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병철회장의 '경영 15계명'

작성자박 정 수|작성시간10.11.11|조회수712 목록 댓글 0




경영 15계명.

 

 제 1게명.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제 2계명. 신용을 금쪽같이 지켜라.

 제 3계명. 사람을 온전히 믿고 믿었으면 맡겨라.

 제 4계명. 업의 개념을 알아라.

 제 5계명. 판단은 신중하게, 결정은 신속하게.

 제 6계명.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라.

 제 7게명. 메모광이 되어라.

 제 8계명. 세심하게 일하라.

 제 9계명. 신상필벌을 엄격하게 하라.

 제10계명.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라.

 제11계명. 사원들을 일류로 대접하라.

 제12계명. 부정부패를 엄히 다스려라.

 제13계명. 사원교육은 회사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제14계명. 목계의 마음을 가져라.

 제15계명. 정상에 올랐을 때, 변신하라.

 
 

1계명-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1939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경영하면서 시작된 이병철의 기업가로서의 일생은 1951년 삼성물산 설립, 1953년 제일제당 건설, 1954년 제일 모직 건설 등으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행보를 계속했다. 그는 48년간 한국경제사에 커다란 획을 그으며 연이어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삼성전기, 동방생명, 중앙일보, 동양방송, 신라호텔 등 23개의 기업군을 이루었다. 그의 생애는 끊임없이 행하는 용기와 실천의 삶이었고 결국은 모든 기업군을 국내 제일의 위치에 올려놓는 '가는 자 닿는'실천의 일생이었다.

2계명-신용을 금쪽같이 지켜라


이병철은 이병철은 해방 직후 홍콩 찬넬양행으로부터 면실박을 수출한 대금 3만 달러를 한국전쟁 직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평소에 신용을 잘 지켰기 때문이며, 한국전쟁 때 알거지가 된 이병철이 재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일생은 신용을 목숨처럼 지키는 것으로 일관했다.

3계명-사람을 온전히 믿고 맡겨라


해방 직후 이병철은 서울에 삼성물산공사를 차리면서 지배인이었떤 이순근에게 대구의 삼성상회와 양조장을 믿고 맡겼다. 그후 대구의 삼성상회는 이순근이 월북한 후 사장 김재소, 지배인 이창업, 공장장 김재명등이 이병철의 간섭 없이 사업에 성공, 한국전쟁 직후 대구로 피난 갔던 이병철에게 그 이익금 3억 원을 건넴으로써 사람을 믿고 맡긴 자신의 치세에 대한 도움을 스스로 가장 많이 받은 셈이 되었다.

삼성은 1958년부터 공채를 통해 사원을 뽑았고 바로 그들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드는 데 공헌한 인물들이다. "한번 뽑은 사람은 믿고 맡긴다"는 이병철의 인재관에 따라, 강진구 삼성전자 부회장,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등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의 60퍼센트는 모두 이병철이 1970년대에 공채로 뽑았던 인물들이다. 이들 전문경영인의 자율경영이 삼성그룹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4계명-업의 개념을 알아라


이병철은 동방생명을 인수한 뒤, "보험은 모집인이 좌지우지하며 모집인이 보험업의 전부"라고 말했다.보험업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다. 이처럼 이병철은 업의 개념을 매우 중시하였다. 또한 호텔업의 근본적으로 부동산 업종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는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가 햄버거를 팔아서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 매장 개설 시 향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만한 예상지를 잘 골랐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의 세계적인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동일하며, 신라호텔도 서비스 업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업종으로 분류하였다. 이 또한 업의 개념이 어디에 있는가 그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또 가전업에 진출할 때도 마쓰시다전기로부터는 VTR 기술을 도입했고, TV의 경우는 산요, 비디오카메라는 소니 등 업의 개념과 가장 잘 맞는 회사의 제품을 취사선택하여 기술을 도입했다.

5계명-판단은 신중하게, 결정은 신속하게


대표적인 케이스로 반도체에 진출하기 전 이병철은 김광호 삼성전자 상무에게 반도체시장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케 하고 그것을 수십 번 읽는 한편, 본인도 별도의 채널을 통해 반도체에 대해 1년 6개월 동안 치밀하게 연구하였다. 그후 단 하룻밤 만에 삼성그룹 전체의 사운을 걸고 반도체 진출을 선언한 것은 신중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6계명-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라


이병철은 국제전화를 걸기 전에 미리 메모를 작성하여, 상대에게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알려줌으로써 국제전화 요금을 아낄 정도로 근검절약하였다. 또 골프를 칠 때의 티도 깨지고 다 망가질때까지 쓰고 또 썻다.

그 자신이 소식가이기도 했지만 음식을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던 이병철은 낭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용인하지 않았다. 사돈인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 해외출장을 갈 때 출장비까지 직접 결재할 정도였는데, 해외 체류 시 그가 사용한 호텔 방도 스탠더드룸 수준이었다. 예컨대 일본의 오쿠라호텔에 투숙할 경우 주로 505호실을 사용하였다. 그 방은 평균수준의 고객들이 이용하는 방이다. 이건희 회장도 그 영향을 받아 해외출장 시 속옷은 자신이 직접 빨아 입는다.

7계명-메모광이 되라


이병철의 일상은 메모로 시작해서 메모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목욕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간밤에 생각한 내용을 모두 메모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메모에는 그날 하루의 일과에서부터 상을 주어야 할 사람, 혼을 내야 할 사람 등이 적혀 있고, 사장들과의 면담시간도 메모에 의해 15분, 20분 등으로 정확하게 실천하였다. 심지어는 사장을 혼낼 때도 메모를 보고 혼을 내었다. 이병철의 메모는 너무 치밀해서 업무보고를 한 사장이 오전 브리핑을 하고 나면 오후에는 일과를 보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소진되기도 하였다. 사업에 착수할 때 검토해야할 90항목 같은 것은 평소 그의 메모가 이루어낸 결과였다.

