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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채鬪彩는 유하청화釉下靑花와 유상채釉上彩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품종이다. 유하釉下에 청화로 문양의 전부 혹은 일부의 윤곽선을 그리고, 유상釉上에 오채五彩로 채색하여 고온과 저온에서 두 차례 소성하며, 청화는 채색할 때에 기타 색채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명明에서 청초淸初에 저술된 문헌에서는 일반적으로 투채를 '오색五色', '오채五彩', '청호간장오색靑花間裝五色'으로 칭하였으므로 도자사에서 투채에 대한 정의는 아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투채에 관한 기록은 청대淸代 강희康熙와 옹정雍正연간의《남요필기南窯筆記》에 처음으로 나타난다.《남요필기南窯筆記》에 따르면 투채는 소성된 청화자기 위에 홍색, 황색, 녹색, 자색 등의 각종 채색안료를 첨가하여 다시 구워 완성한 것이다. 이것은 제작방법면에서 말한 것이다.
'투채鬪彩'라는 글자의 의미에 따라 해석하기도 한다. 유하에 청화로 문양의 윤곽선을 그리고 유상에 채색을 칠하여 유하청화와 유상채가 하나로 결합하여 서로 아름다움을 경쟁한다. '투鬪'의 의미가 함께 모여든다는 것이므로 '투채'라고 하였다.
성화成化의 채색자기彩瓷는 가채加彩하는 방법에 근거하여 '점채點彩', '부채覆彩', '염채染彩', '전채塡彩', '가채加彩' 등으로 구분하며, 여러가지 주장이 존재한다. 현재에는 유하청화와 유상채가 서로 결합되어 있으면서 구륵勾勒해서 색을 칠하여 점철點綴하며 선염渲染하고 부개覆蓋하며 병주倂湊하는 등의 장식기법을 채용한 채색자기를 '투채鬪彩'라고 통칭한다.
투채의 정의에 근거하여 자료를 살펴보면, 투채자기는 선덕시기에 이미 그 시초가 드러났다. 명대의 투채기법은 선덕시기 청화오채자기靑花五彩瓷器의 기초 위에서 발전하여 나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유하에 청화로 문양의 윤곽선을 구륵하는 기법은, 유상釉上에 흑채로 선을 구륵하는 방법이 탄생하기 전에는, 틀림없이 여러 색채를 돋보이게 하는 가장 우수한 색깔이었다.
1984년 서장西藏 일객칙日喀則 살가사薩迦寺에서 발견된 한 쌍의 선덕청화오채宣德靑花五彩 원앙연지용문완鴛鴦蓮池龍紋碗과 1988년 경덕진 주산珠山 어요창에서 출토된 한 점의 선덕청화오채원앙와련문반宣德靑花五彩鴛鴦臥蓮紋盤은 성화투채공예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물은 전채塡彩기법을 운용하였다. 즉 먼저 청화로 윤곽선을 구륵한 다음에 홍채를 칠하여 소성하였다. 이러한 국부를 전채하여 장식하는 공예는 투채의 발명을 성화시기에서 선덕시기로 앞당겼으며, 이들은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투채자기이다.
1.성화투채 투채자기는 성화시기에 이르러 더욱 성숙되어 태토, 유약, 장식, 공예기법, 조형, 품종 등에서 선덕시기를 초월하였다. 성화투채자기는 태토의 품질이 결백하고 세밀하며 유면이 윤택하면서 부드럽고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아한 색채와 특수한 채회彩繪기법이다.
전해내려 오는 성화투채자기를 보면, 색채의 사용이 매우 풍부하며 대부분 투명하면서 선명하게 반짝이는 색으로서, 하나의 기물에 3-4종의 색채를 사용하였으며, 6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한 기물도 있다. 동일한 색채에도 심천深淺과 농담濃淡의 변화가 나타난다.
