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한 편
가슴으로 듣는 쇼팽의 이별곡
내가 쇼팽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를 졸라 그 당시 꽤 유명하다는 전축(오디오)을 구입하였고 피아노 전집과 몇몇 클래식음반을 구입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쇼팽의 이별곡은 나에게 땅울림 같은 감동을 주었던 음악이었다.
순수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여서 더 그랬겠지만 달밤에 불을 끄고 달빛에 안겨서 쇼팽의 이별곡을 듣노라면 상상의 나래는 한없이 뻗쳐 천상을 누비다가 어느 점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는 순간에 이르고 음악은 눈물에 젖어 베개 속으로 수렴되는 것이었다. 짧은 소품에 불과한 곡이지만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사랑해온 첫사랑과의 이별을 맞는 젊은 쇼팽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낀다.
나의 기쁜 마음
그대에게 바치려 하는
이 한 노래를
들으소서 그대를 위한 노래
아~아 정답게
나의 가슴 불타올라
나의 순정을 받아주소서
그리운 님
떠나가면 나만 홀로
외로움을 어이 하리
언제 다시 만나려나
아~ 그리운 님
나의 순정을 잊지 마소서
그리운 님
나의 가슴 불타올라
나의 순정을 받아주소서
그리운 님
떠나가면 나만 홀로
외로움을 어이 하리
언제 다시 만나려나
아~ 그리운 님
나의 순정을 잊지 마소서
그리운 님.
-쇼팽의 「이별곡」 가사 전문
프레데릭 쇼팽Fryderyk Chopin은 1810년 3월 1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젤라조바블라라는 작은 도시에서 프랑스인인 아버지와 폴란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이 뛰어나 7세부터 작곡을 하였고 8세부터 대중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한다. 그는 천재적인 음악적 감성을 지녔으나 수줍음이 많았고 섬세하였으며 고독과 사색을 즐기는 조용한 성격으로 후세에 사람들은 그에게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쇼팽은 1829년 봄 바르샤바의 한 음악원에서 그의 영혼 속에 한 획을 남긴 첫사랑 콘스탄치아 그라드코프스카Konstancja Kowska와 솔리스트로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직접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담아왔던 그녀와의 첫 공연은 그에게 한없는 희망과 상상의 미래를 주었음에 틀림없었으리라. 가장 순수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19살의 쇼팽은 그녀로 인해 잠재하던 음악성을 끄집어내게 했고 감동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게 된다.
그중에서도 그라드코프스카를 위하여 작곡한 최초의 음악이 피아노콘체르토 2번인데 제2악장인 아다지오는 꿈속에서 그녀를 생각하며 작곡한 것이라고 친구인 티푸스에게 고백했을 정도였으니까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불태웠던 쇼팽의 간절한 사랑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1829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이웃의 강대국 러시아의 야욕으로 전쟁이 임박함을 느끼고 전쟁터로 나가느냐 아니면 아버지의 나라인 프랑스로 가서 음악공부를 계속하느냐로 고민 하던 끝에 주변의 권유에 이끌려 일단은 프랑스로 가기로 하였으나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1829년 10월 11일 쇼팽이 파리로 떠나기 전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고별연주회를 가졌는데 이때 그가 사랑했던 그라드코프스카는 하얀 드레스에 장미를 머리에 꽂고 출연하여 호수 위의 미녀 중 아리아 ‘Oh, How many tears have I cried for you’를 불렀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천사의 음성일 것이며 그의 꿈결 같은 눈동자를 보면서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온몸의 소름을 죄다 일으켜 세워 노예의 가시가 되게 함일 것이다. 천사를 연상케 하는 하얀 드레스에 장미를 머리에 꽂은 그녀의 자태는 젊은 쇼팽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며 환상적인 노래는 그가 조국을 떠난 이후 평생토록 멈추어버린 시간이 되어 영원히 그의 음악적인 잠재력으로 분출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쇼팽의 이별곡은 그라드코프스카와 헤어진 후 그녀를 생각하면서 작곡한 곡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훗날 쇼팽 자신이 말하기를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곡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니 순수한 첫사랑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쇼팽의 애절함과는 달리 그라드코프스카는 쇼팽이 떠난 지 1년 후인 1830년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만다. 멈춰버린 시간과 흐르는 시간 양쪽에 걸쳐 있는 그녀, 그런 그녀의 현실을 애써 외면했을 쇼팽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이별이란 참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함유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영혼을 흔들었던 무엇인가가 있고서야 이별은 있기 마련이고 그 이별의 상처가 깊을수록 슬픔은 더욱 아름답고 맑은 거울 같아서 지난 추억을 굴절 없이 재연해 주는 영사기가 되는 것이다. 이별은 종속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것이며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내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한 사람에게 때때로 이별은 성스럽기조차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쇼팽은 파리에 안착하여 수많은 작곡과 연주를 하면서 당대의 유명음악가가 되지만 그의 사랑은 애절함의 연속이었다. 쇼팽의 가슴 안에 존재하던 그라드코프스카의 체온이 거의 다 식어가던 1837년, 당시 프랑스의 저명한 여류소설가였던 연상의 여인 죠르쥬 상드George sand와 사랑에 빠지지만 첫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너무 컸음인지 아니면 너무 음악에 집착했음인지 쇼팽은 결핵에 걸려서 병마와 싸우는 시련에 봉착하고 만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이었던 죠르쥬 상드와 휴양 차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으로 가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지병이 악화되자 결국엔 자신의 운명을 예지하고 상드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사랑하지만 보내줘야 하는 마음은 쇠뜨기 풀로 심장을 촘촘히 긋는 것일 것이며 새로운 바다를 만들 만큼의 슬픔일 것이다. 사랑하는 상드와 헤어지고 얼마 후 쓸쓸하게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그가 죽은 지 2주 후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는 가운데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유해는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 한줌에 덮여 파리의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에 묻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심장은 항아리에 담겨져 조국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성 십자가 교회에 묻힌다. 사실 쇼팽의 아버지는 프랑스인이었으니까 그도 프랑스인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의 나라 폴란드가 품고 가야 할 조국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던 폴란드는 그의 마음이라도 바쳐서 지키고 사랑해야 할 어머니 같은 조국이었다.
