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주차 (12~61p, 6/8~6/13)-
1부. 나를 만든 것
< 테아노에서 프로비던스까지 >
- 이탈리아 남부 테아노에서 문맹인 안토니오 카프리오 시니어인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아버지 안토니어 주니어가 흙바닥에 창문 하나뿐인 단칸방으로 시작됨. 이후 조부모님은 다섯아이를낳고, 두 부부와 10명의 아이로 가족을 이루고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의 이탈리아 거주 지역인 페더럴힐의 다세대 주택에서 살게 됨. 거리에서 수레에 담은 과일을 팔던 할아버지가 장사하는 행상인들과 소동으로 감옥에 가게됨. 놀란 할머니에게 판사는 영어를 못하는 할머니에게 전하라며“ 어머니께 전해드려라,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려 열심히 일하는 좋은 사람이고 어젯밤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가정에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 안다. 그러니 아버지를 가족들에게로 보내드릴 거야.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맛있는 식사를 해드렸으면 좋겠구나.” 하고 하였음. 판사는 놀라울 정도의 연민과 존중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한것에 큰 감명을 받음. 그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법과 미국의 사법제도를 존경하게 되었고 그 존경심을 필자도 물려받음. 어릴 적 어머니에게 자주 들음. ’키 큰 백발의 아일랜드인 판사‘ 후에 법조인으로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됨. 그로부터 약 70년 후 할아버지가 섰던 그 법정, 프로비던스 지방법원의 판사로 취임했고, 이후 40여 년 동안 새로 유입된 이민자들에게 정의를 베풀게 됨. 법정에 서는 사람들의 곤경을 이해하는 것을 보고 ’뿌리를 절대 잊지 않는다.;고 함. 현실에 받 딛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J.하워드 맥그래스와 할머니 같은 사람들에게서 배움. 미국에서 카프리오가의 역사는 프로비던스의 부두에서부터 시작됨.
<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
- 아버지 안토니오 카프리오 주니어는 나와 내 아이들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아버지는 7학년까지 다니고 할아버지와 종일 행상일을 하면서 가족의 부양을 도와야 했음. 대공항으로 과일 행상을 그만두고 공공사업진흥국에서 일자리를 얻음. WPA에서 준 일자리는 로드아일랜드 노스킹스턴에 자리한 조선소인 퀸셋포인트 해군 기지에서 인부로 일함. 유제품 회사 Hood에서 우유 배달업자로 임하. 당시 이탈리아계 이주민에게는 좋은 일자리임. 이 일을 효율적으로 잘 해내려면 대단한 체력 외에도 상당한 물류 관리 능력이 필요했음. 아버지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움. 아버지는 당신도 여유가 없으면서 자기 돈으로 우윳값을 대신 내주고 관리자에게는 고객이 할부로 결제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함. 아버지의 사고방식은 판사석에 앉아 보내는 모든 순간 도움을 줌. 법정에 선 수천명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지혜와 관용의 수혜자가 되었음. 선량한 사람들이 궁핍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아버지의 결심은 내게 오래도록 매우 큰 영향을 미침.
< 가난한 자의 특권 >
- 대공항 절정이었던 1936, 11, 24일생. 부모님은 무일푼. 대가족에 누구보다 다정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특권을 누림. 매일이 패더럴힐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모험이었음. 패더럴힐에서는 온 세상이 우리 것이고 세상에 있는 돈을 전부 준다 해도 바꾸지 않았을 것임.
< 돌아가는 길이 나를 만들었다.>
- 거리는 넓다. 길은 멀고 아주 울퉁 불퉁하고 무척 험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고개를 꼿꼿이 들고 의연하게 그 길을 나아가 배움의 정점에 다다르리라는 것 안다. - 너의 아버지, 안토니오 카프리오 주니어로부터- 아버지는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시인의 영혼을 가지고있었음. 아버지의 글은 오늘날까지도 내 마음을 울림. 우리 모두에게 도덕적 나침반이 필요함. 부모님과 타인에게 배움. 형이 도박으로 3달러를 잃었을 때, 형의 손을 잡고 찾아가 돌려받음. 그렇게 배우면서 자람.
< 어깨 위에 얹은 손 >
-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기억 하나가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게 되었고, 무엇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됨. 날이 무척 추운 날,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할 때, 아버지께서 ’너는 언제가 변호사가 될 거야, 너는 말을 잘하니까. 한 가지 기억해라.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받지는 말거라. 네게 돈을 줄 부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깐.“ 라고 직접적이고 간단하고 강력했음. 그 이후 매일 자신의 어깨 위에 놓인 아버지의 손을 느낌.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함. 가끔은 처벌보다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 가볍게 살짝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더 나음 쪽으로 바꿀 수 있음. 누군가에게 자신이 잘 니내기를 바라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음.
< 다른 사람의 곁에 있어 주는 것 >
- 아버지는 성품과 언행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었음. 16세에 아버지 우유배달을 돕고,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고 신문 배달을 함. 볼링장에서 볼링핀을 놓는 일, 자동차 영업소에 딸린 정비소에서 차에 광을 내기도 함. 형이 파병지시를 받고 독일을 떠난다 하여 여섯 시간 반을 넘게 달려 갔지만, 차를 타고 떠나는 형과 창문으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만났지만, 우리가 거기 있었다는 것 만으로 형은 중요한 의미를 두고 평생 몇 번이고 이야기 함. ” 좋은 인생이란 다른 사람들 곁에 있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