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528作 보령 천북
4월 실크로드 여행을 마치며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가로지르는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기가 켜켜이 눌려 쌓인, 하나의 오래된 지층을 천천히 통과하는 일이었다.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감각은 자꾸만 먼 과거와 서늘한 현재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갔다.
우루무치에서 시작해 쿠차와 호탄을 지나 카슈가르, 그리고 파미르 고원의 터쉬쿠르칸까지 이어지는 도시는 분명 살아 있었다.
시장은 열려 있었고, 상점은 손님을 맞았다. 그러나 그 활기 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이 얇게 드리워져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고, 시선은 이방인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이내 흩어졌고, 말은 시작되기도 전에 안으로 접혔다.
호기심보다 경계가 먼저 도착하고, 환대보다 거리감이 먼저 만져지는 땅.
그 미묘한 간격 속에서 우리는 한낱 ‘지나가는 존재’임을 시리게 자각해야 했다.
사막으로 들어서자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끝없는 모래의 바다였다.
바람은 모래 위에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풍경을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막막한 아름다움 속에도 낯선 긴장은 흐르고 있었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와 가스를 실어 나르기 위해 사막의 배를 가르고 낸 사막공로.
그 길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방사(防沙) 시설들은 모래 한 줌, 바람의 방향까지 계산하며 자연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그것은 거친 대지를 길들이겠다는 인간의 의지인 동시에,
자연과 인간 모두를 정해진 틀 안에 가두려는 거대한 통제의 그물망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막을 횡단하던 어느 순간, 황금빛 모래 너머로 짧지만 강렬한 푸른 빛이 스쳤다.
그것은 실제의 색이라기보다 기억의 잔상에 가까웠다.
오래전 이 길을 지나던 상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바위산에서 길어 올렸을 푸른 보석, ‘라피스 라줄리(청금석)'의 깊은 색.
그 푸른빛은 이 땅이 단순한 황무지가 아니라 수많은 욕망과 기억이 교차하던 자리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푸른 도료가 칠해진 문틀 너머의 삶은, 사막의 모래를 묶어둔 방사 그물처럼 촘촘한 감시 속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 여정에서 가장 비현실적이었던 것은 '시간'이었다.
대지는 하나의 시계를 강요받고 있었지만, 태양은 그 시계를 따르지 않았다.
아침은 늦게 도착했고 밤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 이중의 시간.
베이징의 리듬과 이 땅의 태양이 어긋나며 생기는 그 미세한 틈은 중심과 변방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리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기준으로 묶여 있으나 실제 삶은 다른 박자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여행자의 감각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았다.
이동할 때마다 마주한 검문소와 반복되는 신분 확인,
그리고 어렵게 손에 넣은 ‘변방통행증’은 이 공간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길은 이어져 있었으나 지나는 일에는 늘 허락이 필요했다.
27명의 일행이 버스에서 기다려야 했던 그 순간들.
우리에겐 일시적인 불편이었으나 이곳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일상일 터였다.
통과는 더 이상 이동이 아니라, 경계를 확인하고 순응을 기록하는 과정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한때 이곳은 언어와 종교, 물건과 이야기가 비단결처럼 섞이던 길목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다른 질서로 정리되고 있었다.
그 질서는 철저히 관리되는 사막공로와 검문소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굳게 다문 입술과 생기 잃은 눈빛 속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가장 또렷하게 들려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27명. 각자의 시선과 속도로 이 길을 건넜던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저마다 다른 슬픔을 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설산의 눈부심을, 누군가는 끝없는 모래의 파동을 기억하겠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 한구석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무표정이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았다.
모래 위를 스쳐 간 바람처럼,
태양과 어긋난 시계처럼,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한 현지인들의 시선처럼.
모든 것은 마음 어딘가에 얇게 쌓여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지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라피스 라줄리의 그 시린 푸른빛을 떠올리며 다시 그 침묵의 층을 더듬게 될 것이다.
함께 했던 모든 분들.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또 다른 여정에서 다시 뵙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빛으로 나는 사랑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