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잃어버린 시간 되찾아 생명을 불어넣는 여행
미하엘 엔데(Michael Ende)는 ‘모모’에서 우리가 지금처럼 바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어쩌다 이렇게 바쁘게 되었는지, 계속 이렇게 바쁘게 살다 보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다정한 공동체 안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 겉보기에는 풍요롭지만 사실은 너무나 공허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 묘한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떠올리면서 아련한 향수와 막연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평화와 사랑을 주는 아이
어느 커다란 도시, 폐허가 된 원형극장 터에 여덟 살짜리 소녀 모모가 나타난다. 동네 사람들은 모모의 집을 꾸며 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며 돌보아 준다. 그리고 준 것 이상으로 큰 것을 받는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 와서 털어놓으면, 모모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고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들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도무지 울지 않던 카나리아까지 모모에게 와서는 즐겁게 지저귀게 된다. 우울한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싸운 사람들을 화해하게 만드는 모모 덕분에 이 작은 동네 사람들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찬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이 평화와 사랑은 회색 신사들 때문에 깨진다. 어쩌다 한 순간 자기 삶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에게, 바로 그 순간 나타나 성공적인 인생에 필요한 ‘시간’을 불려 주겠노라고 속삭이는 시간의 영업사원들. 사람들은 저축할 시간을 내기 위해 ‘쓸데없이’ 쓰는 시간을 악착같이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늙은 어머니 대신 장을 보고, 집안 일을 하고, 어머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 주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애인에게 매일 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앵무새를 보살피고, 영화구경을 가고, 지역 합창단에 나가고, 책을 읽거나 창가에 앉아 하루 일을 생각하는 시간을….
성공하기 위해 그렇게 ‘쓸데없는’ 시간을 저축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1973년에 나온 이 책에서 엔데는 예언자적인 통찰력으로 30년 후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그리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똑같은 집을 짓고, 숨쉴 틈 없이 일만 하고, 배식대 앞에서 음식 쟁반을 밀고 나가며 계산대에서 누가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불같이 재촉한다.
그렇게 일해서 사람들이 얻은 건 그저 조금 좋은 옷뿐,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 피곤함, 불만이 배어 있고 눈빛에는 상냥한 기미라고는 찾을 수 없게 된다. 여가 시간이 생기더라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을 찾는다.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모험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그나마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아이들 몫이었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어른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모래 한 줌, 나무토막 하나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풍요롭게 놀던 아이들은 모두 교육기관에 수용되어 기계적으로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놀이가 재미있는지,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미래에 유익한가’이다.
회색 신사들이 거둬들여 꽁꽁 얼려 놓은 사람들의 시간을 찾아 풀어 주기 위한 모모의 모험은, 너무나 흔히 쓰여 식상할 지경이 되어 버린 ‘꿈과 환상’이라는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를 황홀하게 보여 준다.
신비한 거북 카시오페이아를 따라, ‘언제나 없는 거리’를 지나 ‘아무데도 없는 집’으로 들어간 모모는 시간을 다스리는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의 안내로 시간의 근원지를 보게 된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차례차례 피었다가 지는 연못. 시간의 근원지는 그런 곳인데,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시간의 근원지를 가지고 있다. 모모의 말처럼 모든 사람의 시간은 너무나 위대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시간이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호라 박사가 알려 주는 진실보다는 회색 신사들이 소곤거리는 어두운 욕망과 두려움을 더 믿고 싶어한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참된 행복의 시간을 찾아
책 속의 사람들은 모모의 목숨 건 모험 덕분에 시간을 다시 돌려받는다. 돌려받은 시간을 가지고 의사들은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고,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히 일한다. 모두들 서로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새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책 밖의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 시간을 내기 위해 시간을 아끼지만, 막상 그 시간은 냉동고 안에서 죽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 꽁꽁 언 자기 시간을 녹이고 살려내는 모모가 돼야겠다고 작정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지만, 정작 그 여행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내가 거기에 쓰는 시간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니까! 하지만 한 번쯤 그 시간이 냉동고에서 얼어 있는 시간인지, 다채로운 색깔과 향기를 내뿜는 꽃 같은 시간인지를 되돌아 볼 일이다.
여행은 시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뒤돌아보면 불쑥 위안을 느끼고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그런 시간으로 가득 찬 여행. 올 여름에는 모모가 참된 행복의 ‘시간’을 찾아 떠났던 것처럼 그런 여행을 떠나 볼 일이다. ‘어디로’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그건 모모에게 한 번 물어 보자.
