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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이해

원 청화에 관해

작성자유니갤러리|작성시간08.08.12|조회수3,656 목록 댓글 0

원 청화에 관해
 

<연구가치를 지닌 원청화>
1) 황족이 사용한 제품과 상사자賞賜瓷(상으로 하사한 자기). 대부분의 대형 정품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기물은 당시에 매매가 허락되지 않았으며, 생산되자마자 징발되어 서아시아로 원정간 징기스칸의 동생 욱열올旭烈兀과 그 휘하 귀족을 포함한 황족들에게 하사되었다. 그 당시에는 청화자기의 소성 성공율이 극히 낮아 원가가 매우 높아 상품으로 유통될 수가 없었다. 원가를 따지지 않는 황가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물은 중국과 해외에서 모두 발견된다.

2) 관부의 주문자기. 각급 관부에서 수요에 따라 주문제작한 기물로 중국내에서 사용되었다.

3) 묘당廟堂의 공물자기. 묘당에서 주문제작한 기물과 민간에서 주문제작하여 묘당에 바친 기물을 포괄하며, 모두 중국에 보존되어 왔었다. 영국 데이비드기금의 청화운룡상이병은 바로 민간에서 주문제작하여 묘당에 바친 기물이다. 원래 중국에 있었으나, 민국시기에 모두 모조품으로 간주되어 영국으로 유출되었다.

4) 상품자기. 민간의 정품자기와 중하품자기로 나누어지며 초기에는 수출하지 못하고 대부분 내수판매되었다. 원대 말기에 일부분이 수출되고 일부분은 수출과정에서 중국내에 남겨졌다. 그 가운데 정품은 연구가치가 충분하지만, 중하품은 연구가치가 적다.

<원대 청화자기의 생산지>
원대 청화자기 생산의 중심지는 경덕진으로 대부분의 정품은 여기서 생산되었다. 경덕진에서 청화자기를 생산한 가마는 매우 많아, 그 당시 남하南河의 양 기슭과 동하東河 상류의 호전湖田, 남산南山, 유가만柳家灣, 내외요촌內外窯村, 요령窯嶺, 왕가오王家塢 등 그리고 경덕진 시내의 주산로珠山路, 관음각觀音閣, 낙마교落馬橋, 설가오薛家塢 등지에서 모두 청화자기를 생산하였다. 경덕진 이외의 길주吉州 임강臨江, 낙평樂平, 무주撫州, 백사白舍 등의 요지가 강서성의 각지에 두루 분포되어 있었으며, 운남의 옥계玉溪와 하북의 자주磁州 및 하남과 강소와 절강 등에서 청화자기와 기타 채색자기를 생산하였다.

지역마다 사용 원료가 상이하고 생산된 청화자기의 회화기법과 제작수준에 차이가 존재하였다. 일반적으로 경덕진에서 정품의 대형기물을 많이 제작하였으며, 기타 요지에서는 생산조건과 원료의 차이로 말미암아 민간용품을 많이 생산하였고, 일부 지역에서 대형 정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원대에 청화자기를 제작한 요지는 매우 많았으므로 생산량도 적지 않았다. 정품 대형기물을 경덕진의 각 요지에서 대부분 생산하였으며, 기타 요지에서는 생산량이 적었다. 민간용의 정품자기와 중하품자기는 각지의 요지에서 일정량을 생산하였다.

<원대 초기 청화자기의 특징>
- 경덕진의 초기 원청화자기는 송대의 유풍을 띠고 있다. 회화문양이 비교적 거칠며 관부에서 아직 중시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 대부분 소형의 민간용품이다.

- 송대 청백자와 마찬가지로 배체가 보편적으로 얇고 가벼웠다.

- 청백자유를 사용하였으며, 청백색이 균일하지 않고 유면이 두터우면서 윤택하였다.

- 대부분 중국산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발색이 어두운 회색이며, 철수반鐵銹斑이 없다. 수입 소마리청화를 사용한 기물을 비교적 적었다.

- 회화기법은 철선묘鐵線描 위주이다.
이 시기에는 원청화자기가 아직 보편적으로 중시를 받지 못하였으며, 소수의 요지에서 가끔 제작하였다. 국내 수요에 맞추어 생산되었다.

