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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

혼의

작성자장재화|작성시간16.07.23|조회수33 목록 댓글 0

혼의(魂衣)

 

    장롱에서 뭔가를 찾고 있던 아내가 나지막하게 탄성을 질렀다. 웬일일까 돌아보았더니 오래된 한복을 펼쳐놓고는 감회에 젖어 있다. 우리가 결혼하던 날 아내가 입었던 예복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긴 했지만 연분홍 치마저고리는 아직도 정갈했다.

    “당신도 참 어지간하다. 그 걸 아직도?”

    “어떻게 버려요. 저 세상 갈 때 내가 입을 옷인데

아내가 스스럼없이 말했다.

    “저승 갈 때 입어? 이 사람, 자기가 무슨 조선시대 여자라고...”

콧날이 시큰해진 나는 시선을 돌리며 딴전을 편다.

    결혼 날자는 정해졌지만 아내는 예식장에서 대여해주는 웨딩드레스를 부담스러워했다. 이 드레스를 입고 식을 올린 수많은 신부들, 그녀들이 걸었을 각양각색의 인생행로, 그 흔적이 묻어있는 옷은 차마 입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웨딩드레스를 따로 맞출 수도 없는 일. 궁리 끝에 신랑 집에서 혼수로 보낸 한복에 손수 만든 면사포를 쓰고 식을 올렸다. 지금 그 옷을 꺼내들고 새삼 감회에 젖어 있는 것이다.

    찾은 것은 또 있었다. 신혼 시절 아내와 내가 함께 베고 누웠던 원앙침의 베갯잇과 베갯모. 세 아이의 배내옷도 보인다. 어디 그뿐이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낸 사성이며 혼서지까지도 보관하고 있었다. 저 베개를 베고 잠들 때마다, 아이들에게 배내옷을 입힐 때마다 아내는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꾸었을까.


    “북망산천 멀다더니 문턱 너머 북망일세

    “어화 넘차 너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족의 마음을 위로함인지 선소리꾼과 상여꾼의 목소리는 낭랑하다.

만장(輓章)의 뒤를 따라 영정과 상여, 그 뒤를 혼교(魂轎)가 따른다. 혼교는 고인이 생전에 입었던 의관을 담아가는 교자를 말한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면 혼교에 담겨 있던 옷, 즉 혼의(魂衣)를 불태워 망자의 영혼과 함께 하늘로 보낸다.

    영혼도 옷을 입을까? 그렇다면 염습할 때 입히는 수의가 저승 문을 넘을 때 입는 옷이라면 혼의는 영혼이 입는 통상복일지도 모른다.

    ‘수의(壽衣)명주나 삼베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요즘이지만, 옛 문헌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태종의 비() 원경황후의 수의는 당신이 즐겨 입던 관복이었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허조도 내가 죽은 후엔 수의를 따로 만들지 말고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옷으로 염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한 대부분의 여인들은 원삼(圓衫)을 챙겨두었다가 수의로 대신했다. 원삼은 조선시대 여인들이 혼인할 때 입었던 예복이니 지금 아내가 꺼내놓은 한복도 일종의 원삼 아닌가. 그러니 조선시대 여인이라는 나의 표현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다시 조선시대의 여인 이야기.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여인의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다. 기별명문(棄別明文)이라는 일종의 이혼장에 도장을 찍으면 이혼이 성립되었고 재혼도 허락되었다. 그러나 성종 때, 경국대전에 과부재가금지법이 추가되면서 여인들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암흑기의 여인들은 남편에게 매를 맞아도, 시어머니의 구박이 아무리 자심해도 이혼은커녕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설혹 돌아간다고 해도 환영받지 못했다. 죽어서도 시집귀신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재혼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과부가 되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집귀신듣기에는 조금 섬뜩하지만 그리 나쁜 말은 아니다. 이승에서 한 몸처럼 살았다면 저승에서도 그리함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삼생(三生)의 인연이자 해로동혈(偕老同穴)의 언약 아닌가. 그런데도 황혼이혼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란다.

    얼핏 생각하면, 잘난 여자와 잘난 남자가 만나면 완벽한 결혼이 될 것 같지만 그건 아니란다. 서로 잘났기에 수시로 부딪치고 그 충격으로 쉽게 깨어진단다. 그렇다면 조금쯤 못난 사람과 뭔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결혼하면 어떨까.

    그들은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동한다. 상대의 결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채워줄 줄도 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가엽게 여긴다. “나보다 잘난 사람 만났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텐데라는 측은지심에서 서로 위하고 아낀다. 그게 행복인줄 안다.

 

    아내와 내가 부부된 지 45, 돌아보면 무언가 조금 모자라 보이는 부부의 전형이다. 그래선지 용광로 속의 불처럼 뜨겁기보다는 질화로의 재 속에 묻힌 숯불처럼 은근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다.

    호사스러울 것도, 그렇다고 해서 초라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 가끔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또 가끔은 토라져서 돌아눕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히히거렸던 철부지 같은 나날들. 하지만 그렇게나마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뒤에는 내가, 내 뒤에는 아내가 있다는 단순한 믿음 때문이었다.

    세상의 어느 여인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마다할까. 공주처럼 떠받들어줄 능력 있는 남편이 왜 싫을까. 그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마음에 쌓인 앙금이 왜 없을까마는 그런저런 서운함 모두 내려놓은 채,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날에 입었던 옷을 입고 먼 길 떠나리라 마음먹은 아내는 시집귀신이 되겠노라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아내의 마음이 그렇다면 나 역시 결혼할 때 입었던 양복을 입고 떠나야함이 마땅할 터. 하지만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를 어쩐담. (화백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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