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다간 암보다 더 무서운 고혈압
수돗물을 높은 곳으로 보내려면 수압을 올리는 모터가 필요한데요. 사람도 심장이라는 모터를 이용해 혈압을 올림으로써 몸 구석구석에 피를 공급합니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수압을 올리면 모터의 수명이 짧아지거나 수도관이 터지듯, 혈압도 지나치게 높아지면 심장과 혈관이 손상되면서 심부전증이나 동맥경화증에 의한 여러 가지 합병증을 일으킵니다.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합병증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할 고혈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혈압을 잴 때마다 달라요
누구나 혈압은 측정할 때마다 바뀔 수 있습니다. 혈압은 흡연, 불안, 근심, 노여움, 운동, 자세, 식사, 계절, 온도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혈압을 측정할 때에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3분 이상 안정을 취한 뒤 측정하고 최소 30분 전에는 흡연, 커피, 식사, 운동을 금합니다. 반드시 의자에 앉아 바른 자세로 앉은 뒤, 팔을 책상 위에 놓고 심장 높이에서 측정합니다. 몸과 마음이 가장 편한 상태에서 2분 간격으로 2번 이상을 재고, 진찰할 때에도 2~3회 측정해 그 평균치를 얻고, 날짜를 바꿔 몇 번 더 측정한 후에 진단합니다. 혈압은 하루 동안 변동이 큽니다. 아침과 저녁에 한 번 이상 같은 시간에 측정하는 것이 좋으며, 혈압이 잘 조절될 때는 일주일에 3일 정도, 약을 바꾸는 시기라면 적어도 5일 동안 재야합니다. 아침에는 기상 뒤 1시간 이내, 소변을 본 뒤, 고혈압 약을 먹기 전, 아침식사 전이 좋습니다. 혈압을 잰 뒤에는 잰 시각과 심장이 1분 동안 뛴 횟수인 심박수도 함께 기록합니다.
가면(假面)고혈압과 백의(白衣)고혈압
40대 중반의 부부가 함께 외래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원인 남편은 직장에서 혈압이 160/100mmHg 전후로 측정돼 고혈압 치료를 받고자 했으나,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은 120/80mmHg으로 정상이었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부인은 건강검진 시 혈압을 측정한 결과 150/95mmHg로 나왔으나 집에서 쟀을 때는 항상 정상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남편은 ‘가면(假面)고혈압’ 환자, 부인은 ‘백의(白衣)고혈압’ 환자로 구분합니다.가면고혈압은 업무 등에 쫓기는 등 항상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사람이 걸리기 쉽습니다. 병원에서 진찰받을 때는 오히려 스트레스에서 해방돼 긴장을 푼 상태에서 혈압을 측정하므로 정상범위로 돌아옵니다. 흡연, 과음, 운동 부족 등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 당뇨병이 있는 사람, 과거 심혈관질환을 앓은 사람,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에서 가면고혈압이 나타납니다. 가면고혈압 환자는 중풍과 같은 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일반 고혈압 환자와 같으므로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합니다.부인처럼 의사 앞에만 오면 혈압이 올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사의 흰 가운을 보면 혈압이 올라간다 해서 ‘백의고혈압’이라고 하는데, 환자가 병원 환경에 익숙해진다 해도 혈압이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칫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되기 쉽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위해 24시간 동안 활동 혈압을 측정하거나, 1~2주 동안 집에서 본인이 직접 측정한 혈압을 치료 기준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백의고혈압은 추후에 고혈압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만 가면고혈압과 달리 뇌혈관질환으로 이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면 백의고혈압 환자가 되기 쉽습니다.
고혈압의 가장 흔한 증상은 두통인가요?
두통이 있으면 ‘혈압이 높은 게 아닐까’부터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혈압은 증상이 없습니다. 혈압이 갑자기 상승하면 두통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고혈압은 암처럼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심해져도 증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다수 고혈압 환자들은 실제 혈압을 측정해보지 않고서는 자신이 고혈압인지 아닌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프지 않은 고혈압도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고혈압은 통증을 느끼는 질환이 아닙니다. 무서운 것은 고혈압에 의한 합병증으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치료해야 합니다.
고혈압은 우리 몸의 중요한 장기인 심장, 뇌, 콩팥(신장), 눈을 손상시킵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뇌혈관질환(특히 뇌출혈)으로, 전체 뇌혈관질환의 50%가 고혈압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협심증과 심근경색 등 심장병의 30~35%, 신부전의 10~15%가 고혈압 때문에 생깁니다.
고혈압은 동맥을 천천히 딱딱하게 만듭니다. 동맥이 딱딱해지는 병이 바로 ‘동맥경화증’입니다.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악순환을 반복해 혈관 상태를 점점 악화시킵니다.
어느 혈관에 문제가 발생하느냐에 따라 뇌혈관질환, 만성 신부전, 대동맥질환, 안저출혈(=망막의 혈관이 터져서 생기는 출혈)이 발생하고, 혈압이 높아지면 심장에 부담을 줘 심부전과 같은 심장병이 발생합니다.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3대 질환 중 두 가지인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 발생에는 동맥경화증이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인 고혈압을 치료하면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일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마비, 치매, 심부전에 의한 호흡곤란 등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고혈압은 생활습관 개선으로 치료가 가능한가요?
금연, 금주, 체중 조절, 적절한 식사요법(과식과 짠 음식 피하기), 스트레스 관리, 규칙적인 운동 등 나쁜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이러한 비약물치료들은 고혈압의 근본적인 치료이면서 당뇨병, 고지질혈증과 같은 성인병도 함께 치료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입니다.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혈당과 혈중 기름기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합병증 발생도 줄어듭니다. 생활습관 개선이 ‘성인병 원인 치료’에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경증 고혈압이 있는 환자는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혈압이 정상으로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약물요법을 사용하는 환자의 경우는 약의 반응도를 높이므로 모든 고혈압 환자는 ‘약물 치료 전에’ 혹은 ‘약물 치료와 같이’ 생활습관 개선을 병행하는 것이 약물 투여량을 최소로 한 상태에서 고혈압에 의한 합병증을 최소로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