<원대 중기 원청화자기의 특징>

연우延佑시기(1314-1320)에 이르러 청화자기의 생산은 수량과 규모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출토물을 보면 당시의 청화자기는 이미 성숙되어 있었다.

1) 정품 중소형 기물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고족배, 옥호춘병, 집호執壺, 이호梨壺, 완, 반, 소관小罐 등의 여러 유형이 제작되었다. 내몽고 집녕로集寧路 연우시기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완, 반, 고족배 등은 모두 이미 정품에 속하였다.

2) 태골은 여전히 얇고 가벼웠으며 마창토麻倉土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태토의 색이 비교적 희고 미미하게 청회색을 띠었으며, 기공氣孔이 존재하였다. 확대경으로 관찰하면 기물에서 과립상顆粒狀이 선명하게 관찰된다. 태체의 도련淘煉이 약간 부족하고 마감처리가 정밀하지 못하여, 경우에 따라 기물의 표면에 입자형태의 돌기가 존재하기도 하며 포말처럼 부풀어오른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3) 유약원료는 이미 다양화되기 시작하였다.
- 청백자유가 계속 사용되었으며 일정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 경덕진에서 오로지 청화를 소성하기 위한 백유를 새로 발명하였다. 이 유약은 유과釉果의 비율을 높이고 유회釉灰의 비율을 감소시켜 반짝이고 투명하며 전체적으로 백도를 제고시켰다. 미미하게 청색을 띠고 있으며, 유약이 뭉친 부위에는 청색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 추부유청화. 추부백유는 추부에서 주문제작한 자기에 사용하도록 지정된 유약이다. 이 유약으로 소성한 청화자기는 비교적 적으며, 비교적 고급품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리홍이 다수를 차지하며, 청화가 그 다음이다. 추부유를 사용한 청화자기나 유리홍은 품질이 매우 높았다. 추부유는 난백유라고도 하며 청색을 함유한 백유로 빛깔이 윤택하여 오리알 껍질과 같은 청백색을 띤다. 초기의 난백유는 철분함량이 비교적 높아 유색에 청색의 기운이 비교적 강하였으나, 말기의 난백유는 철분함량이 감소하여 유색이 희고 순정하며 윤택하였다.
- 원대에도 홍유청화자, 남유청화자, 철유청화자 등과 같은 색지色地 청화자기를 소성하였다. 완, 반, 고족배의 일부는 색유로 외부를 장식하고 청화로 내부에 문양을 그렸다. 병, 관, 호 등의 일부는 색유로 바탕색을 칠하고 개광開光내에 청화로 문양을 그렸다.

4) 원중기의 회화풍격은 철선묘를 위주로 하여 평도平塗기법으로 보충하였으므로 말기 지정형至正型의 평도화풍과 선명한 차이가 있다. 철선묘 화풍은 선이 유창하고 날카로우며 자연스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어 화공의 뛰어난 능력을 드러내주고 있다.

5) 원중기의 청화자기에 사용된 청화안료는 다양하였다. 중국산, 소마리청, 혼합료가 모두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원중기 연우시기 청화의 발색도 다양하다. 발색이 염려艶麗하고 흑반黑斑이 뭉쳐있는 것, 발색이 어두운 회색으로 흑반이 없는 것. 내몽고 집녕로에서 출토된 연우형청화자기에 사용된 청화안료는 소마리청이며, 동시에 출토된 각종 채색자기에는 먹으로 ‘약藥', ‘왕택약포王宅藥鋪' 등의 글자가 써 있어 이들이 현지의 대상가에서 사용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원청화는 국내수요에 적응하여 생산되었으며, 무역의 발전은 원청화의 고급단계로의 발전을 촉진하였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이 시기의 제품은 여전히 민간수요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이미 원대사회의 중상층으로 파고들어 갔다. 이러한 발전으로 원대 통치계층이 마침내 청화자기를 중시하기 시작하였다.

<원대 말기 청화자기의 특징>
원대 말기의 청화자기는 지정형청화자기를 가리킨다. 지정시기(1341-1368)에 청화의 제작은 절정에 도달하여, 수많은 정품 대형기물이 제작되었다.