[김서정 / 동화 작가/대한항공 skynews]
잃어버린 시간 되찾아 생명을 불어넣는 여행
미하엘 엔데(Michael Ende)는 ‘모모’에서 우리가 지금처럼 바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어쩌다 이렇게 바쁘게 되었는지, 계속 이렇게 바쁘게 살다 보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다정한 공동체 안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 겉보기에는 풍요롭지만 사실은 너무나 공허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 묘한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떠올리면서 아련한 향수와 막연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평화와 사랑을 주는 아이
어느 커다란 도시, 폐허가 된 원형극장 터에 여덟 살짜리 소녀 모모가 나타난다. 동네 사람들은 모모의 집을 꾸며 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며 돌보아 준다. 그리고 준 것 이상으로 큰 것을 받는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 와서 털어놓으면, 모모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고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들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도무지 울지 않던 카나리아까지 모모에게 와서는 즐겁게 지저귀게 된다. 우울한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싸운 사람들을 화해하게 만드는 모모 덕분에 이 작은 동네 사람들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찬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이 평화와 사랑은 회색 신사들 때문에 깨진다. 어쩌다 한 순간 자기 삶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에게, 바로 그 순간 나타나 성공적인 인생에 필요한 ‘시간’을 불려 주겠노라고 속삭이는 시간의 영업사원들. 사람들은 저축할 시간을 내기 위해 ‘쓸데없이’ 쓰는 시간을 악착같이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늙은 어머니 대신 장을 보고, 집안 일을 하고, 어머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 주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애인에게 매일 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앵무새를 보살피고, 영화구경을 가고, 지역 합창단에 나가고, 책을 읽거나 창가에 앉아 하루 일을 생각하는 시간을….
성공하기 위해 그렇게 ‘쓸데없는’ 시간을 저축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1973년에 나온 이 책에서 엔데는 예언자적인 통찰력으로 30년 후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그리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똑같은 집을 짓고, 숨쉴 틈 없이 일만 하고, 배식대 앞에서 음식 쟁반을 밀고 나가며 계산대에서 누가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불같이 재촉한다.
그렇게 일해서 사람들이 얻은 건 그저 조금 좋은 옷뿐,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 피곤함, 불만이 배어 있고 눈빛에는 상냥한 기미라고는 찾을 수 없게 된다. 여가 시간이 생기더라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을 찾는다.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모험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그나마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아이들 몫이었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어른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모래 한 줌, 나무토막 하나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풍요롭게 놀던 아이들은 모두 교육기관에 수용되어 기계적으로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놀이가 재미있는지,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미래에 유익한가’이다.
회색 신사들이 거둬들여 꽁꽁 얼려 놓은 사람들의 시간을 찾아 풀어 주기 위한 모모의 모험은, 너무나 흔히 쓰여 식상할 지경이 되어 버린 ‘꿈과 환상’이라는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를 황홀하게 보여 준다.
신비한 거북 카시오페이아를 따라, ‘언제나 없는 거리’를 지나 ‘아무데도 없는 집’으로 들어간 모모는 시간을 다스리는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의 안내로 시간의 근원지를 보게 된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차례차례 피었다가 지는 연못. 시간의 근원지는 그런 곳인데,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시간의 근원지를 가지고 있다. 모모의 말처럼 모든 사람의 시간은 너무나 위대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시간이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호라 박사가 알려 주는 진실보다는 회색 신사들이 소곤거리는 어두운 욕망과 두려움을 더 믿고 싶어한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참된 행복의 시간을 찾아
책 속의 사람들은 모모의 목숨 건 모험 덕분에 시간을 다시 돌려받는다. 돌려받은 시간을 가지고 의사들은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고,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히 일한다. 모두들 서로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새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책 밖의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 시간을 내기 위해 시간을 아끼지만, 막상 그 시간은 냉동고 안에서 죽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 꽁꽁 언 자기 시간을 녹이고 살려내는 모모가 돼야겠다고 작정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지만, 정작 그 여행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내가 거기에 쓰는 시간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니까! 하지만 한 번쯤 그 시간이 냉동고에서 얼어 있는 시간인지, 다채로운 색깔과 향기를 내뿜는 꽃 같은 시간인지를 되돌아 볼 일이다.
여행은 시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뒤돌아보면 불쑥 위안을 느끼고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그런 시간으로 가득 찬 여행. 올 여름에는 모모가 참된 행복의 ‘시간’을 찾아 떠났던 것처럼 그런 여행을 떠나 볼 일이다. ‘어디로’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그건 모모에게 한 번 물어 보자.
[김서정 / 동화 작가/대한항공 sk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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