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작 의 실 제
(이 글은 [교사극단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93년에 창작을 하며 극단
한강의 장소익씨와 함께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과 형식>
현대 사회의 연극 내용은 거의 히스테리,스트레스,고독,절망,거대한 독
점체제는 신비화되고 도피하는 것으로 이루어 졌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식(양식)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는가?'이며 이것은 인간관계를 변
화시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4개의 대상은 사람,사물,장소,이
념이 있는데 이런 대상을 취하는 데 있어 4가지 상대, 즉 자연,사회,사
람,자기자신과 다투게 된다. 춘향전은 춘향이 이도령이라는 '사람'을 기
다리는 행위이고, 기다리지 못하게 하는 대상 '변학도'와 다투게 된다.
춘향이의 기다림이 호랑이, 변학도가 멧돼지 인것이다.
고상돈이 히말라야 산을 오르려고 하는데 못오르게 하는 대상, 즉 빙
벽이라든가 하는 사물 또는 자연이라는 장애가 나타난다. 자기 자신과
의 싸움이라면 심리극,1인극 등에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지킬박사와 하
이드씨'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갈등'이라는 것이 이런 구조이다. 고상돈이라는 사람이 산을
오르려고 한다. 연극은 산을 오르려는 동작을 보여준다. 오르려다가 빙
벽,폭풍등을 만나 못오르고 죽은 이야기라든가, 주인공이 추구하는 대상
(사람,사물,장소,이념)이 있다. '최선생'이나 '마지막 수업'등은 사회가 못
하게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과 '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이 순간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자기이고자 하는 것'과 '자기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것'과의 모순
관계가 있다. 모든 사물이나 자연의 상태는 그런 모순 관계를 유지한다.
모든 사람의 사물과의 관계는 '그 상태인 것'과 '그 상태가 아닌 것'과
의 치열한 싸움이 존재한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모든 일상은 연극
이 될 수 있다.
<창작과정>
* 희곡은 대사와 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작의 방식에는 개인창작
과 공동창작의 방식이 있는데 공동창작은 같은 직업을 가진 경우와 같
이 공유된 정서가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었거나 창작전문가들이 모였을
때 가능하다.
1)스토리화: 5W 1H 원칙에 따라 줄거리가 성립되는 과정이다.이 과
정이 상당히 힘들고 여기까지가 50%쯤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빙산의 9각을 먼저 잡아야 한다.
6하원칙에 의거하여 처음--중간--끝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과정에서
주제가 있는가? 주제가 잘 표현되었는가? 주제와 표현된 것이 가치가
있느냐? 가 문제이며 이것은 연극과 모든 예술의 비평기준이기도 하다.
① 견해 : 왜 나는 이 작품을 쓰려고 하는가? 작품쓰는 의도 즉 '주
제'를 말한다.
주제(Subject),테마,메시지의 개념이다.
창작을 시작할 때 한 사건을 접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로
부터 시작(제재로부터) 하거나 어떤 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 견해
(의도)가 해명되지 않았을 때는 소재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고 견해를 나
타내기 위한 적절한 제재가 빠졌을 때는 관념주의의 우려가 있다.
소재로부터 출발하더라도 견해를 밝혀야만 하고 견해가 있을 때도
소재를 발견하여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제 1단계로서 견해, 제재, 스토리가 3위일체 되어야 좋은
작품이 태어난다.
작가의 세계관,사회관,인생관과 함께 쓰고자 하는 "무엇"을 나타내
야 한다.
극작의도를 나타내기 위한 첫번째 장치가 '견해'다
② 전제 :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명제를 말한다.
무엇이 구축되었다면 이제는 그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즉 무엇을 작품화 하기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하나
의 실험을 하기 전에는 우선 명제를 염두에 두고 한다. 마찬가지로 극
도 하나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극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명확한 방향에
대한 문장이 필요하며 이러한 전제는 긴작품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는
성질을 갖는다.
'인형의 집'에서는 '거짓(불평등한 관계)은 이별을 가져온다'이다.
'무자비한 야심은 파멸을 불러 일으킨다'가 맥베드의 전제이다.맥
베드는 무자비한 야심가로 끝은 파멸하는 것이고 중간은 파멸해 가는
과정이다.
전제는 '무엇'을 작품화 하기위한 장치이다.전제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이다.
견해가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전제가 드러나면 스토리의 상당부분이
완성된다.
