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가 선정한 좋은 시 ․ 28
추천 : 고성만 시인
강인한 ․ 「입술」
이재무 ․ 「수직에 대하여」
안도현 ․ 「직소폭포」
송문헌 ․ 「함께 지고 홀로 피다」
함기석 ․ 「죽은 새를 위한 첼로 조곡」
고미숙 ․ 「접시꽃」
사단법인『우리시진흥회』가‘좋은시 읽기운동’의 일환으로 매월『우리시』에 좋은 시를 선정 소개한다. 시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이 운동에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입술 │ 강인한
매미 울음소리
붉고 뜨거운 그물을 짠다
먼 하늘로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
저 푸른 강에서 첨벙거리며
물고기들은
성좌를 입에 물고 여기저기 뛰어오르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내가 엎질러버린 기억의 어디쯤
흐르다 멈춘 것은
심장에 깊숙이 박힌
미늘,
그 분홍빛 입술이었다.
- 시집『입술』(시학)에서
[시 읽기]
꿈은 상징으로 이루어진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꾸는 꿈에는 분명 많은 상징들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꿈이 상징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이 의식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검열을 통과해야 하는데 검열을 통과하자면 금지된 본능, 특히 성의 본능과 같은 것을 직접 표현하는 것보다 금지되지 않은 표현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프로이트,『꿈의 해석』). 상징은 잠재되어 있는 사고를 은폐시켜 다르게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상처를 경험하였음이 분명하다. ‘내가 엎질러버린 기억의 어디쯤’- 살아오는 과정에서 누구나 있을 법한 경험 중, ‘흐르다 멈춘 것’- 남에게 쉽게 털어놓기 힘든 비밀, 예를 들어,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거나, 대학입시에 좌절하였거나, 누군가를 미워한 것과 같은 일반적인 일. 키가 작거나 힘이 약하여 갖게 된 피해의식, 결혼한 여자를 짝사랑하였거나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 사건과 같은 특별한 일 등등 ‘입술’은 절대 말해서는 안 되지만 반드시 말하고 싶은 충동을 함축한 말이다. 남자는 여자의 귓바퀴를 잡아당겨 “헤어지지 말자”라고 속삭이는데, 여자는 남자의 입술에 입술을 댄 채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었다”라고 고백한다. 입술은 밝힐 수 없는 ‘비밀’을 상징한다. 매미는 하늘의 입술이다. 창공을 향하여 마음껏 외친다. 꽃은 식물의 입술이다. 비밀을 털어놓기 위해 살짝 벌어진다. 그 속으로 벌이 들어간다. 호박은 꽃과 벌의 대화로 만들어진 결실이다. 보라, 여성의 성기와 꽃은 모두 둥근 입술을 갖고 있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상처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 또한 없다. 그러므로 상처와 꿈은 대조적 위치에서 서로에게 자극을 준다. 꿈을 가졌기 때문에 상처를 입으며, 상처를 입는 순간에 꿈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 꿈은 2연에 펼쳐져있다.
