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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고구려계 성씨③] 익산 이씨益山李氏

작성자고리아이|작성시간07.11.23|조회수126 목록 댓글 0
출처 카페 > 겨레의 역사 문화 나눔터 / 극도상존
원본 http://cafe.naver.com/voojiddang/5545

 시조는 고구려 영양왕 때 태학박사(太學博士), 문부전서(文部典書),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지낸 이문진(李文眞)이다.(왕명으로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新集)5권을 썻다.) 후에 백제의 공주와 혼인하여 백제로부터 익주(益州, 익산의 옛 이름)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본관을 이 곳 으로 삼아 계대하였다. 그 후 후손에 대한 기록을 밝힐 수 없어 후손인 고려 개국공신으로 태위(太尉)를 지낸 이의(李誼)를 1세조로 한다.

 

 고려 인종 때 이주연(李周衍)은 형부시랑으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김부식과 함께 송나라에 다녀왔으며, 뒤에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가 되고, 인종 13년 묘청의 난 때는 우군장(右軍將)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이영남(李英楠)은 찬성사(贊成事)를 지냈고 이주(李湊)는 문과에 급제하여 부성현위(富城縣尉), 도병마록사(都兵馬錄事), 예부시랑(禮部侍郞), 한림학사, 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특히 문장과 서예에도 탁월하였다. 이행검(李行儉)은 풍주부사,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 등을 역임하였고, 이공수(李公遂)는 감찰규정(監察糾正)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찬성사, 좌정승 등을 역임한 뒤에 익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정문(李正文)은 군수를 지냈으며 이계당(李繼唐)과 이득춘(李得春)은 목사, 이의벽(李義闢)은 판관을 역임하였고 이영필(李瑛弼)은 교관(敎官)을 지냈으며 이시준(李時晙)은 도사(都事)를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이홍조(李洪祚)를 비롯하여 이상조(李相祚)와 이시중(李時中), 그리고 이시철(李時轍) 등은 효성이 지극한 효자로서 이름을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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