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의 풍요로운 젓줄 위천이 감돌아 나가다
* 낙동강의 지류
위천은 낙동강의 지류로 길이가 113.50km로 보현지맥 석심산(750.6m)[청송/영천/군위경계]에서 발원하여 군위군 고로면으로 흘러 군위읍을 통과하여 비안면으로 흘러 들어, 보현지맥 어봉산(634.2m)[의성군 춘산면 금오리]에서 서쪽으로 발원하여 비안면 쌍계리에 이르는 쌍계천과 합류 의성군의 구천, 안계, 단북, 단밀면을 거쳐 상주시 중동면 새띠마을에서 낙동강과 합수한다.
의성 단밀면 단밀교 위에서 바라본 위천
* 안계평야를 살찌우다
위천은 의성군 비안면을 지나면서 유역에 기름진 평야를 형성, 경북의 3대 평야인 안계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여 최적의 기후조건으로 의로운쌀과 황토쌀 등 의성의 대표적인 브랜드쌀 생산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안계들은 그 옛 삼한시대 때부터 곡창지대이다.
그 시대에 대표적인 못인 상주 공검지, 제천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 등과 함께 의성의 대제지도 이 시기에 조성된 못으로 지금은 사라졌으나, 안계 용기리 앞에는 대제지유허비가 있다 문헌기록으로는 그 면적은 30ha로 제당 길이만도 1km가 넘었다고 한다.
그 옛날 사로국이 조문국을 벌(伐)한 것은 금과 쌀의 확보를 위한 것으로
으로 안계평야의 넓은 들판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확보하고 조령과 이화령
으로 백제와 고구려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지고 신라에 병합된 이후에도 아시혜현(아시촌) 소경을 둔 것은
안계평야의 지형적 특성 및 넓은 들에서 생산되는 곡식 등의 중요성 때문
일 것으로 추정된다.
안계평야
* 삼산이수의 고장
의성의 지형은 위천과 낙동강이 접하는 이수(二水)와 보현지맥과 팔공
지맥, 문수지맥과 접하는 관계로 삼산(三山)의 고장이다 청송, 영천의 경계지점인 석심산에서 시작되는 팔공지맥은 군위와 대구, 선산, 구미를 거쳐 청화산, 만경산으로 굽이쳐 돌아오고
또한, 포항 죽장 가시령에서 시작하는 보현지맥은 구무산에세 의성으로 들어와 천재봉, 삼표당, 문암산, 비봉산을 거쳐 위천과 낙동강의 합수점으로 평온하게 자리 잡았다.
아울러, 봉화의 문수산에서 시작된 문수지맥은 영주, 안동을 거쳐 의성과
경계인 예천군 삼강 인근에서 멈추었다.
그래서 의성은 옛부터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 한다.
위천은 군위를 지나면서 비안면 옥연리에서 절경을 형성하면서 북으로 다시 흘러들면서 풍족한 물을 공급하고 주변에는 경관지를 형성하여 옛 선조들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장소를 제공했다.
비안면 장춘리 남쪽 절벽에는 검암(儉岩)이라는 글자를 새겨
“사치하면 이지러지기 쉽고 검소하면 기울어지지 않는다 않은 자 가는 자 이 암명을 볼지어다”라는 글귀가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를 내면서 허물어졌다고 한다.
또한, 비안면 동부․서부동을 휘돌아 지나면서 뒷산인 성황산 맞물려 비안
읍치(比安邑治)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고 또한, 위천은 용천리를 지나면서 언덕마다 수 많은 고인돌 및 성혈이 분포되어 있어 일찌기 농경과 수렵 등을 영위해 온 지역임을 알 수 있다.