저 푸른 강에서 첨벙거리며
물고기들은
성좌를 입에 물고 여기저기 뛰어오르는데
이 부분에서 ‘강’ ‘물고기’ ‘성좌’는 모두 꿈을 대표하는 말이다. 이 강은 물고기가 튀는 강물 모양의 성좌 곧, 은하수이다. 은하수는 잃어버린 고향을 상징한다. 평상에서 옥수수와 수박을 먹으며 모깃불 피워놓고 바라보던 은하수는 어린 시절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현대인이 지향하는 이상적 세계를 함축한다. 그 꿈을 떠올리는 순간 ‘자꾸만 눈이 감긴다’- 고통스런 현실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고향이 그리워도 우리는 열대야와 사건․사고와 폭력과 야만이 횡포를 부리는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돌아오고 나면 슬픔만 남는다. 그래서 ‘심장에 깊숙이 박힌/ 미늘’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미늘’은 ‘낚시 끝의 안쪽에 있는, 거스러미처럼 되어 고기가 물면 빠지지 않게 만든 작은 갈고리’이다. 물고기를 꿰는 것은 바늘이지만, 바늘이 입에서 빠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것은 미늘이다. 미늘을 입에 문다는 말은 곧 죽는다는 뜻이다. 특이한 점은 그 미늘이 ‘분홍빛 입술’이라는 것이다. 에로틱하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독을 품고 있듯이 여기서의 미늘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의미한다.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여위어가는 인간, 어느 누가 시간이라는 절대자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시의 미덕은 이미지와 시어의 구사에 있다. ‘매미 울음소리/ 붉고 뜨거운 그물을 짠다/ 먼 하늘로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이라는 표현에는 뜨거울수록 강렬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 그늘에서 귀청을 찢는 매미 소리로 가만 감정의 때를 씻는 고요의 시간이 들어있다. 이 시의 장점은 비유에 있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그 한계를 ‘미늘’과 ‘입술’이라는 이질적인 사물을 결합시켜,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수직에 대하여 │이재무
수평은 수직이 만든 것이다
산의 수직 하늘의 수평을
해저의 수직 바다의 수평을
기둥의 수직 천장의 수평을
언덕의 수직 강물의 수평을
꽃대의 수직 꽃의 수평을
동이에 가득 담긴 물
이고 가는 그대의,
출렁출렁 넘칠 듯 아슬아슬한
사랑의 수평도
마음 속 벼랑이 이룬 것이다
수직의 고독이 없다면
수평의 고요도 없을 것이다
-『내일을 여는 작가』 2009년 여름호에서
[시 읽기]
보라. 홀로 수직에 맞서는 알피니스트의 용기를. 에베레스트 8,000미터 이상의 고봉을 오른 산악인에게 “왜 산에 오르시나요?”하고 물었더니,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Because It's there.)”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분명 눈사태도 만나고 크레바스도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것은 죽음과 같은 악조건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였을 것이다. 그는 왜 수평의 길을 두고 수직의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눈앞에 두고 예서 멈출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던 고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시는 그런 목표 지향적 삶의 정신을 아주 잘 형상화 하고 있다.
산의 수직 하늘의 수평을
해저의 수직 바다의 수평을
기둥의 수직 천장의 수평을
언덕의 수직 강물의 수평을
꽃대의 수직 꽃의 수평을
역설적이지만 수직이 수평을 만든다. 나는 수평이 있기 때문에 수직이 성립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수직이 있었기 때문에 수평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평선을 마주한 김제 만경평야에선 뒷산도 꽤 높아 보인다. 높이는 상대적이다. 주변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정신의 높이도 상대적이다. 해발 몇 고지에 올랐느냐에 따라 얼마나 멀리 보이느냐가 결정된다. 이 시에 쓰인 ‘산’ ‘해저’ ‘기둥’ ‘언덕’ ‘꽃대’는 모두 수직의 상징이고, ‘하늘’ ‘바다’ ‘천장’ ‘강물’ ‘꽃’은 모두 수평의 상징이다. 전자는 모두 서있고, 후자는 모두 누워있다. 전자는 남성적인 것의 표상이고, 후자는 여성적인 것은 표상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역의 관계도 가능하다.) 전자가 모두 사랑의 고통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후자는 모두 격정이 가라앉은 후의 평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매혹적인 사유에 도달할 수 있다.
동이에 가득 담긴 물
이고 가는 그대의,
출렁출렁 넘칠 듯 아슬아슬한
사랑의 수평도
마음 속 벼랑이 이룬 것이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시인의 감정의 지평이 어디까지 열려있는지를. 얼마나 오래 헤매어야 안식처에 이르는지를. 마흔다섯에서 꺾어져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사랑의 수평’이 ‘마음 속 벼랑’의 산물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니 경험하게 될까 두렵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목마른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찾듯 늑대가 달을 보고 울부짖듯 자신을 끊임없이 ‘벼랑’ 위에 세운다. 그의 오롯이 염결한 정신에 나는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애틋한 연민의 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 시인은 갈파한다. 수직의 고독이 수평의 고요를 만든다고. 그러므로 시인이여! 고독을 주저하지 마시라. 그러면 고요를 얻으리니.
