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로서의 작별 인사

작성자24 홍해인|작성시간26.06.08|조회수120 목록 댓글 5

안녕.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벌써 유월입니다.
겨울의 끝을 알리는 게 우리 연극인 것 마냥, 연극이 끝나자 봄이 찾아왔던 것이 분명히 기억나는데
시간이 어느새 여름까지 내달렸네요.
추위가 기억이 되는 이 시간동안
저는 느릿하게 우리의 연극이 나에게 어떻게 남을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남아 제 손끝을 건드리면 그 솔직함으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인사가 많이 늦어졌네요.
어쩌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여러분의 연출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공연까지 모두 끝난 후,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온갖 감정이 몰려와 머리 속이 울렁거릴 거란 기대와 달리
무언가가 휩쓸고 지나간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잔잔했거든요.
이것이 잘 끝났다는 신호인 건지, 아님 내가 아직 끝났다는 실감을 못하는 건지,
멍해진 머리를 이끌고 움직이다 보니 온몸이 욱신욱신 아파왔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제가 몇몇 감정들은 몸으로만 오거든요.
그러면서 이 연극을 소화시키는 것도, 이 긴장과 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히 정리되어 떠날 때가 되면, 내 몸에 무엇인가 남기고 가겠지 라는 생각으로 저는 연극이 끝난 후의 삶을 일구어갔어요.
그 일상은 연극을 할 때보다 대부분 평온했고 대다수 지루했습니다.
우리의 열정과 열의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순간의 한복판에 있던 제가 참 신기하고, 낯설게까지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연출을 하면서 연극을 생각하며 살아가는게 참 즐거웠고 연극을 위한 노력들이 대부분 기꺼웠어요.
그랬던 그 때의 나, 어떤 것에 완전히 몰입해 달려갔던 나를 떠올리면,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 괜스레 초라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보다 더 마음에 남는 건 그 때의 나를 지지해줬던 생각입니다.
믿음 말이에요.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괜히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저는 중얼거렸습니다.
믿자. 나를 믿고, 함께 해준 사람들을 믿고, 우리가 해온 시간들을 믿고, 노력한 시간들을 믿자.
그러면 신기하게도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저를 그 시간으로 데려가요.
나라는 개인에게서 발현된 일이 우리의 일이 되어
이젠 정말 나의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기쁨.
성실히 믿음을 전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일이라는 걸 이토록 강렬하게 느낄 줄이야.
연극은 참 신기하고 아름다워요.
 
그러니까, 우리의 연극은
언젠가 품 속에서 작은 새가 떠나듯 인사할 거란 제 예상과 다르게
늘 저에게 있었던 거에요.
내가 만들고 싶었던 연극이라는 바다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결국 제 마음속 바다에 있었던 거에요.
난 그 바다만을 퍼올릴 수는 없지만 그 바다를 분명히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거에요.
 
 
어느새 새로운 여름입니다.
추위가 기억이 된 지금, 여러분에게 지난 겨울은 어떠한가요?
저는 무엇도 강요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무언가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사랑으로 얽히고 싶거든요!
어디서든, 잘 지내길 빌어요.
안녕.
 
+) 연출 인사가 올라갔긴 하지만 그래도 스케치 쓸 사람은 써줘요 나는 사진도 별로 없고 도저히 재능이 없는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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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25 남현 | 작성시간 26.06.08 홍해인 당신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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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24ㅤ송하연 | 작성시간 26.06.08 해인아 난 사실 연극을 하면서도 연극이란 게 뭔지 잘 몰라 연기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연극반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인데 이상하게 너라는 사람은 보면 볼수록 연극적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한 것 같애
    연극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보니 이유를 단정하긴 어렵지만? 어떤 감정은 몸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열정은 믿음을 매질로 박동한다는 걸 너는 항상 보여줘왔는걸... 네가 이 글을 쓰지 않았어도, 그러니까 즉 구태여 한 겹 더 솔직해지지 않았어도 다 알 수 있었을 거야. 너라는 사람을 보면 진솔한 연극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는 거쥐•••

    연극을 준비하는 시간동안 너는 한결같이 감정에 솔직했고 우리의 시간과 잠재력을 믿어줬어 그 덕에 우리 모두가 각자의 열정이 아닌 연극을 위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걸거야
    우리네 남은 생애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많은 동료와 열정을 쏟을 기회는 사실 앞으로 얼마 없겠지? 그치만 네 말마따나 우리의 연극과 우리의 열정은 마음 속 어딘가의 바닷속에서 쭉 빛나고 있으면 좋겠다
    고단하고 야속한 삶에서 우리는 그 빛으로 이어져 또 만나고 울고 웃다가 또 별 거 없이 살아가자 홍해인 그리고 다스오케스터 님들아 사랑한다
  • 작성자22 김희성 | 작성시간 26.06.09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에서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럼에도 그 대상을 기꺼이 이해하고 해석하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해인이 너는, 그리고 우리 공연진 모두는 서로를 많이 사랑했구나를 느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건, 겨울을 나는 사람에게도 봄이 있음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주기 때문일거야.
    각자의 겨울 속에서 서로에게 봄의 존재를 이야기해준 우리 공연진과 연극반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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