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빅토르 드 브로이는 1892년 디엡(Dieppe)에서 뒤크 빅토르와 파울린 다말리에 드 브로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드 브로이 가족은 수백년 동안 전쟁과 외교에서 프랑스왕들을 섬겼고 1740년 루이 14세는 그 가족의 일원을 'Duc'으로 만들었는데 Duc은 가족의 장에게만 주어지는 세습 작위였다. 첫 번째 공작의 아들은 7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주었고, 모든 가족 일원에게 주는 'Prinz'라는 작위를 받게 되었다.
과학자로서는 약간 특이한 경력을 가지게 되는데 소르본의 학생 시절 그는 자기의 일생을 중세사 연구에 바칠 결심을 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프랑스육군에 입대했다. 대학출신인 관계로 그는 당시로서는 색달랐던 무선통신대에 배속되었고 그의 흥미대상은 고딕사원에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로 바뀌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유명한 실험가인 형 모리스의 권유로 물리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기로 결심하게 된다.
1960년 X-선에 대한 개인 연구소를 유지했던 형의 죽음 이후 드 브로이는 프랑스 공작과 왕자가 동시에 되었다.
광양자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컴프턴 효과(Compton effect)가 설명되기 1년전인 1922년에 드 브로이는 전자기 이론을 사용하지 않고 빈(Wilhelm Carl Werner Otto Fritz Franz Wien, 1864-1928)의 복사 법칙을 유도해 낸 논문을 썼다.
그 논문에서 그는 '빛의 양자 가설을 채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광자를 질량 , 운동량 를 가지는 입자 혹은 '빛의 원자'로 취급했다. 광자에 관한 이런 관심은 드 브로이를 파동과 입자의 특성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연구를 하게 만들었다. 물질 입자 특히 전자까지도 포함하는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을 일반화시키는 생각이 1923년 여름 갑자기 떠올랐다고 드 브로이는 말했다. 이 생각을 『Comptes Rendus』지에 짧은 두 개의 논설(article)과 『Nature』지에 한 개의 짧은 편지(note)로 발표했다. 1924년 소르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 시기에는 여전히 그 이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서 전자가 왜 입자와 파동 모두로 행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가 그 이론이 맞다고 믿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점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회의적이었지만, 침착히 행동했다. 드 브로이의 논문 지도 교수인 폴 랑게방(Paul Langevin, 1872-1946)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견해를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은 단번에 그 결과에 매료되었다. 드 브로이는 이 학위 논문을 1925년 『Annales de Physique』에 100페이지가 넘는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그 해에 미국의 데이비슨은 그 아이디어가 옳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그 논문이 통과된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거니와 결국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위논문 중의 하나가 되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이것이 유일한 사례이다.
드 브로이는 예를 들어 전자와 같은 입자는 조금씩 다른 전파 속도를 가지는 '물질파(matter waves)'들과 연과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전파 경로를 따라 규칙적인 간격에서 파동들이 결합하여 파동군(wave-crest)을 형성한다. 이 군은 한 점에서 사라졌다가는 바로 다음 순간에 다른 지점에서 다시 나타난다. 군의 속도, 즉 군속도(group velocity)는 그것을 형성하고 있는 개개의 파동의 속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드 브로이는 군속도와 전자의 속도를 동일시했다. 이웃하는 군 사이의 거리가 '물질파'의 드 브로이 파장이다.
드 브로이는 파리 대학교와 앙리 푸앵카레 연구소에서 가르쳤다. 1945년에는 프랑스 원자 에너지 위원회의 고문이었다. 그는 원자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과 산업 사회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깊은 관심이 있었다. 과학 아카데미의 종신 회원으로 드 브로이는 신체에 원자폭탄의 악 효과를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그의 많은 연구 논문 이외에도 1937년에 『물질과 빛』, 1953년에 『물리학 혁명(The Revolution in Physics)』, 1964년에 『파동 역학의 현대적 해석』, 말년에 『양자, 공간과 시간』 등 20권이 넘는 책의 저자였다. 그는 1987년 3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