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탕카 회화의 유파 | |
| 회화탕카는 장기간의 발전을 통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장점을 널리 채용하여 풍격이 서로 다른 많은 유파를 형성하여, 분류하기가 복잡하다. 풍격이 다른 탕카(Thangka)는 각각 서로 다른 화파를 대표하며, 서장의 화파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Gazhi파> : 갈지는 장족 회화조소의 한 유파이며, 전하는 말에 의하면 Gamamojueduojie이 저술한《도상도량경圖像度量經》의 화풍을 계승하여 고요하고 선량한 인물상의 묘사에 뛰어나다고 한다. <흠택파欽澤派> : 흠택파의 창시자는 서장 Gonggarduo 지방의 흠택흠무欽澤欠茂이다. 만당파曼唐巴화파에서 탈태하여 나왔으므로, 비교적 만당파曼唐派의 화풍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Gaerre파> : 까얼러파는 난무카짜시 활불活佛이 서장화의 도량度量과 중국화의 색칠하는 방법 및 경물의 배치를 결합한 화파의 하나이다. 그 특징은 화면이 크고 표현된 내용이 많으며 인물의 표정이 청수淸秀하고 웃는 모습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다. <걸거필파杰居畢派> : 걸거필(Jiejubi)파는 Gamaquangduojie가 서장화의 기초 위에 캐시미르화풍을 흡수하여 창립한 화파이다. <단로파旦魯派> : 학자인 지가智嘉와 만탕차카 등의 화풍을 단로파라 하며, 이 화파에는《신상도량여의보주神像度量如意寶珠》등의 미술저작이 있다. <대열파代熱派> : 대열(Daire)파는 갈이열파와 만당파 화풍이 서로 융합된 화파이다. 주요 특징은 인물의 조형과 신태神態 및 내함內涵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 파의 비교적 저명한 화사로는 딴청누얼뿌, 롱빠쑤오난지에빠오, 쯔라푸르오차이랑, 탕라차이왕 등이 있다. <희강파希崗巴> : 희강파활불希崗巴活佛의 화풍 및 이러한 화풍을 보유한 화파를 희강파라 한다. 이 화파는 네팔회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므로 네팔화파라고도 한다. <만낭파曼娘派> : 만낭(Manniang)파는 서장지구 최초 화파의 하나로서, 창시자는 14세기의 만라뚱쭈이며, 특징은 분노상憤怒像이 분노하는 가운데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체형이 날렵하고 의복이 화려하며 담아淡雅하게 채색하고 신태가 핍진하며 신체 각 부위의 비례가 적당하다는 등이다. <만로파曼魯派> : 만낭曼娘과 만살이曼薩爾 화파의 총칭이다. <만살이파曼薩爾派> : 만살이(Manshaer)파의 창시인은 짱빠 취양지아추오로서, 만낭파의 화풍에 가깝다. 그 특징은 선이 굵고 표정이 위맹하며 색을 진하게 칠하고 키가 약간 크며 필획이 세밀하다는 등이다. <팽파화파彭波畵派> : 화풍의 엄밀하고 근엄함과 工筆의 세밀함 및 재료사용의 신중함으로 유명하다. 츠딴랑지에는 이 파의 제17대전인으로 당대當代에 성취가 가장 뛰어난 저명한 민간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많은 환영을 받고 있으며, 탕카를 발양광대시키기 위하여 제자 10여명을 성심으로 가르쳐 이 화파의 계승을 위한 기반을 다져놓았다. 또 다른 방법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서로 다른 많은 유파가 존재하며 그 가운데 전장화파前藏畵派와 후장화파後藏畵派와 서강화파西康畵派 및 한풍화파漢風畵派가 영향력이 가장 크다. 전장화파와 후장화파는 모두 면당화파緬唐畵派를 계승하였다. <전장화파>는 구도가 근엄하고 인물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데 뛰어났다. 