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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고구려계 성씨②] 봉성 온씨鳳城溫氏

작성자고리아이|작성시간07.11.23|조회수128 목록 댓글 0
출처 카페 > 겨레의 역사 문화 나눔터 / 극도상존
원본 http://cafe.naver.com/voojiddang/5543

온씨(溫氏)의 본관은 문헌에 서원(西原),온양(溫陽), 전주(全州), 이성(伊城), 나주(羅州), 평고(平皐) , 금구(金溝), 거야(居野), 종정(從政), 경주(慶州), 진주(晉州) 등이 전해지고 있으나 금구·경주 2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미고이고, 이 2본마저도 같은 혈손으로 최근에 봉성(鳳城:金溝)으로 일원화하였다. 

 

 

 온 씨의 선대는 중국 주 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 나라 성왕이 그의 아우 숙우(叔虞)를 당에 봉함으로써 진(晋)나라의 시조가 되었고, 그의 12세손 소후(昭侯)가 또 그의 아우 사(師)를 온(溫)에 봉하여 평원(平原)에 도읍 하게 하니 온 씨가 이때부터 비롯되어 평원으로 관적 하였다. 따라서 동방의 온 씨 도시조는 온사(溫師)이다.

 

 온 씨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은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하여 부마로 전쟁에 공을 세워 대형(大兄) 벼슬에 오르고, 한북(漢北)의 땅을 찾고자 출전하였다가 전사했다. 또 온사문(溫沙門) 장군은 보장왕 때 당나라 설인귀가 이끄는 침공군을 횡산에서 물리쳤으며, 온군해(溫君解)는 신라 진덕여왕 때 김춘추(金春秋)를 따라 당나라에 들어가 원군을 청하고 귀국하는 길에 고구려 군에게 포위되자 김춘추를 도망케 하고 자신이 김춘추로 가장, 살해되었으며 뒤에 대아찬에 추증되었다.

 

 온 씨는 이처럼 연조가 깊은 성씨이지만 세계가 실전 되어 소목을 밝히지 못하고 온군해의 후손으로 고려 충목왕 때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온수(溫粹)의 아들 선(善)·신(信) 형제부터 세계가 시작된다. 형 선은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고, 아우 신은 공민왕 때 우부시랑(右部侍郞)으로 이존오(李存吾)·정추(鄭樞) 등과 함께 신돈(辛旽)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거야(居野:지금의 金溝)에 유배되어 그의 자손들이 그곳에 세거하면서 금구 온씨가 되었다. 선의 자손은 경주(慶州)에 살면서 경주로 위관(爲貫)하였으며, 신의 7세손 온효진(溫孝珍)이 명종 2년 정미사화(丁未士禍) 때 요동(遼東)으로 피신했다가 13년 만에 북청(北靑)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세거하게 되어 그의 자손들이 청주(靑州)로 위관 하였는데, 호적에 청(靑)자를 청(淸)자로 오기, 청주 온씨(淸州溫氏)가 되었다. 이리하여 같은 혈손이면서도 금구·경주·청주 등 3본으로 갈라졌는데 최근에 온달을 도시조로, 각 분관조를 파조로 하고 본관을 봉성으로 하여 일원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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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장군님의 후손들이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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