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혜원출판사. 1999
우린 일본과 관련된 많은 일화를 접할 수 있다. 그 중엔 우리의 의식구조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하며 루스 베네딕트가 이 책을 쓸 때인 2차대전 후의 서구인들처럼 그들의 의식구조와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들도 많다. 아마도 서구인들은 같은 불교, 유교 문화권에 우리보다 더욱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루스 베테딕트는 전쟁으로 인해 일본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고 그저 일본에서 생활한 많은 서구인들의 기록과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많은 일본인들의 증언과 각종 기록 들을 토대로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 방식에 대한 매우 설득력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떤 일본 여자가 한국에 와서 꽤 오래 살다가 한번은 고향 일본에 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앞에 선 여자의 짐이 무거워 보여 여자는 한국에서 하듯 아무말 없이 여자의 짐을 가져다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한국에서라면 당연 바로 이어서 여자의 '감사합니다'란 소리가 들렸어야 했는데 웬걸, 갑작스레 짐을 빼앗긴 여자는 감사해 하기는커녕 매우 불쾌해하며 자신의 짐을 냉큼 가져가 버렸다. 그를 도우려 했던 그 일본 여자는 무척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어느새, 내가 한국인이 되어버렸구나'하고 생각했단다. 언뜻 보기엔 일본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모두 신문이나 책을 읽고 떠들지 않는 건 정말 본받을 만한데 그 정도가 지나쳐 지하철 안에서 싸움이 나거나 큰 문제가 생겨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에만 몰입하지 다른 사람의 일엔 관심도 없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이해되는가?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 이해가 된다. 그것도 매우 잘.
'카미가제' 식 작전을 이해할 수 있는가? 솔직히 우린 이해된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 사극을 보면 정도나 모습이 다르지 솔직히 카미가제 부럽지 않을만큼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건 인간의 육체보다 즉, 물질보다 정신의 문제를 우월시하고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 크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인들처럼 훨씬 물질적이고 계약적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의 혈육도 아닌 상징적 존재인 천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본인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2차 대전 중에 보여준 여러 모습은 서구인들을 당황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모두가 자신들이 예견한 바 그대로 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겪게되는 불안을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정해지고 계획되어 있으며 그 계획대로 되어야 안심하는 민족이기에...
그들은 서구의 포로들처럼 포로가 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본 포로들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포로로 잡힌 것을 매우 치욕적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포로 주제에 매우 당당하게 요구하고 살아가는 서구 포로들을 그들은 경멸했다. 더 나아가 포로들은 서구 사람이 보기에 분명 '배신'이랄 수 있는 연합국에의 협조를 쉽게 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줏대없이 너무 쉽게 변절햇다. 이해되는가 '천황'을 위해 자살을 하려했던 이들이 포로가 되자마자 적군에게 협력하는 모습을 이 책 끝까지 계속되는 연구할만한 일본인의 모습은 모순된, 극단적인 삶을 오가는 일본인의 모습이다.
일본인 들의 문화와 사고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각자 알맞은 자리 매김'이라 할 수 있다. 즉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계층 구조적 문화와 삶에 분명한 나라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계급은 완전히 타파되었지만 일본은 분명 계급, 성별, 연령, 세대 등 여러 면에서 분명한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를 엄격히 추구하고 있으며 이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무사가 자신의 주인인 다이묘(大名:무사가 속한 번의 지도자), 쇼군(將軍:다이묘의 '번'들이 속하는 막부의 지도자)에게 예를 다하고 충성을 다하며 여자가 남성(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에게 철저하고 깍뜻한 예의를 지키고, 어린 세대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윗사람들(부모, 스승, 어른)에게 효를 다하고 예를 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모습이나 당연히 서구인들에게는 연구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봉건제도와 꽤 많이 다르기에...
