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프랑스 루르드(Lourdes) 의 성모발현
[성모발현]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베르나데트에게 전부 18번 발현하셨으며,
그 후에 루르드는 가톨릭 순례지이자 기적의 치유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가장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성모발현 150주년을 기념하는 2008년 2월 11일에 열린 축제에는
45,000 여명의 순례자들이 야외미사에 참석한 바 있다.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베르나데트에게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한 자'(the Immaculate Conception)라고 일러주었고
가톨릭 신자들은 그 부인이 성모 마리아라고 믿게 되었다.
성모님께서는 전부 18번 발현하셨으며
1859년에는 수 천명의 순례자들이 루르드를 방문하기도 했다.
성모발현이 있은 지 3년 11개월이 지난
1862년 1월 18일 로마교황청으로부터 공인을 받았다.
[목격자 베르나데트]
1858년 2월 11일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여동생 투와네트와
이웃 친구 잔느 아바디에와 함께
빵을 구우려고 땔감과 빵조각을 주우러 갔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동굴 가까이에 있는 물에 발을 담그려고 할 때에
두 번의 거센 바람소리를 들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나무나 숲은 흔들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베르나데트는 동굴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보았고
자신처럼 작은 소녀를 보았다.
그 소녀는 전부 하얀 옷을 입고
허리에는 파란색 벨트를 묶고 있었으며
양 발에는 자신의 묵주와 같은 색깔인
금빛으로 빛나는 노란 장미가 있었다.
베르나데트는 이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지만
여동생 투아네트가 어머니에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부모들의 엄격한 추궁이 있은 후에 베르나데트와 여동생은
이 이야기 때문에 부모들로부터 심한 체벌을 받아야만 했다.
3일 후에 베르나데트는 여동생과 함께 동굴로 되돌아가서
성모발현이 나쁜 징조가 아닌지를 시험하려고 성수를 가져왔지만,
성수가 엎질러지자 이러한 비전은
점점 더 베르나데트의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르기만 했다.
소문에 의하면 베르나데트 친구들은
그녀가 어떤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볼 때마다 두려웠다고 했지만,
친구들이 마을로 되돌아간 후에도
베르나데트는 황홀경의 상태에 빠져 있고는 했다.
2월 18일 동굴에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베르나데트에게
2주일 동안 동굴에 와보라고 하면서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지만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과 시당국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베르나데트는 부모님과 경찰청장 자코메로부터
다시는 동굴에 가지 말라는 제재를 받았지만,
그녀는 다시 또 동굴에 가고는 했다.
2월 24일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죄인들이 개종할 수 있도록 기도와 참회를 할 것을 당부했다.
2월 25일 성모님께서는 베르나데트에게
"땅을 파서 샘물을 마셔보라" 고 말씀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베르나데트는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실망하게 되었지만,
바로 그 샘물이 솟아 흐르는 개천은
곧바로 순례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흙탕물이었지만 점점 더 투명하고 맑은 물이 되었다.
[기적의 치유]
바로 이 물이 갖가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으며 수많은 기적의 치유가 보고되었다.
1860년 베르게 교수는 이러한 기적의 치유 중에서 일곱 가지의 경우는
그 어떤 의학적인 지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ㄷ는 점을 확인했다.
맨 처음으로 "기적의 치유"를 받은 것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사람은 여성이었으며
그녀의 오른 손은 사고로 인해 기형으로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 이후 '기적의 샘'에서 난치별을 치유한 경우는
처음 55년 동안 적어도 4,455건이 기적의 치유로 인정받았다.
몇 가지 기적은 단기간 내에 일어나거나
심지어 거짓 장난으로까지 발생하게 되어
가톨릭교회와 루르드 시당국의 공무원들은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급기야 시당국에서는
동굴에 철책을 쳐서 출입금지구역에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나 엄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루르드는
프랑스에서 범국가적인 사안으로 대두되었다.
결과적으로 1858년 10월 4일
황제 나폴레옹 3세가 개입하여 동굴을 개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톨릭교회 측에서는
황제의 이러한 명령에 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굴의 지형을 잘 알고 있던 베르나데트는 어둠을 틈타
철책이 쳐진 동굴을 몰래 방문하고는 했다.
3월 25일 바로 그 동굴에서
"나는 원죄 없이 잉태한 자다"(I am the Immaculate Conception)
라는 말씀을 성모님으로부터 들었다.
4월 7일 부활절 일요일에
베르나데트를 검진하던 의사는 황홀경에 빠진 그녀가
촛불에 맨손을 올려놓았지만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7월 16일 베르나데트는 마지막으로 동굴에 갔으며
"일찍이 그렇게 아름다움 모습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루르드의 변화와 위치]
루르드는 프랑스의 남서쪽 피레네산맥 기슭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로
1858년 2월 11일 문맹인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처음으로 발생한 성모발현으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성모발현 당시에 이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마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가파른 암벽 위에 지은
견고한 감옥(까쇼)뿐이었다.
지중해가 시작되는 해방 420m에 위치한 루르드의 인구는 15,000여명이지만
매년 이곳을 찾는 5,000,000명 이상의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270개의 호텔이 들어섰으며 이러한 호텔의 숫자는
평방 km 당 파리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숫자에 해당한다.
성모발현 이전에는 여행자들이 그저 지나치고 마는
조용하고 소박한 작은 산골마을이었지만,
1858년 2월 11일 14세의 시골 소녀 베르나데트가 멀리 떨어진
마시비예 동굴(Grotto of Massabielle)에서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성모발현지로 갑자기 유명하게 되었다.