심장은 무엇인가? 과학자에겐 머리가 으뜸이겠지만 예술가에겐 가슴, 즉 심장이 으뜸인 것이다. 그의 유언으로 그가 얼마나 폴란드를 사랑했고 돌아가고 싶은 고국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쇼팽의 이별곡은 원래 연습곡 형태로 작곡 된 Etude in E Major OP. 10-3 Trisitesse 라는 작품이며 이후 편곡자인 알루아 멜리카르가 시적인 가사를 붙여 낭만적인 가곡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 곡은 4분의 2박자의 느린 선율로 된 주부와 중간에 격정이 휘몰아치고 새로운 세계를 그가 생각했던 질서 속으로 무두질하는 듯한 박진감에 고조되지만 다시 3부로 이어지면서 느린 선율로 돌아오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쇼팽의 이별곡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플룻 등 여러 악기로 연주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곡이다. 조용한 밤에 달빛을 받으며 듣는 이별곡은 평온한 영혼의 울림이고 정제된 슬픔의 향기이다. 분노나 원망은 언제나 끝이 아닌 시작을 기획하지만 그 끝은 복수와 자멸이라는 파국을 만드는 것이다. 쇼팽의 이별곡은 가슴 저 밑바닥에 침잠해서 굳어버린 화석 같은 추억을 꿀처럼 무르게 하여 향기를 발산하는 신비이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며 회한의 눈물로 제 영혼을 세례하기도 하는 세례요한 같은 것이다.
이 곡은 꼭 쇼팽의 일대기와도 꼭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1부에서 미래의 이별은 잔잔하게 운명의 괘도대로 움직인다. 뭔가를 준비하고 이루고 꿈을 키워가는 과정은 모두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을 꾸는 동안은 모든 게 순수하며 시작은 항상 잔잔한 설렘인 것이다. 그라드코프스카를 짝사랑하는 설렘 속에는 무한한 꿈과 각오가 있었으리라. 자기 식으로 치장하고 재능을 부여하다가 연주회에서 직접 그녀의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동은 몇 만 볼트의 초단파로 그의 심장을 마음껏 지졌을 것이다.
그리고 2부가 전개되는데 갑자기 격정이 휘몰아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에 함락되고 증오와 슬픔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잘 익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이었으리라. 노총각 쇼팽은 풍부한 상상력과 매력을 지닌 연상의 소설가 죠르쥬 상드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불륜이라는 비난을 스스로의 순수함으로 극복하면서 격렬하고도 달콤한 사랑에 빠지지만 마요르카섬의 파돗소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결핵이라는 악마의 요술에 걸려 깨지고 만다. 파도는 깨져서 물거품만 남기는 것 같지만 기실은 바위를 긁고 긁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쇼팽은 결핵으로 육신이 꺼져가면서도 혼불을 밝혀 영혼을 울리는 위대한 곡들을 만들었으며 사랑의 의미를 새겨두었던 것이다.
3부에서 쇼팽은 다시 낮은 선율로 운명을 정리해 간다. 영혼은 육신의 옷을 입었을 때만 아름답다는 걸 쇼팽은 잘 알고 있었고 영혼의 옷이 다 해져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지닌 모든 것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상드를 떠나보내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마무리를 해간다. 마지막에 가족들을 만나고 은둔하듯이 파리에 칩거하면서 작곡을 마무리하고 미완성의 곡들은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그의 심장을 조국 폴란드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그래서 이 곡의 3부는 그의 운명처럼 슬프고 그의 이별처럼 가슴이 아리지만 차분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진정한 이별의 이데아다.
쇼팽의 이별곡을 들으면서 쓴 졸시 한 편을 올려본다.
부서져 사라지는 꿈이었다가
하나로 다시 돌아오는 이별이다가
더 이상 시간이 아닌 너를 본다
실바람만 불어도 추락하는
만추의 오동잎 같은 만남을 위해
하모니카는 종종
쇼팽의 이별곡을 연주한다
민들레가
꽃대를 밀어 올리는 소리
그 노란 입에서 번져 나오는
이별의 향기
구름이 북을 치고
실버들이 바이올린을 켜는 날
너는 또
누구를 위한 이별곡을 준비할까
어떤 이별이
4분의 2박자로 느리게
심장을 통과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별」 전문
박은우: 2003년 《문학저널》로 등단. 시집으로 『눈물을 닦으면 보이는 행복』 등이 있음. silverp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