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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읽기

만수 할배 / 피재현

작성자이동훈|작성시간26.06.11|조회수32 목록 댓글 1

만수 할배 / 피재현

 

 

우리 마을 만수 할배 집 앞에 가면

만수 할배 키보다 큰

대리석 문패가 세워져 있어요

 

키 작다고 어릴 때부터 무시당하고 살아서

원풀이하는 거라고 하던데요

 

가령, 만수 할배가 소를 앞세우고 논을 갈면

“그 집은 소가 혼자서 논 열 마지기를 다 갈대”

“니는 일 안 하고 어디 갔었노?”하고

농을 하는 식이었는데요

만수 할배는 그만 분해서 씩씩거렸지만

별수는 없었다는군요

 

우리 집 담장 너머로 만수 할배 지나가시면

반짝이는 머리통만 살짝이 보이는데요

나는 냅다 “할배요 어디 가니껴?”

아주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인 양 인사를 하지요

 

우리가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빨갱이들 들어왔다고

보는 눈들이 영판 싸늘했었는데요

만수 할배가 젤 먼저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오셨거든요

 

“주사는 어디 살다 왔니껴?” 하시는데

그때부터 우리 집 마당이

환하게 밝아졌거든요

 

-『불투명 인간』, 걷는사람, 2026.

 

 

감상 - 시인이 안동에서 시집도서관포엠을 운영한다는 걸 알고 찾아간 적이 있다. 정원을 옆에 두고 시집도서관과 공방이 나란히 있던 그곳은 안동 남선면 원림리 소재다. 시인이 거주하는 집도 마을 안쪽에 따로 있었을 것이다.

 

피재현 시인이 태어난 고향도 남선면 위쪽의 일직면이다. 조탑동 5층전탑이 있는 일직면 조탑리는 권쟁생의 오두막과 그가 종을 쳤던 일직교회가 있는 곳이고, 일직면 운산리는 소설 『몽실언니』의 배경이 된 곳이다. 피재현이 졸업한 일직초등학교는 권정생에게 졸업장을 준 유일한 학교다. 피재현 시인 부부는 권정생을 각별히 생각하며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 시집도서관 내부에 권정생 관련 글 그림 서각도 볼 수 있는데 시인이 손수 만든 작품들이란다.

 

권정생과 이오덕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억지로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쓰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그 모범을 보인 사람이다. 피재현의 시편은 까다로운 두 사람의 눈높이에도 딱 맞겠다. 요양원 어머니와 어머니를 대하는 자식의 태도가 담긴 『원더우먼 윤채선』(2020)이 꼭 그런 작품으로 독자의 마음을 흔들더니, 늙은 사람만 모여 사는 농촌의 현실을 반영한 『불투명 인간』도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잡는다.

 

삶이 슬프고 어두운 데 그럼, 그걸 쓸 수밖에 없지 않냐는 태도를 권정생은 간직하고 있었고 피재현도 그러해 보인다. 동네 선후배 같고 사제지간 같은 권정생과 피재현은 슬픔 중에 또 어둠 중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는 재주와 정성이 있는가 싶다. 「만수 할배」에선 시인 특유의 유머와 정(情)이 반짝이는 그 무엇에 해당한다고 말해도 좋겠다.

 

마을 어른들의 짓궂은 대화는 흉허물 없는 사이에 오가는 인사나 말의 재미가 본령이지 상대를 아프게 하려는 악의는 없어 보인다. 주고받는 대화 끝에 기분 따라 연극적 제스처는 취할지언정 상황이 나빠질 거 같진 않다. 말을 돌려서 하는 여유가 있고, 같이 웃자는 의도가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을에 전입 온 가족 입장에선 풍문도 신경 쓰일 테고 말이나 행동도 조심스러웠겠다. 그런 중에 먼저 집 마당을 찾아오고 먼저 말을 건네준 만수 할배의 태도는 사람 사이 정(情)을 내는 모습이다. 그 정은 또 다른 정을 부르고 결국, 마당이 환해지고 마을이 환해지는 일이 되겠다.

 

인구 소멸 도시를 걱정하는 농촌 현실을 생각하면, 쓸쓸함도 그런 쓸쓸함이 없다고 해야겠으나 그 해결도 지금 현실부터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애써 웃음을 부르고 정을 내면서 살다 보면 또 다른 세상도 보게 될지 모른다. 막연한 기대도 없는 것보다 낫겠다고 생각하니 조금 웃게 된다. 「만수 할배」 뒤를 이어 「만수 할배 실종 사건」도 이어지니, 궁금하면 시집을 읽는 게 정도(正道)다. 아니면 권정생 오두막을 들른 후에 시집도서관포엠까지 휙 가보는 것도 바른길이라 하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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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정식 | 작성시간 26.06.19 new 시와 시평 흥미롭게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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