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겨레를 살린 주시경과 그 제자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리대로
1. 주시경은 한글을 살려 겨레를 일어나게 한 사람
1.1.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글로 성경을 써 선교하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3년에 만들어 3년 동안 쓸 수 있도록 다듬고 채비한 뒤 1446년부터 썼다. 그런데 한글이 태어나고 성종 때까지 50여 년은 나라에서 한글을 널리 알리고 쓰려고 힘썼으나 연산군 때부터 조선 350해 동안 한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300여 년이 지나고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이 조선에는 한자보다 더 좋은 한글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글로 성경을 써서 선교하고 미국인 헐버트가 한글로 ‘사민필지’란 교과서를 쓰고 주시경이 한글을 연구하고 말본을 만들고 제자들을 키우면서 한글이 살아날 길이 열렸다.
1832년 도이칠란트 사람 ‘칼 귀츨라프’란 기독교 선교사가 주기도문을 한말글로 번역하고 서양에 한글과 세종대왕을 소개했으나 조선 사람들에게 한글을 쓰자고 나서지는 않았다. 또한 ‘존 로스’ 선교사가 중국 만주에서 1882년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요한복음젼셔》를 시작으로, 1887년에는 신약 전체 번역본인 《예수셩교젼셔》가 완성되었다. 이 성경은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이며, 기독교뿐 아니라 한글 역사에 중대한 일이었다.
그리고 1886년 고종 때 처음 생긴 서양식 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온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가 한글이 한자보다 더 좋은 글자이며 한글을 쓰는 것이 좋은데 조선 사람들이 한글을 쓰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한글을 배워서 선비와 백성 모두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사민필지’를 지어 가르쳤다. 세계 사회지리책이었다. 이 일은 한글이 태어나고 200년 쯤 뒤인 1687년 구운몽을 한글로 쓴 김만중이 한글로 쓴 글이 우리글이라고 주장한 200년 뒤 헐버트가 진짜 한글자강운동을 주장하고 실천했다.
이때는 ‘학교’라는 말도 없었고 쓰지 않아서 “인재를 교육하여 길러 내는 터, 나라 일꾼을 가르치고 기르는 곳”, 이라는 뜻을 가진 ‘육영공원’의 영어 교사로 온 외국인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세계 사회지리 교과서를 한말글로 지어 한글자강운동을 실천한 일은 한글로 잠자는 한국인을 깨운 일이었다. 그 뒤 헐버트는 잠시 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배재학당에 와서 삼문출판사 책임을 맡고 있을 때에 주시경이 배재학당에 들어왔고 헐버트를 만난다. 헐버트는 고종에게도 영어를 가르치고 친밀하게 지냈는데 1894년 고종 때 한글을 국문이라면서 공문서에 쓰게 하는 칙령도 발표한다. 이때에 주시경이 한글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헐버트가 한글로 쓴 사민필지(왼쪽)를 조선인은 한자로 바꾸어(오른쪽) 쓰고 읽었다.
1.2. 주시경이 서재필, 헐버트와 함께 한글로 만든 독립신문.
기독교가 한글로 성경을 써서 조선인들에게 알릴 때 주시경(1876-1914)은 서울에서 서당을 다녔는데 우리가 우리 글자인 국문으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15세에 국문을 처음 배워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에 나섰다. 그리고 1893년 17살 때부터 한문 대신 국문으로 글을 쓰면서 영어를 배울 때 영문 로마자가 자모음으로 나뉜 것을 보고 국문도 자모음을 가진 소리글자임을 깨닫고 우리말본을 연구하며 『국어문법』을 짓는 일에 나섰다. 그리고 1894년 18살에 배재학당 사회지리과에 들어가 서양 학문을 배운다.
