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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근소기(權近所記) 글 소개
*권근 선생은 고려말 조선초의 학자이시다. 호는 양촌(陽村).
태사공 창성부원군 조계룡의 어머니 예향(禮香)씨는 신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로서, 질병으로 화왕산 용담에서 목욕(재계)하다 용자(龍子. 용의 아들) 옥결과 서로 만나 아들을 낳으니, 겨드랑이에 용조(龍曺)라는 글자가 있어 이에 성을 조, 이름을 계룡이라 하였고, 진평대왕의 딸을 상(尙)하였으니 또는 선덕여주 덕만이라 한다. 당나라 정관 6년 임진년에 진평왕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없어 선덕이 왕이 되었다.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재위 16년에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김유신을 뽑아 삼한통일의 계책으로 썼다. 역대왕 중에서 성군이라. 돌아가시어 낭산에 장사지냈다. 세상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에게 지기삼사가 있다 함에...[이하생략]
*신라학사는 신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가리킨다. *용자(龍子)는 용의 아들로서 "왕의 아들"을 의미한다. 즉 조계룡의 아버지 옥결은 비사벌가야 왕자이다. *용조(龍曺)는 왕족 조씨라는 의미로 조계룡의 원래의 성씨가 조씨임을 나타낸다. 또는 曺는 관청을 의미하는 글자로서 용조라는 관청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용조에 해당하는 벼슬은 왕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시위부나 후대에 생긴 어룡성에 해당하는 관청으로 보인다. 용조에서 성을 조, 이름을 계룡이라 하였다 하므로, 용은 왕을 가리키는 말로서 계룡은 곧 왕의 후손 즉 왕손을 의미하는 이름이고, 조는 왕의 성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결국 조계룡의 성씨가 비사벌가야 왕족 성씨임을 가리키고 이다. *선덕여주 덕만 : 여주는 여자인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로서 여자 임금을 의미하고 어감으로 볼 때 여왕보다 낮춤말이 되는데, 격을 낮추어 부르거나 제후에 해당하는 왕을 가리킬 때 주(主)라고 많이 쓴다. 帝>王>君>(主)>諸侯의 순으로 지위를 나눌 수 있겠다. 윗 임금이 아랫 임금을 부를 때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00주(主)라 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주(主)라고 부를 때는 주종관계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2. 지선록 초(知先錄秒)
성을 조, 이름을 계룡이라 하사하였고, 자라남에 진평왕이 장녀를 배필로 삼은 즉 선덕여주이다. 동사(東史)를 보건대 당나라 태종이 조서에서 선덕과 부공(夫公)이 함께 나라일을 다스리다 하였으나 조서에서 부공의 성명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 가히 안타깝도다. *진평왕의 장녀 : 덕만공주를 가리킨다. 덕만공주가 왕이 되니 선덕여왕이다. *부공(夫公) : 남편을 높여 부르는 말임. 公은 존칭에 주로 쓴다. 공의 원래의 의미는 공작(公爵)을 가리키는데, 왕이나 군(君) 아래 제후 중 첫번째 작위에 해당한다. 공에 해당하는 중앙의 벼슬에는 삼공(三公)이라는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父), 또는 사공(司空) 등이 있다. 여기서 부공이란 선덕여왕의 남편을 가리키며, 조계룡임을 의미하는데, 당나라 태종이 조서에서 선덕여왕 남편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 안타깝다라는 것이다.
