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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음에서 온 편지 / 나병춘

작성자유진|작성시간18.02.09|조회수157 목록 댓글 1

시 에세이

 

 

산음에서 온 편지

나병춘 (시인)

 

 


 산음에서 온 편지 . 1


숲을 만나는 방법에는 몇 가지나 있을까? 눈으로 만나는 방법이 있다. 코로 만나는 방법, 입으로 만나는 방법, 손으로 만나는 방법이 있고 발로 만나는 방법도 있다. 숲의 색깔과 향기와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자연과 저절로 하나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비 오는 날 숲을 거닐 때면, 초록 잎사귀에 빗방울 듣는 소리가 마치 아름다운 비발디 음악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우산이나 비옷이 없이 그냥 흠뻑 젖어드는 것도 비 오는 숲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아예 구두를 벗고 양말도 벗도 맨발로 철벅거리며 걷는 것은 온몸의 오감이 열리면서 숲과 하나가 되는 가장 멋진 방법이 될 것이다


콸콸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에 온갖 고민과 걱정거리를 다 날려버리고 한 마리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연상하면 자신이 가벼운 작은 새가 되어 포르르 창공을 차고 오른다. 인간의 상상력은 얼마나 놀라운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온갖 물질적 혜택이나 문학 종교 철학 과학 예술들은 모두 우리네 상상력이 발현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던가

 

철쭉이 활짝 피었다 지는 모습은 왜 그리 처량한가? 철쭉이란 말은 아름다운 꽃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라는 척촉이란 한자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개꽃이라 하여 참꽃에 대비한 조상님들의 사물을 보는 눈에 대하여 의아해 한 적이 있다. 겉모습을 보면 철쭉이 훨씬 우아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듯한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참꽃인 진달래는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순한 꽃인데 비하여, 철쭉은 독이 많아 먹으면 배탈이 나고 부작용이 심하다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가치관을 따로 부여한 조상님들의 지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철쭉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참꽃이 아닌 개꽃이 되고 말았으니.


사물의 이름은 인간의 편리에 따라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소나무에게 물어보라. 자신이 소나무인 적이 없으며 그냥 하나의 나무로서 나무의 길을 갈 뿐인데, 사람들이 소나무 소나무! 하면서 자신을 떠받드는 모습에 대하여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지 않는가? 숲을 산책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과 공간을 부여한다. 나는 진정코 나답게 살고 있는가? 부끄럽게 남의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불평불만에 빠져서 허송세월하는 것은 아닌가? 태어난 그대로 내 모습과 향기와 색깔과 발자국에 맞추어서 살아가고 있는가? ‘참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고요한 숲길에는 맨발로 오세요

새들은 옷을 입지 않습니다

나무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습니다

시냇물은 양말을 신지 않습니다

햇살은 눈부신 알몸입니다

구름은 비옷이나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눈발은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숲길에 오실 적엔 맨발로 오세요

