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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

꽃등

작성자장재화|작성시간15.10.09|조회수61 목록 댓글 0

꽃등

 

    엄청나게 비싸지만 값에 비해 정말 맛없는 것. 그래서 먹지 않겠노라고 도리질하지만 먹지 않을 수 없는 것. 일단 먹었다하면 뱉을 수도 없는 것. 그게 나이다.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이고 먹을수록 적어지는 것이 잠이다. 어디 그뿐이랴, 잠자는 시간이 줄면 줄수록 친구하자며 자주 부르는 곳은 화장실이다. 귀찮다. 하지만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거실을 지나가야 한다. 밖을 내다보지만 보이는 것은 아파트촌의 희미한 윤곽뿐이다. 이럴 때의 거실은 그냥 스쳐가는 공간이지만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잠시잠간 사색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창문을 흔들고 가는 스산한 바람소리에 몸과 마음이 함께 움츠려든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상의 현란한 불빛에 가려 초저녁에는 보이지 않던 별이 뒤늦게 나와서 저도 추운지 오들오들 떨고 있다.

    몇 시 쯤 되었을까. 벽시계를 바라보지만 시계바늘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다. 흘끗 밖을 내다본다. 마주보이는 아파트의 두어 집에 불이 밝혀져 있다. 나는 불 켜진 창을 헤아리며 시간을 짐작해본다. 그런데 신기하다. 불빛의 수로 점치는 시간은 실제 시간과 얼추 비슷했다.



    우리 아파트단지도 여느 아파트와 다름없이 밤 11시까지는 대부분의 집에 불이 들어와 있다. 가끔가다 환호성 소리와 탄식소리가 교차해서 들린다. 어느 방송에선가 국제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모양이다. 남자들이 축구며 야구 등 운동경기에 열중하는 동안 여인들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미소 짓거나 비분강개하여 혀를 찬다. 또 수험생이 있는 집이라면 아예 텔레비전을 꺼두었을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오면 불빛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다. 두 시, 아직도 불 밝힌 집이 보인다. 아마 대입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있는가 보다. 네 시간 자면 합격이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5의 버거운 현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수험생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 심정을 헤아리는 부모는 고등학교 3학년에 오르기가 무섭게 자녀를 왕으로 모신다. 그런데 왕은 왕이지만 공부하는 시간이며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 집의 경우도 그랬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통상적인 공부 방법을 선택했다. 무심 때라면 자정, 시험 때면 새벽 두 시까지 공부했다. 그러나 딸은 달랐다. 저녁 먹고 나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면서 두 시에 깨워주세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일어나서 세수한 뒤, 단정하게 머리 빗고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책상에 앉아 문제지를 펼치고는 자기최면을 건다. “난 지금 교실에서 수업중이야

    아들과 딸의 공부방법 중에서 어느 게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뒷바라지를 하는 아내는 아이들의 이런 습성 때문에 늘 잠이 부족했다. 지금 불을 밝힌 저 집 아이는 책을 덮고 있을까 아니면 잠에서 깨어나 책을 펼치고 있을까.

    문득 먼 미국 땅에 자리 잡은 딸 생각이 난다. 지금 아버지가 이웃 집 불빛을 보며 제 생각하는 것처럼 저도 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다, 그곳은 지금 햇볕 쏟아지는 한낮일 테니까. 흔히 지구의 반대쪽에 있지만 비행기로 열서너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미국은 이웃마을과 마찬가지라고 말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같은 꿈마저 꿀 수 없기에 아주 먼 나라다 

    네 시, 꼭두새벽인데도 불 밝힌 집이 보인다. 어디 먼데로 여행 떠날 준비라도 하고 있을까.

     자정부터 네 시까지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던 시절의 이야기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신이며 집안 경조사가 있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고향 갈 채비를 한 채 통금이 해제되기를 기다렸다. 부산역에서 530분에 출발하는 완행열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지금처럼 전화 한 통이면 쪼르르 달려오는 콜택시도 없었고, 버스며 전차가 있었지만 그 시간에는 깊은 잠에 빠져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여, 통금해제 사이렌이 울림과 동시에 고향집에 가져갈 보따리를 든 채 야반도주 하는 가족처럼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역까지는 부지런히 걸어도 한 시간 넘게 걸렸으니까.

    영도다리를 건너 갈 땐 해조류 냄새와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온몸에 감겨들었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의 마스트 위에는 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은하수에서 내려온 아기별이 마스트에 앉아서 깜박깜박 졸고 있는 것 같은 그 불빛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직 소년티도 벗지 못한 나에게는 무리한 일정일 수도 있었지만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설레곤 했다. 생각건대, 못 오른 산과 가보지 않은 길, 생소한 풍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짬만 나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 나의 습성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향집 싸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허리 굽은 할머니는 아이구 내 새끼하며 등을 토닥거려주셨고 할아버지께서는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직도 뇌리에 새겨져 있는 그 풍경이 그리워질 때면 새삼스레 콧날이 찡해오는 것은 어느새 나도 그 분들처럼 할아버지가 되었음이리라.

    여섯 시가 가까워오자 이 집 저 집에 불이 들어온다. 두꺼운 커튼에 가려 일렁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지만 이 시간에 일어난 주부의 움직임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밥솥과 찌개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은 그녀는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 남편과 자녀를 깨우러 다닐 것이다. 하지만 “10분 만 더” “5분 만 더하고 애걸하는 목소리에 차마 깨우지 못하고 돌아설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방마다 불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부산스러워진다. 가족 모두가 일어나서 아침의 문을 연 것이다.

    밤이 꿈꾸는 시간이라면 아침은 꿈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단란한 가족을 감싸고 있는 그 불빛은 내일로 가는 길을 밝히는 꽃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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