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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

갈곶산 그리고 부석사

작성자장재화|작성시간16.03.05|조회수27 목록 댓글 0

갈곶산 그리고 부석사

 

   산행과 부석사 답사를 같이 하고 싶다면 백두대간의 갈곶산(966m)과 날개 편 봉황을 닮았다는 봉황산(819m)을 거쳐야 한다. 조선 중종조의 명신 주세봉이 마음의 병까지 고치는 뛰어난 스승에 비견할 만한 물이라고 높이 평가한 경북 봉화의 오천약수탕을 지나 사기막리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용문사방향으로 차도를 따라가면 큰터골계곡이 왼쪽으로 따라온다. 용문사를 1km 남겨두고 생달입구 1시간. 선달산 1시간 30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계곡을 건너 산행을 이어간다. 사기막리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만에 소백산국립공원의 경계인 늦은목이재의 이정표 앞에 선다. 선달산 1.9km. 갈곶산 1.0km 남아 있단다


   왼쪽 비로봉으로 열려 있는 백두대간 길을 따라 갈곶산으로 향한다. 능선은 완만한 오름이지만 세찬 눈바람이 몸을 비틀거리게 한다. 능선을 따라 1km 정도 걸어가면 봉황산 갈림길. 갈곶산 정상이 지척에 있지만, 폭설이 더 이상의 산행을 불가능하게 하여 봉황산과 부석사로 내려가는 왼쪽 길을 따라 하산한다.

   눈은 무릎이 빠지도록 쌓여있다. 등산화바닥에 달라붙은 눈덩이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다. 가끔 멈추어 서서 엉킨 눈을 긁어내지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인생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피곤한 삶의 찌꺼기는 원하지 않아도 나날이 그 두께를 더하는 법이고, 그게 무겁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가끔은 찌꺼기를 털고 새로 시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숲속의 작은 공터인 봉황산 정상을 뒤로 하고, 한국 전통 건축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부석사에 도착한 것은 생각보다 늦어 산행 시작 3시간 50분만이었다.


   산객은 넓은 들판을 내려다본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곳은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로 인마(人馬)의 피가 냇물을 이루었고 창과 방패가 그 피에 떠내려갔다는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다. 의상대사는 그 살육의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부석사를 세웠다.

   천왕문, 범종루, 안양루를 거쳐서 무량수전까지 가려면 108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108번뇌를 지우는 방법을, 그 계단 끝에 있는 무량수전에 다다르면 찾을 수 있을까?

   고려 성종 7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었다는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그러나 문외한에 가까운 산객은, 미술사학자들이 그토록 감탄하는 배흘림기둥이나 팔작지붕의 미학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무량수전의 현판을 쓴 공민왕의 필력(筆力)도 가늠하지 못한다. 다만 단청을 하지 않아 더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배흘림기둥의 금간 나뭇결에서 흘러가버린 세월의 아픔과 무게를 느낄 뿐이다.

   흔히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너울지는 산의 바다와, 소백산 자락에 내려앉는 노을의 바다, 그리고 이른 새벽 안양루 앞까지 내려앉은 구름의 바다를 꼭 보고 가야할 부석사의 3()이라고 추천하지만, 산객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편린이나마 대할 수 있어 고맙고, 부석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에 감탄하고, 선묘낭자의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하는 세 가지 즐거운 경험을 한다.


   무량수전의 왼쪽을 보면 엇비스듬히 누운 여러 개의 돌 위에 부석(浮石)이라고 새긴 커다란 반석이 얹혀 있다. 얼핏 보면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실을 넣어보면 드나들기 때문에 뜬 돌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석사고 사람들은 의상대사를 부석존자라고 부른다.

   의상대사의 당나라 유학시절, 죽도록 대사를 사랑했던 중국 낭자 선묘의 초상을 안치한 선묘각이 무량수전 오른쪽에 있다. 오로지 사랑 하나만으로 온갖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하던 그녀는, 의상이 혼자 신라로 떠나가자 원망하기는커녕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지키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죽어 용이 된 선묘는 그림자처럼 의상을 따르며 도와준다.

   우여곡절 끝에 부석사가 세워지자 그녀는 사랑의 가슴앓이를 접고 무량수전 아래에 묻혀 절을 지키고 있단다. 그러나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도 이제는 뒷방으로 밀려난 늙은이 신세가 되어 초라한 선묘각에서 홀로 외롭다.


   눈은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바로 그때, 터진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구름과 산이 함께 불타기 시작했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형제봉, 비로봉, 연화봉과 도솔봉이 우뚝하고 산릉(山稜)이 흥겨워 춤추고 있다. 저 봉우리 넘어, 저 구름 뒤 어디쯤 극락이 있을까.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무량수전의 아미타여래는 서쪽에 모셔져 있다. 하지만 십만억토(十萬億土)를 지나서 있다는 아미타불의 세계는 너무 멀다. 원불교에서는 행복이란 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서방정토로 가는 길 역시 마음에서 찾아야 더 쉽고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무량수전의 불상은 미소만 지울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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