근대 일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아마도 메이지 유신의 과정과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저자는 생각한 것 같다. 메이지 유신은 원래 쇼군 중심의 권력체제를 벗어나 왕정으로의 복고, 쇄국이라는 보수 회귀적 혁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하층 무사 계급과 상인계급의 결탁 속에 키워져온 새로운 정치가들은 이전 일본 땅에서 도저히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개혁을 지속적으로 이뤄냈다. 모든 계급적 차별을 철폐했고 기존 세력들이 요구했던 조선침략론을 묵살했으며 학교를 설립하고 불교의 세력을 제한했으며, 단발령, 천민 해방과 같은 파격적인 과업들을 진행시겼다. 근대적 헌법과 제국 의회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은 근본적으로 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계층 구조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쇼군을 제거하긴 했지만 분명 유신은 천황 중심제로의 복고가 그 기본목표였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 등 거의 모든 면을 개혁했지만 모든 것을 다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천황 중심적인 국가관리의 영역과 기존 세력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정치, 사회, 종교 구조를 이원화해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들의 알맞은 위치와 자리'를 인식하며 살도록 했다. 종교적으로는 국가 신도(神道)에 충성하도록 해 종교에 있어서의 국가적 영역을 설정하고 그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부락의 자치적 역할을 인정해 중앙의 힘과 지방의 힘이 미치는 영역을 구분했다. 산업에서도 국가는 중공업 중심으로 개발을 주도했고 5인 이하의 경공업은 순수하게 국민들의 영역이었다. 개혁을 해도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알맞은 자리매김이 있었다.
앞에서 한국인이 다된 일본 여자의 이야기에서 이 여자의 도움을 받았던 일본인은 왜 그렇게 불쾌해 했을까? 은혜라는 말은 서구에서의 신의 은총, 따라서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 대부분 받지 못해서 문제인 그런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공동체 사회에서 은혜를 베푸는 것은 임금, 관리, 일반 백성 모두에게 권장되고 사람들 역시 이를 받으면 감사해하고 기뻐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온(恩)은 결코 그런 좋은 의미가 아니다. 일본인은 마치 서구인의 원죄의식처럼 자신이 은혜를 입은 자로 인식한다. 그런데 이 은혜는 받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일본인은 이 은혜를 꼭 갚아야 하는 의무로 인식한다. 만일 이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면 '은혜를 모르는 자'라는 비난을 듣지 않을까(아무도 그런 비난을 하지 않더라도)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은혜)을 받으면 그것을 제대로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워 한다. 따라서 자연히 이런 도움을 요구하고 받는 행위는 발달할 수 없고 되도록이며 거절하게 된다.
일본인의 이러한 의식을 좀더 자세히 분석하면 이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의무에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그 은혜가 너무 커 도저히 평생동안 갚을 수 없는 그런 은혜에 대한 보답, 즉 기무(義務)가 있다. 천황에 대한 충(忠), 부모의 은혜에 대한 효(孝), 스승의 은혜에 대한 기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머지 하나는 기리(義理). 자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주어야 하는 그런 것이다. 여기엔 자신의 주군에 대한 의리, 세상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은 도움 등의 세상에 대한 기리와 자신의 이름이 모욕을 당했을 때에 그 오명을 씻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자살,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한 복수 등이 포함되는 이름에 대한 기리가 속한다. 특이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자에게 행하는 복수까지 그들은 꼭 되갚아야 할 빚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중국에서는 '인(仁)'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충이든 효든 이런 인이 바탕이 되어야 제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일본에서 인(仁) 또는 인정(仁情)은 비합법적인 기리를 나타내는 부정적인 말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상을 숭배할 때 가문을 중시하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조상까지 숭배하나 일본은 오직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조상에 대해서만 효를 행하는 현실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행위 역시 어버이에 대한 효로 인식한다. 앞에서 카미가제 식의 천황숭배가 이상하다 했는데 이상할 게 없다. 일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천황에 대해 죽을 때까지 갚을 수 없는 빚(은혜)을 지고 있다. 따라서 천황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죽을 수도 있다. 천황을 위하기 이전에 천황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 따라서 천황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할 필요가 없다. 천황이 항복을 하고 정전명령을 내렸을 때 이를 일본인들이 순순히 따른 것은 바론 이런 그들의 '천황관(觀)'에 기초한다.
일본인들의 삶과 사고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무보다는 기리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기무가 절대적이고 선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기리는 훨씬 사회적이며 후천적이다. 그리고 천황과 부모, 스승에게 하듯이 자발적인 것과는 달리 강제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기무에 비해서 비교적 불유쾌한 빚인 경우가 많은데 법률적인 부모(양부), 데릴사위, 삼촌이나 숙모, 계약상의 친천에 대한 도리와 친구, 무사들 간의 의리와 복수가 다 이 기리에 포함된다. 기리와 관련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은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부터 '기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면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일본인들에게 있어 내가 어떻게 보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자기 기리를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눈에 대한 의식'. 이것이 일본인의 사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기리'와 관련해 또 신경써서 살펴야 하는 것으로 그들의 '이름에 대한 기리'일 것이다. '세상에 대한 기리'가 대체로 다른 이들의 호의에 대한 감사의 성격을 띤다면 이름에 대한 기리는 보통 자신이 입은 오명을 씻기 위한 복수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이름에 대한 기리 역시 다양한 모습을 포함하는데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에 대해서는 분명 복수의 형태로 드러내지만 배고픔이나 고통과 같은 시련에 대해서는 '의연한 대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쯤 되면 이 이름의 대한 기리는 우리네 양반들의 '체면'과 같아진다. 베네딕트는 당연히 이 동양적 관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이를 '이름에 대한 기리'의 한 범주로 다룬다. 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계층 구조의 틀 속에서 자신의 신분(위치)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도 일종의 '이름에 대한 기리'이다.
