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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소설 해설 및 서평: 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작성자paradox|작성시간03.11.24|조회수1,133 목록 댓글 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어느날 나는 경제적 핍박자들이 몰려사는 재개발 지역 동네에 가 철거반―그들은 내가,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세입자 가족들과 그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데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담을 쳐부수며 들어왔다―과 싸우고 돌아와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주머니에 넣었다. 난장이 연작은 그 노트에 씌어지기 시작했다.”

작가 조세희(56)씨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관한 어느 회고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1975년 겨울부터 발표되기 시작해 78년에 단행본으로 묶인 이 연작은 최인훈씨의 <광장>과 함께 올 초 1백쇄를 넘어섰다. 이는 이 책이 20년 가까운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기고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이 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합쳐 12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이 연작의 어떤 점이 그토록 독자를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문장과 감수성으로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그늘진 삶을 그렸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다.

전쟁의 상흔과 아픈 기억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60년대 후반부터 작가들의 시선은 진행중인 삶의 불구성을 향하기 시작했다. 황석영씨의 <객지>와 같은 예외를 빼고는 아직 노동자의 삶이 작가적 관심의 중심으로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도시빈민들의 처지는 농민문제와 더불어 60, 70년대 작가들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였다.

난장이 연작의 의의는 대규모 공장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억압과 착취의 실태를 정면으로 문제삼았다는 것과 함께, 도시빈민을 다루되 기존의 사실주의 내지는 자연주의적 기법 대신 모더니즘의 방법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현실의 모순을 천착하면서도 사실주의의 획일성을 피하려는 실험과 갱신의 정신이 이 작품을 진정 새롭게 만든 것이다.

연작의 중심인물들은 물론 난장이 일가다.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의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던 40대 후반의 난장이와 그 부인, 영수 영호 영희 세 남매로 구성된 일가에게 철거라는 위기가 닥친다. 경제적 근거가 전무한 그들이 시쳇말로 `딱지'라 불리는 아파트 입주권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거리에 나앉는 과정이 표제작의 대강을 이룬다. `뫼비우스의 띠'의 꼽추와 앉은뱅이 역시 난장이 일가와 같은 처지를 당한다. 딱지장사로 돈을 챙기는 사내로부터 영희가 딱지를 되찾아온다든가 꼽추와 앉은뱅이가 그 사내를 살해한다는 등의 설정이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주제를 선명히 부각시키는 효과는 부인할 수 없다.

도시빈민의 자식들은 노동자로 편입된다. 까만 쇠공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간―벽돌공장 굴뚝 속으로 떨어져 죽은 난장이의 자식들은 각각 은강 자동차, 은강전기 제일 공장, 은강방직 공장에 취직한다. 작가의 시선도 그 공장들이 있는 서해안 항구도시 은강으로 옮겨간다. `기계 도시' `은 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같은 작품들이 은강을 무대로 삼고 있다.

“우리 삼남매는 죽어라 공장 일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산 공헌도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네 명의 가족을 둔 그해 도시 근로자의 최저 생계비는 팔만삼천사백팔십원이었다. 어머니가 확인한 삼남매의 수입 총액은 팔만이백삼십일원이었다.”

죽어라 일을 해도 사정은 나아지질 않는다. 야근 시간에 졸다가는 반장이 들고 다니는 옷핀에 팔을 찔린다.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움직이는 노동자들은 해고돼 블랙 리스트에 오르고 어딘가로 끌려가 조사를 받으며 어두운 골목에서 뭇매를 맞는다.

노동자들의 삶의 실상을 그리자면 그들의 적대 계급인 자본가와 그 주변 세력을 등장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은강 그룹의 소유주 일가와 그들의 수족으로 기능하는 율사가 그들이다. 거기에다가 신애와 그 동생으로 대표되는 양심적인 중산층, 윤호의 가정교사였다가 노동자로 `위장취업'하는 활동가 지섭과 같은 행동하는 지식인이 더해져 소설은 한 사회의 전체상을 그릴 수 있게 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은 영수가 은강그룹 총수의 동생을 살해하는 사건으로 귀결된다. 작가의 메시지가 그처럼 극단적인 마무리에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작가의 의도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었으리라. 작가의 진짜 대안은 아직 살인을 저지르기 전 영수의 시점으로 이렇게 표현된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영수와“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은강그룹 총수의 아들 경훈 중에서 작가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문에 속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지배적인 특징의 하나는 선과 악, 지배와 피지배, 강자와 약자 사이의 구분이 선명하다는 점이다.

동화적 구도라고도 할 수 있을 단순명료한 이분법이 군더더기 없이 짧고도 냉정한 번역투 문장에 얹혀 있는 데에서 이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는 풍겨나온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연작이라는 <난장이…>의 장르상 특징 역시 주목을 요한다. 한국 소설사에서 1970년대를 기술하면서 연작이라는 양식을 언급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윤흥길씨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이문구씨의 <관촌수필> <우리 동네 0씨>와 함께 <난장이…>는 70년대 연작소설의 백미로 꼽힌다. 단편의 기동성과 장편의 총체성을 결합한 연작으로서 <난장이…>의 성격에 관해 조세희씨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난장이 연작'은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았을 때, 그것은 분열된 힘들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 책은 분열된 힘들을 모아 통합하는 마당이었다. 나는 작은 노트 몇 권에 나뉘어 씌어져 그동안 작은 싸움에 참가한 적이 있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아직 분명한 정체를 잡혀보지 않은 소부대들을 불러모았다.”

분열됐던 힘들이 모여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이 됐다는 것은 이 연작이 `난쏘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80년대 내내 대학가의 필독서였다는 사실에서 얼른 확인된다.


글 최재봉 <출처 : 글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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