형태면에서 이 시기에는 대형, 중형, 소형 기물이 모두 제작되었으며, 특히 정품 대형기물이 급격히 증가하여 이미 지정형자기의 대표가 되었다.

태토의 도련이 이미 매우 정밀하여 정품자기의 태골胎骨은 연우형자기의 태골에 비하여 세밀하고 과립상이 감소하였으며, 이에 따라 태토가 순정하지 못하여 기물에 불룩 솟아난 포말형상도 감소하였다. 경덕진에서는 수입 소마리청을 사용하여 문양을 그리는 것이 주류로 되었다.

연우형청화와 비교하여 지정형청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회화의 제재가 크게 증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화기법도 극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 원청화 대형기물의 회화특징은 다음과 같다 :

- 기물 전체에 문양이 가득하며,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7-9층의 문양장식이 많이 나타나며, 경우에 따라 열 몇 층으로 나누어지기도 하였다.

- 회화문양에 전통적인 불교와 도교의 문양장식 및 중국의 역사고사가 두드러지게 사용되었다. 일부 학자들이 원청화는 이슬람교도가 주문제작하였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이슬람교도의 도공이 제작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모두 이러한 점을 무시한 억측이다. 이슬람교는 일신교一神敎로서 절대로 다신교多神敎의 도안을 주문제작할 수가 없다. 송죽매의 세한삼우는 역대로 중국회화의 전통도안이다. 전지화훼도안은 본래 서장불교의 도안이며, 지당원앙池塘鴛鴦은 불교도안이다. 원청화의 용은 중국의 전통도안이지만, 이슬람교에서는 도리어 마귀로 간주되므로, 이슬람교도가 교의에 위배되는 이러한 도안을 주문제작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따라서 이 시기에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교 지역으로 보내어진 원청화는 그 지역 몽고귀족의 사용품이 분명하다.

- 지정형원청화 대형기물의 회화공예와 예술풍격은 전무후무할 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도달하기 어려웠다. 대기大氣, 호방豪放, 소쇄瀟灑, 표일飄逸한 멋은 화공들의 비범한 능력을 드러내주고 있다.

- 지정형청화자기의 대형기물은 기본적으로 몽고황족과 관부에서 주문제작한 기물로 대부분 황부와 관부에서 사용하였으며, 일부는 불교와 도교의 사원에 사용되었다. 소수는 정벌을 떠난 귀족을 따라 세계각지로 흘러갔다. 민간용의 중소형기물은 민간의 중상계층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 홍무자기와 유사한 회화가 정밀하고 발색이 어두운 회색을 띠는 기물이 존재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민간용품이다.

원대 말엽 정치형세의 혼란으로 농민군이 강남에서 봉기하여 계속되는 전란에 교통이 두절되었으므로 소마리청의 운반이 영향을 받았다. 또한 원말 관부의 부량자국浮梁瓷局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고 농민군이 경덕진을 점령하여 자기의 생산을 통제하였다. 이에 따라 경덕진의 소마리청이 이미 바닥나서 부득이 중국산청화를 혼합하여 문양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성온도가 상이하여 어두운 회색을 띠는 청화자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 시기 청화자기의 문양은 지정형자기와 마찬가지로 정교하며 심지어 더욱 뛰어났다. 그러나 청화발색은 회색으로 치우치고 철수반도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명 홍무시기까지 이어졌다. 원말기의 청화발색과 홍무의 회색청화는 동일하므로 구분하기가 쉽지않다.

