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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론

[시평]참혹과 절망과 비통함을 넘어 |권순진

작성자홍예영|작성시간14.07.30|조회수174 목록 댓글 1

 

다시 근원적 회의에 봉착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주면서 나는 그동안 사회적 책무를 다했는가라는 성찰에서부터 문학의 역할과 효용에 이르기까지 여러 본질적인 의문들이 좌우뇌 구분 없이 머리에 꽉 들어찼으며 가슴은 내내 먹먹했다. 참사의 이면은 벗기면 벗길수록 까면 깔수록 처참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들만 속속들이 드러나 자괴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세월호란 거울에 비쳐진 추악한 우리들의 발가벗은 모습은 실로 충격이었다. 이번 참사는 운이 나빠서거나 사소한 부주의들이 모여 저질러진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우리 모두가 준비해온 음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정부패, 무책임과 무사안일, 극심한 이기주의와 물신주의 등 온갖 부조리와 그릇된 의식들이 공조하여 일으킨 재난이 이번 참사였다. 그렇다면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기성인 모두가 이에 자유롭지 못하며 공동정범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숱한 만약에’ ‘그때 그랬으면하고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선택과 의사결정의 사다리를 타고 수십 계단을 내려와 봐도 어느 한 구석 누구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인 게 없었으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이제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보내는 경고는 명백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전과 다름없는 타성에 빠지지 않을까 솔직히 나 자신부터 염려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시를 쓰는가. 문학인의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이러한 때 문학의 역할과 지향할 바는 무엇인가. 그동안 시가 정의를 외면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을 고귀하게 받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기본인 동시에 문학의 지향점이라 믿었건만 돈의 발굽 아래서 생명이 내동댕이쳐지고 홀대받는 가치전도의 사회에서 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우울증과 무력감, 절망에 빠진 채 분노만 표출한다고 나아질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들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하며 몇 편의 시를 읽었다. 세월호의 처참한 잔영이 어른거려 감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계면쩍게도 희망의 글씨를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 있네

그러면 내 스무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민음사,2004)

 

세상은 자꾸만 좋아져야 하고, 그 개선은 때리면 울리고 울리면 변하여 그 변함에서 더 좋은 것을 찾아내리라는 변증법을 확신한 적이 있었다. 누굴 향해 차마 던지지 못했던 돌멩이 하나, 혹은 집어 들긴 했으나 손 안에 움켜만 쥐고 있었던 돌멩이 하나, 그리고 던지다 말았던 돌멩이 하나 이미 바스라지고 식어버려 이젠 몇 개의 가는 손금만이 그 쥐어 들었던 돌을 화석처럼 추억하노니.

 

나희덕의 시는 사진에서 보는 모습의 느낌과 다르지 않아 늘 착하고 얌전하여 읽기 쉽다. 하지만 절제와 단정함이 조화를 이루어 '외유내강' 무르지 않고 단단한 질그릇 같아서 아닌 것은 끝내 아니라 말하는 강단도 느껴진다. 그는 지나간 날들에 대해 결코 '잔치는 끝났다'며 허탈해 하지 않는다.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손에 박혀있네'라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거를 오늘의 것으로 부여안는다.

 

돌을 쥐고 거리로 나서기란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무리에 섞인 다음의 돌 던지기는 던질까 말까 사이의 망설임 보다 오히려 수월할 수 있다. 더 이상 생각이 필요치 않은 '행동'이므로. 한편 망설임의 번뇌에도 순전히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거나 후환을 염려해 몸을 사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역시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리라.

 

감정의 즉각적인 분출과 과잉이 반드시 '뜨거운 사람'을 형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돌을 던졌던 사람들만으로 세상이 이만큼 좋아진 것도 물론 아니다. 식어가는 돌이지만 내 손안에 있다는 것, 그보다 뜨겁고 위협적인 힘이 어디 있을까. 돌이 쓩쑹 나르고 마빡이 깨지고 피를 질질 흘려야 하는 상황을 통과하기보다는 손아귀에 움켜쥔 그 힘만으로 정돈되는 편이 지극하고도 당연히 소망스럽다.

