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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소설이고 역사책이 아니라는 증거

작성자나라임자|작성시간26.01.01|조회수25 목록 댓글 0

 

얼숲에 환단고기가  진짜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올린 글이다. 

 

고조선  때 가림토라는 글자가 있었고 세종대왕이 그 글자를 보고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밝히고 있다. 한글을 쓰지는 않고 이런 헛소리에 시간과 힘을 바치고 있으니 답답하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꼴이 되었는지 기가 막힌다.  한번 읽어보시라.

 

한글빛 리대로

ㅡ ㆍㅡㆍ ㅡㅡㅡㅡ 

 

📌한글 기원..가림토加臨土(加臨多) 문자  고조선3세 가륵 단군 시절에 한글의 원형이 나왔다!-

 

於是(어시)에 命三郞乙普勒(명삼랑을보륵)하사 譔正音三十八字(찬정음삼십팔자)하시니

是爲加臨土(시위가림토)라. 其文(기문)에 曰(왈)

이에 가륵 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正音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 글자는 다음과 같다.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문자로 칭송받는 한글, 사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처음 창제한 것이 아니다. 한글의 원형이 이미 고조선 시대에 존재하였다. 환단고기에서는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 문자라 하여 이미 3세 가륵 단군 2년(단기 153, BCE 2181)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正音 38자’를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세종은 이를 모태로 하여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

 

“언문 28자는 고전을 본떴다(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세종실록』 25년 12월

 

“언문은 다 옛 글자에 근본한 것이요, 새로운 글자가 아니다(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세종실록』 26년 2월

 

“형태를 본뜨되 글자는 고전을 본받았다(象形而字倣古篆).”- 『세종실록』 28년,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鄭麟趾 서문

 

여러 차례 언급되는 본고자本古字, 방고전倣古篆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당시 조선 사회에 한글의 원형 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보다 3627년 앞서서 만들어진 ‘가림토 정음38자’를 토대로 하여 정음 28자를 선택했다. ‘발음 기관이 움직이는 모양을 연구하여’ 자음의 음가音價를 부여했고, 모음 •, ㅡ, ㅣ를 천지인 철학으로 설명하고 모음과 자음의 결합 원리를 고안했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문자의 창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어떻게 해서 원형 한글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의 가계家系를 알면 금방 풀린다. 이암 선생의 아들은 이강李岡이고, 그의 손자가 용헌容軒 이원李原이다. 이원은 세종 재위 시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그가 할아버지의 저작 유산인 『단군세기』를 세종에게 진상했고, 세종은 단군세기 속의 가림토 문자를 보았으리라. 이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추론이다.

 

가림토 문자의 흔적은 의외로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일본의 신대문자神代文字(한자가 전래되기 이전 고대 일본에서 사용된 문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몽골의 파스파 문자, 산스크리트 문자 등이다. 혹자는 이를 통해 한글이 이들 문자를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고대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이들 문자들은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가 전파되어 변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환단고기』에는 ‘초대 환웅천황이 신지臣智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을 창제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환단고기』는 배달과 고조선이 창제한 문자를 기록하여 고대 한국이 문자 문명의 발원처임을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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