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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결혼풍습 2.

작성자이규석|작성시간05.11.04|조회수163 목록 댓글 0

Ⅰ.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
 
  1. 일부일처인가? 일부다처인가?
 
   성경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였으며 이 둘의 하녀들과 성적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성경시대 이스라엘에서 일부다처제가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한 명 이상의 부인을 거느릴 수 있을 정도로 부의 여유가 있을 경우에만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다. 많은 부인을 둘 수 있는 것은 왕실 정도에 불과하였다. 다윗은 미갈, 아비가일, 밧세바 등의 여러 부인을 거느렸고, 솔로몬 역시 부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많은 왕비들을 두었다
    비록 성경에서 일부다처제도가 허용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결혼의 원칙은 일부일처 제도였다. 최초의 인간 창조와 관련된 성경 내용에서는 일부일처제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제도임을 밝히고 있다 (창 2:21-24). 셋 계열의 가장들은 모두가 한 아내를 두고 있다. 예를 들면, 노아의 아내는 하나이다 (창 7:7). 일부다처제도는 타락한 가인의 계열에서 나타난다. 라멕은 두 아내를 두었다 (창 4:19).
    아브라함 역시 한 아내를 두었다. 본처 사라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였지만 그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의 제안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창 16:1 이하). 아브라함은 그두라와 결혼하였는데 (창 25:6), 그것은 사라의 죽음 이후이기 때문에 그두라는 아브라함의 합법적인 아내로 볼 수 있다. 창세기 25:6에서 아브라함의 첩을 복수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갈과 그두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구약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한 명의 부인만을 두어야 했다 (레 21:13-14). 노아, 이삭, 요셉, 모세 등과 같은 구약의 다른 중요한 지도자들 역시 일부일처제를 지켰다. 유대인 랍비들은 한 명 이상의 부인을 두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 시킨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창세기 30장의 레아와 라헬; 사무엘상 1장의 한나와 브닌나).
   <하무라비 법전에 의하면, 본처가 아이를 갖지 못할 경우 남편은 첩을 둘 수 있다. 그러나 본처의 여종을 첩으로 둘 경우 남편에게는 다시 첩을 둘 권한이 없다. 본처에게 자녀가 있다 하더라도 남편은 첩을 둘 수 있는데, 첩은 언제나 하나만 둘 수 있었다. 이러한 경우 첩은 본처와 동등한 권한을 갖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와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모든 제한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기드온은 많은 부인들과 최소한 한 명의 첩을 두었다 (삿 8:30 이하).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맞이하는 중혼은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었고 (신 21:15 이하), 왕들은 후궁들이 기거한 거대한 후궁실 (Harem)을 두기도 하였다. 탈무드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었고, 왕들은 18명의 아내를 맞이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중혼제도의 확대는 몇 가지 원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 번째는 유익성의 고려이다. 즉 여러 명의 부인을 둠으로 가정일을 분담할 수가 있었다. 두 번째는 많은 자녀를 두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이었다.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을 큰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세 번째는, 고대 근동지방에서 여자가 너무 일찍 결혼하기 때문에 일찍 노쇠하여 여자의 미모가 빨리 사라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일반 가정에서는 일부일처제도가 지배적이었다. 왕조시대 전체를 통하여 사무엘의 가정을 제외하면 어디에서도 중혼의 경우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당시 사회상을 드러내는 지혜서에서도 일부다처제도를 말하고 있지 않다. 여인들이 가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언급하고 있는 여러 구절에서 엄격한 일부일처제도의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다 (잠 5:15-19; 31:10-31; 전 9:9 등).

 

2. 결혼을 위한 중매

3. 약혼제도
4. 결혼식
5. 결혼잔치
6. 이혼

7. 시형제 결혼제도

* 2 - 7 번은 첨부화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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