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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화성의 인류학자/올리버 색스

작성자홍익|작성시간15.09.30|조회수152 목록 댓글 2

 

 

간만에 내 스타일의 책을 만났다.

 

요즘 어떤 책을 봐도 대부분 실패하는 나를 발견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만큼 취향이 까탈스러워진 때문이다. 예전보다 훨씬 더 좋은 것보다 나쁜 것, 싫어하는 게 많아진 코드 때문이겠다.

 

어쩌다가 얻어걸린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가 나를 흐뭇하게 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빌리다가 이 놈을 발견하게 됐다. 400페이지가 넘는데 독해가 느려 한참 걸린다. 오해는 말아라. 진짜 쉽게 쓴 책이다. 내 독해가 매우 둔해졌다.

 

이제 겨우 반을 살짝 넘겼다. 오랫동안 의사생활을 한 신경학자 올리버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그리고 의학적으로도 예의주시할 바가 있는 7인을 추려 잘 형상화했다.

 

 

빌린 책이지만 인용하고픈 대목도 많고 하여 책을 살까 싶어진다. 교통사고 뒤 색맹이 된 화가 얘기, 의사면서도 투렛장애를 겪고 있는 외과의사 얘기, 맹인으로 오랫동안 살다가 시력을 되찾게 된 어느 남자의 기구하면서 안타까운 얘기 등이 참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런 책을 보게 되면 여러 가지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책은 시사점을 던지거나 정신을 살찌우는 내용들로 잘 추려져 있다. 정신을 살찌우는 책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유용한가는 극히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나를 당긴다. 중력처럼 당긴다.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인간이니까 할 수가 없다.

 

 

 

보통 색맹은 선천적인 장애로 간주가 되고 있다. 그런데 조너선이란 화가는 교통사고로 뇌에 손상을 입어 색맹이 되었다. 그런데 뇌의 손상으로 전색맹이 되는 경우는 오래 전부터 보고된 바는 있어도 <상당히 희귀하고 중요한 현상>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사고로 색맹이 된 조너선은 원래대로 돌아가길 학수고대하지만 결코 바라는 바대로 되지 않는다. 흑백 세상을 온건히 자기의 것으로 수용하기까지 수년이 걸려야 했다. 원점 회귀에 대한 자기 포기랄수도 있지만 소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흑백이라는 단촐한 질감으로도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가 있음을 인지하고 다시 붓을 들게 된다.

 

 

책에선 빠졌지만 반드시 이것만은 걸고넘어지고 싶다.

 

뇌과학 교수 김대식의 어느 인터뷰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숨기고 싶은 또 다른 진실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보이는 대로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뇌가 계산해 낸 아웃풋(결과물)이다. 고양이는 컬러를 못 보니 흑백으로 세상을 본다. 박쥐는 세상을 초음파로 본다. 초음파로 보는 세상은 어떨까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세상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있는 게 아니고 뇌가 만들어낸 것이란 말이다. 결국 일반인이 보는 세상도 물자체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색맹 화가 조너선의 흑백 세상이든 일반인의 총천연색 세상이든 원래 있는 대로 보는 게 아닌, 자기 눈이 보이는 대로만 세상을 본다.

 

 

 

 

 

 

세번째 얘기로 넘어가.

 

투렛증후군이란 틱장애를 생각하면 쉽다. 틱장애의 업그레이드 버전쯤 되지 않을까. <기침을 하고 몸을 실룩거리며, 얼굴을 찡그리고, 이상한 몸짓을 보이>는 그런 이유없는 지극히 연속 모드가 투렛증후군이다. 단순히 거동에서 그치지 않고 욕을 하고 전혀 말이 안 되는 단어나 말들을 수시로 떠벌리기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한다. 이것이 일상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눈을 뜨고 있는 하루종일 이런 행위들에 몸이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 왈 이런 투렛증후군에 걸린 외과의사가 다섯 명이나 된다고 한다. 아니, 아홉 명이나 된다. 책이 나온 뒤 네 명을 더 만났다 한다.