=========================================== 權 (권) 近 (근) 所 (소) 記 (기) - 太 (태) 師 (사) 昌 (창) 城 (성) 府 (부) 院 (원) 君 (군) 曺 (조) 繼 (계) 龍 (룡) 母 (모) 禮 (예) 香 (향) 氏 (씨) 新 (신) 羅 (라) 學 (학) 士 (사) 李 (이) 光 (광) 玉 (옥) 女 (여) 有 (유) 疾 (질) 浴 (욕) 于 (우) 火 (화) 旺 (왕) 城 (성) 龍 (룡) 潭 (담) 龍 (룡) 子 (자) 玉 (옥) 訣 (결) 相 (상) 遇 (우) 生 (생) 男 (남) 子 (자) 脅 (협) 下 (하) 有 (유) 龍 (룡) 曺 (조) 字 (자) 仍 (잉) 姓 (성) 曺 (조) 名 (명) 繼 (계) 龍 (룡) 尙 (상) 眞 (진) 平 (평) 大 (대) 王 (왕) 女 (여) 或 (혹) 云 (운) 善 (선) 德 (덕) 女 (여) 主 (주) 德 (덕) 曼 (만) 也 (야) 唐 (당) 貞 (정)觀 (관) 六 (육) 年 (년) 壬 (임) 辰 (진) 眞 (진) 平 (평) 薨 (훙) 無 (무) 子 (자) 之 (지) 善 (선) 德 (덕) 爲 (위) 王 (왕) 寬 (관) 仁 (인) 明 (명) 敏 (민) 在 (재) 位 (위) 十 (십) 六 (육) 年 (년) 國 (국) 大 (대) 治 (치) 擢 (탁) 用 (용) 金 (김) 庾 (유) 信 (신) 爲 (위) 統 (통) 一 (일) 三 (삼) 韓 (한)之 (지) 計 (계) 蓋 (개) 歷 (역) 代 (대) 王 (왕) 中 (중) 聖 (성) 君 (군) 也 (야) 薨 (훙) 葬 (장) 狼 (랑) 山 (산) 世 (세) 稱 (칭) 主 (주) 有 (유) 知 (지) 幾 (기) 三 (삼) 事 (사) 盖 (개) 見 (견) 畵 (화) 牧 (목) 丹 (단) 知 (지) 無 (무) 香 (향) 見 (견) 玉 (옥) 池 (지) 蝦 (하) ? (마) 知 (지) 有 (유)隣 (인) 兵 (병) 豫 (예) 言 (언) 死 (사) 期 (기) 也 (야) 太 (태) 師 (사) 有 (유) 異 (이) 瑞 (서) 主 (주) 有 (유) 神 (신) 德 (덕) 天 (천) 生 (생) 聖 (성) 偶 (우) 豈 (개) 偶 (우) 然 (연) 哉 (재)
知 (지) 先 (선) 錄 (록) 秒 (초) - 賜 (사) 姓 (성) 曺 (조) 名 (명) 繼 (계) 龍 (룡) 及 (급) 長 (장) 眞 (진) 平 (평) 王 (왕) 以 (이) 其 (기) 長 (장) 女 (여) 配 (배) 之 (지) 卽 (즉) 善 (선) 德 (덕) 女 (여) 主 (주) 也 (야) 按 (안) 東 (동) 史 (사) 唐 (당) 太 (태) 宗 (종) 詔 (조) 善 (선) 德 (덕)與 (여) 夫 (부) 公 (공) 同 (동) 理 (이) 國 (국) 事 (사) 詔 (조) 不 (불) 言 (언) 夫 (부) 公 (공) 姓 (성) 名 (명) 可 (가) 歎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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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과 조선초기에 권근선생과 관련된 글에 위와 같이 창녕조씨의 시조 조계룡의 배필이 덕만공주인 선덕여왕이라고하는 글이 있음을 볼 때 그때까지 조계룡과 선덕여왕에 관한 기록이 있었거나 구전되어 온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선덕여왕의 남편이 조계룡이라고 결론되어지는 근거가 바로 음갈문왕의 음(飮)자가 되는데, 이를 [마실]로 읽으면 조계룡의 조(曺)와 같은 소리로서 통하게 되어 조계룡이 곧 음갈문왕이며 본명이 인평(인명으로 볼 경우)임이 드러나게 된다.
[조계룡의 생애]
-서기571년 출생. 아버지는 비사벌가야 왕자 옥결(김옥결 또는 조옥결. 원래 조씨이며 진흥왕이 사성하여 김씨가 되는 것임)
-서기588년경 18세경 외조부 한림학사 이광옥이 진평왕에게 외손자 김인평(조계룡의 본명이 됨)을 천거하여 등용케 하고 이에 진평왕은 김인평에게 자를 인경(鱗卿)이라 하사하고 궁에서 지내게 함.
-서기595년경 25세경 진평왕이 약16세의 장녀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부마로 삼음
-서기615년경까지 사이에 5남2녀를 둠
-서기620년경부터 덕만공주가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하고 김용춘, 김유신, 김춘추, 소알천 등을 측근에 둠. 조계룡이 김유신과 김춘추 등 왕실의 스승(태사)이 됨. 김용춘은 서기578년생, 소알천(알천공)은 서기577년생, 김유신은 서기595년생, 춘추는 서기603년생.