<원청화 기형의 특징>

원청화의 기형은 매우 다양하다. 전대의 기형을 계승한 형태 이외에 또 수많은 기형을 창조하였다. 일부 형태는 심지어 후대에 실전되어 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발견되기도 하였다. 상견 기형은 고경대관高頸大罐, 수이함환관獸耳銜環罐, 이료이관璃龍耳罐, 단경왜체관短頸矮體罐, 팔릉형개관八?形蓋罐, 고형와족개관鼓形?足蓋罐, 쌍이관?耳罐, 매병梅甁, 옥호춘병玉?春甁, 육릉병六?甁, 팔릉병八?甁, 화고식병花孤式甁, 사계편병四系扁甁, 상구상이병?口象耳甁, 방극이병方戟耳甁, S이병S耳甁, 호로식병葫蘆式甁, 편병扁甁, 탑식개병塔式蓋甁, 산두병蒜頭甁, 연좌매병連座梅甁, 연좌장경병連座長頸甁, 이형소호梨型小壺, 방형편호方形扁壺, 봉두류편호鳳頭流扁壺, 환체형집호環體形執壺, 곡병집호曲柄執壺, 편체개광S형연편집호扁體?光S形連片執壺, 치?, 고족배高足杯, 잔탁盞托, 군지軍持, 고족완高足碗, 치구완侈口碗, 염구완斂口碗, 화구식완花口式碗, 대해완大海碗, 치구절연대반侈口折沿大盤, 절연릉화구반折沿菱花口盤, 절요완折腰碗, 선형수우船形水盂, 필가식수우筆架式水盂, 원앙수주鴛鴦水注, 불상佛像, 관음觀音, 기좌器座 등이 있다.

원대의 청화채자靑花彩瓷는 한 동안 공백으로 남았다가 많은 종류가 새로 발견되어 비로소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특수한 기형을 보게 되면 맹목적으로 부정하지 말고 태토, 유약, 청화안료, 수태공예 등을 종합하여 모두 맞으면 진품으로 인정해야 한다. 만약 여러 정황이 확실하지 않으면 기형을 부정하여 실수하지 않도록 한다.

<원청화의 태토를 이원배방二元配方한 이유?>
송대이전 경덕진의 도자제작에서 태토는 자석瓷石만을 사용하였으므로, 소성온도가 비교적 낮고 대형기물의 제작하려면 변형되기 쉬웠다. 초기 경덕진 도자기에 소형기물이 많았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남송후기에서 원대초기에 마촌麻村에서 도자제작용 점토(즉 마창토麻倉土, 현재 고령토라고 통칭)를 발견하여 자석에 20%정도의 고령토를 혼합하여 성형하였다. 그 결과 고온을 견디고 쉽게 변형되지 않으며, 경도가 제고되고 자태의 백도와 투명도가 제고되어 대형 청화자기의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원배방태二元配方胎이다. 일반적으로 고령토를 1/5정도로 하고 자석을 4/5정도로 하는 것이다. 이원배방법의 사용은 경덕진 도자공예의 일대 혁신이었다.

<마창토란 무엇인가?>

마창토는 원대초기에 발견하여 사용한 일종의 자토로서 발견지역인 마창산으로 이름을 붙였다. ‘마촌노갱토麻村老坑土'라고도 한다. 남송이전, 경덕진의 도자제작에는 자석瓷石만을 원료로 사용하였다. 원대에 경덕진 부근의 마창산에서 일종의 점토를 발견하였으며, 이 점토와 자석을 배합하여 배체를 제작하면 태색이 결백할 뿐만 아니라 고온에서 쉽게 변형되지 않으며 투광도도 양호하였다.
당시의 마창토는 원나라 관부에서 통제하여 판매하였다. 판매가는 100근에 은7푼(50근을 정련하면 40근의 도토를 얻었다)이었으므로 마창관토(또는 어토御土)라고도 하였다. 이 흙은 명 만력연간에 고갈되었다. 마창토를 혼합하여 제작한 태토는 결백도가 제고되어 미미하게 청회색을 띠었다. 소성온도에 따라 회청색을 띠는 백색에도 경중의 차이가 나타났다. 소성온도가 높을수록 백도가 높아지고 청회색이 감소하였으며, 소성온도가 낮으면 백도가 조금 더 떨어지고 청회색으로 편중되었다. 이것이 경덕진지역 원청화태토의 특징이다.

