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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논술 대비 주요 고전 해설: 29. 러셀의 "교육론"

작성자paradox|작성시간02.11.16|조회수323 목록 댓글 0
러셀 '교육론'


1. 소개
*저자 및 책의 소개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 웨일즈에서 출생하여 1970년 98세의 일기로 사 망한 영국의 철학자이다. 대학 강의와 저서 출간 등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 인 러셀은 1914년 '왜 모든 국민은 전쟁을 좋아하는가'를 발표하면서 반전 운동에 뛰어든 이래 1915년 징병 반대동맹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 1918년엔 투옥되기도 하였다. 의원 선거에 여러 번 나섰으나 낙선하였고 , 정부에 반대하여 평화를 부르짖다가 대학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1945 년에는 원자폭탄 투하에 충격을 받아 세계정부 수립의 길을 모색하는 활동 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84세인 1956년에는 세계의 저명 과학자들의 서명을 모아 핵폭 폐기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러셀은 기숙학교를 세워 직접 운영하기도 하면서 교육에 관한 논저도 다 수 집필하였다. 실험학교를 통해 자신의 '교육론'을 직접 실험해 보기도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는데, 아이들에게 지나친 자유를 준 것이 그 원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귀족 출신으로 백작의 작위까지 가진 러셀 이 직접 나서서 아이들에게 변기를 다루는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가르치는 열성을 보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러셀은 '체벌'을 전혀 인정하 지 않는 철학자였는데, 그는 후년에 이르러서는 '아이들에게 날마다 일정 일과를 줄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러셀은 과거의 교육이 지닌 병폐를 '아이들에게 위협을 주어 이 위협을 통해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 육 현실에 견주어 볼 때 좋은 타산지석이 될 것으로 보여 '교육론'의 제1 장, 제8장, 제9장을 발췌 요약하였다.

2. 읽어보기

(1)체벌을 주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어린이나 소년소녀에게 벌(罰)을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벌을 교육에서는 없어서 안될 그 무엇으로 믿는다. 모든 일을 자연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이론과 관련되는 루소조차도 '에밀' 속에서 ' 때때로 아주 엄격한 벌을 줄 것'을 주장하는 실정이다.

'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의 예를 영국의 저명한 교육자인 아놀드 박사 (1795~1842)의 전기에서 찾아보자. 회초리로 때린다는 것은 아주 좋지 못 한 형벌이므로 전면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유사상가 저널리스트 의 주장에 대해 아놀드 박사는 크게 분개하며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그 저널리스트의 말은 개인의 독립이라는 저 오만한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독립이란 관념은 합리적인 것도 아니며 기독교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본질상으로는 야만적이다.-

러셀은 전쟁이나 문책 또는 억압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스스로는 악을 소 탕하고 있노라 큰소리를 쳐온 역사를 거론하면서 '전신에 소름이 끼친다' 는 표현을 사용한다. 러셀은 그러면서도 아놀드 박사의 견해를 '그 당시로 서는 당연히 인간적인'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러셀은 1800년대의 '훈화집' 속에서 예를 찾아들기도 한다. 핑크색 허리 띠 장식을 갖고 싶어하는 소녀에게 흰색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취하는 태도 이다.

핑크색 허리띠 장식을 사 달라고 딸이 떼를 쓰자 아버지는 뛰어와서 회 초리로 아이를 때린다. 페어차일드라는 남자는 싸움을 한 아이들에게 교수 대에서 사슬에 매달려 죽은 사형수를 꼭 보여준다. 아이는 그 사슬이 바람 에 울릴 때마다 겁에 질려 운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애원한다. 페어차일 드는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가르쳐 주면서 억지로 사 형대 광경을 아이에게 보인다. 페어차일드는 아이가 장차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회자가 되려면 저주받은 공포를 경험한 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눈앞에 그릴 수 있도록 가르쳐 놓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 이다.

(2)아이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발라드 박사는 저서 '변해 가는 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원리를 강조한다 . 아이들을 절대로 위협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위협하여 나쁜 버릇을 고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대로 가만 놔둘 일이다. 한번만 더 그런 일을 저지르면 죽여 버리겠다고 만약 위협했다고 하자. 아이가 그런 일을 재차 저지른 경우, 당신은 정말로 아이를 죽여야만 한다. 어디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그렇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여러분에게 존경심을 갖 지 않는다. 어린아이를 기르는 무지한 부모가 꼭 아이를 이처럼 극단적으 로 위협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미한 경우에도 원칙은 같다.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무리하게 부모가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된다.

