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어 의태어에도 표준말이 있다
퀴즈를 먼저 풀어보자.
다음 둘 중에서 맞는 표기는?
1. 단촐하다/단출하다
2. 깡총깡총/깡충깡충
3. 소근소근/소곤소곤
아마 앞엣말에 동그라미를 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 뒤엣말이 표준어이다.
출판되기 전의 수고(手稿) 또는 원고를 읽다보면 표준어와는 달리 의성어 의태어를 쓴 경우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살림이) 단촐하다’가 아니고 ‘단출하다’가 표준말이라는 게 영 어색하다. 예전에는 의성어 의태어에서 이른바 ‘모음조화’가 유지되었는데,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시대 흐름에 따른 말의 변화를 인정해 일부 모음조화가 깨진 의성어 의태어를 표준말로 삼고 있다. 그러다보니 말의 규칙성이 흐트러져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토끼가 뛰는 모습이 깡총깡총이면 어떻고 깡충깡충이면 어떤가. ‘소근소근’ ‘소곤소곤’도 마찬가지다. 귓가에 대고 가만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소근소근이면 어떻고 소곤소곤이면 어떤가. 오히려 일반인의 언어 사용에서는 ‘단촐하다’ ‘소근소근’이 우세한 듯한데, 앞으로 표준말을 새로 정할 때는 충분히 검토해서 일반인의 언어 사용이 자연히 맞춤법에 맞아드는 방향으로 말을 골라야 할 것이다.
소리, 모양, 움직임을 흉내내는 말을 쓸 때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쓴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문학 언어에서는 더더구나 작가의 감수성을 중시할 일이다. 그러나 의성어 의태어에도 표준말이 있고, 또 그때그때 마구 만들어 쓰면 소통의 혼란이 온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안학수 시인의 동시집 [낙지네 개흙 잔치](창비 2004)를 읽다 보면, 참 우리말을 평범하게 쓰면서도 빛나게 쓰고 있어 점점 그 맛에 취해 들게 된다. 여러 작품이 의식적으로 의성어 의태어에 공을 들이고 있고, 편편마다 깔끔하면서도 정확한 우리말 사용이 상큼하기만 하다.
좋은 작품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명편은 [개펄 마당]이 아닐까 한다.
밀릉슬릉 주름진 건
파도가 쓸고 간 발자국,
고물꼬물 줄을 푼 건
고둥이 놀다 간 발자국.
스랑그랑 일궈 논 건
농게가 일한 발자국,
오공조공 꾸준한 건
물새가 살핀 발자국.
온갖 발자국들이 모여
지나온
저마다의 길을 펼쳐 보인 개펄 마당.
그 중에 으뜸인 건
쩔부럭 절푸럭
뻘배 밀고 간 할머니의 발자국,
그걸 보고 흉내낸 건
폴라락 쫄라락
몸을 밀고 간 짱뚱어의 발자국.
개펄에 남은 여러 자국들을 보고 그 생긴 과정을 짚어보는데, 인간을 포함해 개펄을 무대로 살아가는 여러 생물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진다. 고물꼬물, 쩔부럭 절푸럭 등 반복되는 표현도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조금씩 변화를 준 것은 개펄에 생긴 자국 자체가 똑같은 반복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환기한다. 하나하나 의태어가 다 다르고, 또 파도를 포함해 개펄 생물들이 움직인 모양도 다 다르다. 고둥이 기어간 자취는 ‘고물꼬물 줄을 푼’ 모습이고, 농게가 남긴 자국은 ‘스랑그랑 일궈 놓은’ 일한 자취이고, 물새의 자취는 ‘오공조공 꾸준하게’ 잡아 먹을 것을 찾아 살피고 다닌 흔적이다. 이 얼마나 간결 섬세하면서도 정밀한 관찰인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할머니의 발자국이 으뜸인 것은 일단 그만큼 큰 덩치로 또 뻘배까지 밀고 나간 까닭일 텐데, 여기서 짱뚱어의 흉내로 인해 할머니와 다른 개펄 생물들이 동격으로 놓이게 된다. 뻘배 밀고 생활 마당에 나선 할머니가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한 풍경이 된 것도 아니고, 온갖 개펄 생물들과 똑같이 하나의 살아가는 자취를 보여주고 있는 데서 이 시는 경물시(景物詩)에 머무르지도 않고 인생담으로 흐르지도 않은 시의 진경에 도달하였다.
