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선생의 학덕을 숭모함
여기는 염라국(閻羅國), 하루는 기골이 준수하고 수염이 학과 같은 선비가 저승사자에 이끌려 명부전(冥府殿)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지장보살은 염라대왕을 불러 각 지옥의 대왕들을 소집하라고 일렀고, 그 즉시 염라대왕은 파발을 뛰워 9명의 대왕을 명부전으로 불러 들였다.
지옥대왕들은 서둘러 조복을 차려 입고는 벽제를 치며 염라국에 당도하고,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은 거수 경례를 붙이며 그들을 통과시켰다. 명부전은 대왕들 간의 인사 소리로 잠시 소란스러웠다. 명부전 중앙에 마련된 옥좌에는 눈을 지그시 감은 지장보살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앉아 있고, 손에 든 육환장은 금빛으로 빛을 발했다. 보살의 입에서는 쉼없이 인간의 극락왕생을 비는 독경이 흘러나왔다.
염라대왕: (끌려 온 인간을 살펴보다 흠칙 놀란다) 여봐라, 사자는 급히 염마장(閻魔帳:염라대왕이 죽은 사람의 생전의 죄를 기록해 둔 책)을 가져오고, 이 인간이 어떤 연유로 끌고 왔는지 밝혀라(첫 눈에 보통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사자: (염마장을 염라대왕께 전달 한 후) 예, 저 인간을 말씀드리면 옥황상제께서 여름에 피서를 가시는 조선국 지리산 아래에 사는(천왕봉) 선비로써 이름은 조식(曺植, 1501~1572)이라 합니다. 직업은 백면선생, 이승의 나이는 72세인 줄 아옵니다. 늙고 병들어 데려왔습니다(얼굴이 백지처럼 하얗고 검은 관복을 입은 사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염라대왕: (염마장을 넘기다 이름을 보고는) 흠, 올 때가 된 인간이구나. 그럼 모두 자리를 옮겨 업경대 쪽으로 갑시다. 이승에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살펴본 뒤에 다시 명부전에 모여 죄상을 문초합시다. 여봐라, 염마졸. 저 인간을 업경대로 끌고 가라.
(염마졸이 인간을 일으켜 끌고가며, 그 뒤를 따라 각 지옥대왕들이 명부전을 나간다. 지장보살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연달아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운다. 얼마를 걸으니 흉칙스런 짐승 등 위로 거울이 꽂혀있는 업경대가 나온다. 인간은 무릎이 꿇여지고, 각 대왕들은 의자에 앉아 업경대를 바라본다. 거울에는 조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저승에 끌려오기까지의 일생의 업이 영화처럼 돌아간다. 각 대왕들은 인간의 죄상을 캐내려고 눈을 부릅뜬 채 바라본다. 하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다시 명부전에 모였을 때는 개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 조용하였다.)
염라대왕: 그럼 각 대왕별로 저 인간에 대해 죄상을 말씀해 보십시요. 먼저 초강대왕(初江大王)께서 말씀해 주십시요.
(초강대왕은 연화지옥(煉火地獄)을 다스리는 대왕으로 그곳은 죄인을 지글지글 끓은 가마솥에 집어 넣었다 꺼냈다 하는 지옥으로 가장 가혹한 곳이다. 초강대왕이 머리를 긁적인다.)
초강 대왕: 이 자는 경상도 지리산 기슭[합천]의 외가에서 유년(酉年)에 태어났습니다. 외갓 집은 유년에 태어난 아이는 현인이 될 명당이었습니다. 해산 뒷바라지를 하던 외조부는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자기네 길운이 조씨 집안으로 옮겨갔다며 몹시 아쉬워했습니다. 유년에 태어나 외갓집에 서린 명당의 기운을 도둑질 한 것과 외조부의 마음을 상하게 한 불효의 죄가 큽니다. 풍수에 따르면 3년 이상의 덕을 쌓지 못하면 명당을 차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초강 대왕은 눈에 불을 켜고 조식을 노려보았다.)
염라대왕: 초강대왕, 너무 흥분하지 마시요. 어찌 사람이 자기 뜻대로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모두 남여상열지사의 결과물로 고해의 바다에 던져진 불쌍한 중생이지요. 그러니 태어난 시기와 장소를 가지고 죄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음은 냉동(冷凍)지옥을 다스리는 송제대왕(宋帝大王)께서 말씀해 주시지요.(냉동지옥은 죄인을 얼음통에 집어 넣어 낮이나 밤이나 사지가 오그라지게 하는 지옥이다)
송제 대왕: 이 자는 저승의 권위를 정면으로 도전한 자로 엄히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다섯 살 때까지 외가에서 자란 이 자는 아버지가 장원급제하여 벼슬 길에 오르자, 한양으로 올라와 부친 아래서 글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홉 살이 되었을 때 큰 병을 앓았습니다. 불쌍하지만 저승 사자가 데려 오려고 하였습니다. 몸져누워 모두가 근심에 싸여 있는데, 이 자는 겁도 없이 말했습니다.