직소폭포 │안도현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고 싶은 게 어찌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소 채찍을 허공으로 치켜드는 순간, 채찍 끝에 닿은 하늘이 쩍 갈라지며 적어도 구천 마리의 말이 푸른 비명을 내지르며 폭포 아래로 몰려올 것 같소
그 중 제일 앞선 한 마리 말의 등에 올라타면 팔천구백구십구 마리 말의 갈기가 곤두서고, 허벅지에 핏줄이 불거지고, 엉덩이 근육이 꿈틀거리고,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뒷발을 박차며 말들은 상승할 것이오 나는 그들을 몰고 내변산 골짜기를 폭우처럼 자욱하게 빠져나가는 중이오
삶은 그리하여 기나긴 비명이 되는 것이오 저물 무렵 말발굽소리가 서해에 닿을 것이니 나는 비명을 한 올 한 올 풀어 늘어뜨린 뒤에 뜨거운 노을의 숯불 다리미로 다려 주름을 지우고 수평선 위에 걸쳐 놓을 것이오 그때 천지간에 북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내기를 해도 좋소 나는 기꺼이 하늘에 걸어둔 하현달을 걸겠소
―『시안』 2009년 봄호에서
[시 읽기]
폭포가 떨어진다. 직선으로 푸른 물줄기가 낙하한다. 장엄한 수공이다. 그 위에는 천만대군을 조련하는 장군이 있다. 폭포는 뿌연 물방울을 분사시켜 안개를 만든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안개 속에 맑고 깨끗한 원추리가 핀다. 뽀얀 달빛을 받아 달맞이꽃이 핀다. 어지러운 세상, 사다리를 타고 하눌타리가 올라간다. 폭포에 맞아 멍든 산골짜기는 시퍼렇다. 도대체 얼마나 아프게 물줄기가 떨어졌을까 파이고 또 파인 곳이 명주실꾸리 하나가 모두 풀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깊다. 땀을 뻘뻘 흘리던 사람들이 활활 옷을 벗고 들어가자마자 수십 미터 깊이의 물이 차가운 냉기를 뿜어 순간에 심장을 정지시킨다. 예전 ‘직소폭포’에서는 해마다 몇 명씩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그런 행동을 되풀이한다. 아무래도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이무기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사람을 집어삼킨다. 세상의 온갖 고뇌와 번뇌를 모아 맑게 정화시키는 폭포에는 수백 수천 수만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소용돌이친다.
안도현의 시, 「직소폭포」에서 받는 느낌을 한 구절로 요약하자면 ‘현실 초월에의 의지’이다. 안도현을 따라 전라북도 부안군 내소사 뒷산 내변산 울창한 수풀 속으로 따라가면 어느새 현실은 지워지고, 상상이 현실로서 존재한다.
이렇게 강렬한 의미의 폭포를 노래한 시인으로 안도현이 처음은 아니다. 일찍이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노래한 시인 조운이 있었다.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 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暴洞) 다 고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 八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구척절애(九尺絶涯)에 한번 굴러보느냐
- 조운, 「구룡폭포(九龍瀑布)」
여기서 안도현의 시가 좋은가 조운의 시조가 좋은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안도현의 「직소폭포」는 자유롭게 풀어놓는 맛이 일품이고, 조운의 「구룡폭포」는 꽉 짜인 맛이 남다르다. 안도현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활달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고, 조운은 불교적 신앙심에 우리말의 어감을 결합시켜 뛰어난 운율을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안도현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무차별적 경쟁과 빈부격차를 확대해가는 불안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삶은 그리하여 기나긴 비명이 되는 것‘), 조운은 일제에 강점된 조국 광복에의 염원(’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을 담는다.
