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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잎 클로버님

[마산교구] 대산성당

작성자세잎 클로버|작성시간22.08.03|조회수41 목록 댓글 3

 

 

구한선 타대오 묘

 

 

 

구한선(타대오,1844~1866)은 리델 신부의 복사로

거제도 전교 활동을 다녀온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뛰었다. 

리델 신부가 집전하는 전례나 예식을 보조하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한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구한선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전교 활동을 다녀온 직후 1866년 봄, 경남 진주 집에서 지내던 그는

진주 관아 포졸들에게 잡혀 끌려갔다.


그는 자주 호된 문초와 매질을 당했다. 

특히 바지를 내린 채 곤장으로 볼기를 맞는 장형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착! 착!’ 두터운 나무 장이 구한선의 볼기에 내리꽂혔다.

볼기가 차츰 검붉게 멍들기 시작하더니 10여 대가 넘어가자

결국 살이 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한선은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관장이 물었다.

“어찌하여 아프다 소리를 한번도 하지 않는 게냐?”

구한선이 답했다.

 “늙으신 어머니가 문밖에 계십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앓는 소리를 듣고 기절할 것을 걱정하였다.

관장은 “어찌 그런 자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천주교를 믿을 수 있단 말이냐?” 하며 호통쳤다.

구한선은 더욱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주교는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딱 죽지 않을 만큼 맞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이었을까. 

온갖 형벌로 만신창이가 된 구한선은 석방돼 집으로 보내졌다.

관아 안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관장의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구한선은

7일 동안 장독으로 앓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겨우 그의 나이 22세였다.

그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구한선의 고향은 경남 함안 근처였다. 

당시 가족들은 그의 시신을 함안 대산면 하기리에 있는

신씨들 묘소 구석에 안장했다.

박해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아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 발견된 구한선 묘는

 1977년 함안 대산면 가등산 근처 교우 묘역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2002년 5월, 마산교구는 그곳을 순교자 묘역으로 조성했다.

교구의 지원과 대산본당 신자들의 정성이 이뤄낸 결과였다.

이 묘역이 순교 복자 구한선의 유일한 흔적이다.

그 신앙의 열정을 찾아 복자 구한선 묘역으로 갔다.

 

 

 

 

 

 

함안 대산성당

 

 

무덤경당 입구

 

무덤경당

 

복자 구한선 타대오
순교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 

 

대산 성지 희망의 동산 전경 

 

제단 이곳에도 순교자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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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joseph-kim | 작성시간 22.08.04 복자 구한선 타대오에 대한 설명과 [마산교구] 함안 대산성당의 영상 감사합니다.
  • 작성자제이든 | 작성시간 22.08.04
    댓글 이모티콘
  • 작성자세잎 클로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8.0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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