③ 소재(제재) : 이야기할 제재,가공되지 않은 이야기이다.실험을 하려
면 원료가 필요하다. 제재는 그 원료에 해당하는 것이다. 언제,어디서
(배경),누가(성격,등장인물),무엇을 어떻게(사건),왜(동기) 견해와 소재와
스토리는 3위일체이며 극작 모티브로써 시작은 어떠한 경로이든 상관은
없다.
스토리화하는 과정은 다를 수 있다.무엇을 말하고 싶다는 의
지(견해)로부터 시작하거나 한 사건을 보고 그것을 표현해 보고 싶었을
경우(제재)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소재주의에 빠지면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다. 견해로만 치
달을때는 관념주의에 빠지질 위험이 있다.견해와 소재가 스토리와 맞아
떨어질 경우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구체적인 사건이 필요하다.
여러 사건을 수집하고 탐구한다.(견해에 입각한 자료)
시,소설,사진,산문,실제사례등등 하나의 사건을 뽑는 것이 필
요하다.
④ 중추: 스토리화되면 극일 수 있는 것,'중추'가 나온다.중추는 행동
으로 맥락으로 대사로 이어진다.'토끼의 간'의경우 '나는 토끼의 간을
찾는다'가 중추이다.삼일치(시간,공간,사건이 동일)뿐만 아니라 연극에서
는 하나의 행동뿐이다.
견해,전제,제재의 탐구를 통해 중추가 형성된다.
⑤ 스토리화
* 플롯화를 위한 예비작업 : 목적,동기,장애,기술을 가지고 스토리를
구체화시켜야 한다.
목적 : 무엇을 하려고. 예) 별주부는 토끼의 간을 구하려고
동기 : 왜? 출세,명예,사랑을 위해서.
장애 : 못하게 하는 것.
기술 : 야비하게,성실하게,헌신적으로.
여기서 동기는 충분해야 하며 (타당성의 문제),목적은 아주 구체적
이어야 하고 기술,장애는 예측불허의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보통 동기
나 목적은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나 그것이 곧 작가의 이념을 보
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 렌포드 윌슨의 2인극 "Talley's folly" 의 경우
연극은 1944년 7월 저녁에 시작된다. 마흔 두살난 회계사 매트는 특
별한 목적이 있어 세인트 루이스에서 미주리의 작은 레바논 마을에 왔
다. 서른 한살된 간호보조원 샐리가 그와 결혼해 주도록 설득하기 위해
서이다. 그의 동기 즉 샐리에 대한 그의 사랑은 확실한 것이다. 지난 짧
은 로맨스 이후 일년내내 그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썼다.(그래서
그녀는 편지를 쓰지 말라는 답장을 써왔다.) 그는 그녀가 일하는 병원으
로 그녀를 방문했다. (그녀는 매번 그를 피했다.) 바로 그날 외로움과 샐
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매트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중요한 사명을
띠고 나와서 레바논으로 곧장 운전해 가서는 샐리를 찾으려고 그녀의
오빠와 만났다.
그러나 매트가 직면한 가장 큰 장애는 샐리 그녀였다. 고집세고 자아
보호적이지만 노처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샐리는 그녀 자신에게
조차 자기가 매트를 사랑한다는 것을 용납치 않는 것이다. 그녀는 매트
에게 그녀를 떠나 그날밤 세인트 루이스로 떠나라고 말했다.
그녀를 꺾고 그 둘 사이의 장벽을 넘기 위하여 매트는 다음 기술을
발휘한다. 농담처럼하여 샐리가 지난 여름의 짧은 로맨스르 기억하도록
유도한다. 그녀의 외로움과 노처녀가 되는 두려움에 호소해 본다. 그녀
가 그를 유혹하기 위해 새옷을 입고 있었다고까지 말한다. 결국 그는
그녀와 직접 대결을 하여 마침내 연극의 끝부분에서 매트는 샐리가 그
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실제 이유를 대면서 그녀를 몰아 세
운다. 그리하여 두 외로운 사람들은 그날밤 함께 하게 되고 갈등은 해
소된다.
2)플롯(구상) : 이야기 전개방식이란 뜻이다.
플롯이란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까 하는 기초공사,이야기
전개방식이다. 플롯에서는 하나의 중추를 여러가지 행동으로 엮어 나간
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작품의 핵심으로 보았으나 현대연극은 '성
격'에 핵심을 두고 있다. 등장인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면 되고, 플
롯을 과도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논리도 있다. 어쨌든 성격이냐,플롯
이냐를 떠나 일정하게 과학적 법칙이 관철되고 있다. 보통 플롯의 전개
를 갈등-전환-위기- 절정-결말로 본다.