8계명-세심하게 일하라


이병철은 삼성본관 신축 시 대리석 타일의 색상에서부터 기둥과 기둥의 간겨 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개 항목의 지침을 내렸다. 신라호텔을 지을 때도 우동집 주방장을 자신의 일본 단골 우동집에 보내 기술을 배워오게 하였다. 신라호텔 내 일식당인 아리아케에는 노인들이 신발을 신을 때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벽에 손잡이를 달라고 지시하고, 구둣주걱도 지팡이만큼 긴 것을 비치하라고 지시하였다. 제일모직에서 와이셔츠를 생산할 때엔 스스로 전세계 명품 와이셔츠 150종을 매일 한 가지씩 입어보고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내려 보내 생산토록 하였다. 그가 애용하는 만년필 워터맨의 경우도 펜촉을 20개씩 별도로 사서 가장 우수한 펜촉에 대해 연구해보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저녁에 퇴근 후 목욕할 때에도 목욕물의 온도가 1도만 달라도 알아차릴 정도로 세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9계명-신상필벌을 정확하게 지켜라


일을 잘한 사원에게는 남 몰래 보약을 보내줄 정도로 부하를 아꼈다. 그러나 일을 잘못했을 때에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좌천시켰는데, 심한 경우에는 해고하고 두 번 다시 쓰지 않았다. '한번 내친 자는 다시 쓰지 않는다'는 말은 이병철의 유명한 인재관리 철학이었다. 오늘날 삼성의 계열사 사장들이 말단 사원까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장과 직접 면담하는 것도 신상필벌의 원칙 때문이다.

10계명-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라


이병철은 본래 과묵한 성격이다. 그러나 남의 말은 신중하게 들었다. 그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름대로 취할 장점과 단점을 면밀히 계산하였다. 특히 일본의 경영자, 대학교수, 고위 언론인 등과 많이 접촉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를 즐겼다. 국내에서도 각계의 전문가들을 수시로 초빙, 그들의 견해를 듣고 사업을 구상하였다. 특히 신규사업에 뛰어들 때에는 수백 명 전문가들의 견해를 경청하였고, 또한 계열사들의 전문경영인들로부터도 그들의 견해를 경청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11계명-사원들을 일류로 대접하라


이병철은 1970년에 월급을 정하는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물가를 반영하여 생활이 안정되도록 최소한의 생계비는 되어야 한다.

둘째, 타사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1953년 제일모직을 지을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당시 제일모직은 공원은 물론 일반인까지 입사하고 싶은 회사였다. 이병철은 제일모직 여공원들의 기숙사에 당시 최고가의 나무인 히노키 소나무로 바닥을 까는 한편 면회실, 세탁소, 독서실 등을 만들어 최고급으로 설치하였다. 당시 중역들은 기숙사 시설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불평했지만 좋은 품질의 ㅁ루건을 나오기 위해서는 환경이 좋아야 한다며 고집을 꺽지 않았다. 이때부터 지속된 삼성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걔속되고 있다. 또한 지금도 외국유학의 기회나 연수의 기회를 많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계명-부정부패를 엄히 다스려라


삼성에도 한때 부정이 있었다. 삼성의 직우너들 중에는 하청업체로부터 뇌물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병철은 그러한 불의를 용서하지 않았다. 뇌물의 수수는 기업을 좀넉는 암이자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섬그룹의 감사팀은 국내 최강으로, 이병철 제직 시 KBS는 자사의 감사 업무를 삼성그룹 감사팀에게 의뢰할 정도였다. 사장실의 두무라리 휴지의 길이까지 재어 회사 돈을 착복하지 않았는지를 파악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13계명-사원교육은 회사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병철 자신이 가끔 비유했던 것처럼 "세사람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나온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별철은 전원 경영을 중시하였다. 전원경영은 사내의 중지를 모으기 위한 것인데, 물건을 만들기 전에 사람을 만들어라, 적재적소에서 개성을 살리라는 것은 인재 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병철의 인재관이었다. 삼성의 사내교육은 용인의 삼성종합연수원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 사의 크로톤빌연수원과 일본 소니의 소니유니버시티에 필적하는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있다.

14계명-목계의 마음을 가져라


이병철은 평생 자신의 집 거실에 '나무 닭'인 목계르 걸어놓고 그걸 통해 자신의 마음을 경계하였다. 목계는 나무 닭으로 중국의 고전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우화로 유명하다. 목계는 저잣거리의 싸움닭을 만나도 일일이 대거리하지 않았던 초연한 닭이었는데, 그 자신 목계처럼 시정잡배들에게 응수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0년 동양 매스컴을 신군부에 빼앗기고도 그날 밤 숙면을 취햇을 정도였다. 또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발생한 불이익에 대해 담담한 마음으로 포기할 것은 포기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이 있다.

15계명-정상에 올랐을 때 변신하라


삼성은 1938년 삼성상회를 시작으로, 1950년대는 제당과 모직, 1960년대는 비료와 보험, 1970년대는 저자, 석유, 화학, 중공업, 조선, 건설, 통신, 국토개발, 1980년대는 반도체, 유전공학, 컴퓨터, 항공산업, 소프트웨어 등 첨단산업에 진출했다. 이병철은 이 모든 사업이 완전히 정상에 올랐을 때 늘 새로운 변신을 추구했다. 기업의 몰락은 환경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적적히 대응하지 못한 변신의 실패 때문이다. 정상에 올랐을 때 변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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