벌에 대해서는 대립되는 두 견해가 있다. 어느 정도의 벌을 줄 것을 주 장하는 견해, 벌 같은 것은 전혀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견해, 이렇 게 대립된다. 물론 이 두 의견 사이에는 여러 가지 단계의 여지가 있다.

러셀은 '교육에서 벌은 극히 적은 부분만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극히 적은 부분의 벌이 극히 엄격해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러셀은 의문을 느낀다. 필요로 하는 가장 엄한 벌이라 하더라도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표 현이어야 바람직하다.

어쨌든 책임은 아이 자신보다도 부모에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부모는 이성적인 아이를 기르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애정을 조금 도 달갑지 않은 의무나 책임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의 태도나 행위 속에 기쁨을 느끼는 따뜻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느끼지 못 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뭔가를 금지할 때엔 조심스럽고 성의를 다 기울인 설명을 해주어야만 한다. 아이가 설사 위태로운 장난을 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간섭하기보다는, 아이가 타박상이나 약간의 상처를 입는 정도로 불 행이 끝나는 것이라면, 때때로 허용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이 러한 종류의 작은 경험은 장차 아이들로 하여금 때로는 어떤 일을 하지 않 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3)문테소리교육법의 벌주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놀이를 악착같이 방해하거나 흑은 다른 아이들의 즐거움을 마구 짓밟아 버리는 경우, 적당한 형벌은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 과 고립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그 벌이 다루기 곤란한 아이 로 하여금 자기가 나쁘다고 느끼도록 하는 데에 그친다면 별 소용이 없다 .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즐기고 있는 기쁨을 자기는 지금 잃어버렸다고 생 각하도록 만드는 편이 더더욱 바람직하다. 몬테소리석사가 말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훼방하지 말라는 교사의 훈계를 줄기차게 거부 하는 아이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맨 먼저 우리는 그 아이를 의사에 게 데려가 진찰을 받는다. 그 결과 이상이 없는 보통아이라는 것이 판명 나면 우리는 그 아이를 한 구석에 조그마한 테이블이 놓인 방안에 혼자 있 게 한다.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위치에 푹신푹신 한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아이를 앉혀 놓고,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 난감이나 유희도구를 주었다. 이 방법은 언제나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격리되는 경험을 겪은 아이는 남을 방해하지 않는 얌전이로 변했다. 아이 는 눈앞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 축에 끼이는 것이 자기에 게 이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윽고 그 아이들과 어울려 자기도 공부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어떤 교훈보다도 더 효과적인 '경험교육' 이었던 것이다.

(4)학생은 교실을 벗어날 수 있다

러셀은 말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기 때문에 자기가 먹거나 잠을 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이들을 소화불량이나 불면증환자로 만 든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떤 병에 걸려 있지 않는 한, 음식은 아이의 입맛 에 맡기고 때로는 시장기도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러셀은 자기 집 아이를 키운 경험을 한 가지 토로하기도 한다. 러셀의 아들은 유모의 손에 의해 어르고 달래는 가운데서 음식을 먹으며 자랐다. 하루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그 아이를 데려 왔더니, 그 아이는 생과자를 먹기 싫어했다. 러셀은 그것을 치워 버렸다. 얼마 후 아이는 그것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그 생과자는 요리사가 다 먹어치운 후였다.

그 일을 겪고 난 이후로는 아이는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사물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경우에도 방법은 이와 같다. 가르침을 받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다만 공부 시간 중에 밖에 나간 그 아이가 지루해 하는가 어떤가를 살펴보 아야 한다. 아마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가르쳐 달라고 청해 올 것이다. 그러면 교사는 친절을 보여 주라. 그것이 바로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이다.

