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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론

거짓말 | 양선규

작성자홍예영|작성시간15.07.07|조회수84 목록 댓글 0

 

                        거짓말               

 

 

                                 양선규(대구교육대학 교수)

 

거짓말, 하면 작가 장정일이 생각납니다. 그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의 대본이 되었고, 최근에는 김지하 거짓말이라는 인터넷 이슈 검색어를 만들어낸 것도 그였습니다. 거짓말을 방치하면 신화가 되기 때문에 고의로 거짓말 방치하는 것은 작가적 의무 배치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는 같습니다. 충분히 바람직한 작가적 태도인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장정일식 작가적 태도를 본받아, 거짓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온갖 거짓말과 투쟁하며, 그리고 협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거짓말은 자체로 역삽니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온달 장군이 바보였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거짓말(이야기) 협력합니다. 물론 투쟁도 합니다. 진시황이(이사의 진언을 받아들여) 의서醫書 농서農書, 그리고 역서曆書 등을 제외하고는 책들을 모두 태워버리라고 명령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항존하는 거짓말과의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 역시 거짓말로 이루어진 실존이었다고 역사는 주장합니다(그게 싫어서 진시황은 거짓말에 대한 그런 극단적인 조치를 내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진나라 장양왕의 친자가 아니라 여불위呂不韋 혈육이었다고 사마천의 사기는 기록합니다(역사가 거짓말 신화가 되는 방지한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마천이 그렇게 기록한 것을 두고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마천에 의해, 혹은 한고조 유방의 아내였던 여씨와 그의 일족들에 의해, 그의 친부로 알려진 여불위는 그런 의미에서 탁월한 거짓말쟁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 영정嬴政 왕위에 올린 3,000 명의 식객을 동원해 세상의 모든 거짓말 한데 묶는 작업, 『여씨춘추呂氏春秋』의 간행을 서두릅니다. 모든 거짓말 섭렵해 다양성의 포용과 획일적 통일성이라는 진정한 거짓말 이루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여불위의 거짓말 인생 결국 거짓말 같은 비극으로 종말을 맞이합니다. 아들에 의해 죽기를 강요받은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습니다.

 

현재까지 나온 거짓말 중에서 가장 힘센(거짓말다운?) 거짓말은 현대 물리학과 진화론,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맑스의 정치경제학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지금까지의 논리와는 반대의 추론이나 해석이 가능하다는 , 그리고 인간의 정신을 끝까지(?) 호리는 것을 그런 것들이야말로 불패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에 비하면 거짓말 탐지기 같은 것으로 탐지되는 것들은 아주 사소한 거짓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인간의 개별적인 경험이란 것은 그런 거대한 거짓말들과 비교될 그야말로 조족지혈이 아닐 없습니다. 거짓말 탐지기 자체가 거짓말의 소산일 수도 있겠구요. 연암이 들려준 화담선생의 우화는 거짓말 우리 세상의 단면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 본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어찌 문장뿐이리오. 일체 온갖 일들이 모두 그러하다. 화담花潭 서경덕 선생이 나갔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우는 자를 만났다.

너는 어찌하여 우느냐?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제가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지금까지 스무 해나 됩니다. 아침에 나와서 길을 가는데 갑자기 만물이 맑고 분명하게 보이는 지라 기뻐서 돌아가려고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바로 네 집을 찾을 것이다.라 하였다.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걷고서 바로 도착하였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차용이 되어 이것이 망상이 된 것이다.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걷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된다. [박지원, 『열하일기』 중에서]

 

무릇 만들어진 거짓말은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때로 어긋질 때가 있습니다. 거짓말에 눈먼 자들이 갑자기 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길을 가는데 갑자기 만물이 맑고 분명하게 보이는 지라 기뻐서 돌아가려고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화에서처럼, 눈을 다시 감고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영영 다시 눈을 감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다시는 눈먼 자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버립니다. 누구나 멀쩡하게 뜨고 사는 길을 택합니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거짓말의 운명입니다.

때에 맞지 않게 치졸스런 거짓말들이 판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누구는 진시황처럼, 모든 태워 없애려 합니다. 누구는 자신의 거짓말 인생 호도하면서, 눈먼 자들을 만들려는, 투쟁을 요구하는, 거짓말들을 쏟아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그것들 치졸스런 거짓말 속에서도 협력을 요구하는 거짓말 애써 찾기도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움직여지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거짓말 의해서 움직여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백 년에 번씩일지라도, 거짓말의 효용이 다하고 눈을 떠야 하는 세상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거짓말의 운명 다하는 때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다소 낯설더라도 이제 운세가 다한 거짓말 들에 눈을 맡기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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