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여러가지 이야기

고대 청동기의 金銀錯공예

작성자유니갤러리|작성시간08.08.12|조회수318 목록 댓글 0

고대 청동기의 金銀錯공예
오늘날 말하는 청동기의 착금錯金과 착은錯銀은, 고대에는 금착金錯과 은착銀錯이라고 하였다. 조조曹操의《상잡물소上雜物疏》에 "황제의 물품에는 한자 두치의 금착한 철제鐵製 거울이 하나이며, 황후의 잡물에는 일곱치의 순은착한 철제 거울 4매를 사용하며, 황태자의 잡물에는 일곱치의 순은착한 철제 거울 4매이다.(御物有尺二寸金錯鐵鏡一枚,皇后雜物用純銀錯七寸鐵鏡四枚,皇太子雜純銀錯七寸鐵鏡四枚)"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한秦漢의 서적에서 고대의 금은착기물을 모두 '착금은錯金銀'이라 하지 않았으므로, 여기서도 그대로 '금은착'으로 사용한다.

금은착은 중국 청동기의 정교한 공예기법으로, 비교적 늦게 출현하였다. 현재까지 파악된 자료에 따르면, 청동기가 출현하여 1000여년이 지난 춘추시대 중후기에 이르러 비로소 흥성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와 양한시기兩漢時期에 금은착청동기가 대량으로 출현하였으며, 생활의 각 영역에서 널리 유행되어, 발굴된 제품이 수천점을 헤아린다. 다만 중국의 청동기시대에 있어 금은착청동기는 일말의 화려한 노을에 불과하였다.

1. 무엇을 '착錯'이라 하는가?
'착錯'자는 금은金銀과 연결시켜야 비로소 설명이 분명해진다. 한대漢代는 중국의 금은착공예가 가장 성행한 시대로, 당시의 설명은 금은을 청동기의 위에 칠하여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기물 위에 금은으로 된 도안이 배치된 것을 '금은착'이라 부를 수 있다. 예를 들면, 금선金線으로 수를 놓아 문양을 그린 배심背心을 한대漢代에는 '금착수당金錯繡당'이라 하였다. 칠기漆器에 금은으로 된 도형이 그려진 것은 '금칠착金漆錯'이라 하였다. 1989년 상해사서출판사의《사해辭海》에서는 '錯,用金圖飾(착이란 금을 이용하여 문양을 장식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2. 금은착공예의 장식수법
현재까지 발견된 청동기에 금은으로 문양을 장식하는 방법은 두 종류이다.

1) 상감법
현재까지 발견된 중국 고대의 금은착청동기 가운데, 일부는 상감이라는 장식수법을 채용하였으며, '누금장식법鏤金裝飾法'이라고도 한다. 그 제작과정은 네 단계로 나누어 진다.
- 하나 : 모범(母范-기물을 주조하기 위하여 만든 주조용 틀)에 미리 오목한 홈을 조각하여, 주조가 완료된 다음 이 오목한 홈에 금은을 박아 넣기 편리하게 만든다.
- 둘 : 찬조(홈을 새기는 작업)이다. 청동기가 주조된 다음에 주조된 오목한 홈은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며, 정교한 무늬는 기물 표면에 붓으로 도안을 그린 연후에 무늬에 따라 얕은 홈을 깎아 내었으며,고대에는 이것을 각루刻鏤 또는 누금鏤金이라 하였다.
- 셋 : 상감이다.
- 넷 : 마무리. 금사金絲나 금편(金片- 금조각)으로 상감을 완성한 뒤에, 평평하지 않은 기물의 표면을 숫돌로 갈아서 금사나 금조각이 청동기의 표면과 평평해지게 만들고 긴밀하게 결합되도록 한다.
2) 도화법塗畵法
이것은 한대漢代 금은착의 주된 장식수법이다. 문헌의 기재와 출토기물에 근거하면, '금도법(金塗法-금으로 칠하기)'의 공정은 다음과 같다.

- 하나 : '금홍제金汞劑'의 제조
금홍제의 제조는 화학적인 공정이다. 잘게 분쇄된 황금조각을 솥에 넣고 가열하여 400℃이상이 되게 한다. 여기에 다시 황금의 일곱 배에 이르는 수은을 첨가한다. 이것을 용해시켜 액체로 만들면 이른바 '니금(泥金-금 용액)'이 만들어 진다.