“하늘이 세상에 보낸 것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니 죽일 리가 없습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말입니다. 이 말은 저승의 권위를 모독한 불경죄에 해당함으로 냉동 지옥에 보내져야 합니다.
염라대왕: 비록 이 자가 저승을 모독한 것은 분명하나, 어린 애입니다. 악의보다는 오히려 효심이 깊어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안 그럽습니까 지장보살님?
지장보살: 그렇습니다. 이 자는 일생을 티없이 산 선비의 귀감이요, 또 ‘처사(處士)’를 최고의 영광으로 받아들였던 사람입니다. (그 때, 검술(劍術)지옥을 다스리는 오관대왕(悟官大王)이 벌떡 일어섰다. 그는 죄인을 창과 검이 촘촘히 박혀있는 땅바닥에 알몸뚱이로 내던져 죽도록 고통을 받게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다란 밧줄 끝에 죄인을 매달고 그 아래에는 수 많은 아귀들이 혀를 날름거리게 함으로써 죄인의 간장을 바싹바싹 타게 만드는 지옥의 대왕이다)
오관대왕: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의 무덤에 있는 묘비를 보면, ‘徵士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文貞公南冥曺先生之墓(징사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문정공남명조선생지묘)’라 쓰여 있어 벼슬을 탐했던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벌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염라대왕: 허허, 고정하십시요. 이 자는 이승에서 벼슬이 없던 선비였으나, 광해군 7년(1615)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文貞)의 시호가 내려진 사람입니다. 묘비명(墓碑銘)은 후손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 자의 마음에는 속태가 낀 ‘영의정’이란 벼슬명을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조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관대왕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읍조렸다) 자, 그럼 변성대왕(變成大王)께서 생전에 이 자의 언행이 바르지 못했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였는지 말해보세요? (변성대왕은 언행이 나쁘거나 거짓말을 한 죄인을 잡아다가 죄인의 혀를 길게 뽑아 질질 끌고 다니거나, 쇠를 매달아 놓는 발설(拔舌)지옥의 대왕이다)
변성대왕: 이 자는 마음이 올 곧아 물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밤을 새우며 몸과 마음을 수양하였고, 칼에는, ‘안으로 밝은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끊는 것은 의(義)이다.’ 라는 글을 새겨 욕심을 깨끗이 없앤 자입니다. 따라서 맑은 선비 정신만을 가다듬은 자로 뭇 인간의 귀감일 뿐입니다. 또한 쇠방울을 항상 차고 다니며 정신을 일깨웠는데, 특별히 ‘성성자(惺惺子)’라 이름하고는 ‘이 물건의 맑은 소리가 깨우침을 주니 사람들이 모두 차면 좋겠다. 보배로 알고 허리에 차면 조금만 움직여도 소리로서 경계하고 꾸짖으니 실로 공경하고 두려워할 만 하다. 이 방울의 죄를 얻지 말라.’하며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특별히 죄를 물을 것이 없습니다.
염라대왕: 나 또한 업경대로 이 자의 행실을 지켜보았으나, 인간으로서 이 자처럼 평생을 고고한 기풍으로 실천 유학을 역설한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럼 태산대왕(泰山大王)은 어떻습니까? (태산대왕은 생전에 독사처럼 악독한 짓을 한 죄인을 잡아다가 수천 마리의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토굴 속에서 독사들에게 마구 물리는 독사(毒蛇)지옥의 대왕이다)
태산대왕: 이 자는 백성의 어버이되는 임금을 능욕한 대 역죄룰 범했음으로 독사지옥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이봐라, 염마졸. 저 자를 빨리 독사지옥으로 끌고 가지 못할까? (그 때 진광(秦廣)대왕이 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 앞을 가로 막는다. 그는 염라대왕의 유죄 판결을 받고 넘어온 죄인들을 어느 지옥에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대왕으로 그의 결정에 따라 각 죄인들은 해당지옥으로 보내진다)
진광대왕: 태산대왕, 무슨 무례한 짓이요. 죄인을 어느 지옥으로 보낼까를 결정하는 것은 내 고유의 권한이요. 나를 무시하는 거요? ( 그 말에 태산대왕이 급히 사과를 하며 자리로 돌아간다)
태산대왕: 저 자는 어명까지 거역한 대역죄를 지었습니다. 학자로 이름이 나자, 임금은 헌릉참봉에 임명하였으나 벼슬길로 나가지는 않고 도리어 글을 올려 당시 조정의 그릇됨을 준엄하게 꾸짖는 무례함을 범했습니다. 때로는 벼슬도 없는 신분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국정의 잘못을 극렬하게 비판했으니 엄벌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염라대왕: 그것은 학문과 명망이 높은 선비로서 세상을 바로 세우는 기개일 수도 있습니다. 초지일관 선비의 자세를 한 올도 흩트리지 않은 점은 우리 모두도 배워야할 곧은 기상입니다. 그럼 도시대왕(都市大王)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시대왕은 철상(鐵床)지옥을 다스리는 대왕으로, 이곳은 품행이 좋지 못한 여자만이 끌려 오며, 이곳에 오면 누구든지 알몸뚱이로 있어야 하는데, 그 몸이 더럽고 추하기가 이를 데 없다)
도시대왕: 업경대를 보건데 여자와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특히 단성현감(丹城縣監)으로 부르자, ‘대비(大妃)는 과부에 불과하고 임금은 외로운 아들에 불과해 백가지 재변이 일고 백성의 인심이 떠났다.’하며 당시 외척의 횡포를 위태로운 국가 형세를 성토한 의로움을 보였습니다. 죽음에 임박해서도 첩이 방으로 들어가 영결하기를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을 만큼 장부다웠습니다. 오히려 그의 분별심을 탓할 지경입니다.
