습니다.

 

>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교사 (오말씀): 이 구절도 세부적으로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그 은혜를 인하여"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조건 없는 무한한 은혜와 자비를 십자가라는 거대한 사건을 통해 온 인류에게 확연히 보여주셨음을 뜻합니다. 고린도전서 1:18 말씀처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죠. 그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으로 표현되었으며, 우리는 그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겸손히 손을 내밀어 감사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로마서 3장 2426절에도 이 구원의 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롬 3:242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착한 일을 해서 구원을 쟁취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치르신 대속(속량)의 대가 덕분에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선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구원도, 거듭난 자에게 부어주시는 성령(행 2:38)도, 은혜로 의롭게 된 신분(롬 5:17)과 하늘의 온갖 영적인 은사들(약 1:17)도 전부 인간이 노력해서 쟁취한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완벽한 '선물'이랍니다.

 

③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의 의

 

새신자 (이은혜): 그럼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건가요?

 

교사 (오말씀): 네, 인간의 불완전한 노력이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기준의 온전한 의에 도달할 수 없어요. 바울 사도의 엄숙한 선언을 읽어볼게요.

 

>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교사 (오말씀): 이 구절에 담긴 복음의 원리를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성경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지적해 주고, 우리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으니 속히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가르쳐주는 '안내판이나 이정표'와 같습니다. 마치 거울이 우리 얼굴에 묻은 더러운 오점을 똑똑히 비추어 알려주지만, 거울 자체가 그 오점을 깨끗하게 씻겨주지는 못하는 것과 같지요. 율법(거울)을 통해 나의 죄를 깨달았다면, 그 죄를 씻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생명수)로 나아가 정결케 함을 받아야 합니다(갈 3:24).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는 이 믿음의 의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은 차별 없이 예수님의 완벽한 의를 우리의 것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행위로 구원받으려 하는 율법주의가 왜 위험한지 기본교리의 글을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이르러오는 선물이다(엡 2:8). "율법의 그 어떤 행위도, 아무리 칭찬받을 만한 노력이나 선한 행위도 그것이 많든 적든, 희생적이든 아니든 간에 결코 죄인을 의롭게 만들 수 없다"(딛 3:5; 롬 3:20).” (기본교리28, 335)

 

④ 믿음이 율법을 파기하지 않음

 

새신자 (이은혜): 아! 행함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건 이제 확실히 이해가 돼요. 그런데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면, 이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규칙이나 율법 같은 건 아예 안 지키고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건가요?

 

교사 (오말씀): 하하, 바로 그 부분이 많은 사람이 빠지는 또 다른 극단적인 오해랍니다. 바울 사도는 그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이렇게 대답했어요.

 

>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교사 (오말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다"고 강력하게 선언하죠.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비록 율법이 죄인인 우리를 스스로 의롭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자녀들이 위험한 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안전한 '울타리'와 같고,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올바르게 인도해 주는 '이정표'이자, 양심의 거울입니다.

 

로마서 3장 21절에 보면 율법 외에 “하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하나님의 율법을 쓸모없다고 폐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대가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율법의 엄숙한 요구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목숨을 버려 치르심으로써, 율법의 권위와 요구를 완벽하게 높이고 완성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은혜를 깨달은 참된 믿음은 율법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온 마음을 다해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됩니다. 관련된 교리의 글입니다.

 

> "그리스도의 죽음이 의문의 율법의 효력을 종식시킨 반면에, 십계명의 권위를 확립시켰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케 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사실이 율법의 폐지를 뜻하거나 우리에게 율법의 원칙들을 범할 자유를 주셨다는 의미는 아니다.”(기본교리28, 337)

 

⑤ 도덕법(십계명)은 영원함

 

교사 (오말씀): 예수님께서도 직접 산상보훈 설교를 통해 율법의 영원함에 대해 쐐기를 박으셨습니다. 두 성경절을 이어서 읽어볼게요.