'이름에 대한 기리'를 드러내는 가장 두드러진 모습인 복수는 현대로 접어들면서 점점 내면화되는 경향을 지닌다. (여기서 현대는 베네딕트가 이 글을 쓰던 2차 대전 후의 시기이다) 일본인들은 경쟁을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나 실패 또는 무지를 인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름에 목숨을 거는 민족이라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자신의 실패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쟁이 그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특히 서구인처럼 경쟁을 즐기고 지더라도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그런 모습은 일본인에게는 맞지 않다. 일단 경쟁이 벌어지면 일본인은 자기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기보다는 경쟁자의 페이스에 지나치게 신경쓰다 정작 자신의 에너지를 엉뚱하게 소비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지거나 실패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모욕을 느끼고 따라서 이 모욕, 치욕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모욕을 견디지 못하므로…….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복수는 옛날 사무라이처럼 쉽게 사람을 죽이거나 해를 입히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내면화된다. 이는 권태와 우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우리가 때로 목격하듯 자살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 이쯤 되면 자살을 복수의 내면화라 하기보다는 물리적 복수의 실패로 인한 절망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
자기 이름의 명예, 타인에게 존경과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일본인에게 실패와 패배의 치욕이 오죽하겠는가? 사실 이는 일본인만의 문제는 아니라 본다. 경쟁에 임하는 이상한 태도는 우리가 더했으면 더했지 아마 일본보다 덜하지는 않으리라. 어쨌든 여기까지 오게 되면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타인의 존경과 인정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패전 후에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에 그렇게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들은 그들의 확신에 기초해 전쟁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전쟁이 다른 나라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길이라 믿어 전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보니 그 길은 선진국을 따라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과감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베네딕트의 분석은 어딘지 단순화된 면이 많다. 다른 나라의 존경과 인정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나라가 그렇게 무분별한 학살과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베네딕트는 이런 일제의 만행과 학살, 압제에 대한 자료는 잘 살펴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 것 같다.
일본인들의 세계관에서 아주 독특한 것으로 '선과 악'의 관념도 빠질 수 없다. 일본인을 성악설과 성선설 둘 중 하나에 놓으라고 한다면 성선설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선천적으로 악한 인간은 없다. 절대적인 악이라는 관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인간은 선하나 자기수양 등을 게을리 하거나 자제력을 잃어 얼마든지 더러워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러워진 것은 버리거나 씻으면 된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노력에 의해 선해질 수 있다. 보통 서구에서는 쾌락, 육체의 욕구를 악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서구 세계의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 천상과 지상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러한 대립은 성립되지 않는다. 육체의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비록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자제되고 포기되어야 할지언정 '악'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온욕(溫浴), 탐식(과식이 아니라 미각적 즐거움의 추구), 잠, 혼외정사, 자위행위, 과음, 자유연애 등의 것들이 다른 나라들, 특히 서구처럼 악한 것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단지 즐겁게 누리되 훈련을 통해 절제하고 어떤 한계를 두고 이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할 뿐이다.
이러한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은 그들의 삶의 모습 역시 독특하게 만든다. 사고와 행위의 통일성을 중시하는 서구인들의 눈에 그들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의 삶을 잘 살펴보면 충의 영역, 효의 영역, 의리의 영역, 인정의 영역 등 적용 원리가 가기 달라 보이는 여러 영역으로 그들의 삶이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 속에서 행동의 통일성을 잃은 듯한, 즉 모순된 생활관을 보여준다. 이는 그들의 선과 악에 대한 관념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본인들은 악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하던 것이 녹이 슬어 낡으면 악이 되고 다시 이를 다듬어 갈면 선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므로 그들이 당면하는 문제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인생의 각 영역에서 지켜야할 의무(또는 의리-기리-) 사이의 갈등이다. 즉 천황에 대한 충(忠)과 주군에 대한 기리(義理) 사이에서의 갈등 같이.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선이고 다른 하나가 악인 것이 아니다. 단지 둘 사이의 갈등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를 자살로 해결한다. 부모에 효를 다하기 위해 아내를 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 가운데 감정에 치우치거나 드러내지 않고 '성실'하게 기무(義務)를 다하려는 노력이다.