성모발현이 있을 당시 동굴의 주변은 마을주민들이
가축을 기르거나 땔감을 구하거나 또는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곳이었으며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그렇게 기분 좋은 곳이 아닌 곳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었다.
[성모발현의 여파]
해마다 3월에서 10월까지 루르드의 성모성역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몰려드는 대단위 순례자들로 붐비는 곳이 되었다.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신 동굴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탁월한 치유효과가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60년 이래 현재까지 루르드 성지에는 대략 2억명 이상이 방문했으며
가톨릭교회에서는 전부 68건의 기적의 치유가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러한 치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있어서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회자체의 권위 있는 최고기준을 적용하여 조사했으며
그 어떤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치유의 방법이 아닌
'샘물'의 기적적인 치유력만을 적용해서 조사한 바 있다.
루르드의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는 순례여행단이 조직되었고,
이러한 순례는 종종 소비를 촉진하거나
동굴에서 솟아오르는 샘물로 목욕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도 했다.
[루르드 대성당]
루르드에 건설된 우크라이나 양식의 성당에는
다섯 개의 돔이 있으며 미로슬라프 니미프가 설계했다.
비잔틴 양식의 다채로운 내부 장식은 예술가 예르지 노보시엘스키가 맡았다.
드보로 루르드의 대성당 주변을 둘러보는 데에는 약 10분 정도 소요되며
우크라이나를 기념하여
'우크라이나 8번가'로 명명된 거리에 있는 성모발현 동굴은
철도역에서 가까운 좁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성모발현에 대한 전국적인 문제에 직면한 프랑스의 가톨릭교회에서는
1858년 11월 17일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1860년 1월 18일 루르드의 로랑스 대주교는 마침내
"성모마리아께서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정말로 발현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루르드에서의 성모공경은
파티마에서 성모공경과 함께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성모상이 되었으며,
매년 4백만에서 6백만의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루르드를 방문한 교황들]
루르드에서 성모발현의 진실성은
가톨릭계에서의 믿음의 규약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모든 교황들은 루르드의 성모마리아상에 참배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 교황 비오 11세 및 교황 성 요한 23세 등은
주교의 신분으로 참배했으며,
교황 비오 12세는 로마교황청의 사절단으로 참배한 바 있다.
또한 교황 비오 12세는
1858년 성모발현 100주년을 맞아 교황의 루르드 회칙을 내렸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루르드 성지를 세 번 방문했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858년 처음으로 있었던 성모발현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8년 9월 15일 방문하기도 했다.
성모발현 이후 루르드는 전 세계의 성모상을 선도하는 지역이 되었으며
해마다 방문객들이 증가하고 있다.
루르드가 가톨릭교회에서 이처럼 중요한 장소에 해당하는 까닭에
교황 성 바오로 2세는 1983년 8월 15일과 2004년 8월 14-15일 등
루르드를 방문하여 성모상에 참배했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모발현 15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할 수 있도록
2007년 특별대사를 선포하기도 했다.
성모발현 이후 루르드는 전 세계의 성모상을 선도하는 지역이 되었으며,
해마다 방문객들이 증가하고 있다.
루르드가 가톨릭교회에서 이처럼 중요한 장소에 해당하는 까닭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8월 15일과 2004년 8월 14-15일 등
루르드를 방문하여 성모상에 참배했다.
[베르나데트의 생애]
문맹이자 산골소녀였던 베르나데트는
1858년 2월 11일 성모발현을 처음으로 목격한 후에
성모님에 대한 공경으로 수녀로서의 삶을 살다가
35세(1844.7.7~1879.4.16)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3년 12월 8일 성녀로 시성되었다.
루르드 성모성지
1858년 2월 11일부터 18번 가브드 강가 마사비엘 동굴에서
베르나데트 수비루(14세)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작은 성당을 짓고, 땅을 파서 물을 마시고,
당신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라고 하셨다.
베르나데트 증언과 기도, 회개운동. 많은 치유 기적에 근거하여
타브로 교구장은 1862년 1월 18일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로사리오 대성당
이 성당은 돔이 있는 신 비잔틴 양식으로 1881년 착공,
1889년에 완공된 후 1901년 10월 6일 봉헌됐다.
로사리오 대성당은 많은 수의 순례자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설계되어
신자석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성당 크기가 길이 52m, 너비 48m에 불과하지만
2,00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
로사리오 대성당의 외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와 밀알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돔 위에는 황금색 '천상 모후의 관'이 모셔져 있다.
고딕풍의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이 성당은
세 개의 성당이 하나의 건축물로 보이는데,
성모 마리아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한 마사비엘 동굴 위에 지어졌다
로사리오 대성당은 성모님 발현 후
30여년이 지난 뒤에 완성하여 성모님을 위해 봉헌되었다
성당은 하나같이 보이지만 서로다른 2개성당으로 되어있다
1층은 로사리오 성당
2층은 다시 2개로 나누어 동굴성당과
그위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대성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체강복
비오 10세 교황 성당
야간 로사리오 기도
성녀 베르나데트
베르나데트는 열여덟 번
가브 강가 마사비엘 동굴에 발현하신 성모님을 만난 후
1866년 느베르의 사랑의 자매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성녀는 1879년 4월 16일 35세로 선종,
1933년 시성 되었으며
유해는 부패되지 않은 채 일반에게 공개되고,
성 질다르 수녀원에 모셔져 있다
성녀 베르나데트박물관
성 조셉 성당 측에서는 30년 동안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성당 납골당에 보관하면서 애도할 수 있도록 했죠.
그리고 30년 후인 1909년 매장을 위해
수녀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관을 열게 됐는데,
놀랍게도 30년 전 모습과 똑같았던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루르드의 성모 ( Our Lady of Lourdes )
유럽 성모발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