-서기631년 2월 진평왕이 61세 부마도위 김인평에게 성명을 조계룡이라 하사함. (曺[마실]=飮[마실]). 삼국유사 왕력보에서 조계룡을 [飮갈문왕 인평]이라 적음.
-서기632년 1월에 진평왕이 붕하고 덕만공주가 즉위함.
-서기634년 3년상을 마친 선덕여왕이 연호를 인평(仁平)이라 함.
-서기647년 1월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고 1월 8일 선덕여왕 붕함. 진덕여왕이 즉위하고 김유신과 김춘추 세력이 비담의 난을 진압함.
-서기651년 조계룡 흉. 81세. 시호 문의(文懿).
*김인평 60년간, 조계룡 21년간, 합81세
조계룡의 자(字)가 인경(鱗卿)인데, 이 인경이라는 말은 용(또는 잉어) 비늘을 가진 재상이라는 말이 되며, 용의 후손을 높여 부른 명칭이 된다. 경은 재상급에 해당하며, 공경대부의 경을 가리킨다. 공은 공작, 경은 공보다는 아래 직위가 되는데 통상 재상급에 해당한다. 대부는 제후보다 아래 계급이 된다. 제>왕>군>공>후>백>지>남>대부. 지방의 왕인 제후에 해당하는 공후백자남은 중앙에서 벼슬을 겸하기도 한다. 경은 중앙조정의 벼슬이며 제후가 아니다. 영어로는 sir. 인경이라는 말은 진평왕이 김인평(조계룡)을 용의 후손으로 인정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동해신룡=청룡=曺(東자를 포함한 글자임)씨 왕(王). 즉 인경은 비사벌가야 조씨 왕족의 후손으로서 붙여준 이름(字)이 됨. 김인평이 중장년일 때 자(字)가 인경(鱗卿), 61세가 되어 하사받은 이름이 계룡(繼龍), 81세에 돌아가신 후 시호는 문의(文懿)가 됨.
공후백자남의 제후는 지방(천하)국의 왕에 해당한다. 즉 공후백자남은 자치국의 왕이 되는 것이다. 대부는 중앙에서 임명받은 지방관리가 되며, 욕살, 성주 등에 해당한다. 태수는 지금의 군수급이라 할 수 있다. 군(君)도 지방에 봉해질 때는 천하왕이 된다.
한배달조선 시대 풍백, 우사, 운사가 삼사로서 삼공이나 삼경에 해당하고, 오가는 지금의 일반행정부가 된다. 삼한(三韓)은 제(帝) 아래 왕(王) 또는 군(君)에 해당하는 임금이며, 그외 군, 제후 등의 자치국의 지방왕이 있다. 우사를 지낸 태호복희는 천군으로서 진제국의 왕이 되었고, 우가를 지낸 신농은 염제국의 왕이 되어 천자가 되었다. 배달조선 시대에 단군의 아들 외에는 삼사 오가를 지낸 인물들이 주로 제후국의 왕 즉 천하왕(天下王)이 되었다. 고대중국의 왕인 천자(天子)는 천하왕(지방에 봉해진 천군, 천공, 천후, 천백, 천자, 천남) 중의 하나이다.
자(字)는 관례시 짓는 이름이기도 하며, 성인으로서 대우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진평왕은 김인평에게 약15세 이상 약20세 되던 해에 자를 [인경]이라 지어준 것이 된다. 덕만공주는 약15세에 성인식을 치르고 김인평과 혼인한 것이 된다. 덕만공주가 15세 되던 해는 서기595년경이 되고 김인평이 약17세가 되던 해는 서기588년경이며 이때 [인경]이라 자를 하사받았고, 약8년후가 되는 서기595년경에 덕만공주와 혼인한 것이 된다. 딱 맞아 떨어진다!
[조계룡 관련 용어해석]
-비사벌가야 : 신라시대 당시 창녕지역을 가야지역으로 설정된 명칭임. 비사벌은 빛벌로서 빛이 나는 벌판이라는 뜻임.
"비자발"이라고도 적는 경우도 있다. 모두 "빛벌"의 이두식 표기가 된다. 그 이전에는 후삼한시대에 이미
불사국(不斯國)이 있었으며 "불" 또는 "빛"과 관련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동해신룡 : 오행상으로는 청룡을 가리키며, 東자를 포함하고 있는 성씨인 曺씨의 왕을 의미하는 말임.