일본인에게 있어 '자중(自重)하다'란 말은 행동을 함에 있어 타인을 의식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인의 삶이 서구처럼 '죄의식' 중심이 아니라 '수치'중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죄가 아니라 수치가 중요한 사회는 외면적인 강제력에 의한 선행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나쁘게 볼까 두려워 선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본인 특유의 예절이 가지는 한계라고 할까?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보고 웃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베네딕트가 우리나라도 분석을 했다면 아마 일본보다 더 이상한 민족이라 하지 않았을까? 죄의식도 없고 그나마 수치도 모르는 그런 민족. 지금의 일본. 즉 친절하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경계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의 뿌리 역시 바로 이런 일본인의 세계관이 아닐까 한다.
베네딕트는 11장 '자기 수양'에서 동양문화권의 '무아(無我)지경'을 매우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읽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몰입의 경지인데 서구인의 눈에는 매우 희한하게 보였나 보다. 서구의 자기 수련과는 다르게 자기 희생(서구에서 자기 수련은 가톨릭에서의 고행처럼 자기 희생의 이미지가 강하다)을 포함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처세를 위한 것이라 하고는 선종의 신비주의적 수련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무아지경'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나를 보는 나'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버리는 것,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일체화되는 자연 숙달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에만 몰입하는 경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베네딕트의 서술은 왠지 그것의 일본인의 특성이라고 자꾸 강조하고 있어 이러한 자기 수양의 모습이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특이한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이 역시 '서구에서 바라보는 동양'적 의식의 한계가 아닐까 한다.
일본인의 유아교육법은 일본인의 삶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일본인의 삶에서 보여지는 이원적 성격이나 여러 종류의 모순성은 그들의 유아기의 삶과 성년기의 삶의 차이에 기인한다. 일본인들은 서구인들과 다르게 그들의 인생곡선이 U자형을 그리게 된다. 서구인들은 어릴 때에는 엄격한 훈련을 받다가 자라가면서 자율권이 확대되고 갈수록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다 늙어가면서 활동의 폭이 좁아진다. 그러나 일본은 반대다. 어린 시절에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다 자가가면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리와 기무를 인식하고 타인들의 '눈'을 의식해가며 최대한의 삶의 속박, 최고도의 정신적 훈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늙으면 이러한 속박의 끈이 점점 약해져 가는 것을 경험한다. 따라서 어릴 때에는 거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다 어른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의 인정, 부끄러움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자제와 자중을 엄격히 익히게 된다. 그리고 훈계와 놀림, 주의를 옮기기 등 가정에서의 훈육은 규칙의 적용이 아니라 인성에 내면화되는 습관의 습득으로 이루어져 그 속박의 강도는 더욱 크다. 이런 성장기 경험의 이원성은 성격의 이원성으로 이어지고 당연히 삶에 있어 긴장을 수반하게 된다. 현재의 삶은 엄격히 통제되면서 계속해서 과거의 자유를 끊임없이 부러워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베네딕트는 패전 후의 일본인의 모습을 서술하며 글을 정리한다. 서구인들이 일본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패전 후에 일본이 보여준 승전국에 대한 호의적 태도와 자신들의 능동적 체제 변화의 노력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억울하게 졌다거나 승전국들이 단지 힘이 강해 자신들이 졌다거나 하며 자신들을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천황을 위해 자살공격까지 감행했던 그들이었기에 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의 행동 동기의 기회주의적 성격을 이해하면 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추구하는 어떤 신념, 즉 이데올로기, '주의' 등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서슴없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들의 실패나 실수,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 그리고는 미련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기들의 신념이 악한 세력에 저지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을 이겨야 한다느니 일본놈들은 어떠하다느니 말은 많고 따라서 탈도 많지만 정작 일본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무지한 우리에게 나름대로 일본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하는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재난을 당해도 통곡하고 울부짖는 우리와는 다르게 침착하고 차분하고 심하다 싶을 만큼 냉정한 그들의 모습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일본 연구서나 기행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이러한 책들의 바탕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http://www.jygo.net/~copykim/bf3a1.htm