 

>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 (눅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교사 (오말씀): 주님의 이 선언은 율법의 중요성을 아주 강력하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풀어 설명해 드릴게요.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란 당시 모세오경과 예언서, 시편(눅 24:44)을 포함한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도덕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법을 폐지한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이 명하는 사랑의 요구를 온전히 채우시고, 인간이 율법을 어겨서 치러야 했던 무서운 죄의 대가를 십자가의 희생으로 대신 치르심으로써 법의 입법 취지를 완벽하게 성취하고 완성하셨다는 뜻입니다. 어떤 법이든 국민들이 그것을 온전히 준수하고 지킬 때 비로소 법의 가치가 서는 것과 같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어떤 아이가 놀다가 실수로 이웃집의 비싼 유리창을 깨뜨렸어요. 아이에게는 변상할 돈이 없어서 울고 있는데, 그 부모가 대신 가서 유리창 값을 아낌없이 다 보상해 주었습니다. 부모의 은혜로 문제가 다 해결되었죠. 그렇다고 해서 그 자녀가 이제부터 "와! 우리 부모님이 다 해결해 주시니까 이제부터는 남의 집 유리창을 마음대로 깨고 다녀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말이 될까요? 결코 그럴 수 없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시고 구원을 거저 선물해 주셨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덕법인 십계명이 폐지되었겠습니까? "구원받았으니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살인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며 살아도 상관없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복음을 모독하는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엄숙함에 대해 "일점일획(一點一劃)"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일점'이란 히브리어 문자 중 가장 크기가 작은 글자인 '요드'나 헬라어의 '이오타'를 말하고, '일획'은 글자 구분을 위해 살짝 튀어나오게 삐쳐 쓴 작은 돌출 표시를 뜻합니다. 성경 필사자가 점 하나, 획 하나를 잘못 찍으면 단어의 시제가 바뀌거나 단수와 복수가 변하고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죠. 주님은 마태복음 5장 1819절에서 이렇게 엄격하게 경고하셨습니다.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영원히 변치 않는 최고의 도덕 기준이랍니다.

 

 

 

2. 행함 구원의 결과

 

⑥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새신자 (이은혜): 아, 그렇군요! 율법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녀로서 마땅히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 삶의 기준이 되는 거군요.

 

교사 (오말씀):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원리예요. 예수님은 말로만 믿는다고 떠드는 형식적인 신앙에 대해 따갑게 경고하셨습니다.

 

>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교사 (오말씀): 이 말씀은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며 예수를 부르는 사람은 겉으로는 메시야 신앙을 아주 유창하게 고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4절에서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강하게 책망했지요. 참된 신앙고백은 입술의 소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주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제로 행하는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하난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셨지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셨습니다.

날마다 열심을 내어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숨겨진 위선과 행실을 돌이켜 고치는 것이죠. 이에 대한 교회의 엄숙한 권고의 글입니다.

 

>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바에 의하면, 그대들이 열심을 내어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을 입에서 토해 버리실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의 공언이 거짓임을 드러낸다.”(교회증언 1권, 482)

 

⑦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계명 준수

 

교사 (오말씀):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진짜 동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을 읽어볼까요?

 

>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교사 (오말씀): 은혜님,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담아 선물로 주신 것이 '십계명'이랍니다.

 

십계명은 결코 우리를 얽매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을 자상하게 제시해 주는 사랑의 가이드라인이에요.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피조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받은 그 풍성한 사랑을 토대로 내 곁의 소중한 이웃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의 정신을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는 말씀으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구약 신명기 26장 16절에도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하셨지요. 십계명은 억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흘러넘침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배로운 열 가지 계명의 원문을 있는 그대로 제 목소리로 직접 읽어드릴게요. 가만히 경청해 보세요.

 

> 첫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둘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셋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넷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และ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다섯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여섯째, 살인하지 말라

> 일곱째, 간음하지 말라

> 여덟째, 도둑질하지 말라

> 아홉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 열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⑧ 구원받은 자가 걸어가는 영생의 길

 

새신자 (이은혜):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킨다니, 십계명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네요. 그런데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한 청년이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을 때, 주님이 계명들을 지키라고 대답하신 장면이 나오던데 그건 무슨 뜻인가요?

 

교사 (오말씀): 그 질문과 답변의 맥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절을 먼저 볼게요.

