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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 에세이

섬의 매력 / 박희진

작성자임동윤|작성시간07.02.03|조회수70 목록 댓글 0

 

 

    권두에세이

 

섬의 매력


 

박  희  진(시인)



   ① 다리

  섬이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면 섬이 아니다. 명목은 섬이라 할지라도 섬의 맛은 반감된다는 견해가 있다. 강화도, 거제도, 완도, 나로도, 돌산도 등. 육지와 연결되면 섬의 순수성이 어쩔 수 없이 훼손될밖에 없다는 것이 그러한 견해의 근거일 것이다.

 

  ② 바다

  섬을 섬답게 하는 조건의 하나는 마땅히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섬에 가려면 멀거나 가깝거나 반드시 바다를 통과해야 한다.

  왜 섬에 가는가? 우선 배 타고 바다를 항진하는 재미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도 좋지만 다소 넘실대는 바다도 괜찮다. 그렇다. 바다는 잠시도 정지 상태가 없다. 늘 율동하는 생명 덩어리인 무궁동 바다. 부단한 자기혁신의 바다. 그런 바다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을 쏘이면서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에 눈 주거나, 보는 위치와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달리 뵈는 각양각색의 섬들을 보노라면 흥미진진하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은 바닷빛깔. 아무리 쏘여도 싫지 않은 바닷바람. 푸른 하늘에 흰 조각구름이라도 둥실둥실 떠 있으면 금상첨화다.


  ③ 땅, 풀, 나무, 숲, 당집, 오솔길, 산

  한 서너 시간 바다를 항진하다 섬에 당도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포장이 안 된 길의 흙이 반갑다. 길가에 우거진 초록의 풀들은 왜 그리 신선한가. 섬의 나무는 홀로 서 있건 무리 져 서 있건 나그네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팽나무, 후박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그런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곳엔 흔히 작은 당집이 있게 마련이다. 당집이란 신을 모셔놓고 위하는 집이다. 섬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사람들이 일 년에 한두 번 제사를 지내는 신심의 귀의처다. 어떤 경우엔 당집 대신 오래된 거목이나 거암을 신체(神體)로 떠받들기도 한다. 그런 거목이나 거암의 밑둘레엔 신성불가침의 새끼줄이 쳐져 있고 지포(紙布)가 끼워져 있는 걸 보게 된다.

  교회와 절이 나란히 들어선 섬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텅 비어 있는 경우가 예사란다. 마을 인구가 워낙 적은 데다 섬의 인심이란 완강하게 보수적인 편이다. 섬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위험한 일들, 변덕스런 날씨, 태풍, 노도, 폭우 등에 직면할 때 초미의 관심사는 어부들과 고깃배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 말고 있겠는가. 사후의 천국이나 극락왕생은 너무 유장하여 쉽게 마음이 쏠리지 않을 줄 안다.

  숲 속에 나 있는 오솔길을 그냥 걷는 재미. 이름도 모를 작은 들꽃의 빛깔도 곱거니와 문득 들려오는 휘파람새나 동박새 소리가 어찌 그리 심금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길 한복판에 나와 있는 민달팽이 알몸을 하마터면 밟을 뻔하기도. 뜻밖의 공터에 초록빛 무덤이 대여섯 몰려있는 광경이 여간 고즈넉해 보이지 않는다. 오솔길이 가파른 산길로 이어진다. 나는 그만 숨이 가빠지고 진땀을 한 사발 흘리게 되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으로 모든 고생을 일시에 잊게 된다. 일망무제로 전개된 바다 위엔 섬들이 올망졸망 귀엽게 널려 있고 하늘에선 하늘하늘 하강하는 선녀들의 옷자락이 보인다. 땀에 젖은 온몸의 세포 알알이 스며드는 바닷바람! 그 맑고 시원한 맛은 차라리 달콤하다. 아, 아, 아아, 아아,…… 연방 장탄식이 입술 뚫고 나올밖에. 나는 어느덧 너럭바위 위에 사지를 펴고 큰 대자로 누워 있다. 그대로 무념무상에 잠긴 채 끝 모를 심연에 잠기고 싶을 뿐.


