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밭
요즘은 시간이 나면 걷는 데에 시간을 낸다.
천천히 걷다 보면 잡다한 고민을 잊기도 하고
결론을 얻게 되는 때도 있다.
한 달 전 허리를 삐끗하여 몇 주 고생한 이후로는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누워서 10여분 다리와 허리를 풀고난 후
벌떡 일어나지 않고 몸을 굴려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그리곤 민구(개)와 함께 30여분 산책을 한 후 아침을 먹는다.
엉킨 실타래 같던 일의 해결점을 찾고 돌아오는 길은
가슴 속을 드나드는 바람 소리를 안고 돌아온다.
비어 있다는 것은 바람길을 내어주고 있다는 말이다.
바람이 많고 강한 제주에서는 농작물을 보호하기위해서
돌로 밭담을 쌓는다.
돌과 돌 사이 공간을 내어 바람길을 낸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다.
동양화는 여백의 미가 있다고 흔히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동양화는 대개 수묵으로 그린 산수화를 지칭한다
무엇으로 꽉 채워진 산수화보다는
여백이 남아있는 것이 마음의 안정을 준다.
좀 모자라고 아쉬운 여백이 있으니
숨통트이며 사는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그립고 아쉬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콘크리트로 꼭꼭 둘러쳐진 곳이 아니라
앞뒤가 툭 터진 들판이
마음의 안정을 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벽을 허물고 창을 내면
주변의 산과 강이 모두 내 정원이 된다는
공광규 시인의 글 [담장을 허물다]처럼
바람길을 내어준다는 것은
내가 여유로운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다.
어제 신부님 강론 중에 빈 밭이야기도 해 주셨다.
밭에 곡식이 가득찬 밭은 다른 것을 심을 공간이 없고
꼭 필요한 곡식도 심지 못한다.
또한 밭도 쉼이 필요한데
수확한 후 계속 씨를 뿌리고 경작을 한다.
혹사를 시킨 밭은 수확도 적다.
그래서 밭도 일부 공간을 남겨두어야
꼭 필요한 작물도 심을 수 있고
쉬면서 더 많은 수확을 낼 준비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든 꽉 채우려고 욕심을 낸다.
비어있으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어제 고구마를 캤다.
9월 말쯤 수확해야 되지만 다른 씨앗을 심을 공간이 없어
억지로 공간을 마련하려한 것이다.
아직 때가 안된 고구마를 캐보니 씨알도 작다.
나의 이러한 행동을 생각해보니
우리 마음의 밭도 빈 공간이 있어야
주님이 들어오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세상일로 가득 채우다보면 ...
주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 생각난다.
외딴 마을에 빈집이되고싶다
글: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마을에
빈집이 되고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날
문을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맘에드는데...
하고 나직히 속삭이며
미소 지어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