바람은 쉴 새 없이 푸른 입술로 지껄입니다

새나 나무나 풀잎처럼 솔바람 속에 아무것 걸치지 말

고 서 보세요

그늘 아래 누워 텅 빈 하늘을 쳐다 보세요

한 마리 다람쥐가 되어 도토리 한 알 찾아 보물찾기 해 보

세요

그러면 당신이 풀잎이며 바람이며 햇살이며

빗방울이라는 걸 알게 될 거에요

당신의 가난한 발자국 소리에

새들이 반기고 풀잎이 손을 흔들 거예요

목마르거든 엎드려 한 줌 시냇물을 마셔 보세요

배고프거든 하늘의 태양을 흠뻑 들이켜세요

해말간 실바람이 그대 영혼의 텅 빈 모세혈관마다

환하게 불을 켜 줄 거예요 찬란하도록 외롭고 적막한 날엔

숲길로 오세요 비 오시는 날이거나 바람이 불거나

졸시,산음일기 · 1전문


숲길을 거닐다가 목이 마르면 시냇가에 바짝 엎드려 목을 축인다. 노루나 고라니가 된 듯 허리를 잔뜩 구부려 징검다리에 엎드린 모습에 허허 웃음이 터지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배고프면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촉촉이 이슬에 젖은 풀잎을 먹고 먼 하늘 바라보다가 어디선가 짝이 부르면 달려가 사랑을 나누는 저 순정한 짐승들이 가끔 부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 우리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자연의 고마움을 망각하고 함부로 해왔다. 발전이나 진보가 무엇인가? 눈을 뜨면 개발 개발 개발, 외치면서 온 산과 들판과 바다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숲길을 걸으면서 조용히 반성해 본다. 나무나 풀에게 새들에게 물고기들에게 잎사귀를 갉아먹고 있는 애벌레나 거미나 나비들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떳떳한 모습인가? 뒤돌아보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일대 일의 관계이다. 지렁이의 목숨과 사람의 목숨이 일대 일이다. 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솟아있는 삿갓나물이나 천남성꽃은 아름다운 푸른 지구를 지탱하는 위대한 생명체들이다. 저 푸른 이끼의 부드러운 힘을 보라. 이끼는 가장 연약하고 키가 작고 부드럽지만 저 단단한 바위를 쪼개고 분해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이끼를 닮아가자. 저 지렁이를 닮아가자. 아무 하는 일 없는 듯한데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 지렁이 한 마리, 그가 바로 지구를 살리고 지구를 지탱하고 지구를 떠받치는 가장 진실한 지구의 파수꾼이지 않는가?



산음에서 온 편지 . 2

- 자리이타自利利他


출근하는 길, 개복사꽃 만발하여 길목을 환히 밝히고 있다. 엊그제 비로 개울이 많이 불어 시냇물소리가 용감하고 씩씩하다. 여울소리에 발맞추어 봄맞이 냉이 꽃다지 현호색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무논에는 벌써 올챙이들이 부산하게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면서 봄나들이에 나섰다. 올챙이알이 새카많게 먹장구름처럼 둥둥 떠 있던 연못에 아침 해가 붉게 타오르며 오늘 아침 나의 발걸음을 뒤따라온다.  

높은 산도 낮은 언덕도 논바닥에 가볍게 떠서 연둣빛을 발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 우리가 먹는 쌀은 바로 저런 힘으로 자라는갑다. 태양과 달과 별들의 속삭임과 높은 산의 푸른 에너지가 집약되어 밥상에 올라 피와 살이 되어, 우리 사람에게 지구와 우주를 온전히 지키는 역할을 부여한 것 같다. 논이 없었다면 지구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되었을지 모른다. 소박하고 죄를 모르는 농부들이 초록 지구를 살리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음이 분명하다.  


개울을 건너자 개복사꽃 화사하던 시냇가 오솔길이 어느새 흙빛으로 물드는 꽃잎들로 애잔하다. 봄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꽃들은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면서 우리네 인생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땅바닥에는 산벚나무 꽃잎이 아름다이 수놓여 발걸음 내딛는 것이 조심스럽다. 꽃발 딛고 가듯 꽃잎을 피하면서 걸었더니 그림자도 땅바닥에서 춤추고 있다.


오전 숲 해설을 나가는데 반가운 새울음소리가 들린다. “홀딱벗고 홀딱벗고네 박자로 우는 검은등뻐꾸기소리이게 얼마만인가? 지난 여름내 울어쌓더니 벌써 산음에 또 왔구나. 오래 잊었던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듯 입안으로 되뇌어 본다. 산문에서 수도하던 청년 스님이 세상 번뇌 잊지 못해 도를 제대로 못 닦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홀딱 벗고 살아라! 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못하여 홀딱벗고네 박자로 운다는 전설이 있다. 세상 오만가지 백팔번뇌도 다 벗고 홀딱 벗은 알몸으로 욕심 없는 영혼으로 살라는 가르침, 하지만 우리가 육신을 갖고 사는 한, 홀딱 벗고 홀가분하게 사는 일은 참 어려운 경지인지 모른다. 마음 비우기로 맨날 속다짐해 보지만 깨끗이 비우고 사는 일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임도를 걷고 있는데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홀딱벗고 새가 운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무엇을 벗으라는가?