-[삶이 보이는 창] 2005년 3-4월호
퀴즈를 먼저 풀어보자.
다음 둘 중에서 맞는 표기는?
1. 단촐하다/단출하다
2. 깡총깡총/깡충깡충
3. 소근소근/소곤소곤
아마 앞엣말에 동그라미를 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 뒤엣말이 표준어이다.
출판되기 전의 수고(手稿) 또는 원고를 읽다보면 표준어와는 달리 의성어 의태어를 쓴 경우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살림이) 단촐하다’가 아니고 ‘단출하다’가 표준말이라는 게 영 어색하다. 예전에는 의성어 의태어에서 이른바 ‘모음조화’가 유지되었는데,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시대 흐름에 따른 말의 변화를 인정해 일부 모음조화가 깨진 의성어 의태어를 표준말로 삼고 있다. 그러다보니 말의 규칙성이 흐트러져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토끼가 뛰는 모습이 깡총깡총이면 어떻고 깡충깡충이면 어떤가. ‘소근소근’ ‘소곤소곤’도 마찬가지다. 귓가에 대고 가만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소근소근이면 어떻고 소곤소곤이면 어떤가. 오히려 일반인의 언어 사용에서는 ‘단촐하다’ ‘소근소근’이 우세한 듯한데, 앞으로 표준말을 새로 정할 때는 충분히 검토해서 일반인의 언어 사용이 자연히 맞춤법에 맞아드는 방향으로 말을 골라야 할 것이다.
소리, 모양, 움직임을 흉내내는 말을 쓸 때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쓴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문학 언어에서는 더더구나 작가의 감수성을 중시할 일이다. 그러나 의성어 의태어에도 표준말이 있고, 또 그때그때 마구 만들어 쓰면 소통의 혼란이 온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안학수 시인의 동시집 [낙지네 개흙 잔치](창비 2004)를 읽다 보면, 참 우리말을 평범하게 쓰면서도 빛나게 쓰고 있어 점점 그 맛에 취해 들게 된다. 여러 작품이 의식적으로 의성어 의태어에 공을 들이고 있고, 편편마다 깔끔하면서도 정확한 우리말 사용이 상큼하기만 하다.
좋은 작품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명편은 [개펄 마당]이 아닐까 한다.
밀릉슬릉 주름진 건
파도가 쓸고 간 발자국,
고물꼬물 줄을 푼 건
고둥이 놀다 간 발자국.
스랑그랑 일궈 논 건
농게가 일한 발자국,
오공조공 꾸준한 건
물새가 살핀 발자국.
온갖 발자국들이 모여
지나온
저마다의 길을 펼쳐 보인 개펄 마당.
그 중에 으뜸인 건
쩔부럭 절푸럭
뻘배 밀고 간 할머니의 발자국,
그걸 보고 흉내낸 건
폴라락 쫄라락
몸을 밀고 간 짱뚱어의 발자국.
개펄에 남은 여러 자국들을 보고 그 생긴 과정을 짚어보는데, 인간을 포함해 개펄을 무대로 살아가는 여러 생물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진다. 고물꼬물, 쩔부럭 절푸럭 등 반복되는 표현도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조금씩 변화를 준 것은 개펄에 생긴 자국 자체가 똑같은 반복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환기한다. 하나하나 의태어가 다 다르고, 또 파도를 포함해 개펄 생물들이 움직인 모양도 다 다르다. 고둥이 기어간 자취는 ‘고물꼬물 줄을 푼’ 모습이고, 농게가 남긴 자국은 ‘스랑그랑 일궈 놓은’ 일한 자취이고, 물새의 자취는 ‘오공조공 꾸준하게’ 잡아 먹을 것을 찾아 살피고 다닌 흔적이다. 이 얼마나 간결 섬세하면서도 정밀한 관찰인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할머니의 발자국이 으뜸인 것은 일단 그만큼 큰 덩치로 또 뻘배까지 밀고 나간 까닭일 텐데, 여기서 짱뚱어의 흉내로 인해 할머니와 다른 개펄 생물들이 동격으로 놓이게 된다. 뻘배 밀고 생활 마당에 나선 할머니가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한 풍경이 된 것도 아니고, 온갖 개펄 생물들과 똑같이 하나의 살아가는 자취를 보여주고 있는 데서 이 시는 경물시(景物詩)에 머무르지도 않고 인생담으로 흐르지도 않은 시의 진경에 도달하였다.
-[삶이 보이는 창] 2005년 3-4월호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