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심판
축구경기에 심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45년 영국의 이튼에서였다. 그러나 그때 심판은 '심판(Referee)'가 아니라 '엄파이어(Umpire)로서 경기장 밖에서 조정역할 만을 했다.
축구는 신사들의 경기로, 웬만한 것은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지역이나 학교마다 다른 규칙이었으나 스스로 적용했다. 완전히 통일되지 않은 규칙이지만 그 적용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선수들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이 당시 스포츠계의 정신이기도 했다. 그래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문제나 규칙해석에 이견이 있거나 경기가 과열돼 제삼자의 판단이 필요할 경우 경기장 밖의 심판, 즉 엄파이어(Umpire)가 개입했다.
1848년 이튼에 있는 공립학교들을 대표하는 14명이 캠브리지 규칙(Cambridge Rules)으로 알려진 축구규칙을 처음으로 통합 정리했다. 이 때도 심판에 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었다
1863년 영국축구협회(FA)가 창설되고 축구 표준규칙이 제정됐지만 이때도 심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1874년 영국축구협회(FA)가 정식으로 심판문제를 제기했는데 레퍼리가 아닌 엄파이어로서였다.
1885년 잉글랜드에서 프로축구가 합법화됨으로써 축구가 인기스포츠로 각광받게 됐고 경기는 그만큼 치열해졌다.
1891년 드디어 프로리그에서 마침내 엄파이어를 폐지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계시를 포함한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1명의 레퍼리와, 밖에 레퍼리를 도와줄 2명의 선심(Linesman)을 두도록 했다. 지금은 선심(Linesman)을 부심(Assistant Referee)으로 개칭했는데 전보다 역할이 커졌다.
주심의 필수품인 휘슬은 1878년 잉글랜드 노팅엄 포리스트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법관의 법복이 검은색이듯 축구심판의 유니폼도 전통적으로 검은색이었으나, 검은색의 심판복은 1994년 미국월드컵 때 화려한 여러 가지 색깔의 심판복을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야간에 눈에 잘 띄고 특히 TV 중계에 맞도록 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의견이 분분했지만 98년 프랑스월드컵 때부터 정식으로 다양한 색의 심판복이 공식화됐다]
●축구심판의 역사
축구 심판의 역사는 정확한 기록이나 문헌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다. 단지 1863년 영국 풋볼협회의 결성과 함께 공식적으로 시작된 축구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이야기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 심판의 역사는 1928년 축구심판협회의 창립에서부터 시작된다. 심판협회는 조선축구협회(1933년)가 창립돼 경기의 체계적인 운영과 대외활동을 하기 전까지 5년간 모든 대회의 심판과 운영을 맡아 운영, 축구협회보다 더욱 깊은 뿌리를 갖고 있으며 근대 축구의 태동을 제일 먼저 알린 `선구자'였다.
심판이란 직책은 아주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었다. 양 팀간의 치열한 전투 같은 운동에서 필수적으로 두 팀을 화해시키고 공정한 경기 진행을 맡을 중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엔 이처럼 심판의 역할이 매우 수동적, 방어적이었지만 축구가 점점 발전하면서 그 역할이 점점 확대됐다.
공정한 판정과 경기 운영 외에도 백태클을 강력 제재, 선수를 보호하고 어드밴티지를 폭넓게 적용해 경기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등 현대축구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심판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심판 선정에 있어 그 자격요건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으며 강인한 체력과 높은 집중력을 요하고 있다. 국제심판을 관장하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매년 각국의 심판들에게 일종의 체력측정인 `쿠퍼 테스트'를 실시, 양질의 심판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FIFA는 각국에 주심 10명과 부심 10명의 쿼터를 배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쿼터를 모두 채운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통과해야할 관문이 좁다.
우선 쿠퍼 테스트에서 40m를 6번 뛰어 모두 6초안에 주파해야 되며 150m 전력질주도 20번 실시 매회 30초안에 들어와야 한다. 90분 동안 볼을 쫓아 종횡무진 쫓아다녀야 하는 심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오래 동안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이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아출신 심판들의 기량이 인정되면서 아랍에미리트의 알리 주심이 프랑스월드컵 준결승전 주심을 보고 유럽과 남미의 주요대회에서 아시아 주심을 잇달아 기용하면서 세계 무대에 더욱 좋은 심판을 선보여 AFC의 위상을 높이려는 계획 때문이다.
하지만 심판에게 단순히 `황소'같은 체력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체력테스트에서 합격했다고 해도 인성이나 학습능력이 떨어지면 탈락할 수밖에 없다.
FIFA는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심판지도자 교육과정을 열어 어학실력이나 대인관계 등을 측정, 후일 심판 배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큰 대회전엔 반드시 심판 모임을 갖고 엄격한 지침을 전달한다.
보통 사람들은 한 경기 심판을 세 명으로 생각하지만 주심 한 명과 부심 두 명 이외에도 대기심까지(현재추가1.2부심-총6명) 네 명이 한 조의 심판진을 이룬다. 대기심은 그라운드밖에 머물러 교체 선수를 관리하고 남은 잔여 시간을 알려주는 등 잔여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심판의 수나 기량에 있어 한국은 이제 세계 축구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한국은 대부분의 심판들이 전임심판, 즉 심판 업무가 주업인 직업심판들이고 유럽이나 남미는 의사나 변호사, 건축사 등 자유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심판을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월드컵 경기중 전 FIFA의 블래터 회장이 "2002년 월드컵에선 돈을 받는 전문심판을 고용해 공정하고 정확한 판정을 유도하겠다"고 밝힌바 있어 전임심판들의 위상이 앞으론 점점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는 프랑스월드컵에서 더욱 더 정교해진 중계기술의 도입으로 카메라 렌즈가 수많은 오심을 잡아내면서 좀더 전문적인 심판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참가국으로부터 쏟아졌기 때문이다. 심판들도 더욱더 공정하고 정확한 판정을 위해 이젠 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신기술 도입을 점차 늘리고 있다.
심판들이 사용하는 신기술을 살펴보면 지난해 프랑스월드컵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그널 빕'이 가장 좋은 예이다. 시그널 빕은 선수들의 더티 플레이나 반칙을 용인하지 않기 위해 FIFA가 심판에게 제공한 첨단 심판장비. 주심은 일종의 호출기를 허리나 팔뚝에 차고 있다가 부심이 거수기 손잡이에 부착된 버튼을 누르면 진동으로 신호를 받고 즉시 경기를 중단시키고 경고나 파울을 줄 수 있다.
이전까지는 주심이 자신의 등뒤에서 일어난 파울에 대해선 빨리 대응을 할 수 없었으며 선심은 눈앞에서 뻔히 벌어지는 비신사적 행위에 대해서 재빨리 주심에게 알릴 수 없는 것이 늘 딜레마였지만 이 시그널 빕의 발명으로 이런 `사각지대'가 완전히 해소됐다.
출처 - referee 리틀K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