<고령토와 마창토의 차이>

고령토는 도자사에서 도자제작에 사용된 태토의 총칭으로 국제적인 공용어이다. 명대 만력이전 이러한 태토는 경덕진 부근의 마창산에서 채굴하였으므로 마창토라고 불렸다. 명 가정연간에 마창산의 점토가 고갈되었다. 경덕진의 도공들은 마창산에서 멀지 않은 고령산에서 마창토와 유사한 점토를 발견하여 도자제작에 사용한 결과 마창토와 동일한 효과를 얻었다. 청대에는 계속하여 이황李黃과 대주大州 등지에서 고령토를 발견하여 건륭가경연간에도 계속하여 채굴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후 1960년대에 고령토의 채굴이 완료되었다. 60년대 이후 경덕진에서 사용하는 점토는 다른 지역에서 채굴한 것으로 과거의 것과 다르다. 상이한 시기에 채굴한 고령토는 각기 특성이 다르다.

<마창토로 제작한 자기의 특색>
- 마창토로 자기를 제작하면 소성온도를 높여도 변형이 잘 되지 않는다.

- 태색이 비교적 희고 미미하게 청회색을 띤다.

- 태골에 기공이 비교적 많으며, 형태는 대부분 편협형偏狹形이다.

- 굽의 표면에 과립상이 선명하게 관찰되며, 명청자기처럼 곱고 매끄럽지 않다.

- 경덕진에서 제작한 원청화에는 마창토가 함유되어 있어 태토의 색은 백색을 기본색으로 하여 미미하게 청회색을 띤다. 청회색은 상황에 따라 농도의 차이를 보이며, 대부분 소성온도의 차이로 인하여 조성된다. 이처럼 미미하게 청회색을 띠는 백색을 여러 종류로 세분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비교적 짙은 것과 비교적 옅은 것의 두 종류로 구분한다.

원청화의 태색에는 순백색이 없으며 심회색深灰色과 토황색土黃色의 두 종류이다. 정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창토를 함유하지 않아 소결도가 낮아 태토의 색이 황색을 띠는 기타 지역의 기물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일부 원청화의 노태처는 토황색을 띠는데, 태토의 본래 색이 아니라 태토에 함유된 철분으로 인한 것으로, 가마에 넣고 소성하기 전에 충분히 건조되지 않아 형성된 미미하고 담담한 요홍이거나, 장기간 황토 등에 접촉되어 형성된 포장이다. 결코 태토의 본래 색이 아니다. 자기 내부의 태토색도 토황색이라고 오해해서는 않된다.

<원청화 노태처露胎處 화석홍의 형성원인>
원청화의 노태처에는 늘 담담하거나 짙은 홍황색紅黃色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가마에서 소성하는 도중에 형성된 것이다. 원청화의 화석홍은 근본적으로 태토에 함유된 철분으로 인하여 형성된 것이다. 원청화의 태토에는 여러 종류의 원소가 함유되어 있으며 일정량의 수분도 함유되어 있다. 가마에 넣어 소성하는 과정에서 수분이 태토의 내부에서 외부를 향해 증발되어 나온다. 이에 따라 태토에 함유된 유리遊離 철원소가 수분의 증발을 따라 태토의 표면으로 떠올라 농도가 다른 홍황색을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화석홍이다. 말하자면 화석홍은 태토 중에 함유된 철분과 태토에 함유된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수분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일부에서 원청화에는 모두 화석홍이 있으며, 화석홍이 없는 기물은 원청화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절대오류이다. 원청화에 나타나는 화석홍은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 대면적 화석홍과 짙은 화석홍

- 비교적 옅은 화석홍

- 노태와 유약의 경계부위에 나타나는 한 줄기 화석홍(일선화석홍一線火石紅)

- 화석홍이 없는 기물
원청화 노태처부위의 정황은 비교적 복잡하므로 화석홍의 유무로만 진가를 판별할 수는 없다.

<화석홍에 농담이 나타나는 이유>

화석홍의 형태는 다향하며, 태토에 함유된 철분과 수분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 배체에 시유하여 비교적 철저하게 건조되어 태토와 유약이 모두 건조된 상황에서 가마에 넣고 소성하면, 노태처에 화석홍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철분이 결집된 깨알 같은 흑점이 나타날 뿐이다.

- 배체의 건조가 불철저하면 태토에 함유된 철분이 수분의 증발을 따라 표면으로 흘러나와 노태표면에 화석홍이 나타난다.

