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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안확의 <<조선문명사>>에 나타난 조선 정치관

작성자고리아이|작성시간05.01.10|조회수59 목록 댓글 0
 

1923년 일제 식민지 시기에 펴낸 안확의 <<조선문명사 : 일명 조선정치사>>는 이전의 역사 개설서와 아주 다른 형식의 서술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하지만, 그가 한국전쟁 당시 북녘으로 끌려갔기에 그 동안 그의 저술은

<붉은 도장>이 찍혀 <악마의 책>이 되었다가 1994년에 이르러서야

남녘에서 햇빛(여강출판사)을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가운데, 조선의 건국 과정과 조선의 이른바 <붕당> 정치에 대한 그만의 서술을 볼 수 있는데요. 그는 조선 태조에 대하여 당시 폐단을 구하고,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으며, 새로운 정치의 기초를 세운 '恩人은인'이라고 하면서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고 있지요. 나아가, 당시 누구나 부정적으로 해석하던 조선 시대의 당쟁에 대해서도 아주 새로운 해석을 가하고 있지요.

그는 이 책의 제6장 '근세 군주 독재 정치의 시대'에서 조선의 당쟁에 대하여 정당의 발생, 정당의 발달, 당파와 정치 발달이라는 세 개의 절을 각각 두고서 설명하고 있죠.

제목부터가 당쟁이라든가 붕당이라는 표현은 찾을 수가 없고, 조선의 당파 또는 붕당을 정당이라 이름하고, 이것의 발생부터 발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답니다.

그는 먼저 정당의 발생이라는 부분에서는 특별히 당시 국내 학자이거나 일본인 어용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이건창의 <<당의통략>> 내용을 비판하고 있답니다. 그는 이건창이 당쟁 발생 원인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을 '근시적近視的' 또는 '소극적'이라 비판하고 있지요.

그리고 나서 “당파의 발생은 적극적 정치의 발달”로 인한 두 가지 큰 원인에서 비롯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답니다.

첫째, 조선의 정치는 이전 정치의 폐단을 바로잡고 ‘신국면新局面의 정체政體’를 만들었기 때문에 “일반 인민은 정치에 대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조선 유생들은 “정안政案을 제출하여 임금 및 정부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고, 따라서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가 크게 제기된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당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둘째, 조선의 정당 발생 시점은 대개 동인과 서인으로 갈리게 되는 선조초로 잡은 것이 당시 사정이었는데, 안확은 연산군에서 명종대에 이르는 50여 년 동안에 일어났던 사화를 겪으면서 정당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따지고 보면 동인은 사화의 과정에서 성장한 청년가靑年家 또는 국민당國民黨 또는 의사파義士派라 할 수 있으며, 서인은 노장가 老長家 또는 관료파官僚派 또는 외척파外戚派라고 규정하고 있지요.

이조 정랑 자리를 두고 벌였다는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으로 동서인의 분립이 생겼으며, 이것이 조선 당쟁의 본격적 시작으로 보는 일반적인 견해는 오늘날에도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해석인데요.

안확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사화를 해석하고 있는 오늘날의 일반적인 역사 해석과 비슷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지요.

그리고 당파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왕권이 약해졌으며, 정당간의 대립은 더욱 확대되고 당파는 갈수록 다수로 분할되어 갔다고 당파의 분열상을 설명하면서, 당쟁이 우리나라 정치 발달에 미친 영향을 세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첫째, 그는 세조가 ‘의정부서사법’을 폐지함으로써 “압제독재적 수단은 무한히 확대”되었으며, 연산군의 폐정도 그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답니다.

당파가 발생한 후에 정치는 더욱 발전했다고 보면서, 당파의 발생을 ‘정치상의 자유’가 성장하였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요.

둘째, 당파로 인하여 정부가 자주 교체되는 따위의 폐단이 있기도 하였지만, 정치적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의 정치에 “청년적 활기가 정치 무대를 장식”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지요.

동시에 각 당파는 자신들의 주장을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였으므로 조선 중기의 “학자와 문집의 수효는 전대보다 백 배나 되며” 심지어는 “상인 계급에서도” 벼슬에 나아가는 이들이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죠.

셋째, 치열한 당파간의 경쟁 탓으로 당시 정치에는 파란이 심하였지만, 정치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열띤 토론 속에서 결국 정치적 진보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지요.


제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요즘 KBS1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정치적 당파간 대립을 여전히 식민지 시기 어용학자들이 즐겨 쓰고 이해한대로 바라보면서 드라마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 조금은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나아가 당시 왕정체제 속에서의 정당 문제를 새롭게 살필 수 있는 드라마는 여전히 멀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보니까, 요즘 정치도 만만치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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