우린 일본과 관련된 많은 일화를 접할 수 있다. 그 중엔 우리의 의식구조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하며 루스 베네딕트가 이 책을 쓸 때인 2차대전 후의 서구인들처럼 그들의 의식구조와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들도 많다. 아마도 서구인들은 같은 불교, 유교 문화권에 우리보다 더욱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루스 베테딕트는 전쟁으로 인해 일본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고 그저 일본에서 생활한 많은 서구인들의 기록과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많은 일본인들의 증언과 각종 기록 들을 토대로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 방식에 대한 매우 설득력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떤 일본 여자가 한국에 와서 꽤 오래 살다가 한번은 고향 일본에 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앞에 선 여자의 짐이 무거워 보여 여자는 한국에서 하듯 아무말 없이 여자의 짐을 가져다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한국에서라면 당연 바로 이어서 여자의 '감사합니다'란 소리가 들렸어야 했는데 웬걸, 갑작스레 짐을 빼앗긴 여자는 감사해 하기는커녕 매우 불쾌해하며 자신의 짐을 냉큼 가져가 버렸다. 그를 도우려 했던 그 일본 여자는 무척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어느새, 내가 한국인이 되어버렸구나'하고 생각했단다. 언뜻 보기엔 일본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모두 신문이나 책을 읽고 떠들지 않는 건 정말 본받을 만한데 그 정도가 지나쳐 지하철 안에서 싸움이 나거나 큰 문제가 생겨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에만 몰입하지 다른 사람의 일엔 관심도 없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이해되는가?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 이해가 된다. 그것도 매우 잘.
'카미가제' 식 작전을 이해할 수 있는가? 솔직히 우린 이해된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 사극을 보면 정도나 모습이 다르지 솔직히 카미가제 부럽지 않을만큼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건 인간의 육체보다 즉, 물질보다 정신의 문제를 우월시하고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 크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인들처럼 훨씬 물질적이고 계약적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의 혈육도 아닌 상징적 존재인 천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본인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2차 대전 중에 보여준 여러 모습은 서구인들을 당황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모두가 자신들이 예견한 바 그대로 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겪게되는 불안을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정해지고 계획되어 있으며 그 계획대로 되어야 안심하는 민족이기에...
그들은 서구의 포로들처럼 포로가 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본 포로들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포로로 잡힌 것을 매우 치욕적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포로 주제에 매우 당당하게 요구하고 살아가는 서구 포로들을 그들은 경멸했다. 더 나아가 포로들은 서구 사람이 보기에 분명 '배신'이랄 수 있는 연합국에의 협조를 쉽게 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줏대없이 너무 쉽게 변절햇다. 이해되는가 '천황'을 위해 자살을 하려했던 이들이 포로가 되자마자 적군에게 협력하는 모습을 이 책 끝까지 계속되는 연구할만한 일본인의 모습은 모순된, 극단적인 삶을 오가는 일본인의 모습이다.
일본인 들의 문화와 사고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각자 알맞은 자리 매김'이라 할 수 있다. 즉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계층 구조적 문화와 삶에 분명한 나라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계급은 완전히 타파되었지만 일본은 분명 계급, 성별, 연령, 세대 등 여러 면에서 분명한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를 엄격히 추구하고 있으며 이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무사가 자신의 주인인 다이묘(大名:무사가 속한 번의 지도자), 쇼군(將軍:다이묘의 '번'들이 속하는 막부의 지도자)에게 예를 다하고 충성을 다하며 여자가 남성(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에게 철저하고 깍뜻한 예의를 지키고, 어린 세대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윗사람들(부모, 스승, 어른)에게 효를 다하고 예를 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모습이나 당연히 서구인들에게는 연구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봉건제도와 꽤 많이 다르기에...