주로 '피처럼 붉으며 두께가 균일하지 않은 선홍鮮紅, 색이 중후하며 광택이 있는 유홍油紅, 색이 연하며 투명하여 미미하게 녹색을 띠는 아황鵝黃, 미미하게 홍색을 띠는 행황杏黃, 투명하면서 미미하게 황색을 띠는 수록水綠과 엽자록葉子綠 및 산자록山子綠, 색이 진하면서 청색이 번득이는 송록松綠, 색이 조금 투명한 밀랍황蜜蠟黃, 색이 진하며 광택이 없는 택자(ChaZi,아름다운 자색), 색이 침침한 공작람孔雀藍, 투명하며 옅은 취색翠色의 공작람孔雀綠, 색이 어두운 자자(붉은 자색), 익은 포도색으로 투명한 포도자葡萄紫, 색이 진하고 광택이 약한 강황姜黃 등이 있다. 그 가운데 '택자'는 성화투채의 독특한 품종이며, 성화투채에서 지금까지 장식용으로 공작람을 사용한 기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성화투채는 색채의 운용이 자유자재로 영활하여 필요에 따라 한 가지 혹은 서너가지 또는 5,6종을 선택하여 사용했다. 어느 색을 선택하여 사용하더라도 색의 배치가 적절하여 우아함과 농염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처럼 변화가 많은 색채는 성화시기에 도공들이 이미 여러 가지 원료의 선택과 배합에 능숙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성화투채는 채회기법도 독특하였다. 청화로 윤곽선을 구륵하는 기본적인 특징을 제외하고, 서로 다른 시채방법 이용하여 변화가 다양한 장식효과를 산생하였다. 주요 시채방법은 아래와 같다.
점채點彩 : 전체 문양을 주로 유하청화로 구륵하여 선염하고, 유상의 각종 채색은 단지 점철點綴하였을 뿐이다. 화면이 청신하고 아담하여 점철된 색채는 주의를 끌지 않는다.
부채復彩 : 유하청화 혹은 유상채 도안 위에 다시 다른 색채를 덮어 칠한다. 성화투채자기에 그려진 수탉의 깃털 및 복숭아 도안에 항상 이러한 장식수법을 채용하였다.
전채塡彩 : 유하에 청화로 문양의 윤곽선을 구륵하고 유상에서 구륵한 선의 내부에 채색한다. 이러한 장식기법을 채용한 자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 하나는 성화투채자기 가운데 보통의 제품으로 청화로 구륵한 윤곽선의 내부에 각종 색채를 칠하였다. 다른 하나는 성화투채자기 가운데에서 수량이 적으며, 청화로 구륵한 윤곽선 내에 한 가지 녹채綠彩를 칠한 것으로, 북경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 성화투채권지문병成化鬪彩卷枝紋甁은 이러한 시채방법의 전형적인 기물이다.
염채染彩 : 청화로 도안안 윤곽선의 가장자리에 유상채를 이용하여 돋보이도록 하는 기법으로, 이러한 채회기법은 성화투채에서는 유행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보조문양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성화투채해수문개관成化鬪彩海水紋蓋罐의 경우 백색으로 그려진 파도문양의 외측은 옅은 수록색水綠色으로 염채되어 있다.
청화가채靑花加彩 : 공예면에서 점채와 동일한 장식이지만, 문양이 결코 점철로 착색되어 있지 않고, 선염渲染하여 그렸으며 주요색조는 여전히 청화이다.
구체적인 회화문양상에서 성화투채의 문양은 주로 구륵평도(勾勒平塗-윤곽을 그려서 색을 칠함)의 기법을 이용하여 완성하였다. 꽃송이는 정면을 향해서만 그려졌으며, 인물의 복장은 모두 안팎이 없는 단색의 홑옷이다. 바위에 요철감이 없으며 나뭇잎은 음면陰面만 표현되어 음양이 서로 대비되는 구별감이 없고(無陰陽向背之分), 나무는 준법(나무에 입체감을 나타내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서 화면이 고박古朴하고 전아典雅하여 정취가 흘러 넘친다.