* 의성의 역사와 문화를 담다
위천의 주변은 옛 선조들의 찬란한 역사문화 유산을 남기는데 큰 몫을
하였다. 비안 산제리의 화장산 화장산성은 만장사 석조여래좌상과 임진
왜란 때 비안 관아의 주요 공부를 이 산성에 옮기고 피난민과 의병이
결사항전으로 지켜 낸 곳으로 둘레는 약 4.0km이다. 이 밖에도 지방유형
문화제 제56호인 자락동석조여래좌상과 자락리 삼층석탑, 장춘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수 많은 폐사지가 문헌기록에 나타나 있고, 주변에는 지방 문화재이며, 조선시대 공립 교육기관인 비안향교가 자리잡고 있어 의성 위천주변은 유교문화와 불교문화가 함께 융성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만장사 석조 여래좌상
비안향교
또한, 팔공에서 발원한 위천이 연면히 흘러 안계 교촌에 이르러 선돌의
층암절벽을 형성하여 사철 푸른 강물과 함께 절경을 이루어 지역 향사들이
백일장을 열고 강태공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은 명소로 예로부터 시인묵객
이 찾아들어 경탄하고 흥취를 돋우웠던 장소로 동편으로 연결된 부흥대에 는 채응일과 이귀응 현감의 벽각공덕비가 나란히 새겨져 있는데 채응일은
번암 채제공의 부친이고, 이귀응은 정조때 선정을 편 수령으로 전해 오고
있으며, 부흥대는 거대한 바위가 남으로 뻗었는데 강 건너편 마을의 처녀
들 바람을 재운다고 반절 파괴 했다고 하니, 지금으로 봐서는 경관을 파괴
한 결과를 초래하여 애석할 따름이다.
위천은 구천, 안계면을 지나 단북면으로 흐르면서 충효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많은 명현달사와 효자, 효부를 잉태하였다. 조선 최초의 통신사로 일본을 다년 온 율정 박서생을 비롯하여 울릉도 및 독도를 수토한 장한상과 그의 부 장시규의 영정을 모신 경덕사가 현존하고 있는데, 장한상은 삼척 영장(첨사)으로 울릉도를 수토한 기록을 적은 울릉도사적기가 전해 온다.
또한, 달산 장보지, 가촌 유포, 화암 변용, 문암 장문서 등을 배향한 구천서원이 있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없어지고 그 자리에 육선생 매판소라는 조그만 비석만 남아 있다.
아울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나가 진충보국한 백계 김희, 두고 박사숙, 병애 박충인과 병자호란 때 용전분투한 북촌 박효순을 제향한
병호충렬사는 없어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유허비가 서 있고 효자 임성무
정려각, 정악의 숭효각, 김형석 정효각, 안동권씨 표열각, 김동문의 효자각, 권월목 효부각 등 살아있는 효행(열) 박물관으로 널리 전해 오고 있다.
위천은 다인면 용무리를 지나면서 우암(牛岩)이라는 절경을 만들어 군수
조정(趙靖)이 정자를 짓고 소요하는 곳이다. 이곳은 위천(渭川) 삼경(三景)으로 통하는 안계의 관어대(觀魚臺), 비안의 병산정(屛山亭)을 꼽고 우암(牛岩)으로 인정해야 할 곳으로 그 절경이 뛰어 난 곳이다
*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나다
의성군은 최근 낙동강 지류인 위천 구간(안계면 위양리~단밀면 위중리) 7.5킬로미터 구간에 130억원을 투입하여 생태보전 공간을 조성하고 있는데
위천 역사문화 트레킹로드, 생태천이관찰원, 습지 관찰데크 등 생태보전시설 등도 조성될 예정이며, 벼락지 정비사업, 붉은점 모시나비 체험길 조성 등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의성 서부지역은 상주~영덕간고속도로, 신도청소재지와 접근성 등으로 의성군이 낙단보 경관지 조성, 마애불 성역화사업, 3대문화생태관광사업인다인 비봉산푸른문화길사업 등과 맞물려 새로운 관광명소로 조성될 예정이다.
* 흰수마자의 서식지
위천은 2000년 이후 납자루과 어류나 흰수마자, 여울마자 등 국내 고유 종이 급격하게 감소한 지역이기도 하다. 흰수마자는 멸종위기 1급종으로 분류돼 있으며, 환경부가 2012년까지 증식 복원할 대상으로 지정한 7종 어류 중 하나이다. 낙동강 상류에 설치될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사이에 직 유입되는 인근 지천으로 흰수마자가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 위천이다. 흰수마자의 대체서식지 조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흰수마자.. 흰수마자는 낙동강, 금강, 임진강에만 서식한다고 하네요
* 인재의 고장
위천 앞은 팔공지맥이 시원스럽게 뻗어나가고 뒤편은 보현지맥이 포근 하게 감싸 안은 형국으로 근현대에서도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대법관을 지내 박만호, 국회위원을 지낸 우홍구, 김상년씨와 정상명 검찰총장, 전서울고등법원장 김동건, 황종규 동양대부총장, 김학배 경찰청 국장,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등 인재를 배출한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지리적 여건도 구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