근대 일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아마도 메이지 유신의 과정과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저자는 생각한 것 같다. 메이지 유신은 원래 쇼군 중심의 권력체제를 벗어나 왕정으로의 복고, 쇄국이라는 보수 회귀적 혁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하층 무사 계급과 상인계급의 결탁 속에 키워져온 새로운 정치가들은 이전 일본 땅에서 도저히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개혁을 지속적으로 이뤄냈다. 모든 계급적 차별을 철폐했고 기존 세력들이 요구했던 조선침략론을 묵살했으며 학교를 설립하고 불교의 세력을 제한했으며, 단발령, 천민 해방과 같은 파격적인 과업들을 진행시겼다. 근대적 헌법과 제국 의회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은 근본적으로 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계층 구조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쇼군을 제거하긴 했지만 분명 유신은 천황 중심제로의 복고가 그 기본목표였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 등 거의 모든 면을 개혁했지만 모든 것을 다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천황 중심적인 국가관리의 영역과 기존 세력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정치, 사회, 종교 구조를 이원화해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들의 알맞은 위치와 자리'를 인식하며 살도록 했다. 종교적으로는 국가 신도(神道)에 충성하도록 해 종교에 있어서의 국가적 영역을 설정하고 그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부락의 자치적 역할을 인정해 중앙의 힘과 지방의 힘이 미치는 영역을 구분했다. 산업에서도 국가는 중공업 중심으로 개발을 주도했고 5인 이하의 경공업은 순수하게 국민들의 영역이었다. 개혁을 해도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알맞은 자리매김이 있었다.
앞에서 한국인이 다된 일본 여자의 이야기에서 이 여자의 도움을 받았던 일본인은 왜 그렇게 불쾌해 했을까? 은혜라는 말은 서구에서의 신의 은총, 따라서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 대부분 받지 못해서 문제인 그런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공동체 사회에서 은혜를 베푸는 것은 임금, 관리, 일반 백성 모두에게 권장되고 사람들 역시 이를 받으면 감사해하고 기뻐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온(恩)은 결코 그런 좋은 의미가 아니다. 일본인은 마치 서구인의 원죄의식처럼 자신이 은혜를 입은 자로 인식한다. 그런데 이 은혜는 받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일본인은 이 은혜를 꼭 갚아야 하는 의무로 인식한다. 만일 이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면 '은혜를 모르는 자'라는 비난을 듣지 않을까(아무도 그런 비난을 하지 않더라도)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은혜)을 받으면 그것을 제대로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워 한다. 따라서 자연히 이런 도움을 요구하고 받는 행위는 발달할 수 없고 되도록이며 거절하게 된다.
일본인의 이러한 의식을 좀더 자세히 분석하면 이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의무에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그 은혜가 너무 커 도저히 평생동안 갚을 수 없는 그런 은혜에 대한 보답, 즉 기무(義務)가 있다. 천황에 대한 충(忠), 부모의 은혜에 대한 효(孝), 스승의 은혜에 대한 기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머지 하나는 기리(義理). 자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주어야 하는 그런 것이다. 여기엔 자신의 주군에 대한 의리, 세상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은 도움 등의 세상에 대한 기리와 자신의 이름이 모욕을 당했을 때에 그 오명을 씻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자살,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한 복수 등이 포함되는 이름에 대한 기리가 속한다. 특이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자에게 행하는 복수까지 그들은 꼭 되갚아야 할 빚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중국에서는 '인(仁)'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충이든 효든 이런 인이 바탕이 되어야 제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일본에서 인(仁) 또는 인정(仁情)은 비합법적인 기리를 나타내는 부정적인 말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상을 숭배할 때 가문을 중시하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조상까지 숭배하나 일본은 오직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조상에 대해서만 효를 행하는 현실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행위 역시 어버이에 대한 효로 인식한다. 앞에서 카미가제 식의 천황숭배가 이상하다 했는데 이상할 게 없다. 일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천황에 대해 죽을 때까지 갚을 수 없는 빚(은혜)을 지고 있다. 따라서 천황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죽을 수도 있다. 천황을 위하기 이전에 천황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 따라서 천황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할 필요가 없다. 천황이 항복을 하고 정전명령을 내렸을 때 이를 일본인들이 순순히 따른 것은 바론 이런 그들의 '천황관(觀)'에 기초한다.
일본인들의 삶과 사고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무보다는 기리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기무가 절대적이고 선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기리는 훨씬 사회적이며 후천적이다. 그리고 천황과 부모, 스승에게 하듯이 자발적인 것과는 달리 강제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기무에 비해서 비교적 불유쾌한 빚인 경우가 많은데 법률적인 부모(양부), 데릴사위, 삼촌이나 숙모, 계약상의 친천에 대한 도리와 친구, 무사들 간의 의리와 복수가 다 이 기리에 포함된다. 기리와 관련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은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부터 '기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면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일본인들에게 있어 내가 어떻게 보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자기 기리를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눈에 대한 의식'. 이것이 일본인의 사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기리'와 관련해 또 신경써서 살펴야 하는 것으로 그들의 '이름에 대한 기리'일 것이다. '세상에 대한 기리'가 대체로 다른 이들의 호의에 대한 감사의 성격을 띤다면 이름에 대한 기리는 보통 자신이 입은 오명을 씻기 위한 복수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이름에 대한 기리 역시 다양한 모습을 포함하는데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에 대해서는 분명 복수의 형태로 드러내지만 배고픔이나 고통과 같은 시련에 대해서는 '의연한 대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쯤 되면 이 이름의 대한 기리는 우리네 양반들의 '체면'과 같아진다. 베네딕트는 당연히 이 동양적 관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이를 '이름에 대한 기리'의 한 범주로 다룬다. 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계층 구조의 틀 속에서 자신의 신분(위치)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도 일종의 '이름에 대한 기리'이다.