이 두 시의 공통점은, 웅장한 자연에게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그 중 제일 앞선 한 마리 말의 등에 올라타면 팔천구백구십구 마리 말의 갈기가 곤두서고, 허벅지에 핏줄이 불거지고, 엉덩이 근육이 꿈틀거리고,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뒷발을 박차며 말들은 상승’(「직소폭포」),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 함께 흘러’(「구룡폭포」). 이 두 구절을 보면 질곡한 현실에서 더 이상 살아나갈 힘조차 잃어버린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싱싱한 생명력을 얻어 힘차게 비상할 것 같다. 이러한 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삶의 의지로 충만해진다.
혼탁한 세상일수록 시인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함께 지고 홀로 피다│송문헌
그 사연을 아는 이 누구일까
비 젖은 절집 구석지에 피어난 꽃
이파리 지고 나서야
꽃이 피는 전설,
염불소리
젖은 적막을 천막처럼 흔드는 뜨락
찢겨진 외등이 바람에 흔들리고,
사랑한다
잊을 수가 없다
수많은 염원 함께 지고 나서야
홀로 피는 너
넋 꽃 상사화야
-『시에』 2009년 여름호에서
[시 읽기]
송문헌 시인의 시에 이르는 경로는 고독하다. 겨울산의 적막을 지나, 백두대간의 고요와 더불어, 마라도의 바람을 끌어다가 연주하는 음악 같다. 하도 멀고 고즈넉해서 읽는 이조차 아득하게 만든다. 차라리 포기할 것을, 괜히 따라나섰다가 후회하고 또 돌아보는 산행, 허옇게 센 눈썹으로 산신령처럼 다가오는 시인, 송문헌! 그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찰,찰,찰,찰, 내 몸속의 청솔(宋)나무들
삼동내 숨죽이던 골골마다 샛바람이
사타구니를 간질이며 짚어내리는 숫 봄
저 우주의 풋가슴 열려는 서툰 글쓰기(文) 몸짓에
산자락 샛노란 올동백이 흠칫 수집다
수줍다, 수줍다 법(憲)의 손사래 친다
-「송.문.헌. -바람의 칸타타 ․ 35」에서
늘 푸른 소나무 같이, 우주의 비밀을 열려는 도전 정신으로, 올동백의 웃음 앞에서 풀어지고 마는 손사래. 순수한 시 정신으로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시에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그것은 행간의 여백이 숨어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단 한 번 말하고 싶었던 그 말, ‘사랑한다/ 잊을 수가 없다’는 고백이다. 도대체 누구를 향한 것인가?
첫 번째의 대상은 여인이다. 왜냐하면 ‘너, 넋 꽃 상사화’이므로. 여인이라 가정했을 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음이 분명한 비극적 사건이 연상된다. 상사화相思花라 하면 어떤 사람은 고창 선운사나 함평 용천사에 무리지어 피는 ‘꽃무릇’을 들먹이겠지만, 그것은 석산화이다. 내가 알기로 상사화는 난초모양의 잎이 먼저 났다가 6∼7월에 마르고, 7~8월에 분홍색 혹은 붉은색 기가 도는 연한 자주색으로 피는 꽃이다. 절 마당 화단에 많이 심어져있다. 어떤 것이 되었든 ‘수많은 염원 함께 지고 나서야/ 홀로 피는’ 그 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리게 한다.
두 번째의 대상은 부처이다. 불교적 사유에 의지하지 않고 이 시를 이해하기는 대략난감하다. ‘염불소리/ 젖은 적막을 천막처럼 흔드는 뜨락’이라야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마음을 다스린다면 진리를 깨달아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기대로 다 같이 열심히 수행하고 참선하지만 진리의 열반은 멀기만 하다. 번뇌와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쓰러졌을 때, 비로소 열반의 종소리가 들린다.