성화투채자기는 일부의 대형기물과 소수의 대완大碗을 제외하고 대부분 소형기물로서 조형이 작고 정교하며 수려하다. 주로 개관(蓋罐-뚜껑 달린 단지), 완碗, 배杯, 고족배高足杯, 세洗, 접시, 반盤, 개합蓋盒, 병 등이다. 그 가운데 가장 명성이 높은 것은 고족배, 계항배鷄缸杯, 포도배葡萄杯, 천자관天字罐 등이다.
성화투채자기의 문양은 풍부하고 다채롭다. 인물, 뛰노는 어린이(영희), 원앙연지鴛鴦蓮池, 화조花鳥, 전지련纏枝蓮, 과과瓜菓, 포도, 오공양五供養, 단화團花, 영지, 산석화초山石花草, 단룡團龍, 기룡夔龍, 해수문룡海水紋龍, 해수비마海水飛馬, 자모계子母鷄 등이 있으며 문양이 생동하고 핍진하면서 선이 활발하고 유창하다.
2.성화이후 명대의 투채 성화투재자기의 전세량이 매우 적으며, 명대의 가정과 만력시기에도 매우 진귀하였다. 그리하여 명대의 가정시기부터 모방품이 지속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청대 강희와 옹정 및 건륭시기의 방제품이 가장 핍진하였다.
성화이후 투채자기의 생산은 쇠퇴하여, 정덕正德시기의 투채자기는 수량이 극히 적어 완과 삼족세三足洗 등의 몇 점만이 전해지고, 전지영지문纏枝靈芝紋이 전형적인 문양이다.
가정嘉靖시기에는 청화오채자기가 흥성하여 투채자기는 새로이 번영할 방법이 없었다. 전세품은 정덕시기보다 증가되었지만, 장식면에서 새로운 돌파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성화제품을 모방한 일부의 기물을 제외하고 산두병蒜頭甁, 유정쌍계로乳丁雙系爐, 방형호로병方形葫蘆甁 등이 소량 전해온다. 문양은 성화시기의 문양를 모방한 것을 제외하고 어조연지魚藻蓮池, 절지국折枝菊, 팔괘도八卦圖 등이 유행하였으나 종류가 많지 않다. 색채도 성화시기에 비하여 감소하였으며, 성화시기에 사용된 택자는 이후의 투채자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만력투채는 창조성이 없으며, 전세품은 대부분 성화제품을 모방한 것으로서 문양도 성화제품을 모방하였지만, 태토와 유약의 도세淘洗정도가 상이하고 기물의 제작과 소성의 미세한 변화로 말미암아 , 만력시기의 특징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어린이가 그려진 작은 잔의 경우(영희도소배)에는 언뜻 보면 성화자기와 동일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구연부가 좀 더 벌어지고 전체적인 조형이 성화자기보다 수려하지 않으며 색채도 유려柔麗하지 못함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3.청대의 투채자기 청대의 투채자기는 강희와 옹정 및 건륭시기의 제품이 우수하며, 이 시기의 투채자기는 수량이 많고 품질이 우수하며 공예가 정교하여 성화이후 투채생산의 고조기가 되었다. 전세품은 주로 두 종류로서 하나는 성화제품의 모방품이며, 다른 하나는 청대의 유행제품이다.
강희와 옹정 및 건륭시기에 모방한 성화제품은 문양과 색채면에서 모두 진품과 혼동될 만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 가운데 특히 옹정의 방품이 더욱 핍진하다. 그러나 방품이 아무리 핍진하더라도 시대의 낙인이 찍히게 됨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청대의 관요는 소성기술의 향상으로 말미암아 태토와 유약의 제작이 더욱 정밀해지고 문양의 회화수준이 탁월하며 기형이 더욱 규정해지고 소성온도가 높아서, 방품에는 도리어 성화투채자기가 가진 전아하고 부드러우며 자연스러운 신운이 부족하였다.
1)강희투채 강희시기에 유행한 투채자기는 채회기법은 여전히 성화투채의 풍격을 계승하였으며, 평도구륵平塗勾勒하는 기법을 채용한 문양은 전채塡彩하여 그려진 색채가 미미하게 유하청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외부로 배어나와 있다.
