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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

가마우지

작성자장재화|작성시간15.12.20|조회수16 목록 댓글 0

가마우지

 

   중국인들은 물새의 일종인 가마우지를 길들여서 물고기를 잡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름이다. 가마우지의 한문 표기는 로자시(鸕鶿屎). 가마우지 로(), 가마우지 자(鶿)에 똥 시()를 보탠 이름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가마우지 똥이다. 하필이면 똥일까?

   ‘구아노라고 부르는 가마우지의 분뇨에는 식물의 성장을 돕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비료로도 최상급이란다. 그래서 그 이름에 똥이라는 향기롭지 못한 글자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여간에 중국에서 가마우지 한 마리의 값은 소 한 마리 값과 맞먹는다고 하니 똥값이 아니라 금값이다.

 

   중국 계림 관광의 백미는 이강(離江)의 유람선 관광이다. 강 주변의 수려한 풍광도 풍광이지만 쪽배에 앉은 늙은 어부가 가마우지와 더불어 고기를 잡는 몽환적인 정경은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는 추억이 될 것이라는 가이드의 추천도 뒤따랐다. 하여 우리 일행은 부푼 가슴을 안고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양삭으로 향했다.

   도로사정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 명색이 중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오래된 아스팔트도로는 깨어지고 갈라져서 곰보자국처럼 패인 구덩이가 여기저기 숨어 있다.

   포장도로가 그러할 진데 비포장도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물구덩이를 지날 때마다 파도처럼 갈라지는 흙탕물이 유리창을 때리고 차체는 들썩거리고 출렁거린다. 그럴 때마다 승객의 몸도 같이 춤춘다. 더러는 몸을 지탱하려고 의자 팔걸이를 움켜잡고 용을 쓰기도 하지만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흔들림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게 다치지 않는 비결이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여서 순리에 거역하기 보다는 순리를 따를 때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진다.

   유람선에 올라 강물 따라 흐르며 사위를 둘러본다. 산은 소문 그대로 기이하고 수려했다. 계림의 36천 봉우리 중 이강 주변에만 28천여 개가 자리 잡고 있다니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래서일까. 강 양안에는 기봉과 기암이 홀로이거나 무리지어 겹겹첩첩의 산군(山群)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더위에 지친 봉우리들이 물가로 내려와서 강물에 두 발을 담그고 제 잘난 척 으스대는 것 같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는 가마우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선착장에 내리니 가마우지 두 마리를 장대 위에 앉힌 노파가 사진 찍어, 사진하며 여행자들을 부르고 있다. 가마우지와 기념사진을 찍고 싶으면 모델료를 내라는 것이다. 가마우지도 생활고를 못 이겨 부업전선에 뛰어든 모양이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고기 잡는 가마우지를 보게 되니까.

 

   ‘양강4는 계림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의 하나다. 양강(兩江)은 이강과 도화강을 말하며 4()는 당나라 때 계림을 둘러싼 네 개의 해자를 말한다. 이후, 명대(明代) 이르자 계림의 해자는 남쪽 도화강까지 확대되었고 쓸모가 없어진 원래의 해자는 점차 하나로 이어져 늪으로 변했다. 양강4호는 그 호수에 유람선을 띄어 관광지로 만든 곳이다.

   유람선은 어둑발이 깔리면 출발한다. 이때쯤 되면 호수 주변은 빛의 축제장으로 변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리탑인 일탑(日塔), 그 옆에 세워진 알루미늄으로 만든 월탑(月塔)은 붉고 하얀 조명을 받아 해와 달처럼 빛나고 반딧불이섬과 네온으로 반짝이는 수정유리교며 용계교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유람선이 느린 속도로 네 개의 호수인 싼호와 룽호, 꾸이호와 무룽호를 지나가면 노천무대에서는 소수민족이 노래를 부르며 여행자들을 환영한다. 갑자기 배가 멈추더니 이강에서 보지 못했던 가마우지의 물고기 잡는 모습을 보여주겠단다.

   무대는 호수, 주인공은 서너 척의 쪽배에 탄 어부와 몇 마리의 가마우지다.

그런데 엉뚱하다. 물에 들어가기 싫다고 퍼덕거리는 새를 어부가 강제로 잡아 물속에 던져 넣는다. 잠시 후, 물고기를 입에 물고 나오는 가마우지. 어부는 가마우지의 입에서 사정없이 물고기를 낚아챈다. 유림선이 떠나면 사냥도 끝. 보여주기 식의 짧은 연출이지만 여행자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물새인 가마우지가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부는 가마우지가 잡은 고기를 삼킬 수 없도록 끈으로 목을 졸라맨다. 가마우지의 다른 이름인 로자시의 시()에는 끙끙거리며 앓다라는 뜻도 들어있다. 끙끙 앓을 정도로 힘들게 일하지만 얻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잔챙이 뿐, 늘 배고프다. 그래서 싫다고 저항하는 것은 아닐까. 혹자는 어부와 가마우지의 이런 종속관계를 빗대어 우리사회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부의 불평등이며 분배의 불합리성을 연상하며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부들은 고기잡이 갈 때 가마우지를 쌍으로 데려간다. 그들은 암놈이 물속에 들어가면 수놈을, 수놈이 고기잡이 할 때는 암놈을 배에 남겨둔다. 암수의 정분이 유다른 가마우지는 제짝이 배에 남아 있는 한 혼자 도망가는 일은 거의 없단다. 배에 남은 녀석은 일종의 볼모인 셈이다.

   볼모는 혈육과 연인, 친구간의 정과 사랑을 담보로 잡은 후 핍박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다. 국가와 국가, 권력과 권력, 강자의 약자에 대한, 가진 자의 못가진 자에 대한 횡포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볼모가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다. 주례 앞에 선 신랑신부는 당신의 볼모가 되겠노라 스스럼없이 서약하니까. 그렇게 보면 좋고 나쁨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인간관계는 보이지 않는 계약에 의해 서로가 서로의 볼모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볼모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계림 여행을 통해 새로 배운다. 한없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결코 자유롭지 못한 가마우지를 보며 느낀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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