'위기'란 갈등이 사라지기 전이며 갈등이 사라지거나 처음 시잣한 때
의 본질이 바뀔 때를 '절정'이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작품에는
하나의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① 제목을 정한다(가제목) : 제목을 미리 정해놓음으로서 무엇을 쓰려
는지를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다.
② 제목을 정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 경우가 있다.
등장인물을 제목으로 하는 경우 --- 심청전,놀부전등
사건이 진행되는 공간을 제목으로--- 벚꽃동산,전함포템킨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을 제목으로--- 파업전야
중심반영체(central reflect)를 제목으로 하는 경우--- 마지막 수업,고
도를 기다리며 뭉뚱그려진 이념으로 제목을 정하는 경우 --- 전열,1990,
③ 인물 : 중심인물을 6명 정도 정한다. 유형화된 6명의 인물의 성격
을 뚜렷하게 그린다.
중심인물과 주변인물을 설정하여 구체화 시켜낸다.
④ 갈등 : 중심 갈등,방계갈등등의 내용잡기
연극은 갈등이다라고 할만큼 중요한 것으로 인간과 자연,인간과
인간,인간과 사회,인간내부의 갈등이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느냐
에 연극의 생명이 있다.
사람,사물이 그 인물에게 못하게 하는 것을 그 인물이 원하는 것,
그것은 사람이거나 사물,장소,이념일 수도 잇다. 한편 갈등하는 두 인물
은 서로 친한(긴밀한) 관계여야 한다. 대부분의 극에서 '원하는 것'이 구
체적이지 않고 갈등구조가 미약하게 드러난다.
⑤ 장면의 순서를 정한다 : 갈등, 전환, 위기, 절정, 결말(위기,갈등의
내용이 변하는 마지막 접점)
3)컨스트럭션(구성) : 구성이란 한마디로 말해 결정한 장면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등
의 장면을 구축한다.
① 장면구축 : 장면을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낼 것인가를 결정함.
작품의 골조를 만들어 주는 작업.
② 구축된 장면을 검토하고 충분한 자료를 참고하여 재점검한다.
③ 가족이나 개인,사회의 의식들을 구체화한다.
④ 중심인물의 성격 : 점액질,다혈질등의 성질뿐 아니라 직업,사회적
지위 나이,이름과 이미지,신체구조,다른 인물과의 관계의 총체.
⑤ 다양한 장면으로의 분할
4)대사쓰기
처음부터 대사를 쓰려 하지 말고 맨 처음 장면과 끝 장면부터 쓰고
꾸준히 1)~3)까지의 앞단계를 튼튼하게 다진 다음 대사를 처음부터 끝
까지 쓴다.
1차대본 쓰고 수정하고 2차대본 쓰고 수정하여 여러번의 대본작업
과정을 거치면 보다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연극의 힘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응축되어 있는 문제의식을 표현
하는 달구어진 힘이 있어야 한다. 연극현실에서 문제는 작품이며,작품을
고민해야 할 대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기능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추천교재 : 희곡작법 (청하)
극작가 워크ㅅ법 (신원출판사)
시나리오작법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구조론 (영화진흥공사)
"선생님! 뭐 하세요?"의 창작과정
("선생님! 뭐하세요"는 1993년 연극교사모임이 공동창작하여 공연한
작품입니다.)
1. 견해
지금의 교육현실은 비인간적이다. 학교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철저히
지배하는 싸움터이다. 냉혹한 현실에 잃어버린 꿈과 사랑은 더더욱 사
회를 비인간적우로 만들며,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아무런 반성도 없
이 서로를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교사는 누구보다도 먼저 문
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어야 하는데도 잘못된 현실에 회피하며 순응,동
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교육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필
요한 것은 적자생존의 논리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다.
2. 전제
잘못된 열정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3. 줄거리
현재의 학교에서 30대의 남자교사가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입시위주
의 교육을 열심히 지도하다 자신의 교육이 잘못임을 느끼고 자신의 교
육방법을 부정하게 되는 이야기.
4. 작품을 만들기까지
홍경남
4월부터 화요일마다 연극 공부를 하자고 모인 우리들은 본격 연극
을 해본 적이 없는 나이먹은 풋내기들이었다. 이미 나온 단막극 정도를
하나 골라서 이른 바 '워크ㅅ'이라는 모양으로 공연을 한 번 해 본다면
연극의 모든 과정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던 우
리에게 장소익씨는 창작을 제의했다. 이 나이에 굳을대로 굳은 머리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어쨌든 시작은 되고 말았다.