그때 헐버트가 책임자로 있는 삼문출판사에 사환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는데 그 출판사 책임자인 호머 헐버트를 만났고, 1896년 서재필과 헐버트(영문 주필)가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 때 이미 스스로 한글을 배우고 연구하여 한글을 잘 알고 있는 주시경이 부주필로서 한글신문 편집을 하게 된다. 그때 그는 신문사 안에 국문동식회(한글맞춤법연구모임)를 만들고 한글을 연구하면서 진짜 한글학자와 한글연구가가 된다.
▲서재필, 주시경, 헐버트가 만나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든 것은 매우 큰일이고 좋은 일이었다.
독립신문은 한글과 영문으로 만들었는데 영문은 헐버트가 맡아서 내고 한글은 주시경이 편집을 했기에 주시경은 국문동식회 활동을 할 때에 영어와 외국어를 잘 알고 미국에서 영문법을 공부한 헐버트에게 여러 가지 묻고 배웠을 것이다. 또 독립신문을 만들기 5년 앞에 한글로 사민필지를 쓴 헐버트와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게 된 것은 주시경이 한글을 살려서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굳게 믿고 한글자강운동을 더욱 힘차게 나선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때 주시경이 헐버트를 만난 것은 한글을 살리고 빛내라는 하늘 뜻이었고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3. 훌륭한 한글 연구가, 교육자가 되어 제자를 키우다.
정부는 1894년 우리 글자인 한글을 국문(나라글자)이라면서 한글로 공문서를 쓴다는 칙령을 발표하고 1907년에는 정부 안에 국문연구소를 만든다. 그때 주시경은 국문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들어가 일을 하면서 상동교회 안에 따로 한글강습소를 만들고 제자들을 길러낸다. 1908년에는 그 제자들과 우리나라 최초 학회요, 세계 최초인 국어연구학회(회장 김정진)를 만든다. 그리고 그 학회 안에 조선어강습원을 꾸리고 제자들을 키우고 배재학당, 이화학당, 보성중학 들 20여 개 학교를 돌며 한글을 가르친다.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겨레와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뜨거운 한글사랑, 겨레사랑 꿈을 이루려는 몸부림이었다.
▲주시경의 뜻과 가르침을 편 김두봉과 조선말본(왼쪽), 최현배가 쓴 붓글씨와 최현배(오른쪽).
그때 최현배, 김두봉, 김윤경, 신명균 같은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어 그가 돌아가신 뒤에도 그들이 주시경의 뜻과 꿈을 이어서 이루려고 애쓴다. 그렇게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내서 남북이 갈라진 뒤에도 남에서는 최현배와 다른 제자들, 북에서는 김두봉과 다른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말글을 지키고 빛내게 된다. 그때 주시경은 20여 개 학교에 한글책 보따리를 들고 바쁘게 가르치려고 다니니 학생들이 주보따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만약에 그 시대에 주시경이 태어나지 않고, 주시경이 한글을 연구하고 바쁘게 제자들을 길러내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중국 한문 속에 헤매거나 일본 말글로 말글살이를 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1.4. 제자들과 함께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를 만들다.
1894년 고종이 우리 글자인 한글을 국문(나라글자)이라면서 한글로 공문서를 쓴다는 칙령을 발표하고 2007년 주시경, 지석영들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정부 안에 한글을 연구하는 국문연구소를 만들었는데 주시경이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상동교회에 한글을 가르치는 학원을 차리고 제자들을 키운 뒤 그 제자들과 함께 1908년에 국어연구학회(회장 김정진)를 만들고 한글 연구와 교육을 한다. 이 학회는 우리나라 최초 민간학회이며 언어학회였다. 그런데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 일본말이 국어가 되니 ‘국어연구학회’란 이름을 ‘배달말글몯음’이라고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었다가 ‘한글모’로 바꾸고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1914년에 주시경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학회는 활동이 좀 뜸하다가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 1926년에 한글날도 만들고 한글을 살리고 빛내자고 다짐하면서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꾼다. 그리고 한글맞춤법, 표준어와 로마자표기법을 만들고 우리말 말모이가 완성되어가던 1942년에 일본은 조선어학회 사람들 33명을 독립을 위한 내란 범인으로 규정하고 옥살이를 시키고 강제로 학회를 해산시킨다. 다행히 1945년에 광복이 되어 다시 활동을 시작해 주시경 제자들이 교과서와 공문서를 한글로 만들고 쓰게 되었다. 모두 주시경과 그 제자들 덕이다.