'이름에 대한 기리'를 드러내는 가장 두드러진 모습인 복수는 현대로 접어들면서 점점 내면화되는 경향을 지닌다. (여기서 현대는 베네딕트가 이 글을 쓰던 2차 대전 후의 시기이다) 일본인들은 경쟁을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나 실패 또는 무지를 인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름에 목숨을 거는 민족이라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자신의 실패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쟁이 그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특히 서구인처럼 경쟁을 즐기고 지더라도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그런 모습은 일본인에게는 맞지 않다. 일단 경쟁이 벌어지면 일본인은 자기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기보다는 경쟁자의 페이스에 지나치게 신경쓰다 정작 자신의 에너지를 엉뚱하게 소비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지거나 실패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모욕을 느끼고 따라서 이 모욕, 치욕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모욕을 견디지 못하므로…….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복수는 옛날 사무라이처럼 쉽게 사람을 죽이거나 해를 입히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내면화된다. 이는 권태와 우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우리가 때로 목격하듯 자살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 이쯤 되면 자살을 복수의 내면화라 하기보다는 물리적 복수의 실패로 인한 절망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
자기 이름의 명예, 타인에게 존경과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일본인에게 실패와 패배의 치욕이 오죽하겠는가? 사실 이는 일본인만의 문제는 아니라 본다. 경쟁에 임하는 이상한 태도는 우리가 더했으면 더했지 아마 일본보다 덜하지는 않으리라. 어쨌든 여기까지 오게 되면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타인의 존경과 인정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패전 후에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에 그렇게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들은 그들의 확신에 기초해 전쟁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전쟁이 다른 나라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길이라 믿어 전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보니 그 길은 선진국을 따라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과감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베네딕트의 분석은 어딘지 단순화된 면이 많다. 다른 나라의 존경과 인정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나라가 그렇게 무분별한 학살과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베네딕트는 이런 일제의 만행과 학살, 압제에 대한 자료는 잘 살펴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 것 같다.
일본인들의 세계관에서 아주 독특한 것으로 '선과 악'의 관념도 빠질 수 없다. 일본인을 성악설과 성선설 둘 중 하나에 놓으라고 한다면 성선설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선천적으로 악한 인간은 없다. 절대적인 악이라는 관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인간은 선하나 자기수양 등을 게을리 하거나 자제력을 잃어 얼마든지 더러워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러워진 것은 버리거나 씻으면 된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노력에 의해 선해질 수 있다. 보통 서구에서는 쾌락, 육체의 욕구를 악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서구 세계의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 천상과 지상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러한 대립은 성립되지 않는다. 육체의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비록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자제되고 포기되어야 할지언정 '악'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온욕(溫浴), 탐식(과식이 아니라 미각적 즐거움의 추구), 잠, 혼외정사, 자위행위, 과음, 자유연애 등의 것들이 다른 나라들, 특히 서구처럼 악한 것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단지 즐겁게 누리되 훈련을 통해 절제하고 어떤 한계를 두고 이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할 뿐이다.
이러한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은 그들의 삶의 모습 역시 독특하게 만든다. 사고와 행위의 통일성을 중시하는 서구인들의 눈에 그들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의 삶을 잘 살펴보면 충의 영역, 효의 영역, 의리의 영역, 인정의 영역 등 적용 원리가 가기 달라 보이는 여러 영역으로 그들의 삶이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 속에서 행동의 통일성을 잃은 듯한, 즉 모순된 생활관을 보여준다. 이는 그들의 선과 악에 대한 관념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본인들은 악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하던 것이 녹이 슬어 낡으면 악이 되고 다시 이를 다듬어 갈면 선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므로 그들이 당면하는 문제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인생의 각 영역에서 지켜야할 의무(또는 의리-기리-) 사이의 갈등이다. 즉 천황에 대한 충(忠)과 주군에 대한 기리(義理) 사이에서의 갈등 같이.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선이고 다른 하나가 악인 것이 아니다. 단지 둘 사이의 갈등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를 자살로 해결한다. 부모에 효를 다하기 위해 아내를 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 가운데 감정에 치우치거나 드러내지 않고 '성실'하게 기무(義務)를 다하려는 노력이다.