첫번째 관문은 스토리화(이야기 만들기) 과정이었다. 소재를 생각해
오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무성했다. 이야기
는 모아지지 않고 단지 교사의 이야기를 하자는 정도의 합의로 끝났다.
또 숙제가 주어졌다. 견해와 전제, 육하원칙에 따른 줄거리를 정리해
오라는 숙제였다. 견해를 쓰려면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
해야 되고 줄거리가 견해에 맞게 전개돼야 한다. 전제는 길고 많은 대
사와 철학적 입장이 담긴 줄거리를 단 한마디로 압축시켜내는 것으로
장소익씨는 '맥배드'의 전제는 '무자비한 야심은 파멸을 불러 일으킨
다.'라는 식의 무수한 예를 들어 보였다.
교육이란 이름이 붙은 책을 모조리 뒤져 보아도 연극으로 만들만한
이야기가 찾아지지 않았다. 이상석 선생님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말하자 숙제를 못해 난감해 하던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야기의 자세한 전개에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면서 이
야기의 결말부에 행동의 변화를 어떻게든 정리하도록 끌어냈다. 처음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방향이 달라져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만이 교육
의 최선이라 믿고 입시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던 교사,를 주인공으로 잡
고 뼈대를 만들었다. 또 논의 끝에 '잘못된 열정은 자신을 부정하게 만
든다.'로 전제를 정리하며 아우성을 쳤다.
다음 단계는 '플롯화' 과정이다.여기서부터는 더 힘들어 졌다.여름방
학이 되고 몇 사람이 연수에 들어가면서 모임이 어려워져서 세 사람이
집중적으로 만났다.이야기를 목적,동기,기술,장애로 구체화해가는데서 부
터 보조갈등을 설정하는 일,가제목을 정하는 일,모두가 쉬운 일이 없었
다. 나와 백인식 선생님과 진헤경 선생님은 주안역 앞의 커피집에서 해
온 숙제를 늘어 놓고 몇 시간씩 씨름을 해서 작품의 중추를 '대학생을
만든다'로 잡고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해 보았다.
그런데도 경험이 없는 탓인지 다음에 모여서 숙제해 온 것을 풀어 놓
으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사뭇 달랐다.문제는 소설에서처럼 읽혀지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대에서 보여지는 이야기여야 하니 장면장면이 모두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그런 것에는 정말 익숙하
지 못했다. 인물을 만드는 것도 간단하지가 않았다. 인물의 이미지에 걸
맞는 이름을 짓기 위해 진선생님은 몇시간식 사전을 찾아가며 고생을
해왔는데 막상 이름을 보니 뜻에는 충실해도 전체 느낌이 오지 않았다.
직업과 사회적 지위,약력,체격,신체구조,나이,정열적이냐,다혈질이냐 하는
성격,다른 인물과의 관계....
선생님은 이 모두를 써보라고 주문한다. 각 장면의 뼈대를 만드는
일도 모두 주어,목적어,동사로 명확히 쓰라고 했다. 그것을 행동으로 보
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똑같은 행동이 되풀이 되면 지
루하고 재미없는 연극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여름방학이 다 끝날 무렵에야 장면의 순서를 만들어 보냈더니 다음
에는 각 장면을 모두 목적,동기,기술,장애로 만들어 보라는 전화가 왔다.
또 끙끙대며 며칠을 고민해서 몇 장면을 써 갔더니 선셍님은 고개를 갸
우뚱하며 "이게 아닌데..."하는 것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모두 힘들었다.모일 때마다 식은 땀을 흘렸고 '동사 하나 찾아 삼말리'
를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우리가 쓴 것은 대사로 처리되야 할 것
까지 시시콜콜 많은 분량으로 쓴것이고 선생님은 "이것은 대사로 처리
할 수 있다. 각 장면의 명확한 골조를 만들라는 것이었다"라며 신랄하
게 평을 했다.
그날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은 영화이야기를 하며 웃었지만 다들 가슴
이 무거웠다."이제 틀렸어.난 못하겠어" 내 머리속에 이런 생각이 꽉 차
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슬픔이 밀려왓다. 눈물이 흘렀다.
"안돼,이겨내야돼"하며 위로받고 싶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지만 그
날따라 한사람과도 통화를 못했다.