▲서대문구 봉원사에 있는 한글학회 창립한 곳을 알리는 빗돌과 한글회관에 있는 주시경상.
2. 주시경과 제자들이 한 위대한 일들
2.1. 한글을 살려서 나라가 일어날 바탕을 만들었다.
주시경은 1910년에 쓴 ‘한나라말’이라는 글에서 “그 나라의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그 나라 말이 내리면 그 나라가 내린다.”라며 우리 말글을 지키고 갈고 닦아서 나라와 겨레가 일어날 밑거름을 만들고 밑바탕을 다졌다. 그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말글을 갈고 닦고 가르치려고 바쁘게 살았다. 안타깝게 39살에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 짧은 세월에 우리말본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쓸 수 있는 길을 만들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할 수 있고 자주 독립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다음으로 매우 큰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일제 때에 한글날을 만들고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우리말사전을 만들고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어 국민들을 교육해서 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되었고 국민수준이 높아져서 그 바탕에서 반세기만에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발전하고 우리 자주문화가 꽃펴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온 세계로 우리문화가 뻗어나가게 된 것은 한글을 누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길을 닦고 연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한글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지키고 살렸기 때문이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말본을 만들고 한글을 갈고 닦은 주시경과 그 제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렇게 한글나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글학회가 만든 국어사전과 주시경이 쓴 말분, 한글맞춤법 통일안.
2.2. 새로운 길을 만들고 이끄는 개혁자였다.
주시경은 한자를 쓰지 말고 한글을 쓰자고 깃발을 들고 외치면서 한글을 쓸 수 있도록 말본을 만들고 제자를 키우고 함께 실천한 것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함께 혁명가였고 개혁자였다. 조선시대에도 한글을 알고 쓰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한글이 빛나고 한글로 나라를 일으키자는 한글자강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한글을 살려서 쓰는 것이 옳은 일이고 좋다고 굳게 믿고 그 길을 만들고 먼저 걸었다.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 한글을 만든 것이 문자혁명이고 개혁이었듯이 주시경이 한글을 쓰게 한 것도 말글살이 개혁이었고 혁명이었다. 두 분 다 세상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 스스로도 그 잘못된 세상에 맞추어 산 것이 아니고 좋게 바꾼 것이고 한배검이 “널리 사람을 이익되게 하라.”는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중국을 섬기고 한문을 쓰는 것이 세상 흐름이었지만 세종과 주시경은 그렇지 않았다. 나라 망치는 중화사상과 유학을 거스르고 그 관습도 바꾸었고 우리 것을 귀중하게 여겼다. 마음만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라 실천했다. 불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싸워서라도 세상을 새롭게 바꾸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상투를 자르는 것은 조상에게 불효라고 여길 때 그는 상투를 자르고 편하게 살았다. “공자 왈, 맹자 왈” 한문을 외우며 배우다가 세월을 보낼 수 없어 우리 글자 한글을 배워 쓰자고 했다. 그가 개혁자요 선구자란 것은 그 모습과 실천에서 잘 나타나있다. 그때는 모두 상투를 할 때인데 그는 머리를 짧게 깎았다. 이 또한 개혁 실천이었다.
▲모든 이들이 댕기머리하고 갓을 쓸 때에 주시경이 상투를 자른 이 모습은 개혁 실천 상징.
2.3. 우리말 지킴이요 한말글 이름 짓기 길을 연 선구자였다.
