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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읽기

저수지가 내 몸을 뚫고 들어와/ 길철현

작성자이동훈|작성시간26.06.05|조회수29 목록 댓글 0

저수지가 내 몸을 뚫고 들어와 / 길철현

 

 

저수지는 언제부턴가 거기에 있었지

현재도 거기에 존재하고

당분간은 거기에 있겠지

겨울엔 얼어붙어 죽음보다 고요한 잠을 자기도 하고

세상이 싫어졌나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임장을 하지 않아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필력이 만갑인 어느 필자의 손끝에서

용트림이라도 할 듯 수려한 모습을 뽐내지만,

고봉을 오르는 듯 힘겨이 제방에 올라섰을 때

하늘과 산과 물이 모두 다 같은 푸른 빛이자

또 동시에 다 다른 푸른 빛일 때,

산을 넘어온 바람이 코끝을 희롱하고

물결은 찰랑찰랑 둑과 힘겨루기를 하고

인기척에 놀란 오리들이 푸다닥 날갯짓을 할 때,

바로 그때,

바로 그 순간,

저수지는 내 몸을 뚫고 들어와

피를 타고 돌며

소곤소곤 속삭이는 거야

 

-『저수지가 날, 그게 아니라면』, 이불, 2025.

 

 

감상 – 길철현 시인은 탁구 마니아다. 열 살 때 탁구에 입문한 시인은 일 년에 적어도 366일은 탁구를 치자고 탁구에 대한 맹서를 한 사람이다. 50년 이상 수련한 「탁구의 길」을 오늘도 부지런히 닦고 있을 것이다.

또한 길철현 시인은 저수지 마니아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저수지란 저수지는 모조리 다 헤집고 다닌 지 오십하고도 구 년”(「저수지 순례」)이 지났고, 그 시작도 “내가 저수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저수지가 날 불렀어”(「저수지가 날, 그게 아니라면」) 라는 게 시인의 전언이다.

전국의 크고 작은 저수지를 답사하는 시인의 속내는 무얼까. 저수지가 있는 곳의 주변 풍경도 다양할 테지만 저수지 자체도 산과 하늘을 반영하며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한다. 시인은 이를 “하늘과 산과 물이 모두 다 같은 푸른 빛이자/ 또 동시에 다 다른 푸른 빛”으로 표현한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푸른 빛’은 구체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는 대신에 각자의 상상 속에서 이미지가 완성되게끔 해준다.

시인이 탁구에 빠진 이유가 하나둘이 아닌 것처럼 저수지를 찾는 이유도 단순하게 말해질 사안은 아닐 듯하다. 시인의 말대로 필력이 만갑인 사람들이 저수지의 이모저모를 말하겠지만 시인이 꿀릴 일은 없어 보인다. 필력이 진정성을 이길 순 없기 떄문이다. 저수지가 시인의 몸을 파고들고 피돌기로 몸을 순환하기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탁구와 저수지, 서로 달라 보여도 길철현 시인의 피를 싱싱하게 돌게 하는 건 한가지다. 이쯤 해서 독자들도 남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에 대해서 의문이 생길 텐데 짐짓 물어보자. 당신의 피는 무엇으로 즐거이 돌고 있는지?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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