 

> (마 19:1617)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교사 (오말씀): 사실 이 청년은 질문의 출발점부터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내가 무슨 착한 일을 '해야만' 영생을 대가로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공로주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죠. 신앙생활을 오래 한 신자들도 가끔 이런 강박관념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선물입니다(엡 2: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는 계명을 악착같이 지켜내서 그 대가로 영생을 따내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미 은혜로 영생을 얻은 자, 즉 하나님의 구원 구속을 경험하여 그분의 자녀가 된 사람은 마땅히 삶 속에서 계명을 지키는 품성의 변화를 나타내게 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쉽게 비유를 들어볼게요. 어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드디어 멋진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식이 끝난 후 선생님이 학생에게 "이제 네가 이 학교의 훌륭한 중학생으로 생활하려면, 매일 교복을 단정히 입고 중학교 학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이 학칙을 완벽하게 지켜야만 중학생이라는 신분을 획득하게 된다는 뜻인가요? 아니죠. 아무리 학칙을 잘 지키고 교복을 입어도, 그것은 이미 시험에 합격하여 '입학한 이후'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먼저 지켜야 구원을 얻는 구조가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전격적으로 받은 자녀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소중히 준수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를 주님이 직설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속에는 참된 순종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생의 축복의 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약 레위기 18장 5절의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말씀과, 로마서 10장 5절, 갈라디아서 3장 12절의 말씀들도 모두 구원받은 자가 생명의 법 안에서 풍성하게 살아갈 것을 확증해 주는 말씀이랍니다.

 

⑨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교사 (오말씀):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짚어주셨습니다.

 

> (마 19:1819)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교사 (오말씀): 주님이 언급하신 계명들을 가만히 보면, 전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십계명의 후반부(제5계명~제10계명) 내용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이 부자 청년 같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안식일을 아는 등의 전반부 계명(제1계명~제4계명)은 아주 철저하고 유별나게 잘 지켰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 곁에서 굶주리고 고통받는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는 후반부 계명에는 너무나 인색하고 소홀했지요. 형식적인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서 '계명 준수'와 '이웃 사랑'을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는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레위기 19장 18절에 나오는 이웃 사랑의 대원칙을 언급하시며 그 위선을 정면으로 찌르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 13장 8절에서 이 사랑의 정신을 복음의 완성으로 선포했지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라고 말입니다. 진정한 계명 준수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으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⑩ 계명 준수는 사랑의 확실한 증거

 

새신자 (이은혜):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짜 증거는 내 눈앞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기쁘게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는 거군요.

 

교사 (오말씀): 정확하게 깨달으셨어요!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사랑과 계명의 관계를 아주 아름답게 정의해 두었습니다.

 

> (요일 5:2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교사 (오말씀): 이 말씀은 참된 신앙의 시금석이 됩니다.

 

우리가 곁의 이웃과 성도들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분의 거룩한 계명들을 삶 속에서 온전히 실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사랑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나 중심적이라 쉽게 변하고 상처를 주고받기 때문이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뿌리를 두어야만 변함없는 참된 사랑이 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짜 방법은 단순히 감정적인 고백이 아니라, 그분의 "계명들을 기쁘게 순종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거듭난 자들에게는 이 계명들이 결코 억지스럽거나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 전혀 무겁지 않고 기쁜 것처럼 말이죠. 마음이 새로워짐으로 일어나는 위대한 변화에 대한 선지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드릴게요.

 

> "새로 남으로써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됨과 동시에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 위대한 변화가 죄인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면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성결로, 범죄와 반역에서 순종과 충성으로 옮겨지게 된다." (각 시대의 대쟁투, 468)

> "하나님과 멀어져 있던 옛 생애는 끝나고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화목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롬 8:4)한다. 그 때에 심령에서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고 외치게 된다." (각 시대의 대쟁투, 468)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십계명의 모든 아름다운 요구가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법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모든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다는 엄숙한 경고의 글도 있습니다.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어떤 예배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각 시대의 대쟁투, 436)

 

 

 

3. 복음과 율법의 조화

 

⑪ 믿음과 행함의 끈끈한 관계

 

새신자 (이은혜): 그럼 복음과 율법, 그리고 믿음과 행함은 결코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짝꿍 같은 거네요?

 

교사 (오말씀): 아주 훌륭한 표현이에요! 야고보 선지자가 야고보서 2장에서 그 조화로운 관계를 멋진 황금비율로 가르쳐 줍니다.

 

> (약 2:22,24)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교사 (오말씀): 이 구절은 신앙의 균형을 잡아주는 아주 소중한 말씀입니다. 풀어 설명해 드릴게요.