주시경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 우리말을 ‘한말’, 우리 글자를 ‘한글’이라고 떳떳한 우리말 이름을 지어 불렀다. 자신의 이름도 ‘한힌샘’이라고 지어 부르고 한문으로 지었던 제 아들딸들 이름도 삼산은 세메, 왕산은 한메처럼 우리말로 바꾸었다. 그리고 말본 낱말도 우리말로 지어서 가르쳤다. 예부터 이름도 성씨도 없는 노비들은 “막동이, 갓난이”처럼 우리말로 이름을 지어 부르고 우리 땅이름도 우리말로 지어 불렀지만 학술용어는 한자말이었다. 그런데 주시경은 말본 낱말을 우리말로 지어 불렀다. 수료증이나 졸업장도 “익힘에 주는 글, 마침보람”이라고 썼다. 우리말로 이름 짓기 선구자요 토박이말 살리기 개척자다.
5000해 써온 우리말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글자가 있는데 우리 말글로 이름도 짓지 않고 지을 줄도 모르며 우리말로 낱말을 만들지 않고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은 매우 못난 일이고 잘못된 일이다. 일제가 한자말로 바꾼 우리 땅 이름도 찾아 적고, 우리 한말글로 이름도 짓고 써야 한다. 우리 교과서부터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빼버리고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야 우리 자주정신이 살고 자주독립국이 된다. 그래야 진짜 앞서가는 나라 선진국이 된다. 이 일은 한글로 나라를 살리려고 주시경이 보여준 뜻과 정신을 살리는 일이다.
▲1912년 조선어강습원 수료증 직인에 “한말 익힘곳”이라는 말이 있고, 일본 강점기 한글날에 조중훈님이 동아일보에 쓴 시에 우리말 이름은 한말, 우리글 이름은 한글이라고 쓰고 있다.
2.4. 일제 강점기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키고 갈고 닦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니 주시경은 우리말을 국어, 우리 글자를 국문이라고 할 수 없게 되어서 우리말을 ‘한말’, 우리글자는 ‘한글’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주고 우리말글을 지키고 갈고 닦아 제자들을 키워서 나라를 되찾으려고 했으나 일제 탄압이 심해서 만주나 상해로 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4년 갑자기 급체로 이 땅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한글모’ 모임도 활동이 주춤하다가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다시 만들고 1926년에는 한글날을 만들었으며 1929년에 이극로가 앞장서서 우리말모이 만들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1931년에 모임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1933년에 한글맞춤법을 만들었으며 이어서 표준말을 정하고 외래어표기법도 만들었다. 그리고 말모이가 거의 다 되어갈 때 일제가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해 1942년 10월 1일 학회 간부들 33분을 경찰서에 끌고 가 고문해 한징, 이윤재 두 분은 옥에서 돌아가시고 조선어학회는 해산되었다. 다행히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옥살이 하던 분들은 풀려나고 우리 말글도 빛을 보게 된다. 이날은 나라가 빛을 본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말글이 빛을 보게 된 날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끌려간 33인(왼쪽), 1926년 가갸날(한글날) 처음 잔치(오른쪽)
2.5. 미국 군정 때부터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다.
고종 때 육영공원 교사로 온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사민필지를 한글로 만들고 대한제국 때 주시경이 말본 책을 한글로 만든 뒤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학회가 한글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한글을 갈고 닦아서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조선어학회가 앞장을 서서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고 우리말글로 교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큰일이었고 아주 잘한 일이었다. 세종대왕께서 배우고 쓰기 쉬운 우리 글자를 만드니 모두 배우고 익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라고 했지만 조선 500년 동안 한글로 배움 책을 만들고 한글로 교육을 하지 않았다. 중국 사서삼경을 읽고 외우는 것이 배움이었고 그 중국 한문 실력으로 과거시험을 보고 관리를 뽑았다.
조선 사람들은 한자보다 한글이 좋은 글자인지도 몰랐고 한글이 한자보다 우리말을 적고 한글로 말글살이를 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도 모르고 한문을 배우다가 힘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주시경과 그 제자들이 한글을 갈고 닦아 누구나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해서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는 교과서로 배우고 말글살이를 할 수 있어서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국민수준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발전해서 외국인들이 놀라고 있다. 그런데 한자를 섬기던 얼빠진 자들이 미국말 섬기기로 바뀌어 나라 힘과 시간을 헛되게 쓰고 있으니 답답하다.