- 배체의 표면은 완전하게 건조되었으나 시유 후에 철저하게 건조되지 못한 상태로 가마에서 소성되면 유약에 함유된 수분으로 인하여 유약과 노태처의 경계면에 농도가 상이한 화성홍의 테두리가 형성된다.

- 일부 원청화의 노태처에 비교적 진한 홍황색의 호태유을 가진 기물이 존재한다. 마치 한 겹 칠하여 소성된 뒤에 뭉친듯한데, 연구가 필요한 항목이다.


<진가眞假 화석홍의 구분>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가화석홍은 외부에서 칠해서 만든 것이다 . 진화석홍은 소성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양자의 구분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최근에 가마에서 소성하는 과정에서 진화석홍의 모조가 이미 시험적으로 성공하였다. 이러한 방고화석홍에 작구처리를 하지 않으면 비교적 선명하여 몇 백년이 지난 오래된 느낌이 없어 비교적 구분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 작구처리를 하면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방고화석홍도 소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 모조한 태유결합처의 화석홍은 노태처와 유약의 결합부위를 따라 한 줄의 홍색선이 나타나므로 매우 혼동된다.

진품 원대 화석홍은 수백년의 침식이 되어 있으며, 노태부위에도 태토의 철분이 모여 형성된 흑색의 깨알 같은 점이 나타나 있다. 새로 모조한 화석홍의 태토는 진품의 태토와 상이하다. 그러므로 새로 화석홍을 모조하더라도 주위의 노태처에 흑색의 깨알 같은 점은 나타나지 않고 비교적 깨끗하다. 이러한 현상은 방고화석홍과 진화석홍의 감별에 단서를 제공해 준다. 방고와 감별은 서로 투쟁하면서 존재한다. 대책을 설명하면 모조자도 이에 따라 발전하므로, 끊임없이 감별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원청화 성형기법의 특징>
- 원청화 가운데 관罐과 병甁 종류의 배체는 대부분 4단3접이며, 5단4접을 하기도 했다. 접합부위는 굽 부위, 복부, 목 부위에 존재한다. 니장泥漿으로 접합부위를 접착시켰으므로 접합부위에서 니장이 흘러나온 흔적을 관찰할 수 있다.

- 원청화 배체의 마감처리는 비교적 양호하다. 경우에 따라 비스듬히 관찰해야 비로소 접합부위를 감지할 수 있다. 기물의 내부는 일반적으로 다듬지 않아 접합부위에서 밀려나온 니장의 흔적이 관찰된다. 일부 기물은 접합부위에 밀려나온 니장을 한 번 닦아내기만 하였다.

- 원청화의 굽은 기본적으로 평평한 굽으로 만든 다음에 굽의 면을 파내고 그 다음에 깎아내었으며, 깊은 굽과 얕은 굽의 두 종류가 있다. 칼로 깎아낼 때에는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중심을 향해 역시계방향으로 깎아 들어가, 나선형의 절삭흔이 나타나며, 중심에서 칼을 거두어들여 대부분의 기물에 선명하게 수도흔收刀痕(절삭을 마치고 칼을 거두어들이며 남은 흔적)이 남아있다. 당연히 외손잡이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가 된다. 중심의 수도흔은 수도법收刀法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평평하거나 돌기가 남아있거나 한다.

- 원대 말기에는 초보적으로 저족을 절삭한 다음에 평평하게 깎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일부 기물의 저부에 나선흔螺旋痕과 도도흔跳刀痕이 모두 나타난다.

- 원청화에는 굽을 깎아내지 않은 평저平底기물이 있으며, 대형기물과 소형기물에 모두 존재한다. 굽을 파내지 않은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현재 보이는 평저기물은 절대다수가 굽의 바깥둘레를 비스듬히 한 차례 깎아내었다. 가끔 비스듬히 깎지 않은 기물도 있으나 굽을 파내는 과정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 원청화의 관류는 대부분 평저천권족平底淺圈足으로 권족圈足이 비교적 넓고 비교적 높이가 낮으며, 접지면(足底)는 평평하고 권족의 양면을 비스듬히 깎아내었다. 후기에는 족저를 비교적 매끄럽게 깎아내어 명초의 특징과 유사하였다.