러셀은 모든 학교에 크고 텅 빈 교실을 하나씩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할 경우, 거기 가서 지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만 그 방에는 일단 들어간 이상에는 그날 하루만은 수업을 받으러 되돌아오지 못한다. 수업시간 중에 장난질을 친 학생도 그 방으로 보낸다. 물론 벌은 받는 이로 하여금 염증이 나도록 해야지 달가워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5)칭찬과 꾸지람을 어떻게 섞을까

러셀은 말한다. 칭찬과 꾸지람을 사용하지 않고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에는 어느 정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

첫째, 이 두 가지는 모두 다른 아이와 비교되는 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누구는 그것을 못하는데(잘하는데) 너는 잘 하는구나(왜 못하느 냐) 식이거나, 누구누구는 그런 장난을 절대로 하지 않는데 너는 왜 자꾸 말썽을 부리느냐 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말들은 경멸을 가져오거나 아 니면 미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 꾸지람은 칭찬보다 훨씬 더 적게 해야 한다. 꾸지람은 올바른 행 위에서 벗어난 경우에 가하는 분명한 벌이어야 하며, 그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난 후에까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당연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용기나 기능의 발달에 대해서, 혹은 도덕적인 노력에 의해 아이가 어떤 일을 해냈을 경우 , 또는 소유물에 대한 바른 행위 등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좋다. 조 금이라도 뛰어난 행위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성취한 그 무엇에 대하여 칭찬을 받는 것은 어릴 때의 가장 즐거운 경험 중의 하나이다.

(6)잔인성은 벌로 고칠 수 없다

성격상의 중대한 결함의 하나인 잔인성은 절대로 벌로 고칠 수 없다. 어 린 사내아이들에게 있어서 동물에 대한 잔인성은 자연스러울 정도가 되어 있는데, 이런 것을 방지하려면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 만약 자기 자식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잔인성을 발휘하는 경우)를 목격하고 난 뒤에야 그 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려는 어른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서투른 계획이다. 그 방법은 아이에게 들키지만 않았으면 괜찮다는 식의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이미 아이가 잔인성을 갖기 시작한 최초의 조짐이 나 타난 이후에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므로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 다.

어른은 아이가 뱀이나 땅벌이나 간에 동물을 죽이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득이하게도 그런 장면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경우에도 왜 그렇게 하는가를 신중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에게는 생명 에 대한 경외심을 갖도록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자기보다 어린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불친절한 일을 하거든 즉시 그와 유사한 일을 아이에게 하라. 스스로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 거든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아이가 구체적 시선을 던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주의할 것은, 어른인 당신이 사용하는 그 방법이 벌의 한가지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른의 그같은 행위가 교육의 한 방법으로 실행되는 것 임을 아이가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심한 잔인성으로 발전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7)도덕교육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아이에게 '용기를 내라' 혹은 '친절해라'식으로 말하는 것은 별로 바람 직하지가 못하다. 그보다는 특별히 용감한 행위를 아이에게 권장한 뒤 '훌 륭하군. 너는 용감한 아이로군'하고 칭찬해 주는 것이 훨씬 좋다. 장난감 기관차로 꼬마 여동생과 함께 놀게 한 후, 그 아이가 여동생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어쩌면! 너는 참 착하구나. 동생을 잘 돌보는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러셀은 말한다. 도덕교육은 자연스럽게 나타난 하나의 상황 속에서 취해 져야 한다. 또, 특정한 경우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이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모든 도덕교육은 직접적이고 또 구체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아이의 잔인성을 다룰 때에도 원리는 같다. 즉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가 엿보이면 그 이상으로 발전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아이가 커서도 상당한 수준의 잔인성을 드러낸다면, 사태를 신중히 다루어 마치 병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해야 한다. 흥역이라도 치른 것처럼 벌을 주어야지 나쁜 짓 했다고 느끼게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은 약간의 병적 인 경우를 제외하면 흔히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러셀은 어떤 경우라도 아이에게 해서 안 된다고 주장한다. 평범한 형태 라면 큰 해악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심한 경우엔 반드시 아이의 잔인성을 기른다. 또, 체벌이 습관화되면 만성이 되어 버린다. 만성이 된 체벌은, 언젠가 권력을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인간에게는 아주 위험한 교육이다 . 뿐만 아니라, 체벌은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사이의 순수한 신뢰 관 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3. 생각하기

(1) '체벌'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가, 그렇지 못한가? 어느 한 견해에 동의하여 자기 주장을 펼쳐 보라.

(2) 직접 벌을 받은 경험을 윗글의 내용과 연관시켜 서로 이야기하면서 '꾸지람'을 하는 좋은 방법을 함께 찾아 보라.

(영남일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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