▲ 조선어학회가 나서서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로 만든 배움 책들
2.6.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교육 기초를 닦았다.
일본이 패망하고 미국 군정이 시작되었을 때에 조선어학회 최현배가 문교부 편수국장을 맡고 장지영이 부국장, 이병기가 편수관으로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어 교육하고 공문서도 썼다. 조선어학회가 일제 때 목숨을 바치며 한글을 갈고 닦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조선어학회 안재홍은 군정청 민정장관으로 일을 했고, 조선어학회는 일제 때 끝내지 못한 우리말 사전을 만들고, 우리말 도로 찾아 쓰기 운동과 한글교사 양성을 해서 우리말글로 교육을 할 수 있게 한다. 또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해 한글을 살리고 바르게 쓰도록 했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울 때에 한글전용법을 제정하고 공문서를 한글로 쓰도록 했으며 초대 내각의 문교부장관에 안호상, 법무부장관에 이인, 재무부장관에 김도연이 들어갔으며 최현배는 다시 대한민국 문교부 편수국장을 맡아서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고 2대 문교부장관 백낙준, 3대 문교부장관 김법린이 이어서 한글학회 사람이 맡았다. 이때 이은상과 이병기들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학교의 교가를 모두 쉬운 우리말로 지었다. 대한민국을 세우고, 대한민국 교육 기초를 다지는 데 한글학회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왼쪽부터 안호상, 백낙준, 김법린 문교부장관, 미군정청 최현배 편수국장, 장지영 편수부국장.
2.7. 한자혼용하자는 자들과 한 문자전쟁을 이기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에 최만리와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 창제를 반대한 일이 있었고, 정조 때에 실학파라는 박제가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했고, 박지원과 정약용은 중국을 담자면서 한문으로만 글을 썼다. 그리고 1961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선 뒤에 미군정 때부터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를 한자혼용으로 만들고 일본처럼 한자혼용하자는 자들이 나타나 서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로 만들던 교과서를 한자혼용하게 했다. 이 일은 세종 때 최만리와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창제를 반대한 뒤 한글을 못살게 한 큰 집단행동이었다. 그래서 1967년에 국어운동대학생회가 태어나 정부에 한글전용을 하게 만드니 1969년에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가 ‘어문회’라는 한자혼용 단체를 만들면서 한글과 한자 문자전쟁이 일어났다.
이 문자전쟁은 조선시대와 일제 때보다도 더 치열하게 한글과 한자가 싸우게 되는데 나는 이 싸움판 선봉에 서서 오늘까지 59년 째 싸우게 되었다.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해야 우리 말글이 독립하는데 일본 식민지 때 태어나 일본식민지 국민교육을 철자하게 받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이숭녕 교수와 그 제자들, 중국 사대모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성균관대 한문과 출신, 그리고 이희승 사위인 김민수 교수가 있는 고려대 국문과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한글을 못살게 굴어서 문자전쟁이 벌어졌으나 우리 한글이 이겼다. 그런데 이 사대주의와 식민지 노예근성은 영어를 쓰는 미국말 섬기기로 바뀌어 또 다른 싸움을 하게 되었으 답답하다.
▲문자전쟁을 하던 한글단체 회원들이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시위를 하고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신청을 외치는 모습.
3. 마무리 말 - 아직도 한글은 제대로 빛나지 못하고 있다.
한글이 태어나고 450년이 지나서 고종은 한글로 공문서도 쓴다는 칙령을 발표하고 지석영, 주시경들의 건의를 받고 국문연구소도 만들어 한글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려고 했다. 주시경은 1908년에 제자들과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 처음 이름)를 만들어 민간인 차원에서 한글을 갈고 닦고 교육해 한글로 힘센 나라를 만들려고 했으나 1910년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서 그 뜻과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주시경은 한글 살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말을 국어라고 할 수 없으니 국어연구학회 이름을 ‘배달말글몯음’이라고 지었다가 ‘한글모’로 바꾸고 20여 개 학교를 돌며 한글을 가르치다가 1914년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활동이 주춤했으나 1921년에 그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1926년에 한글날도 만들고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맞춤법과 표준말, 로마자표기법도 제정했다.