- 둘 : 금도金塗
니금을 이용하여 청동기에 복잡한 여러 무늬를 칠하여 그리거나 미리 주조된 오목한 홈에 칠한다.

- 셋 : 금고(Jinkao)
무연탄으로 가열하여 수은은 증발시켜서 황금으로 된 문양을 청동기의 표면에 고정시킨다.

이러한 방법을 현재에는 '유금(Liujin)'이라 하지만 고대에는 '금착'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문양을 그리는 일도 '착'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채색하여 그리는 일도 '착채錯彩'라고 하였다. 착채와 누금鏤金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작업이며, 앞에서 말한 상감법은 '누금법鏤金法'이다. 여기서 말하는 '금도법金塗法'은 바로 '착채'이다. 만약 기물 전체를 금으로 칠하여 '착채'가 없게 되고 아무런 문양도 없게 되면, 소면(素面-문양이 없는 표면)이 되어 '금착'이라 부를 수가 없게 된다.

한대漢代 전문적으로 금은착공예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금은도장문공金銀塗章文工'이라 하였다. '장문章文'은 문장이나 문양이라는 의미이며 '금은도장문金銀塗章文'이란 바로 청동기에 금은을 칠해서 문양이나 도안을 장식하는 것이다. 한대에 '물륵공명(物勒工名-기물에 장인의 이름을 새김)'이라는 제도가 있었으므로, 일부 한대의 금은착청동기에 장식되어 있는 명문銘文 가운데에 '금은도장문공金銀塗章文工', '황도공黃塗工', '도공塗工'이라는 공예의 종류를 나타내는 명칭이 존재한다.

현존하는 전국진한시대의 금은착동기 가운데에서, 다수는 이러한 '금은도(金銀塗-금과 은을 칠하여 장식)'라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많은 고고학자와 문화재 전문가들이 칭송하는 금은착청동기 가운데, 금은착으로 된 문양이 떨어져 나간 부분을 보면, 오목한 흔적이 전혀 없으으므, 한 눈에 금은착문양은 상감한 것이 아니라 표면에 칠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가 있다.

1987년 하북성河北省 평산현平山縣 중산왕릉中山王陵에서 출토된 금은착 호탄록기좌(虎呑鹿器座-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형태의 받침대)는 공인된 금은착의 대표작품이다. 이 기물의 호랑이 꼬리 부분에 금착한 문양이 조금 떨어져 나갔지만, 탈락된 부분에 터럭만한 흔적도 없으므로, 상감한 것이 아니라 칠하여 장식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또 하남성 낙양 금촌金村의 전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금은착 투수문경(鬪獸紋鏡-맹수가 싸우는 문양의 거울)도 공인된 금은착제품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착금이 탈락된 부분에 오목하게 패인 흔적이 전혀 없으므로, 한 눈에 '금도법金塗法'을 이용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가 있다.

3. 금은착공예의 장식제재와 내용
(1) 명문銘文 :
청동기상의 명문은 상대商代에 출현하였으며, 최초에는 주조되었고, 전국진한시기에는 조각하거나 쪼아서 만든 것이 많다. 그러나 주조한 것이나 조각한 것에 관계 없이 명문과 청동기의 본래 색과는 차이가 없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명문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춘추시기에 착금은공예가 발전하면서 청동기에 황금으로 명문을 장식하였으므로, 명문이 휘황찬란하여 사람들이 청동기를 한 번 보면 금빛이 찬란한 명문이 먼저 눈길을 빼앗기게 되었다. 더욱이 청동기가 매장되어 천여 년이 지나면 표면은 이미 변색되어 짙은 색의 '녹칠고(綠漆古-오래되어 보이는 검은 녹색)'나 '흑칠고(黑漆古-오래되어 보이는 칠흑처럼 검은색)'로 되지만, 금착명문은 수천년이 지나도 조금도 광채가 줄지 않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착금은청동기는 착금명문된 난서관欒書罐으로 춘추중기春秋中期의 제품이며 높이가 48.4cm로 다섯줄 40자의 금착명문이 있다. 명문의 의미는 '정월 늦봄에 란서가 이 기물을 만들어 조상의 제사에 사용하여, 장수하고 자손이 영원토록 보물로 사용하기를 희망한다.' 란서는 춘추시기 진晉의 대신으로 기원전 573년에 사망하였다. 현재까지 이 기물보다 빠른 시기의 착금청동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원전 6세기부터 금착명문이 나타나 거의 천여년을 유행하였으며, 전성기는 춘추후기부터 한대이다. 금은착 자체는 일종의 장식공예로서 장식미를 추구하기 위하여 명문에 변화를 발생시켜, 명문의 위치가 기물의 내부로부터 기물의 표면으로 이동하였으며, 온갖 정성을 다하여 처리되었다. 금착명문은 보통 각종 회화적인 글자형태를 사용하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오월吳越의 조충서鳥蟲書이다. 조충서는 또 충서蟲書, 조전鳥篆, 조주라고 부르며 전서篆書 중의 화체花體로서 왕왕 새모양이나 벌레모양으로 필획을 구성하여 글씨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며 운치가 풍부하다. 금착조충서 명문은 춘추에서 전국초기에 이르기까지 병기兵器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진한秦漢에는 호壺 등에 나타난다.