 ④ 염소와 일자(一字)눈과 수평선

  섬에서는 육지에서 흔히 보는 개, 닭, 소보다도 염소가 흔하다. 대개는 풀밭에서 얌전히 풀을 뜯고 있는 것이 예사지만, 절벽 꼭대기에 웬일로 한 마리가 우뚝 서 있거나, 길도 없어 뵈는 낭떠러지의 어중간에서 두세 마리가 곡예하듯 희롱하기도 한다.

  나는 양띠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염소가 귀엽다. 그래서 그 곁을 지나갈 때엔 ‘매해해 매해해’ 염소 우는 흉내를 내 보기도 한다. 한번은 내가 이 나라의 최남단 마라도에 갔을 때 일이었다. 염소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하여 나를 졸래졸래 따라오지 않는가. 그 모양이 하도 이상하고 신기해서 나는 불쑥 뒤돌아선다. 그러자 염소도 그 자리에 멈춘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너 참 예쁘구나. 내가 누군지 아는 모양이지?」 염소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이내 앞다리를 맥없이 꺾는다. 그것은 분명 내게 인사를 올리는 몸짓이다. 나는 가벼운 전율과 함께 감동으로 가슴이 설렌다.


  이생진 시인은 어디에선가 염소 눈을 가리켜서 일자(一字)눈이라 했다. 나는 그걸 처음 맹골도에서 확인한 바 있지만 마라도에서도 확인했다. 마라도는 여느 섬과는 다른 특별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섬의 생김새가 험준한 현무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항공모함 같다고 할까 요새의 느낌을 준다. 섬의 표면엔 온통 풀밭이 펼쳐져 있어 나무다운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사방 어디서나 보이는 것이라곤 수평선뿐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만든 일자 수평선! 일 년 열두 달 그런 수평선의 일자만 보고 사니, 어찌 동물인 염소의 눈인들 그 일자를 닮지 않겠는가.


  ⑤ 등대

  처음으로 와 보는 섬이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엔 무조건 등대를 찾아갈 일이다. 그러면 반드시 절경을 만나리라.

  보기만 해도 까닭 모를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는, 날씬한 몸매의 하얀 등대! 등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꿈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칠흑의 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어부가 등댓불을 본다면 그 순간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게고 얼어붙은 심장은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렇듯 소중한 생명의 등대를 아무 장소에나 세울 리 없다. 가장 좋은 시야를 지닌 최적의 장소에 세워진 등대, 빛과 소생의 활력을 안겨주는 등대는 아름답다. 섬의 시다.


  ⑥ 섬에 가면 걷는 게 일이다

  문명생활에 길들여진 도시인이 섬에 가면 불편한 게 사실이다. 제주도나 강화도 같이 아주 큰 섬이라면 몰라도. 우선 일체의 대중교통수단이 없다. 길은 나 있지만 차도는 아니고 사람이 다니는 흙길인 것이다. 민박집에도 텔레비전은 있지만 변소나 욕실이 거실 곁에 붙어 있는 집 구조는 거의 없다. 겨우 편의점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상품들이 산적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바로 그러한 결핍 때문에 섬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또 그 때문에 섬을 마치 이상향인 양 즐겨 찾는 사람들도 있게 된다.

  우선 도시의 매연과 소음을 여의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거리마다 넘치는 인파(人波), 인파, 군중적 인간들의 잡답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시원한가! 도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파란 하늘, 햇빛 쏟아지는 찬란한 바다, 우거진 초목, 달콤한 바람, 태고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윽한 산, 순백의 모래톱, 반쯤 열린 꿈꾸는 조개, 멀리 갈매기 우짖는 소리, 밤이면 대추알만 한 별들이 빛나는 하늘의 아름다움……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순수무구한 신선한 공기의 치유력 아닐까. 그런 공기를 마시면 폐벽에 묻은 먼지와 그을음이 말끔히 가시는 것 같다. 온몸에서 저절로 신생의 환희가 솟구친다.

  왜 섬에 가는가? 바로 그러한 신생의 환희를 맛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일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섬의 여기저기 나 있는 작은 길, 그 신비로운 오솔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오솔길 앞에 왜 ‘신비로운’이란 형용사가 붙는가? 다름 아닌 그 오솔길 끝이 섬이 구석구석 간직하고 있는 신비와 환상의 별세계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솔길 따라 나그네는 어슬렁 걷기만 하면 된다.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휘파람새 소리라도 내면서 가다 보면, 홀연 전개되는 미(美)의 세계 앞에 한동안 발길을 멈추게 될 것이다. 때로 그것은 울트라마린의 바다일 수도 있고, 미풍에 흐느끼는 초록의 목초밭일 수도 있다. 혹은 절벽으로 가려진 비밀 해수욕장일 수도 있고, 동백꽃 만발한 숲 속의 당집일 수도 있다.

