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에르바하(Feuerbach, Ludwig, 1804∼1872)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 1828년 에어랑겐 대학 강사. 칸트가 죽은 해인 1804년 7월 28일 남부 독일의 소도시 란트슈트(Landshut)에서 법학자이며 형법학 교수였던 안셀름 포이에르바하의 4남으로 태어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는 헤겔(Hegel)과 마르크스(Marx)를 이어 주는 헤겔 좌파에 속하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그는 독일 관념론을 벗어나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려 하였으므로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종래의 철학체계를 무시하는 산문적인 서술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성의 무한성, 통일성, 보편성」(1828)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사강사 생활을 하면서 익명으로 펴낸 최초의 저서가 『죽음과 불멸성에 관한 고찰』(1830)이었다. 불멸성이란 개인의 영혼이 불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유적본질이 불멸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한 이 저서 속에 벌써 그의 반종교적인 성향이 나타났고 그것은 그의 교수생활을 포기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주로 18세기 철학사에 관한 저술을 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피에르 베일』(Pierre Bayle, 1838)이었다. 18세기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 베일의 서술을 통하여 그는 헤겔의 관념론 철학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동시에 자신의 유물론적인 철학을 정립해 갔다. 1841년에 나온 『기독교의 본질』은 그를 갑자기 유명한 종교비판가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그는 인간이 신을 창조하는 과정을 심리적, 역사적으로 밝히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은 상상력, 소원, 이기심을 동원하여 신이라는 이상적인 존재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위로를 받으려 한다. 결국 신이란 인간의 소원이 존재로 대상화된 것이며 환상 속에서 만족되는 인간의 행복욕에 불과하다고 그는 결론짓는다. 뒤에 나온 『종교의 본질에 대한 강의』(1851)에는 종교비판이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더욱 철저하게 지탱되고 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의 종교비판은 스스로의 철학을 내세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그의 본래적인 목표는 헤겔의 관념론 철학을 철저하게 비판한 후에 스스로의 '미래철학'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헤겔의 절대정신이 일종의 합리화된 신에 불과했다. 헤겔의 절대정신 대신에 감성적인 인간을 대치시키고 동시에 인간의 본질을 유적본질로 파악하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미래철학의 근본원칙』(1843), 『철학의 개혁을 위한 예비명제』(1841) 등이 여기에 속하는 주요한 저술이며 그것은 청년 마르크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도 인간의 본질을 아직 감성적인 직관 속에서 파악했을 뿐 생산하고 실천하는 사회활동 속에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르크스는『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엥겔스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에서 포이에르바하의 한계를 지적한다. 포이에르바하는 감성적인 유물론자 혹은 인간학적 유물론자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종교와 사변철학에 짓눌린 인간의 감성을 해방시켜 인간 본래의 것을 인간에게 되돌려 주려는,즉 인간을 그의 소외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휴머니즘의 철학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생각을 사로잡은 것은 첫 번째가 신이었고 두 번째가 이성이었으며 마지막이 인간이었다. 그의 철학은 19세기 초 진보적인 독일 시민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정치적으로 민주적인 개혁을 염원했지만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하여 실천적인 정치활동 속에 뛰어들지 않은 채 조용히 물러앉아 저술에 전념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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