일부 청동기의 금착명문은 비록 조충서는 아니지만 도안화, 예술화된 경향을 띤다. 1957년 안휘성安徽省 수현壽縣에서 출토된 전국시대 금착 악군계절鄂君啓節에는 312자의 금착명문이 있는데, 글자체는 초엽전(草葉篆-풀잎 형태의 전서)같고 필획이 날렵하면서도 힘이 넘치며, 가로획과 세로획이 교차하는 부분에는 둥근 점으로 장식하여 밝은 별이 점점이 떠서 글자 사이에 떠 있는 듯이 매우 아름답다.

(2) 기하문幾何紋 도안
금은착청동기는 기하문장식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그 가운데 기하운문幾何雲紋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금은착기하운문은 이전 청동기의 기하운문과 서로 다르다. 그 주요 특징은, 기하도안에 고유하게 규칙적으로 구성된 골법骨法이 있으면서도 규칙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였다. 가늘고 균일한 운문의 소용돌이선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회전하는 가느다란 소용돌이선 사이에는 비교적 넓은 면으로 연결하였는데, 이러한 문양에는 박자감과 율동미가 풍부하여 극히 산뜻하고 생동감이 있다. 기하도안의 창조는 전국진한戰國秦漢 금은착공예의 독특한 예술적인 성과이다.
이 밖에 기하도안에는 능문菱紋, 삼각문, 뇌문雷紋, 구연문勾蓮紋 등이 있지만, 모두 주요 문식은 아니다.

(3) 동물문, 수렵문 : 각종 동물조형의 청동기 상에 눈, 눈썹, 코, 입, 부리, 발톱, 털, 깃털 등의 묘사를 함.

4. 기물의 종류 및 대표작품
(1) 병기兵器
춘추후기부터 전국진한에 이르기까지 청동병기에 광범위하게 금은착공예를 사용하였다. 춘추에서 전국초기의 금은착병기의 주요 특징은 금착명문이다. 명문의 글자체는 조전문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 과戈의 금착명문은 일반적으로 과면의 호胡와 원援과 호부胡部에 나타난다. 예 : 중국역사박물관 소장의 송공과宋公戈는 1936년 안휘성 수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과의 길이 는 22.3cm이고 호의 길이는 9.7cm이다. 호부에 금광이 번쩍이는 '송공지과宋公之戈'라는 조전체의 명문이 있으며, 과의 내부에는 금착의 변형된 한조의 동물문양이 있다. 또 과의 명문이 원에서 호부에 이르는 부위에 있는 제품이 있는데, 산서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왕자과王子戈이다. 과의 원에서 호에 이르는 부위에 금착 조전문으로 王子于之用戈라는 명문이 있다. 왕자우는 춘추시기 오왕吳王 료僚일 가능성이 있다.