 

하지만 피가 끓지 않고서는 손에 돌멩이를 쥐어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이번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애가 타고 피가 끓지 않는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수습이 마무리 되면 총체적 실패의 원인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이 세워질 것이다. 하지만 한 치 의혹이나 미진함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을 위해서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 오리란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이치다. 어쩌면 '단 한 번도 흘러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내 손안의 '식어 가는 돌'들이 한꺼번에 그대들을 향할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회항 / 공광규

 

멀리 순항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비상착륙을 하려면

항공유를 모두 버리고 무게를 줄여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안전한 착륙을 위하여

정상항로에서 벗어나서

비싼 항공유를 모두 바다에 버리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갑자기 자신을 비우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있다

 

-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항행중인 항공기가 기상이나 다른 이유에 의하여 당초 예정된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인근의 다른 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불시착(Dirvt)이라 하고, 출발지 공항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를 회항(Return)이라고 한다. 불시착이나 회항에는 기체이상이나 기상악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가끔 여객기 안에서 승객끼리 험악한 난투극이 벌어져 승무원의 통제가 불가할 지경이 되어 회항하는 사례가 있고, 얼마 전 한 여객기가 이륙 후 좌석 등받이 시비로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회항한 일도 발생했다. 그들이 싸우는 통에 놀라 잠에서 깬 한 승객이 비행기에 급박한 이상이 생긴 줄 알고 실신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항공기의 거의 모든 회항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불미스럽거나 안전운항의 위험이 감지될 경우에 행해진다. 회항의 사유는 이상 징후로 기체 결함이 의심된다거나 응급을 요하는 환자의 발생, 출발지 당국의 긴박한 범죄자 인도요청,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폭발물탑재 제보 등 다양하다. 아주 드물지만 임산부의 갑작스런 진통으로 기내에서 손을 쓸 여지가 없을 때 회항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이륙을 한 이후에도 뒤늦게 운항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실을 알았을 때 회항을 명령한 경우도 있었다. 출항 자체가 잘못된 일이지만 숱한 위험을 안고 운항을 감행한 세월호에 대한 회항 명령은 왜 없었던 걸까.

 

그만한 시스템도 관리주체도 갖추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항공기나 선박에서 탑재중량관리는 매우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중량과 함께 적절한 무게중심을 유지시키는 균형관리는 민감한 부분이다. 전후좌우 무게중심을 정확히 잡아야 하는데 화물을 실을 때 반드시 어디에 얼마나 실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항공기는 여객과 화물의 수속완료시점에서 컴퓨터를 통해 좌석배치와 화물탑재 위치 등이 자동계산 되어 무게중심이 구해지며, 이게 적절한 위치에 와있어야 비로소 운항허가를 얻을 수 있다. 세월호는 이의 중량균형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화물의 결박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시인은 항공기 회항을 통해 착한 눈으로 삶의 지혜를 발견하였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마음 비우고 몸집을 줄여야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 비움을 통한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이다. ‘못 먹어도 고는 고스톱 판에서나 통용되어야지 아무 때고 외칠 일은 아니다. 세월호 사고에서 수많은 만약에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옳은 결정이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악수의 연속이었다. 이토록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 사실에 경악하며 주목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호가 심각한 위험상황에 빠져 기울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이라도 어서 회항을 결정하여 선체와 탑재중량 등 총체적 안전점검에 들어가야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기철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내 밟고 온 길/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이/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이웃들에 사죄합니다/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내 짧은 지식 신념 없는 말로 강요한/ 학생들에 사죄합니다 //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내 한 포기 꽃나무도 심지 않고/ 풀꽃의 향기로움만 탐한 일/ 사죄합니다/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은 일/ 사죄합니다/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 시집가장 따뜻한 책(민음사, 2005)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감사해야할 것들만큼이나 이토록 사죄해야할 곳도 많다. 결국 우리는 숱한 죄를 지어가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인의 자기성찰과 참회는 속죄의 진정성보다는 그렇게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성숙한 자아에 그 방점이 찍혀있다. 인격의 성숙은 타인에게 감사한 마음과 송구한 마음을 품는 것에서 비롯된다. 살다보면 나의 작용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로부터 덕을 입기도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지금껏 맺은 숱한 인연들 가운데서 나로 인해 서운하고 마음상한 사람이 없다고는 누구라도 말 못한다.