일본인에게 있어 '자중(自重)하다'란 말은 행동을 함에 있어 타인을 의식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인의 삶이 서구처럼 '죄의식' 중심이 아니라 '수치'중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죄가 아니라 수치가 중요한 사회는 외면적인 강제력에 의한 선행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나쁘게 볼까 두려워 선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본인 특유의 예절이 가지는 한계라고 할까?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보고 웃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베네딕트가 우리나라도 분석을 했다면 아마 일본보다 더 이상한 민족이라 하지 않았을까? 죄의식도 없고 그나마 수치도 모르는 그런 민족. 지금의 일본. 즉 친절하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경계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의 뿌리 역시 바로 이런 일본인의 세계관이 아닐까 한다.
베네딕트는 11장 '자기 수양'에서 동양문화권의 '무아(無我)지경'을 매우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읽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몰입의 경지인데 서구인의 눈에는 매우 희한하게 보였나 보다. 서구의 자기 수련과는 다르게 자기 희생(서구에서 자기 수련은 가톨릭에서의 고행처럼 자기 희생의 이미지가 강하다)을 포함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처세를 위한 것이라 하고는 선종의 신비주의적 수련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무아지경'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나를 보는 나'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버리는 것,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일체화되는 자연 숙달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에만 몰입하는 경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베네딕트의 서술은 왠지 그것의 일본인의 특성이라고 자꾸 강조하고 있어 이러한 자기 수양의 모습이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특이한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이 역시 '서구에서 바라보는 동양'적 의식의 한계가 아닐까 한다.
일본인의 유아교육법은 일본인의 삶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일본인의 삶에서 보여지는 이원적 성격이나 여러 종류의 모순성은 그들의 유아기의 삶과 성년기의 삶의 차이에 기인한다. 일본인들은 서구인들과 다르게 그들의 인생곡선이 U자형을 그리게 된다. 서구인들은 어릴 때에는 엄격한 훈련을 받다가 자라가면서 자율권이 확대되고 갈수록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다 늙어가면서 활동의 폭이 좁아진다. 그러나 일본은 반대다. 어린 시절에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다 자가가면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리와 기무를 인식하고 타인들의 '눈'을 의식해가며 최대한의 삶의 속박, 최고도의 정신적 훈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늙으면 이러한 속박의 끈이 점점 약해져 가는 것을 경험한다. 따라서 어릴 때에는 거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다 어른이 되면서 세상 사람들의 인정, 부끄러움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자제와 자중을 엄격히 익히게 된다. 그리고 훈계와 놀림, 주의를 옮기기 등 가정에서의 훈육은 규칙의 적용이 아니라 인성에 내면화되는 습관의 습득으로 이루어져 그 속박의 강도는 더욱 크다. 이런 성장기 경험의 이원성은 성격의 이원성으로 이어지고 당연히 삶에 있어 긴장을 수반하게 된다. 현재의 삶은 엄격히 통제되면서 계속해서 과거의 자유를 끊임없이 부러워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베네딕트는 패전 후의 일본인의 모습을 서술하며 글을 정리한다. 서구인들이 일본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패전 후에 일본이 보여준 승전국에 대한 호의적 태도와 자신들의 능동적 체제 변화의 노력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억울하게 졌다거나 승전국들이 단지 힘이 강해 자신들이 졌다거나 하며 자신들을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천황을 위해 자살공격까지 감행했던 그들이었기에 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의 행동 동기의 기회주의적 성격을 이해하면 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추구하는 어떤 신념, 즉 이데올로기, '주의' 등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서슴없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들의 실패나 실수,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 그리고는 미련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기들의 신념이 악한 세력에 저지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을 이겨야 한다느니 일본놈들은 어떠하다느니 말은 많고 따라서 탈도 많지만 정작 일본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무지한 우리에게 나름대로 일본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하는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재난을 당해도 통곡하고 울부짖는 우리와는 다르게 침착하고 차분하고 심하다 싶을 만큼 냉정한 그들의 모습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일본 연구서나 기행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이러한 책들의 바탕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http://www.jygo.net/~copykim/bf3a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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