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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강구종 신부님]다해 대림 제3주간 주일미사

작성자최은덕 에스텔|작성시간21.12.12|조회수574 목록 댓글 0

†다해 대림 제3주간 주일

(스바 3,14-18ㄱ ; 필리 4,4-7 ; 루카 3,10-18)

 

벌써 대림 제3주일입니다. 대림 제3주일을 흔히 기쁨의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오늘 모든 독서들과 복음 말씀이 기쁨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초대하는 기쁨에 대해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꽤 많은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이 하느님을 기쁨이 아니라 금지와 의무를 가득히 주시는 분으로 종종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볼 때에도 내가 주님과 새롭게 관계 회복을 하는 시간에 설레는 것이 아니라 종종 숙제를 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여러 의무감에 휩싸입니다. 오늘 말씀들이 전하는 기쁨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쁨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두 가지에 대해 천천히 살펴봅시다.

 

오늘 말씀들이 말하는 기쁨은 우리가 먹거나 마시거나 하고 싶은 것들을 즉각적으로 해냈을 때 얻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믿음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믿음에서 오는 기쁨은 그냥 기쁨과는 질적으로 다른데, 그 이유는 어렵고 힘에 겨울 때 우리를 붙잡아주는 내적인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얽히고 얽힌 관계와 사건들을 통해 힘에 겨울 때, 주님을 찾고, 간청하고, 찬양하고, 감사함을 표현할 때 얻는 평화와 위로가 오늘 말씀들이 말하는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 기쁨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너무 모범 답안인가요? 너무 추상적으로 들리시나요? 저부터도 그렇습니다만, 고해성사를 볼 때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았다고 고백하지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두 가지로 요약해주셨습니다 :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기쁨을 얻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기쁨을 얻는 것이지요. 기쁨은 우리가 하느님을 말로만 믿는다고 해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우리의 작은 실천과 행동들이 함께 따라가는데, 그래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합니까?”라고 대신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첫째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늘 감정적으로 들 떠 있고, 설레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분께 맡길 줄 아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을 하느님께 맡김으로써 없애 버리라고 권하지요 :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6). 이 다음이 핵심입니다 :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7). 주님께 감사드리고, 청하고, 맡기는 시도도 없이 처하는 상황마다 불평만 하고 하느님께 회의적이라면 기쁨은 계속해서 발견할 수 없는 이상적인 것으로 남아버립니다. 그러면 하느님께 늘 회의적이고 즉각, 즉각 우리에게 쾌락을 줄 수 있는 유사기쁨만 늘 찾아다닐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걱정거리를 없애주시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당신 자신을 채워주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② 둘째, 복음이 전하는 기쁨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하느님의 뜻은 이웃 사랑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거창한 것을 요구하나요? 오히려 일상생활에 집중하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제1독서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전하는 것처럼(스바 3,15), 하느님은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마태 3,10) “나누어주어라, 강탈하지 마라, 더 요구하지 마라.” 우리를 둘러싼 주변 형제, 자매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향해 눈과 마음을 여는 것. 사실 이 말은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사랑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쁨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다음 세례자 요한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것은 세례와 그 은총인 성령입니다. 성령 없이는 기쁨도 평화도 없습니다. 기쁨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합니까?”에 대한 마지막 답은 성령을 청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품으셨고, 성령으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머무시는 놀라운 사건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놀라운 사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림시기, 우리 마음을 기쁨과 평화로 채워줄 성령을 청하면서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자비를 온전히 담은 아기 예수님께서 누워 계신 구유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길 준비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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