 

인간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공생적 관계를 맺고 있다. 갯벌이나 습지가 생명력을 잃는다면 우리 인간들도 결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하물며 인류 공동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구조적 병폐와 환경으로 한꺼번에 3백여 명의 고귀한 생명들을 내 둘레에서 앗아간 이 참사가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다.

 

60년대 초 국제신보가 창간을 기념하여 시민위안 무료잔치를 공설운동장에서 벌였다가 밀려든 인파에 여러 명이 압사한 참극을 빚은 일이 있었다.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 선생께서 신문사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그는 이 돌발사고로 인한 비통함에 애도와 사과의 글을 일주일간 싣겠다고 신문사 사장에게 알린 뒤 쓰기 시작한 사설이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여기서 그의 진한 휴머니즘과 작가적 역량을 눈여겨본 김동리 선생이 본격적으로 소설쓰기를 권유한 게 계기가 되어 소설가로서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영혼들을 위해 바치는 눈물과 사죄를 쉽사리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어떤 사과며 사죄든 진정성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에서 '사죄'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진일보라고 여겨지나 대변인의 유감발언은 참으로 유감이었다. 이런 일에는 사과를 받는 사람이 오히려 미안할 정도라야 되는데 대통령께서는 나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못 벗은 것 같았다. 사과는 받는 사람이 수용되지 않으면 사과라 할 수 없으며 사죄는 더욱 그렇다. 마지못해 미안하다고 해 놓고선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난 사과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면 아니함만 못하다.

 

 

시간의 옆구리/ 이영춘

 

김도연의 소설을 읽으면 시간의 옆구리 같은 걸 느낄 수 있단 말야!" 소설가 이외수의 말이다/ 난 그 말의 의미를 한참 생각했다/ 시간의 옆구리? 시간의 옆구리라? // 정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난 것들/ 보편적인 진리에서 벗어난 것들/ 과거, 현재, 미래에서 툭 튕겨져 나간 것들/ 가야할 길 위에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있어야할 사람 집에 다른 무엇이 살고 있는 것/ 과거, 현재, 미래 속에 다른 시제가 생성된 것 // 엉뚱한 것들, 엉뚱한 짓들, // 정상적인 혹은 보편적인 상황 위에 또 하나의 엉뚱한 상황, // 지하도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나라/ 석 박사가 되어도 일할 곳이 없는 나라/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나라/ 툭 터져 나간 옆구리 시간의 나라 // 작년 가을 내 칸나는 40세 젊은 나이로/ 옆구리 나라로 툭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 아픈 시간의 옆구리,/ 피 철철 흘리는 옆구리 나라의 사람들

 

- 이영춘 시선집 들풀(북인,2009)

 

소설가 김도연과 이외수, 그리고 이영춘 시인은 모두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문사들이다. 김도연은 산골짝에서 소설 농사를 지으며 사는 40대 젊은 작가이며, 이외수는 살아있는 강원도의 대표적 문화상품이다. ‘시간의 옆구리같은 느낌의 소설을 쓴 이는 김도연이고, 이를 그의 감성사전식 언어로 발설한 건 이외수이며, 이 말에 골똘해져서 한 편의 시로 사유한 이는 이영춘 시인이다.

 

이영춘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를 3갈래의 영역으로 나누어 말한 바 있다. 첫째가 사회의식적인 것, 즉 사회적 모순 부조리 같은 것, 둘째는 혈육에 관한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시인 자신의 내면적 고뇌와 갈등을 그린 자아탐색적인 것이다. 그런 시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면 측은지심이 수시로 발동하여 자주 목이 메고 눈물짓는다는 것.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 ‘시간의 옆구리는 이 세 갈래 시세계를 은밀히 다 담고 있다.

 

시간의 옆구리라?’ 얼른 들어도 슬픔의 리얼리티가 물씬 풍기는 이 삐져나온 시공간에는 순조롭지 못하고 순탄하지 않은, 시간의 정상 괘도를 이탈한 장외의 군상들이 밀집되었다. 우주의 질서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지지만 공간, 즉 환경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운명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굴곡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의 곧은 흐름을 잘 타다가 전혀 예기치 못한 충돌에 의해 나가떨어진 이탈도 있다.