 

 

중학시절 투렛증후군을 지독하게 앓는 이를 등교 때 본 적이 있다. 머리만이 아니라 실룩거리는 입으로 뭐라 뇌까리며 기침도 하고 어깨도 괴상하게 흔들며 걸었다. 아무튼 말로 표현이 부족할 만큼 희한한 몸짓으로 그는 걸었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달라지길 바라지 않아요." 베넷도 마찬가지였다. "우스운 병이죠. 하지만 나는 투렛증후군을 병이 아니라 저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병'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해도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베넷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환자들은 투렛증후군을 외부적인 질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많은 틱 증상과 충동이 자아, 개성, 의지의 일부분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파킨슨병이나 무도병(신체의 여러 근육이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병)은 전혀 다르다. 자아나 의지와 관련된 측면이 없기 때문에 외부에 존재하는 질병으로 인식된다. 강박증과 틱 증상은 중간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다음.

 

타고난 건 아니지만 버질이란 앞을 못 보는 환자가 약혼자의 권유로 시력 회복 수술을 받으면서 45년 만에 앞을 보게 되는 얘기다. 그렇다고 거의 없던 시력이 1.5나 1.0이 되는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책에서 버질의 경우 최고 시력이 한때 0.25 정도 올랐다 한다. 아무튼 시사하는 바가 가장 큰 내용이었다. 시력이 없던 자가 시력을 갖게 되면 아, 이제 눈을 떳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서 푼짜리 혼란과 머뭇거림 뒤에 거리를 활보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전언이 있다.

 

 

세상을 입체로 보기는커녕 보이는 모든 것이 구분이 되지 않게 된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평생 시각적으로 '학습'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 세계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과 분류와 기억과 연상을 통해 우리가 건설한 것이다. 하지만 버질이 45년 만에 눈을 떴을 때에는 지각을 뒷받침할 만한 시각적인 기억이 전혀 없었다.....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경험과 의미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었다. 앞이 보이기는 했지만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망막과 시신경에서 자극을 보내도 뇌에서 해석이 되질 않았다. 신경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불가지론자'가 된 것이다.>

 

 

40대 중반까지 세상을 봤던 사람도 시력을 잃은 뒤 5년 만에 수술로 되돌아온 경우가 있는바, <5년 만에 사람을 '마주본다'는 개념과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개념을 잊어버렸다 한다. 난 이런 경우가 더 이해가 불가하다. 40년 이상 세상을 바라봤던 사람이 불과 5년 만에 본다는 개념을 잊어버린다는 자체가.

 

 

 

발 킬머, 미라 소르비노가 나왔던 15년 전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이 이러한 비슷한 경우다. 발 킬머도 후천적인 수술로 시력을 회복하지만 더 나은 일상은커녕 엄청난 혼란과 반목만 가중하게 되었다. 종국엔 발 킬머의 경우 다시 맹인으로 돌아간다는 얘기고 버질도 실은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수술 뒤 버질은 조금씩 적응을 하며 나아지는 듯 보이다가 이해하기 힘든 퇴행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가족들이 오면 전형적인 맹인 행세를 하다가 가족이 퇴장하면 시력을 회복하는 등의 퇴행적인 행동을 수시로 반복하기도 한다.

 

 

 

독서는 참 아쉽다. 그리고 독후감도 아쉽다. 읽으면서 느꼈던 다양한 소고들이 거의 휘발된 상태다. 언제쯤 읽은 대로 기록할 수가 있을까? 평생 힘들겠지? 아무튼 이런 멋진 책을 쓰는 사람도 신은 수거해간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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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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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선바위 | 작성시간 15.10.01 휘발되어버린 소고들이 아쉽네요.
    읽은대로 기록하기..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하기도 힘들어요..
  • 답댓글 작성자홍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1.08 이른 나이에 치매가 올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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