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집가의 네 가지 유형 | |
古今을 막론하고 빈부에 관계없이 수집에 발을 담그기만 하면, 아래와 같은 四大유형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이는 수집의 四段階라고도 할 수가 있다.
첫째 : 대지대용형大智大勇型(커다란 지혜와 용기를 갖춘 단계)
둘째 : 창조발현형創造發現型(창조하고 발견하는 단계)
셋째 : 집찬보관형集纂保管型(수집하여 보관하는 단계)
넷째 : 천박유치형淺薄幼稚型(천박하고 유치한 단계)
1) 대지대용형
수집의 극치이다. 이 단계의 수집가는 이미 재산증식과 이익도모라는 물욕物慾을 배제하고, 명확히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커다란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비록 가산을 탕진하더라도 개의하지 않는다.
서비홍徐悲鴻은 거액을 주고 구입한 당대唐代(618-907)의 《팔십칠신선권八十七神仙卷》에 '悲鴻生命(비홍의 생명)'이라는 인장을 찍고, 마침내 망설임 없이 국가에 기증하였다.
정진탁鄭振鐸은 국토가 유린되고 일본군이 문화재를 약탈할 때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몸과 마음을 바쳐 고서적을 보호하였으며, 평생 수집한 10만 여권의 서적을 모두 국가에 기증하였다.
장백구張伯駒는 民國시기(1912-1949)에 국보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상 대대로 내려온 토지를 팔아 거금을 주고 서진西晉 육기陸機의 《평복첩平復帖》과 북제北齊 전자건展子虔의《유춘도游春圖》등을 구입하였다. 그는 평생 온갖 고초를 다 겪었으며,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총탄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마침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담겨있는 20여 건의 국보를 공개하고 국가에 기증하였다.
北京의 적취원積翠園주인과 군간부 진영陳英과 금람金嵐부부는 文革시대(1966-1977)에 예리한 안광과 국보를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수집을 시작하여, 당송唐宋이후의 100여 폭의 진귀한 서화를 수집하였다. 동시에 이들은 당시에 '別種(별난 종자)'으로 분류되어 공격을 받는 서화가들과 진실한 우정을 쌓아 그들을 보살펴 주었으며 존중해 주었다. 많은 저명한 서화가들이 적취원에 모여 담소하여 맺힌 울분을 풀었으며, 수시로 창작활동에 종사하여 400여 점의 작품이 탄생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이가염李可染의《정강산井岡山》,이고선李苦禪의《응석도鷹石圖》,오작인吳作人과 소숙방蕭淑芳부부 및 조박초趙朴初 等의《백화도권百花圖卷》,계공啓功 等의《포도권葡萄卷》,유해속劉海粟 등의《송매수숸권松梅水仙卷》,관산월關山月 등의《홍매권紅梅卷》,장조화蔣兆和 등의《牡丹합子圖》,朱자瞻 등의《유곡죽란장권幽谷竹蘭長卷》,사치류謝稚柳와 여웅재黎雄才 등의《화조장권花鳥長卷》등등이 있었다. 이 사건은 중국의 화단畵壇에서 '非常時期(비상시국)'의 '기이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적취원의 600여 소장품은 전부 복건성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 창조발현형
이 단계의 수장가의 공통적인 특징은 발견하고 창조하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골동품에서 중대한 발견을 하여, 인생에서 커다란 업적을 성취한다.
淸末의 수집가인 왕의영王懿榮과 유악劉악은 약재로 쓰이고 있었던 용골龍骨에서 은대殷代의 갑골문甲骨文을 발견하였다. 나진옥羅振玉은 또 이 갑골을 수집하여 안양安陽 소둔촌小屯村이 고대의 은허殷墟(은나라의 수도)임을 밝혀내었다. 또한《은허서계殷墟書契》를 편찬하여,은허의 대발굴을 이끌어 내었으며,중국 근대고고학의 탄생을 촉진하였다.
곽말약郭沫若은 1970년 감숙성甘肅省 무위武威에서 출토된 문물을 참관할 때, 번잡하게 쌓여 있는 청동조각에서 혜안慧眼으로 '동분마銅奔馬'를 식별해내어, 마침내 '마답비연馬踏飛燕(천리마가 날아가는 제비의 머리를 밟고 있는 형상의 한대 청동제품)'이라는 희세의 보물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3) 집찬보관형
이 단계의 수집가가 가장 많으며, 공통적인 특징은 목마른 듯이 골동품을 좋아하여 수집이 버릇(癖)으로 되었다는 점이다. 돈이 있으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볼 때마다 사지 않으면 불안하여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비록 모조품을 만나서 속아 사더라도 어리석은 마음을 바꾸지 않고, 끊임없이 사고 또 산다. 돈이 없으면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아끼고, 푼돈도 모으며 심지어 빚을 내어 사기도 한다. 그만두고자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이들의 절대다수는 감정지식이 풍부하지 못하여 정밀하게 연구하고 감별할 수가 없으므로, 일가를 이루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은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신령의 가호가 내린다. 수집품에 비록 명품과 섭취가 뒤섞여있지만, 사회와 민족을 위하여 대량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
4) 천박유치형
이 단계의 수장가의 현저한 특징은 학식이 천박하고 견해가 협소하며 감상능력이 낮아, '美'에 대하여 터럭만큼의 감각이나 깨달음이 없으며, 어떤 사람은 다만 '빨간 색과 푸른 색이 뒤섞여 볼품 없다'라는 정도 만을 알 뿐이다. 이들 수집가는 위조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극히 졸렬한 서화書畵족자를 꺼내며 말하기를, "이것은 당백호唐伯虎(唐寅)와 정판교鄭板橋(鄭燮)의 작품이다."라고 한 다음, 잘 말아서 보물처럼 간수한다.
이들은 진가를 분별할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이 수장한 물건은 세상에 둘도 없는 진귀한 보물이고, 가치가 성 하나와 맞먹는다고 여기고 있다. 현대의 모조품은 이들의 손으로 들어가면 정통의 명청관요가 되며, 자사호紫砂壺의 굽에 '시대빈時大彬'이라는 사각의 낙관이 찍혀 있으면, 의심할 바 없이 황금처럼 귀중한 대가의 작품이 된다. 이들이 가마니로 가지고 있는 은폐銀幣 '진품珍品'은 걸핏하면 하나에 가격이 RMB수십만원이라고 주장하지만, 眞品인 民國시기의 희귀한 銅錢의 어느 부위가 선명하지 않으면, 묽은 산에 담가서 귀중한 포장包漿(Bao jiang - 세월의 흔적으로 나타나는 얼룩이나 녹)을 부식시켜서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만들어, 銅錢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中國商報收藏拍賣導報》에서 발췌된 내용을 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