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며
커피를 내리는 일처럼
사는 일도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둥글지 못해 모난 귀퉁이로
다른 이의 가슴을 찌르고도
아직 상처를 처매주지 못했거나
우물 안의 잣대 품어
하늘의 높이를 재려한 얄팍한 깊이로
서로에게 우를 범한 일들
새벽 산책길
이제 막 눈을 뜬 들 풀을
무심히 밟아댄 사소함까지도
질 좋은 여과지에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것처럼
마음과 마음의 온도 차이로 성에를 만들고
닦아내지 않으면
등을 보여야 하는 슬픈 배경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슴 밖 경계선을 넘어와서
눈물 나게 하는 기억들
이 세상 어디선가
내게 등을 보이고 살아가는 사연들이 있다면
걸러내서 좋은 향기로 마주하고 싶다
커피 여과지 위에서
잊고 산 시간들이 따뜻하게 걸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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