송문헌 시인은 사랑이든 부처님 가르침이든 ‘함께 지’지만 ‘홀로 피’어야만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죽은 새를 위한 첼로 조곡│함기석
눈이 내린다
하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공중에서
아름답고 슬픈 선율이 들려온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세운다
회화나무 가지에 슬레이트집 둥지가 걸려 있다
창가에서 새가 첼로를 켜고 있다
그는 나무를 올라 슬레이트집 거실로 들어간다
창가에서 꽃들이 어두운 기침을 한다
파란 깃털의 새 한 마리 악기를 내려놓고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 겨울 내내 지나온 허공의 길
길의 상처와 고독을 마시고 있다
창밖으로 반짝반짝 눈이 내린다
눈송이 사이로 등줄기가 아름다운 바람이 지나간다
그가 다가가 첼로를 만지는데
벽의 영정사진 속에서 어린 새가 환하게 웃는다
오빠! 새가 부른다
그는 깜짝 놀라 뒤돌아본다 그 순간
가지에 수북이 쌓여있던 눈이 얼굴을 덮친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어린 새도 술을 마시던 새도 보이지 않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유년의 슬레이트집이 보인다
눈 덮인 회화나무 빈 가지 끝에
죽은 새의 눈을 닮은 열매 하나 얼어붙어 있다
그는 열매를 따 입에 넣고 나무를 내려온다
바람이 분다 툭!
가지 끝에 달린 마지막 이파리가 발아래로 떨어지고
그는 쓸쓸히 회화나무 흰 그늘을 떠난다
그가 혀로 언 열매를 녹이며 레테의 겨울마을을 도는 동안
하늘에서 어둠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어디선가 아름다운 첼로 선율이 계속 들려온다
-『딩아돌하』 2009년 봄호에서
[시 읽기]
이 시는 연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이 내리는 것을 ‘하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으로 묘사하고, 나뭇가지 걸려있는 ‘둥지’를 ‘새가 첼로를 켜고 있다’(바람이 둥지를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둥지’ 라고 할 수 있는 ‘거실로 들어간다’. 그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면서 ‘길의 상처와 고독을 마시고 있다’(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새는 죽은 여동생이다(‘오빠!’하고 부른다).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유년의 슬레이트집’에 아픔의 근원이 있다. ‘붉은 열매’는 (아파서) 충혈된 여동생의 눈이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혀로 언 열매를 녹이며 레테의 겨울마을을’ 떠돈다. ‘레테(Lethe)’는 망각의 강이다. 아픔은 점차 잊혀져간다.
이 시를 간단히 요약하면, 겨울 나뭇가지 위 둥지로 부는 바람에서 위로받는 상처의 기억이다. 이러한 의미만 남기고 보면 별로 아름답지 않다. 뼈만 남은 사람과 비슷하다. 이 시는 풍부한 상상(살)으로 인하여 생명력을 얻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살을 빼지 못해서 안달이다. 뱃살, 허벅지 살, 엉덩이 살을 빼기 위해서는 꾸준히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먹지 않는 다이어트는 실패하기 쉬우므로 골고루 영양을 섭취한 다음에 자전거를 타거나 요가, 스포츠댄스를 해야 한다. 눈물겨운 노력 끝에 아름다운 근육과 굴곡 만드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다이어트의 노하우를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무조건 몸무게를 뺀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서 살을 뺀다. 그냥 안 빠지면 설사약을 먹어서라도 살을 뺀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할 때,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충분한 운동 후에 골고루 영양분 섭취한다. 땀을 흘린 만큼 먹게 되면 저절로 몸의 균형이 잡혀서 군더더기 없는 몸매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것을 시에 대입해보면, 시를 써놓고 일단 뼈대만 남긴 채 무조건 살을 뺄 필요가 있다. 살에 해당되는 것은 형용사, 관형사, 부사이다. 위의 시에서, ‘회화나무 가지에 슬레이트집 둥지가 걸려있다’는 문장은 뼈대만 남은 것이고, ‘눈송이 사이로 등줄기가 아름다운 바람이 지나간다’는 문장은 살이 찐 것이다. 뒷문장의 살을 뺀다면 ‘바람이 지나간다’ 만 남겨야한다. ‘눈송이 사이로’와 ‘아름다운’은 각각 부사와 관형사이므로 제거한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상상에 잠기어보라(충분한 운동을 하면서). 최대한 수사기교를 동원하여 풍부한 의미망을 형성하라. 고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실컷, 마음에 드는 표현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초고상태의 원고를 자신의 메일에 저장하여 둘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깎고 다듬는 동안 생각이 막히면 맨 처음의 상상으로 돌아와 보라.