염라대왕: 그렇다면 평등대왕(平等大王)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평등대왕은 생전에 남의 돈을 떼어 먹었거나, 사기·공갈 등으로 순진한 사람을 괴롭힌 죄인을 쇠꼬챙이로 콕콕 찔러대며 사방에서 괴롭히는 거철(拒轍)지옥을 다스린다)
평등대왕: 이 자는 말년에 지리산 덕천동에 ‘산천재(山天齋)’라는 강학처를 짖고 학문에 열중하며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정구(鄭逑)·최영경(崔永慶)·오건(吳健) 등의 찾아와 글을 배워 정치·학술계를 움직이는 인물들을 키워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제자를 가르치대,병법까지 가르쳐서 임진왜란 때 영남에서 일어난 의병장의 태반은 그의 제자들입니다. 다만 이 자의 학통을 이어받은 정인홍이 당파에 휘말리며 희생을 당한 일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실을 헤쳐나가는 학문과 치국의 도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염라대왕: 그럼 마지막으로 암흑(暗黑)지옥을 다스리는 전륜대왕(轉輪大王)이 한 말씀하시지요. (암흑지옥은 죄상이 비교적 가벼운 사람이 오며, 언젠가는 소·말·돼지같은 짐승으로 태어나 생을 다시 누릴 수 있는 지옥이다)
전륜대왕: 이 자의 학문은 조선의 으뜸이라 마땅히 저승의 큰 스승으로 모셔 지옥에서 고통받는 자들을 교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염라대왕: 이제 모든 대왕의 평가를 들어보았습니다. 이에 본 염라대왕은 존경하는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이 인간의 죄를 평결하겠습니다. 조식은 장송불굴(長松不屈)의 기개를 갖춘 도학군자(道學君子)로서 ‘경상 좌도에는 퇴계(退溪)가 있고, 경상 우도에는 남명이 있다.’라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로 벼슬을 초월한 학자였습니다. 또 온갖 명리를 멀리한 채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나선 의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인은 조식의 무죄를 선포합니다.
땅땅땅!
염라대왕: 잠깐, 여기서 저 염라대왕은 지장보살님께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지장보살의 의자 앞에 선 염라대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극진히 예를 표한다)
지장보살: 염라대왕, 무슨 청이요? 그져 널리 중생을 불쌍히 여기세요. 나무관세음보살!
염라대왕: 염라국에서 듣기에 대한민국에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2002년 7월 11일 개각 이후에 연달아 지명된 국무총리 서리가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고, 그 결과 몇 달 동안 국무총리 자리가 비워있습니다. 장상(張裳,전 이화여대 총장) 여사에 이어 장대환씨 역시 국회 청문회의 칼날같은 자격검증에 부딪혀 국회 인준이 부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성직자 못지않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국회 인사청문회 관문을 통과할 만한 "흠집없는 인사"즉, 국방 의무에 충실한가? 청렴한 선비인가? 세금은 제대로 냈는가? 국적에 문제가 없는가?에 저촉받지 않는 청렴하고 지도력 갖춘 선비를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제가 보기에 그 조건에 이 자만한 인물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지장보살임, 따라서 저는 이 자를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에 추천할 것을 지장보살님께 청합니다.
지장보살: 나무관세음보살,(잠시 생각에 잠겼던 지장보살이 이윽고 입을 연다. 입가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가득 번진다) 여봐라, 염마졸. 이 불쌍한 중생을 대한민국으로 데려 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 염라국은 이 중생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로 추천했다는 사실을 알리거라.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염라국 대왕 일동: 지장보살님의 자비가 하해보다 깊고 태산보다 높습니다. 지장보살님 만세, 염라국 만세! 충! 충! 충!
[사진 : 업경대 (통도사시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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