이렇게 주시경과 그 제자들은 일제 때에는 목숨을 바쳐서 우리 한말글을 지키고 갈고 닦아서 광복 뒤부터 우리말글로 교육하고 말글살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글이 빛을 보게 되었는데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자들이 박정희 정부에 한자혼용을 하게 하려고 했으나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의병처럼 일어나고 한글학회 이은상 한갑수 정인섭 이사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1968년에 한글전용 정책을 발표해 한글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런데 얼빠진 김영삼 정부가 영어 바람을 일으키고 그 뒤 김대중 정부가 김종필 총리가 나서서 한자와 영어 섬기기에 나서서 그 뒤 정부들도 그러니 미국말 식민지가 될 판이다
▲ 광화문광장을 영어 선전장으로 만든 서울시(왼쪽)와 서울 명동 영문 간판들 모습(오른쪽)
주시경 선생이 한글과 우리말을 다듬고 가꾸면서 제자들을 키운 일, 그리고 제자들이 세종과 주시경 선생 뜻과 꿈을 이어서 살린 일들은 고마운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며 길이 빛날 일이다. 그런데 주시경 선생은 북쪽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활동하다가 돌아가신 집터 근처인 세종문화회관 뒤 주시경 마당에 그분 뜻을 기리려고 주시경 헐버트 기념물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한글을 만들고 한글을 살리고 빛낸 역사를 알리고 한글문화를 꽃피우게 하려고 한글역사문화관을 짓고 주시경과 그 제자들이 얼마나 애써서 한글을 지키고 살렸으며 앞으로 어떻게 한글을 빛내야 하는지 연구하는 한글문화관을 짓게 했다.
그러나 한자를 섬기는 서울대 국문과 출신 어용교수와 관리들이 한글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옛 책방으로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그 한글박물관에 주시경 헐버트 상설 전시관을 꾸미고 그 제자들이 투쟁한 역사를 알려주거나 따로 주시경 헐버트기념관을 지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리통신시대에 어떻게 한글을 빛내어 한글문화를 꽃피우고 인류문화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실천할 길을 찾아야겠다. 또한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의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달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을 찾아 더욱 한글이 빛날 환경과 분위기를 조선해야겠다.
우리말글인 한말글이 살고 빛나면 우리 겨레와 우리나라가 살고 빛난다. 우리 글자가 없던 때에는 어쩔 수없이 한자를 썼지만 이제 우리말을 한글만으로 적는 말글살이를 해야 한글도 빛나고 나라가 일어난다. 그런데 일본 식민지 때 길든 왜말을 버리지 않고 쓸데없이 한자를 섞어서 쓰는 자들이 있어 한글이 가진 능력과 값어치가 절반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오로지 한글로 글을 쓸 때에 한글문화가 더욱 꽃피고 인류문화발전에도 이바지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진짜 선진국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다시 망할 수 있다.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달고 세종대왕 나신 곳을 찾아 한글과 세종대왕을 빛내자는 국민들.
이제라도 스스로 일어나겠다는 세종정신(자주 자립정신)과 세종이 만들어준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을 잘 이용해 힘을 키우면 우리는 세계 으뜸 나라가 되어 다른 나라에 짓밟히지 않고 세계를 이끌게 될 것이다. 빨리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뿌리내린 식민지 노예근성을 버리고 한말글로 얼 찬 나라를 만들어야겠다. 이재명 정부가 빨리 우리 얼과 말글을 살려서 대한민국다운 나라, 자주독립국, 자주문화강국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끝-
한글학회 시민강좌 강의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