- 원청화 매병은 대부분 평저천족권으로 나선형의 절삭흔이 나타나며 말기에는 굽을 파서 깎아낸 흔적이 나타난다.

- 옥호춘병과 여러 종류의 변형된 형태의 병의 권족은 비교적 높이가 높으며 대부분 나팔형태로 바닥은 평평하게 깎아내었다. 일부 기물의 권족은 높고 깊다.

? 반류기물의 권족은 낮고 얕으며 안팎으로 비스듬히 깎아내어 접지면이 비교적 좁으며 대부분 시유되어 있지 않다. 일부 소반小盤은 평저平底이며 일부 대반大盤은 평저에 지족支足이 덧붙어 있다.

? 완 종류의 권족은 조금 높으며 평저로 양면도각兩面倒角이며 시유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이 있다.

<원청화에 사용된 유약의 종류>
현재까지 발견된 원청화에 근거하면, 시유품종은 다양하며 비교적 복잡하다. 청백자유(영청유), 청화백유, 난백유卵白釉, 남유, 홍유 등의 여러 종류가 있다. 일부 지방요에서 제작한 원청화중에는 회청유灰靑釉도 사용되었다. 원대 경덕진에서 비교적 많이 사용된 것은 청화백유이다. 이 유약은 원래 청백자유의 기초 위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그 가운데 유회釉灰의 비례(약 10% 정도)가 감소되고 유과釉果의 비율이 증가되었으므로 이 유약에는 A 2 O 3  의 성분이 증가하고 CaO의 성분이 감소되어 있다.

- 청백자유 : 영청유라고도 하며 본래 송대의 청백자유를 계승한 것으로 원대 초중기의 제품에 많이 사용되었다. 원대에는 유약원료에 함유된 유회의 비례가 각기 달라서 유면에 나타나는 청백색의 정도도 변화가 있었지만, 모두 청백자유계열에 속하는 것이다.

- 원대 중기이후, 오로지 청화자기를 소성하기 위한 백유白釉가 발명되었으며, 이 유약은 전체가 결백潔白하지만 유약이 뭉친 부위는 도리어 청색을 띤다. 투명도가 좋을 뿐만 아니라 결백하고 반짝거려 청화와 어우러져서 더욱 아름다웠다.

- 난백유. 추부유樞府釉라고도 한다. 유색은 혼탁한 것과 맑고 투명한 것의 두 종류이며, 본래 원대 추밀원에서 주문제작한 자기에 사용하던 것으로 청화자기에도 가끔 사용되었다. 특히 원대의 유리홍과 민간용품에 많이 사용되었다.

- 회청유. 이 부류의 유약은 품질이 떨어지며, 일반적으로 민간용품이나 중하품에 사용되었다. 운남의 옥계요玉溪窯와 건수요建水窯 등과 같은 지방 요에서 비교적 많이 사용하였다. 이곳의 기물은 태토가 거칠고 유색은 회색으로 품질이 비교적 떨어진다.

- 색유色釉. 원대청화에는 남유, 홍유, 장유醬釉 등의 색유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경우에 따라 색유로 만든 개광開光 부위에 청화로 문양을 그렸으며, 공작록유孔雀綠釉와 송석남유松石藍釉 등으로 기물 전체를 칠하여 문양을 그린 것도 있다.

<원청화의 시유법施釉法>
원청화의 시유법은 첨유沾釉(담그기), 임유淋釉(끼얹기), 쇄유刷釉(칠하기), 탕유蕩釉(흔들기)로 나누어진다. 소형기물은 한 손으로 침유하였으며, 중대형 기물은 두 손으로 침유하였다. 그 다음에 구연부를 임유법으로 보충하여 시유하였다. 특대형 기물의 경우에는 완전히 임유법이나 쇄유법을 사용하였다. 원대 관과 병 등의 내부는 단독으로 시유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에 첨유법으로 시유할 때 기물의 내부로 흘러 들어간 유액을 몇 차례 뒤흔들어 칠하고 끝마쳤다. 그러므로 기물 내부의 유면은 매우 불균일하며 심지어 시유되지 않은 넓은 부분이 존재하기도 한다.

