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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

재봉틀

작성자장재화|작성시간15.11.25|조회수24 목록 댓글 0

재봉틀

 

    인간이 꿈꾸어온 이상향이 숨어 있다는 샹그릴라. 그 샹그릴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장족(藏族) 마을의 불탑. 아내를 비롯한 몇 사람의 장족여인이 불교경전을 넣은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마니차를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이 쌓인다고 믿는다. 마니차를 돌린다는 것은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함이고 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신의 뜻에 따라야한다. 그들은 마니차를 돌리면서 신의 뜻을 헤아리며 자신을 돌아본다. 현세에서의 행복과 내세에서의 보다나은 삶을 기원한다.

    경상북도 예천읍 용문면. 소백산 자락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용문사는 고려 명종이 태자의 태를 안치한 후, 세종대왕의 정비 소헌 왕후와 정조의 장남 문효 세자의 태실이 봉안된 명찰이지만 그보다 더 불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대장전의 윤장대(보물 684).

    고려 명종 20년에 제작된 윤장대는 불교 경전이 들어 있는 한국판 마니차다. 불자들은 일 년에 두 번, 삼월 삼짇날과 구월구일이면 윤장대를 돌리면서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이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고 싶다는 식의 거창한 꿈은 아니다. 그저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화목하기를, 욕심이며 아집 등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빈 마음으로 살게 해달라는 소박한 염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마니차를 돌리는 티베트인이나 윤장대를 돌리는 불자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비운자리에는 또 다른 욕심이 들어와서 앉는다. 인간의 마음은 비움채움이라는 썰물과 밀물이 반복하여 출렁이는 유리잔 속의 바다 같으니까. 그래서 쉽게 깨어지고 쏟아진다. 그리되면 또 다른 소원을 빌기 위해 윤장대를 찾는다.

 

    우리 집에는 아내를 따라 시집온 낡은 손재봉틀이 있다. 아내의 재봉 솜씨는 프로에는 못 미치지만 아마추어치고는 제법이다. 그래서 재봉틀을 사용하여 아이들의 활동복을 만들어 입혔고 유행이 지난 옷도 말짱하게 고쳤다. 커튼을 만들어 창문을 가렸고 이불잇이며 베갯잇을 만들 때도 재봉틀의 도움을 받았다. 그랬다. 아내에게 있어 재봉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아내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골목을 내달리던 자식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일가를 이루었으니 아내가 솜씨를 뽐낼 일은 별로 없다. 게다가 튼튼한 옷보다는 세련된 옷을 고집하는 요즘, 손자 손녀에게 투박한 옷을 만들어 입힐 수도 없다. 하여, 소매가 낡은 옷을 조끼로 개조한다거나 손녀가 부탁한 꼬마방석이며 앞치마를 만들어 선물하는 것으로 향수를 달랜다.

    우리 부부가 신접살림을 차린 지도 45년이 흘렀다. 불민한 남편과 세 아이의 치다꺼리를 하는 동안 아내의 마음에 쌓인 앙금과 회한이 왜 없었겠는가. 그래선지 지금도 아내는 비가 내려 울적한 날이거나 바람 불어 어수선한 날, 또는 공연히 심란하여 마음 둘 데 없는 날이면 재봉틀 앞에 앉는다.

    돌돌거리는 회전음을 들으며 바느질에 몰두하다보면 어느새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단다. 그렇다면 아내가 재봉틀 앞에 앉는 이유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응어리를 풀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아내가 풀어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쉬움일까, 서러움일까, 아니면 그리움일까.

    아내는 재봉틀을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부른다. 언제든지 부르기만 하면 나오는 말 잘 듣는 친구. 무슨 부탁을 해도 불평하지 않는 친구. 평생을 서귀어도 감정 상할 일 없는 마음 편한 친구가 재봉틀이란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내 마음은 착잡하다. 오죽하면 저 나이에 가장 좋은 친구가 재봉틀일까? 마치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가 하면 변하지 않는 단짝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부러워지기도 한다.

    샹그릴라는 마음속에 뜨는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샹그릴라는 마니차를 돌리는 티베트인의 마음속에, 윤장대를 돌리는 불자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재봉틀의 돌림바퀴를 돌리는 아내의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재봉틀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너무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던지 아홉 살 손녀가 저도 가르쳐달라면서 보챈다. 그러나 할머니가 쉽게 허락할 리 없다.

    “안 돼, 바늘에 손가락을 찔릴 수도 있고 부러진 바늘 때문에 다칠 수도 있으니까 좀 더 큰 다음에 배우렴.”

    “그게 언젠데요?”

    “으음, 지원이가 중학생쯤 되면 가르쳐 줄게

손녀는 자못 아쉬운 듯, 그나마 다행인 듯,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은 뒤, 그 정도로는 못미더운지 손바닥을 마주 비벼 복사까지 한 다음에야 할머니의 손을 놓아준다.

    하지만 나는 내 손녀가 나이 들어 재봉틀과 친구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재봉틀 같은 건 곁에 두지 않아도 좋을 만큼 유복하기를 바란다. 파파 할머니가 될 때까지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기 바란다. 세상에는 재봉일보다 더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 좀 많은가.

    허나 인생의 길을 그 누가 알랴. 배워서 남 주는 일은 없으니 재봉틀처럼 변함없는 친구를 미리 사귀어 두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도 슬그머니 똬리를 튼다. 어떤 게 더 나은 길일까?

                                                                                                               (‘시와 수필’ 201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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