이때 꼭 필요한 작업이 연상이다. 연상이라는 말은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이다. ‘뛰어나다 그렇지 않다’의 평가 이전에 ‘정말 그럴듯한 연상 작용을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를 따질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시의 성공 여부를 진단하는 하나의 잣대이다.
접시꽃 │고미숙
어디서 무엇을 담으러 왔는가
있는 대로 접시 다 꺼내들고
달그락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에
캄캄한 밤이 금 간다 그 사이로 해 떠오른다
꿈결인 듯 나비도 담아보고 꿀벌도 담아봤지만
노을에 등 대고 거울 들여다보니
욕망만 차리느라 바빴구나
빈 접시이고 말 것을
그 마저도 거둬들어야 할 것을
그 순간마저도
본능의 씨앗 다닥다닥 매달고 서 있을 건 뭔가
바람의 몸을 하고 난 또 어디로 가는가
-『사람의 문학』 2009년 봄호에서
[시 읽기]
접신의 순간이다. 접시꽃잎 따서 이마에 붙이자 나는 무당이 된다. 장마철 안개처럼 흐릿한 비가 내리는 날, 지혜란 년과 나는 붉은 꽃잎을 따서 이마에 하나 볼에 하나 연지곤지 붙이고 신랑과 각시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놀이를 한다. 나는 지혜란 년이 붙여준 꽃잎이 훨훨 날아가 미지의 세계에 사는 소녀의 이마에 붙기를 바랐고, 내가 모르는 소녀는 분명 꽃잎보다 아름답고, 요정처럼 신비스러우리라.
나의 소박한 견해로, 접시꽃은 원형적原形的 상징에 가깝다.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수없이 되풀이되고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원초적 이미지로서의 상징, 예를 들어 ‘해’는 탄생, 기쁨, 희망, 생명 등을 의미하고 ‘물’은 죽음과 재생, 충만한 깊이의 사랑을 의미하며 ‘불’은 욕망과 파괴, 정열적인 사랑을 상징한다는 식이다. 접시꽃은 앞날을 알아맞히는 점복占卜과 예언豫言의 도구이다. 접시꽃이 언제 피고 지느냐에 따라 농사의 풍흉에 관계된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다.
접시꽃이 입하 전에 피면 큰물이 진다.
접시꽃 줄기가 낮에 나오면 가뭄이 진다.
접시꽃이 한 번에 다 지면 흉년이 든다.
분명한 것은 접시꽃잎을 이마에 붙였다가 떨어지는 순간 어느 쪽으로 날아가느냐에 따라 길흉이 달라지며, 꽃잎이 진 다음 바퀴모양의 씨앗을 굴려서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운수가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엉터리 접신술을 믿지 않더라도 접시꽃은 우리 민족에게 매우 친근한 꽃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사는 골목 어귀에 그리움처럼 피고 지는 꽃, 고미숙 시인은 접시꽃에게 자아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꽃이 한 잎 한 잎 필 때마다 소원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아니 집착을 하나씩 비워가는 ‘빈 그릇’. ‘꿈결인 듯 나비도 담아보고 꿀벌도 담아봤지만/ 노을에 등 대고 거울 들여다보니/ 욕망만 차리느라 바빴구나’라고 노래한다. 참 쉽다. 무슨 설명을 덧붙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접시꽃을 몸으로 보았기 때문에 ‘욕망을 버림’이 가능한 경지. ‘그 마저도 거둬들어야 할 것을/ 그 순간마저도/ 본능의 씨앗 다닥다닥 매달고 서 있’는 그 꽃을 보고 도대체 무어라할 것인가. 하고 싶은 사연은 가득한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떠나온 이별 같다. 그러니 되풀이하여 물을 수밖에.
‘바람의 몸을 하고 난 또 어디로 가는가’
◈고성만 시인◈
*1963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
*1993년 광주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고부에서 보낸 일년」당선.
*1998년 『동서문학』신인상에 시
「섬, 검은 옷의 수도자」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올해 처음 본 나비』
『슬픔을 사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