원대의 이러한 시유법은 원대자기의 특징을 형성하였다. 일반적으로 원대자기의 유층釉層은 두터우며 유면釉面이 균일하지 않고 축유점縮釉点과 침안針眼(종안棕眼)이 자주 발생하였다. 중대형 관과 병 종류의 구연부에는 유액이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있으며, 병의 내부에는 대부분 유액이 칠해지지 않았고, 관의 내부는 대부분 유액이 없거나 반 정도만 칠해져 있으며 선명한 탕유흔적이 남아있다. 관과 병의 굽 면에는 대부분 유약이 없으며, 손가락자국이 있기도 한다. 이러한 자국은 시유할 때 손이 닿았던 부분으로 고의로 만든 것은 아니다.

원청화의 굽은 모두 시유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원대의 옥호춘병은 특수한 예로서 대부분 기물의 저부에 시유하여 권족만을 노태로 남겨두었으며, 시유하지 않은 기물이 오히려 소수이다. 일부 기물은 전체를 첨유법으로 시유한 뒤에 권족의 유액을 닦아내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원청화 유면釉面의 특징>
광택이라는 면에서, 원청화의 유면에는 깊게 가라앉은 광택이 반사되어 나온다. 직관적으로 유층이 비교적 두터우며 얇은 유리막이 한 겹 씌워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광택은 내부에서 반사되어 나오며 부드러워 눈을 자극하지 않는다. 새로 모조한 원청화에 작구처리作舊處理를 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유면의 화기火氣가 비교적 강하여 표면에 적광賊光이 나타난다. 작구처리를 거치면 화기와 적광은 사라지지만 오래된 기물에 존재해야 할 보광寶光은 없다. 산으로 작구처리한 유면은 매우 혼탁하여 죽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진품의 윤택한 반짝거림과는 완전히 다르다.

- 전세품의 경우 일반적으로 옥질감玉質感이 강하고 윤택하며 투명하지 않다. 빙렬이 존재하기도 한다. 출토된 기물은 깨끗하게 세척하면 일반적으로 유리질감이 강렬하다. 유면의 세척이 불철저한 표면에는 한 겹 안개와 같은 막이 흔적으로 남아 매우 광택이 흐릿하지만, 이러한 흔적을 제거하면 비교적 반짝거리는 유리광택이 나타난다. 세척하지 않고 장시간 문지르면 이러한 흔적도 제거되며 닦을수록 본래의 반짝이는 광택이 나타나게 된다.

- 진품의 유면에는 일반적으로 귤피문橘皮紋과 종안 및 축유백반縮釉白斑이 존재한다.

- 유약 내부의 기포는 왕왕 밀집된 소기포의 바깥에 커다란 기포가 존재한다. 예외적으로 유약층이 비교적 얇은 원청화 기물이 있어 마치 유약이 태토에 파고들어 한 덩이가 된 듯하여 광택이 비교적 부드러우면서 눈을 자극하지 않는 것도 있다.

<사용흔적을 통한 진위감별>
원청화의 전세품은 극히 적으므로 사용흔적이 나타나는 원청화는 매우 적다. 원청화의 대부부은 출토품이다. 가마터에서 출토된 기물은 사용흔적이 거의 없으며, 무덤에서 출토된 기물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절대다수가 소성하여 바로 부장한 기물이므로 사용흔적이 없다.

토심土沁, 해로흔海撈痕(바다에서 건져 올린 흔적), 사용흔적은 모두 외부요인으로 기물의 진가를 결정할 수 없다. 기물의 기형, 유면, 태토, 청화안료, 화풍, 공예기법을 보고 진가를 판별해야 한다. 토심, 해로흔, 사용흔적을 관찰할 때 이러한 흔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는지 인위적으로 모조한 것인지를 먼저 파악한 다음에 진위를 판별해야 한다.

현재 이미 해로흔을 모조한 방품이 출현하였다 . 새로 만든 기물을 바다 속에 반년이상 담가놓으면 진품의 해로흔적과 유사한 피각이 형성된다. 해로흔적이 있다고 진품으로 단정하면 바로 실수하게 된다. 겉 모습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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