 ‘섬에 가면 걷는 게 일’이라는 말의 진의를 이제 독자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걸을 수밖에 없어서 걷는 것과 걷고 싶어 걷는 것은 천양지차다. 섬에 가면 걷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자, 그런 사람이라야 섬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다.


  ⑦ 섬은 일주해야

  공간을 차지하는 입체 조형물인 조각의 경우,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서는 그 작품을 한바퀴 돌아가며 보아야 마땅하다. 조화옹의 조각인 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섬의 개성 또는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특정 장소를 몇 군데 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섬을 이 구석 저 구석 도보로 누비면서 한바퀴 도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섬의 지형에 따라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생긴다. 그러므로 좋기는 도보일주에다 별도로 배를 타고 섬 둘레를 돌아보는 일이겠다. 단언하건대 상상도 못했던 풍광을 만나 환호와 탄성을 지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⑧ 섬사람과 내륙사람

  내륙사람 중엔 섬을 동경하고 가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하겠으나, 섬사람들

거의 예외 없이 육지를 꿈꾸고 육지에서 살기를 갈망한다. 자기는 지금 어쩔 수 없이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지만, 자녀들만은 모두 육지에서 교육을 받게 하여 가정을 이루고 정주케 하려는 게 섬사람들 심정이고 대부분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섬에 유난히 폐가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작은 섬엔, 비록 해산물은 풍성하다지만, 늙은이들만 남아서 살고 있다. 남자 늙은이는 겨우 한둘이고 과부 늙은이만 칠팔 명이라니 딱하기 짝이 없다. 아마 그들마저 세상을 하직하면 섬은 별수 없이 무인도가 될 것이다.


  ⑨ 섬 출신 시인들

  등대가 섬의 시라고 하면 섬 자체는 바다의 시다. 그렇다면 섬 출신 시인도 있을 법한데…… 많지는 않아도 몇 있다 하니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 여겨진다. 예컨대 사량도의 차한수 시인과 이종만 시인. 그리고 여서도의 김만옥 시인. 사량도 출신 시인은 현재 두 분 다 육지에서 살고 있지만, 여서도 출신 김만옥 시인은 아쉽게도 요절한 까닭일까 나는 그의 이름에서 여서도 진홍빛 동백꽃 빛깔을 연상하게 된다.

 

  ⑩ 섬은 외롭지 않다

  망망대해의 무인도라 하더라도 섬은 조금도 외롭지 않다. 섬은 결코 혼자가 아니므로. 섬은 한 번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넘실대는 바다와 떨어진 적이 없다. 밀착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바다는 그 밀물 썰물의 부드러운 촉수로 섬의 백사장을 스물네 시간 애무하고 있다. 또는 험준한 현무암 절벽에 바다는 기꺼이 온몸을 던져 옥처럼 부서진다. 오르가슴의 환희를 구가한다. 섬과 바다의 부단한 살섞음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섬과 하늘은 어떠한가. 하늘은 마치 크나큰 암탉이 알을 품듯이 섬을 품고 있다. 하지만 섬은 그걸 답답하다거나 부담스럽게 느껴본 적이 없다. 그저 한없이 좋기만 하다. 본래 하늘의 성품이란 텅 비어 있으면서도 무한히 부드럽고 가볍고 섬세하고 투명한 것이므로. 또한 하늘은 무한히 자애롭다. 섬이 목마르면 비를 내려주고 섬이 심심해 하면 온갖 형상의 구름을 만들어서 즐겁게 해 준다. 아침저녁으로 해돋이 해넘이의 일대장관을 연출할 뿐 아니라, 밤이면 찬란한 별들로 하여금 섬이 포근히 잠들 수 있도록 꽃이불 되게 한다.

  하늘과 섬과 바다. 셋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며 찰떡궁합이다. 그들에겐 처음부터 만남이니 이별이니 하는 게 없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도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승에 있으면서 영원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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