- 검의 금착명문은 일반적으로 검면에 있으며,일부는 검척劍脊에 착하기도 한다. 안휘성박물관 소장의 채후산검蔡侯産劍은 1957년 안휘성 회남淮南에서 출토되었으며, 검면에 '채후산작외검蔡侯産作畏劍'이라는 금착의 조전체명문이 있다. 호북성 강릉江陵 망산望山 기슭의 무덤에서 출토된 월왕越王 구천검勾踐劍에는, 격格 근처의 검면에 조전체로 '월왕구천자작용검越王勾踐自作用劍'이라 금착되어 있다.
- 모矛에도 금착명문이 있다. 1983년 호북성 마산馬山 초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오왕부차모吳王夫差矛의 기부基部에 두줄로 8자의 금착명문이 있으며, 오왕 부차가 자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2) 거마기車馬器
전국진한의 황실과 왕실 및 고급관리 수레의 청동제 부품에는 보통 금은착기하운문이 나타난다. 전국진한시기의 무덤에서 수백건의 금착오말(金錯五抹-수레 부속품)이 출토되었다.

(3) 일상생활용기 및 기타
춘추시기 금은착의 일상생활용기는 드물게 나타난다. 전국진한시기에 이르러 광범위하게 유행하였으며, 많은 귀족용의 고급 일용청동기는 모두 금은착이라는 아름다운 외투가 입혀졌으며, 현재 발굴된 제품으로는 정鼎、준尊、호壺、배杯、두豆、주舟、분盆、반盤、우盂、이배耳杯、비匕、작勺、등燈、훈로熏爐、경鏡、대구帶鉤、투자、안案、부符、절節、뉴종紐鍾、호자虎子、진鎭、척尺、장수杖首、기좌器座、병풍삽좌屛風揷座 및 각종 진열품 등이 있으며, 종합하면 전국진한시기의 금은착청동기는 이미 생활의 각 영역으로 깊숙히 스며들어 있었다.

현재 발굴된 대량의 전국진한금은착청동기 가운데에는 많은 정품이 있다.

* 전국시기의 제품 :
1954년 사천 소화昭化에서 출토된 서우대구犀牛帶鉤, 북경고궁박물원 소장의 운문두형등雲紋豆形燈과 호자虎子
1955년 산서 장치長治 분수령分水嶺에서 출토된 운문주雲紋舟
1958년 안휘 수현에서 출토된 와우臥牛와 악군계절鄂君啓節
1965년 산서 장치 분수령에서 출토된 착금운문두錯金雲紋豆
1965년 강소 연수漣水 삼리돈三里墩에서 출토된 운문희준雲紋犧尊, 섬서 한중漢中에서 출토된 운문양형우雲紋羊形盂
1965년 섬서 보양寶鷄에서 출토된 운문호雲紋壺
1966년 섬서 함양咸陽에서 출토된 운문정雲紋鼎
1972년 광동 조경肇慶에서 출토된 유운문뢰流雲紋뢰
1973년 하남 낙양 중주로中州路에서 출토된 운문승궁기雲紋承弓器, 호남 장사시에서 출토된 운문대구, 하남 낙양 금촌金村에서 출토된 기하구연문호幾何勾蓮紋壺와 수렵문동경
1973년 섬서 서안문西安門에서 출토된 두호부杜虎符
1977년 산동 곡부曲埠 노국魯國 고성古城에서 출토된 용수장수龍獸杖首
1977년 하북 평산平山 중산왕묘中山王墓에서 출토된 유익신수有翼神獸, 용봉방안龍鳳方案, 호탄록기좌虎呑鹿器座
1979년 하남 낙양 소둔존小屯村에서 출토된 권운문사판단화문정卷雲紋四瓣團花紋鼎

* 진대秦代의 제품
산동 임성臨城에서 출토된 양릉호부陽陵虎符
1977년 섬서 임동臨潼 진시황秦始皇 능원陵園에서 출토된 악부종樂府鐘

* 한대漢代의 제품
1950년 사천에서 출토된 사신대구四神帶鉤
1964년 섬서 서안에서 출토된 구련문동방勾蓮紋銅舫
1965년 하북 정현定縣에서 출토된 거산정車傘鋌
1968년 하북 만성滿城 한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반룡문호蟠龍紋壺, 조전문호鳥篆紋壺, 유정문호乳釘紋壺, 주주작함환배朱雀銜環杯, 박산로博山爐, 매화문표진梅花紋豹鎭, 동투銅투. 상해박물관 소장의 조전문호
1970년 광주廣州 남월왕묘南越王墓에서 출토된 호절虎節, 대탁동경帶托銅鏡, 산병고傘柄고
1980년 강소 한강(Hanjiang)에서 출토된 우등牛燈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