 

우리의 '믿음'과 '행함'은 마치 푸른 바다 위를 저어가는 한 척의 배에 달린 '두 개의 노'와 같습니다. 만약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믿음의 노'만 아주 열심히 저으면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쪽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맴돌 뿐입니다. 반대로 내 힘으로 규칙을 지키려는 '행함의 노'만 악착같이 저어도 균형을 잃고 반대 방향으로 맴돌게 되죠. 오직 믿음의 노와 행함의 노를 양손에 쥐고 동시에 균형 있게 저어갈 때에만, 우리의 구원의 배가 천국 항구를 향해 일직선으로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의롭다 하심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도, 그의 마음속 "믿음이 그의 실제 삶의 행함과 언제나 함께 일했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전혀 따르지 않는 메마른 믿음은 결코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빠져버린 인간적인 행함 역시 올바른 동기의 선행일 수 없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달콤한 열매로서 삶 속에 아름답고 선한 행실이 풍성하게 나타날 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믿음'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의 핵심 주제는 결코 행함으로 구원을 사라는 뜻이 아니라, 내면의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 속에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산 믿음"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당시 말로는 거창하게 믿는다고 자랑하면서 정작 주변의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들을 보며 "평안히 가라, 따뜻하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약 2:1516) 하고 말로만 때우고 아무런 실천도 헌신도 하지 않는 위선적인 신앙을 향해 따끔하게 경고했던 것이랍니다.

 

⑫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의 비극

 

교사 (오말씀): 마지막으로 야고보서 2장 26절의 엄숙한 결론을 함께 읽어볼까요?

 

>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교사 (오말씀): 아무리 겉보기에 멀쩡한 몸이라도 그 속에 생명의 영혼이 떠나버리면 시체에 불과한 것처럼, 삶의 순종과 실천(행함)이 빠져버린 교리적인 지식과 말뿐인 믿음은 아무런 구원의 효력도, 성품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죽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이 엄숙한 경고에 대해 교회증언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 "그들이 믿음을 공언하나 행위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산 믿음이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위대한 믿음을 공언하지만 행함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단은 진리를 믿고 떤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믿음은 힘이 없다. 고상한 고백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들의 행위로 그들의 믿음을 보인다면 그들은 진리를 위하여 큰 영향력을 구사할 것이다.”(교회증언 2권, 657)

 

참 떨리는 말씀이죠? 온갖 악을 행하는 사탄과 악한 천사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성경은 진리이다"라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지식적으로 잘 알고 믿으며 두려워 떱니다. 하지만 그 지식적인 믿음에는 삶을 돌이키는 회개와 사랑의 행함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무런 구원의 힘이 없는 죽은 지식일 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고상한 신앙 고백은 유창하게 잘하면서도, 정작 삶의 위기의 순간이 오면 믿음의 좁은 길을 선택하지 않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하나님의 소중한 계명과 원칙들을 쉽게 저버리곤 합니다.

 

내가 직접 내 부르심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도하지 않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구체적인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결코 자라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다 시들어버릴 것입니다. 은혜님, 우리는 사과나무의 생명(믿음)을 가슴 가득 선물로 받았으니,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매일의 삶 속에서 순종과 이웃 사랑이라는 빨갛고 탐스러운 사과 열매(행함)를 주렁주렁 맺히는 건강하고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해나가요.

 

새신자 (이은혜): 네, 선생님! 오늘 공부를 통해 믿음과 행함, 복음과 율법이 왜 분리될 수 없는지 정말 명쾌하게 깨닫게 되었어요. 주님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울타리로 삼고 기쁘게 이웃을 사랑하며 실천하는 살아있는 산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어요.

 

교사 (오말씀): 은혜님이 복음의 참된 균형을 온전히 깨달으시고 아름다운 순종의 결심을 하시니 제 마음에 큰 기쁨이 넘칩니다. 그럼 오늘 성경 연구를 마음에 새기며 함께 마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마치는 기도

 

사랑과 자비가 무한히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31과 율법과 복음 연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소중한 균형과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은혜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어떠한 공로나 자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구원이라는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을 값없이 허락해 주셨음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질 수는 없으나, 구원받은 거룩한 자녀이기에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소중히 준수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외치는 죽은 신앙이 아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기억하여, 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헌신하며 전도하는 살아있는 산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 은혜님의 내면에 날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즐거워하게 하시고, 사과나무가 아름다운 사과를 맺히듯 순종의 선한 열매가 삶 속에 주렁주렁 열리도록 늘 동행하여 주시옵기를, 우리를 은혜로 의롭다 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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