-동해신룡의 아들 (용자) 옥결 : 조씨 왕의 아들 즉 왕자 옥결을 가리킴. 즉 본명은 조옥결!
-청룡병 : 이례향이 앓았다는 청룡(복질)병은 청룡과 혼인하여야 낳는 병이라는 뜻으로 혼사와 관련된 병명이 됨.
즉 이례향이 20여세가 되니 혼기가 되어 동해신룡(청룡)의 아들을 만나 혼인한다는 뜻이 됨.
-협하 용조(龍曺) 또는 조(曺) : 겨드랑이에 새겨진 용조라는 글자는 용의 자손 조씨라는 의미가 되어 원래의
성씨가 조씨임을 나타내는 말이 됨. 협하는 출신을 상징하는 용어가 됨.
-부마도위 : 공주의 남편
-태사 : 왕자 등 왕실의 스승
-부원군 : 갈문왕을 후대의 명칭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 됨.
-飮[마실] 갈문왕 = 金인평 = 曺[마실] 갈문왕 = 曺계룡
조계룡의 자는 인경(鱗卿), 시호는 문의공(文懿公)
인경이라는 자는 진평왕이 지어준 것이고, 문의공은 진덕여왕이 내린 것이 됨.
김인평의 나이 약17세가 되는 서기587년경에 진평왕이 등용하여 벼슬길에 올라 자를 인경이라 하사 받았고, 약8년후 25세가 되는 서기595년경에 진평왕의 장녀 덕만공주(당시 약16세)와 혼인한 것이 된다.
서기631년 2월에 김인평이라는 이름을 진평왕이 조계룡이라 사성명을 한 것이다. 이때 曺를 [마실]이라 읽고 있었으므로 [마실]갈문왕이 된 것이다. 갈문왕은 소왕(小王), 비왕(裨王), 보왕(補王), 한(韓)의 뜻이 있고 고려, 조선시대의 부원군과 통한다.
서기651년에 진덕여왕 때 81세로 돌아가시 시호는 문의공이시다.
*진주소씨 시조 소알천(소경, 알천공)은 서기577년생으로 109세까지 살았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조계룡은 서기전571년생이 되니 알천공보다 6세가 많은 것이 되고, 김유신보다는 24세가 많은 것이 된다.
화랑세기필사본이나 삼국유사 등에서 덕만공주 선덕여왕에게 남편이 없었다라는 취지로 적은 글은 이미 자녀를 다 낳은 후가 되는 서기615년 이후에 덕만공주가 진평왕의 후계자로서 남자처럼 행동하고 정치를 한 것에서 와전된 것으로 본다. 서기615년에는 덕만공주는 이미 35세가 되며 자녀를 약20세부터 낳았다라고 하면 7남매를 약15년간 두었으니 약35세경에 다 둔 것이 되어 타당하게 된다.
이후 덕만공주는 알천공, 김용수, 김용춘 등을 사신(私臣=개인비서)으로 삼고 김유신, 김춘추 등을 측근에 두면서 후계작업을 성공적으로 행한 것이 된다.
이로써 덕만공주는 나이가 들어 남자의 기상을 가지고 언행을 하다보니 남자처럼 비유되어 남편이 없는 여자로 와전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조계룡이 서기631년까지는 김인평이라는 이름으로 그 후에는 조계룡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김유신과 김춘추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등 대들보 같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 된다.
음갈문왕의 飮자의 훈이 [마실]이며, 조계룡의 曺가 [마실=마을]로서 같은 소리로 적은 글자가 되는데, 이를 부정하고 조계룡이 飮갈문왕이 아니라는 결론은 飮자의 이두식 표기를 무시한 것이 된다. 특히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기록을 해석하려면 이두에 밝아야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완전한 뜻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이두식으로 풀이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 삼국유사왕력보를 적을 당시에 왜 [마실]갈문왕에 해당하는 글자로 [飮]갈문왕으로 적고 [曺]갈문왕이라고 적지 않았느냐라고 의문을 품는다면, 이는 [曺]갈문왕으로 적으면 [曺]는 이미 성씨의 하나로써 일반적으로 [조]로 읽게 되므로, [마실]의 소리로 읽으라는 의미에서 [飮]갈문왕으로 적은 것이 된다.
[마실갈문왕으로 확실하게 적었을 수 있었던 방법]
1. 麻實葛文王
2. 飮葛文王. 飮麻實與曺同音也.
3. 曺葛文王. 曺音麻實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