색채의 운용과 구체적인 채색공예면에서 강희시기의 선명한 특징이 존재한다. 명대의 투채는 일반적으로 모두 백자 위에 유하채와 유상채를 조화시켜 완성하였으나, 강희시기에는 이러한 품종의 제품을 계속 생산하는 동시에 한 걸음 나아가 황색 바탕(황지黃地), 쇄람유 바탕(쇄람지灑藍地) 등의 투채자기를 창조하여 강희투채자기는 종류가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다.
기형으로는 반, 완, 잔, 필통, 벽병壁甁 등이 상견되며 가끔 약간 커다란 다각형의 화분, 장복개관長腹蓋罐, 첨식완簽式碗, 방합方盒 등의 제품도 있다. 문양도 강희시기에 유행한 용봉, 연지원앙蓮池鴛鴦, 전지도纏枝桃, 치계모란雉鷄牧丹, 과지봉죽過枝鳳竹, 화훼과수花卉果樹, 휴금방우(携琴訪友-거문고를 들고 친구를 찾아감) 등이 전형적이다.
2)옹정투채 옹정시기는 청대에 투채자기의 제작이 가장 성공한 시기이며, 그 기물은 문양의 배치에서 색채의 배합에 이르기까지 전채塡彩의 공정이 모두 강희시기보다 진보하였다. 그 성취는 주로 두 방면에 반영되어 있다 : 하나, 전통적인 투채의 채색에 금홍색金紅色을 증가시키고 투채에 분채의 선염渲染기법을 융합시켜 색채를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성화투채의 의복과 꽃송이에 음양의 향배가 존재하지 않는 특징을 타파하였다. 둘, 옹정투채의 회화는 이전보다 더욱 정교하고 유상釉上의 각종 색채가 모두 정확하게 문양의 윤곽선 내에 칠해져 있다.
옹정투채의 조형은 매우 풍부하지만, 많이 보이는 기물은 두 종류이다. 그 중의 일부는 성화투채를 모방한 제품으로 천자관, 계항배, 마제배馬蹄杯 등이며, 더욱 수량이 많은 제품은 당시에 유행한 조형으로 반, 완, 잔, 접시, 등좌燈座, 장방화분長方花盆, 제량호提梁壺, 국판형준菊瓣形樽, 천구병, 여의이산두병如意耳蒜頭甁 등이다. 도안으로 화조, 죽竹, 봉鳳, 과과瓜菓, 송록松鹿, 파초, 매작梅雀, 용龍, 암팔선暗八仙 등이 전형적이다.
3)건륭투채 건륭투채자기는 기형의 변화가 다양하고 장식이 화려하면서 복잡하며 색채가 현란한 점이 특징이다. 전해오는 투채자기에는 각종 기형이 모두 존재하며, 특히 높이가 50-70cm에 이르는 대형의 투채자기가 유행하였다.
기물 전체에 투채로 장식한 이외에도 건륭시기의 투채자기는 또 오채, 분채, 법랑채, 흑채 등의 품종이 조합되어 하나의 기물 위에 나타난다. 이처럼 투채와 기타 품종이 조합된 장식방법은 전대미문의 기법이었다. 이외에도 금채金彩는 건륭시기의 투채에 광범위하게 운용되었으며, 금채의 유행은 건륭투채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기형으로는 주로 반, 완, 병, 관, 고족완, 화고, 합 등이 있으며, 건륭관요투채의 문양은 대부분 조정에서 보내준 원고 혹은 황제의 요구에 따라 설계되어 대다수의 문양에는 상서로운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전지연화纏枝蓮花, 쌍어雙魚, 영지, 팔길상과 같은 각종 길상물이 조합된 '길경유여吉慶有餘', '복록장수福祿長壽', '부귀대길富貴大吉'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네 글자의 길상어문양이 유행하였다.
건륭이후 투채자기의 생산은 지속되었으나, 제작공예가 날로 쇠퇴하고 도안이 상투적이며 변화가 결핍되어 있다. <海嘯>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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