민족문화궁박물관 관장인 14세 달라이라마 단증가조丹增嘉措가 모택동에게 증정한《금변모주석상金邊毛主席像》탕카는 모택동의 미소를 절묘하게 표현해 내였다. <후장화파>는 필법이 세밀하고 색채가 농염하여 공필중채류工筆重彩類에 속한다. 15세 판첸대사가 모택동에게 증정한《사비관음상四臂觀音像》탕카는 후장화 풍격의 역작이다. 이 작품은 구도가 복잡하고 구륵선이 정밀하며 색채가 농염하고 화려하며 세밀한 풍격을 드러내고 있다. <한풍화파>는 중국의 회화풍격을 모방한 유파이며, 서장의 화사畵師가 중국의 사의화寫意畵의 풍격을 모방하여 전통적인 탕카재료를 사용하여 창작한 것이다.《십팔라한상十八羅漢像》탕카는 이 유파에 속한다. 넓은 화면에 정밀한 구도 및 간결한 필법으로 인물과 산석山石과 조수鳥獸 등을 구륵하고 점염点染한 것이 명청明淸의 사의화법寫意畵法과 매우 흡사하다. <서강화파西康畵派>는 서장의 전통적인 면당파를 학습한 기초 위에, 한풍화파의 일부 풍격을 흡수하여 형성된 것이다. 화풍이 양자의 사이에 있는 유파이다. 내용의 배치와 위치를 중시하고 사의풍격의 필묵筆墨정취와 착색의 운치를 추구한다. 청대淸代《적송덕찬상赤松德贊像》탕카는 이 파의 작품이다. <탕카작가> 근래에 탕카는 사람들에게 진보珍寶로 간주되고 있다. 다만 작자의 이름이 남아있는 것이 아주 적은데, 이것은 혹시 사원을 위하여 공덕을 쌓는다는 사상과 유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명한 화사畵師들의 이름은 천여 년 동안 사람들에게 칭송되고 있다. 4세 판첸 루오쌍췌지졘짠이 원적圓寂한 뒤에, 찰습륜포사紮什倫布寺에 그 유체를 모시는 신전을 신축하고 동공전東供殿이라 불렀다. 동공전과 1세 판첸의 영탑靈塔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모두 후장後藏의 예술가와 신면화파新勉畵派의 창시인인 췌양지아추오의 작품이다. 1715년 제1세 쟈무샹대사는 회화와 조소에 정통한 차배화사次培畵師를 초빙하여 랍복릉사拉卜楞寺 대경당大經堂 및 기타 전당의 벽화와 소상을 제작하였다. 아울러 열공熱貢(현재 청해성靑海省 동인현同仁縣)에 면당화풍勉唐畵風을 보급하여 열공이 점차 현재 서장불교 예술의 고향이 되도록 했다. 과거에 사원은 장족문화의 집합처로서, 많은 고승들은 불학佛學에 조예가 깊은 대사이면서 아주 뛰어난 회화의 고수였다. 11세기 서장에 들어와 불법을 전한 아저협阿底峽이 일찍이 두 폭의 진귀한 탕카를 그렸는데, 한 폭의 머리가 미미하게 기울어진 자화상自畵像은 진사지보鎭寺之寶로 되어 열진사熱振寺에 보존되었고, 다른 한 폭의 대위덕금강상은 섭당사에 보존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저명한 종교개혁가인 격로파 창시자 쫑카파대사도 회화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청해성 민화현民和縣 객덕객사(커더커사. 서장어 의미는 까마귀부리)에 소장되어 있는 쫑카파자화상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대사가 위장衛藏에서 학습하는 기간에 그는 멀리 청해에 있는 모친이 백발 한 묶음을 보내었는데, 그가 귀향하여 모친을 뵐 때, 대사는 두 손으로 모친의 백발을 받든 채 감개무량했다. 모친을 위로하고 자신의 그리운 심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피를 기타 안료와 섞어서 자화상 한 폭을 그려서 모친께 드렸다고 한다. 서장불교의 광범위한 유전에 따라 탕카의 수요량이 날로 증가하여, 서장의 많은 지역에 사제간이나 부자간에 서로 전승되는 전문적인 화사들이 출현하여 화파를 형성하였다. 장족회화는 서장西藏 삼화파三畵派(알적Gachi, 문적門赤, 경적慶赤)과 외래外來의 삼화파三畵派(가적加赤Jiachi, Jiagaerchi, Moboerchi)로 나누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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