백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다음날 넷이 모여 앉아 각자 생각해 온 것을
가지고 함께 장면을 만들고 각 장면을 다시 잘게 나눠 행동으로 만들었
다.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었다. 작업을 하고도 우
리는 확신이 서지 않았고 답을 해 주시기로한 우리의 선생님이 공연 준
비에 바빠 답을 하지 않자 우리는 위험한 결정을 했다.답을 기다리지
말고 대사를 쓰기 시작하자는 결정이었다.
방학도 끝났고 처음 일정보다 너무 늦어져 공연이 어려워 질 지도 모
른다는 우려에서 되든 말든 해 보자고 한사람이 두 장면씩 나누어 맡았
다. 다음 모임에서 써온 사람은 백선생님과 나 뿐이었다.그래도 백선생
님이 많은 부분을 해와서 그럭저럭 1차대본이 만들어졌다. 1차대본을
본 우리의 선생님은 무려 열네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같은 이야기
가 지루하게 되풀이 된다든지 등장인물의 성격에 일관성이 없다든지,전
개,위기부에서 절정부로 넘어가는 연결부가 빠졌다든지 하는 중요한 문
제점들이었다.
1차대본을 놓고 빠진 연결부를 채우는 일이 막막했고 쳐다보기가 겁
났다.재구성을 제대로 못한 체 다음 모임이 되었을 때 백선생님도 1차
대본 대본을 손질해 왔는데 오히려 전보다 못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백
선생님도 이제 많이 지쳤다.풀이 죽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떻게든 해
내야 한다. 어떻게든... 다음날부터 나는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형편없는 졸작이 나오더라도 해 보겠다며 이를 악물며 온 몸
에 열을 내며 등에 땀을 흘리며 씨름을 했다. 빠진 부분을 채우고 불필
요해 보이는 부분을 삭제하고 불완전하게나마 재구성을 해서 모임시간
에 늦어서 복사를 해서 대본을 돌렸다.대본을 돌리면서 나는 자꾸 부끄
러웠다. "몰라,이건 마음에 들지않아.하지만 어쩌지?"하며... 그날은 중학
생도 몇이 와서 함께 대본을 읽었다.
다 읽고나서 우리의 선생님은 "이제 그런대로 됐어요"라고 했다.아....
나도 모르게 길게 높게 탄성인지 울부짖음인지를 내뱉었다. 그리고 나
서 한번 더 재구성과 삭제를 했다.
이것이 우리의 창작과정이다.극작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숱한 어려
움 속에서 아프고 지치고 밤잠도 반납하면서 끝도 없는 싸움을 하고 있
는 우리의 젊은 선생님 장소익씨는 대체 무슨 배짱일까 하는 생각도 들
었다.
그런데 막상 대본이 나오고 연습에 들어갈 무렵 장소익씨가 극단의
공연 기획을 맡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이 되어 공연의 연출은 김병균씨에
게로 넘겨졌다. 처음 우리는 어색하게 만났지만 이번 선생님의 열정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날이 갈수록 느껴졌다. 배역을 정하고 한 주에 한
번 만나던 모임을 매일같이 연습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과연 될까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모두들 어려운 사정이면서도 활기차고 열심이었다.
8장의 장면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보이던 연출가와 배우의 땀흘리
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감정이 잡히지 않으면 2층까지 뛰어 내
려 갔다 와요!" 신문지를 찢어서 온 방에 흩어 놓고 "이걸 바다라고 생
각해요""자,엄마가 보고 싶어요.내가 엄마예요.날 봐요" 연출가도 뛰고
배우도 뛰고,울고,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의 가슴도 뛰고,울음이 차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한번도 마음놓고 술자리를 갖지 못했다.전철 막차 시간에 밀
려,다음 날 수업 걱정에 밀려 충분히 이야기도 못했다.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힘들면서도 왜 이렇게 기쁘지,백선생님이 학교
가 끝나자마자 나와서 공연 신고하고 포스터 맡기고 뛰어다니는 기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에 올리는 우리의 무대는 거창하고 훌륭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
다.미숙하나마 우리의 고민의 결정체이자 우리의 땀의 결정체라는 것은
분명하고 그것은 우리 학교 현장의 한 방향을 열어갈 단초일 수 있고
우리가 앞으로 해나갈 일과 삶의 자세를 가름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는 것을 믿는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해주신 연출가 김병균씨,장소익
씨,모든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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