단 한 번 보지도 못한

검은등뻐꾸기가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은근한 밤에 무엇을 하자는 건가?

떼꾼한 초생달 한쪽 눈 한쪽 날개로

짝 찾아 날아가는 한밤

캄캄한 개구리 떼 합창 속에서

유혹하듯 춤추듯 노래하는

저 홀딱벗고 가락

잠 못 이루는 내게

탈 많은 탈

탈탈탈 털어버리라고

저토록 암팡지게 울어쌓는가?

졸시,검은등뻐꾸기전문


계곡 폭포수 옆에서 가방이나 모자를 벗고 다함께 맨손체조를 하고 심호흡을 한다. 숨쉬기 운동을 하면서 먼 하늘을 바라다본다. 저 쾌청한 하늘빛 더불어 연초록 환하게 반짝이는 녹음과 더불어 한참 손발을 휘젓다보면 온 세상 번뇌와 걱정 근심이 폭포수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가뿐한 몸과 맘으로 산책길에 피어난 각시붓꽃 쇠별꽃 족두리꽃 금붓꽃 삿갓나물 바위말발도리 등을 감상하며 가다보면, 숲 해설 막바지

에 이른다. 남근석에 둘러서서 소원 빌기를 해본다.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온 가족 식구들이 몸 건강 마음 튼튼하면 원이 없겠단다. 아빠들에게 물어보면 아이들 공부 잘하고 부부 화목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들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이 잘 이루지면 좋겠다고 하고, 사고 싶은 게임기를 어린이날 선물로 사주면 좋겠다고 당당히 밝힌다. 오월의 하늘 아래 가족들과 더불어 숲 프로그램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내려오는 길, 때 묻지 않은 시냇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청량하다.  


오후엔 나 홀로 홀로길을 걸었다. 내일모레가 어버이날이니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250살 된 굴참나무를 뵈러간다. 한적한 오솔길에 철쭉이 사춘기 소녀의 볼모양 무르익어 햇살에 부끄러이 홍조를 띠고 있다. 둥굴레는 오종종 종을 달고 댕댕댕적막을 깨뜨리고 있다. 생강나무 잎사귀들이 연둣빛 손바닥 펼치며 햇살에 그림자놀이 하고 있다. 나 이쁘죠? 나 이쁘죠? 서로 경쟁이 붙은 듯 정겹다. 길가 두릎 순은 벌써 누가 다 따갔는지 앙상한 수직의 기둥만 외롭게 하늘을 찌르고 있다. 드디어 굴참나무 아래에 닿았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산음의 가장 오래된 어머니나무, 이제 새 잎사귀들이 부드러운 남실바람에 산들거리고 여기저기 겨우살이들이 퍼렇게 굴참나무 어깨에서 엇둘 엇둘, 체조를 하고 있다. 나도 노모를 껴안듯 굴참나무 둥치를 껴안았다. 온 우주의 힘과 에너지가 온몸으로 감지되어 온다


굴참나무는 열심히 제 삶을 살아가는데 그에 깃든 수많은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자벌레 쐐기벌레며 겨우살이 새와 벌 나비들은 이곳에 깃들어 집을 삼고 침대를 삼고 부엌으로 삼아 멋진 숲 생태계를 연출한다.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나무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인데 그 일이 타인에 대한 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새와 벌나비가 열심히 먹이를 탐하는 동안, 나무는 또한 벌나비의 도움으로 그 틈을 타 씨받이를 하는 것이다. 새나 벌 나비의 이기적인 행동이 없다면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후손을 번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자연의 이법은 참 신비롭고 오묘하다. 이기적인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존재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이기利己니 이타利他니 하는 이것은 인간의 이분법적 논리이다. 이기적일 때 이타적이 되는 자연의 이법, 굴참나무는 바로 이것을 몸으로 몸소 보여주면서,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저렇게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ㅡ『우리2017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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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나병춘 | 작성시간 18.02.11 유진 시인님
    수고 많으십니다.
    어제 또 지진!!

    얼마나 놀래셨을까요?
    암튼 심하지 않았다 하니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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