 

석 박사가 되어도 일할 곳이 없는상황, 마흔 살에 생을 마감한 동생의 삶, 그리고 세월호... 시인은 이런 가련하고 원통한 것들이 다 뼈저리다. ‘아픈 시간의 옆구리는 우리 삶의 실상이고 도처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들이 온통 시간의 등뼈로부터 툭 튕겨져 옆구리에 아프게 몰려있는 세월들이다. 궁핍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시인의 연민과 사랑의 시선에 오래 머문다. 진정 역사는 20144월 이전과 이후를 나눠 기억토록 하여 피 철철 흘리는 옆구리 나라의 사람들이 확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재깍재깍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 위를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터진 시간 속의 사람들을 제발 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의 기억들 2/ 나병춘

 

길을 가다가 문득 뒤가 궁금해지거든

제자리에 딱 멈추는 거야 두 발을 한껏 벌린 채

가랭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한참 들여다보는 거야

고개를 박고서 바라보는 구름 꽃나무 날아다니는 새들

벌레들도 보일 거야 돌멩이들도 보이겠지

하나하나 다른 모양의 돌멩이들 발자국들 좁다랗고 널찍한 길

구불텅구불텅하고 쪽 곧은길이 두 기둥 사이에서 꿈틀거리고 있겠지

모든 길은 가랭이 사이로 통하는 거겠지 뒤가 궁금해지거든

그렇게 한번 해 보아 빼툴빼툴 서럽게 서툴게

걸어온 발자국도 보이겠지 당당하기도 하고 흔들거리기도 하면서

아름다이 흔적없는 풍경화가 되어 뒤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겠지

 

- 시집어린왕자의 기억들(시학, 2008)

 

법정스님의 <산방한담>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의 수필이 있다. ‘그날도 여름 옷가지를 빨아 다리고 나서 노곤해진 몸으로 마루에 누워 쉬려던 참이었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서까래 끝에 열린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로 돌아누워 산봉우리에 눈을 주었다. 갑자기 산이 달리 보였다. , 이것 봐라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 이번에는 가랑이 사이로 산을 내다보았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놀이를 하던 그런 모습으로.’

 

그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하늘은 호수가 되고, 산은 호수에 잠긴 그림자가 되었다. 바로 보면 굴곡이 심한 산의 능선이 거꾸로 보니 훨씬 유장하게 보였다. 그리고 숲의 빛깔은 원색이 낱낱이 분해되어 멀고 가까움이 선명하게 드러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일어서서 바로 보다가 다시 거꾸로 보기를 되풀이했다.’ ‘이러한 동작을 누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필시 미친 중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수필에선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의 '열린 눈'을 강조했지만, 시인의 거꾸로 보기를 통해 또 다른 의미 하나를 챙긴다. 건성으로 휙 돌아보거나 늘 봐온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인식할 때는 새로운 모습을 찾기 어려우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발견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덤으로 이해했다. 어른들이 따라 하기엔 점잖지 않은 동작일지 몰라도 어린왕자가 그리했듯 선입견을 버리고 대상을 뒤집어 보는 혁신적 시각이 절실한 요즘이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한 때다. 완전한 쇄신의 뒤돌아보기와 성찰의 모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럴 때 우리 모두 머리를 수그리고 사죄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아야겠다. 무엇이 잘 못된 건지 먼저 알아야할 것이다. ‘어린왕자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뵈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의 눈이 조금이나마 터여 사막에 숨은 우물을 발견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발견을 통해 국가 개조가 되어야겠다.

 

시대의 발걸음이 참 무겁다. 어른들이 찬양하는 숫자를 버리고 어린왕자의 순수로 돌아 가야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냅다 앞만 쳐다보고 달리던 길에 멈춰 서서 뒤를, 그것도 혁신적 자제로 돌아봐야할 때다. 고착화된 틀의 바깥풍경을 보며 삶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 명함에 적힌 직장과 직위가 중요하고 통장에 기록된 숫자만이 최상의 가치가 되어서는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총체적 부실을 극복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풍경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약력>

 

1954년 대구 출생

2001문학시대등단

대표시집 <낙법落法>, 시해설서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1>

<대구일보>'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 6년째 연재중

계간 <시와시와> 편집장, 계간 <스토리문학> 부주간

대구일보 사외논설위원

 

주소: 대구시 동구 동촌로 190, 1081407(영남네오빌)

휴대전화 010-9080-1296

이메일 act4k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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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프리다 | 작성시간 14.12.15 아...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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